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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디디고 땅을 우러르며 - 어느 천문학자의 지상 관측기
홍승수 지음 / 공존 / 2018년 6월
평점 :
남들은 좋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유시민이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필사하라고 권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번역한 사람이 쓴 조각글 모음이다.
편지글과 가벼운 수필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산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몰입할 수 없었다.
유시민 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좋다고 하시니 좋은 책인 것은 분명한데,
나는 잘 모르겠어서 원인을 나름 생각하느라 좀 골몰하였다.
처음에는 내 취향이 아닌건가,
또는 이분이 연세가 좀 있으시니 사고방식이 올드하여 그런건가...싶기도 했지만,
그래서가 아니라,
나도 좀 이분 같은 성향이 있는데다가,
유류상종이라고 주변에 있는 친구나 지인들도 좀 곧이곧대로 고지식한 면이 있는터라,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어쩜 구도자와 닮은 것 같다.
대상을 향한 경건하고 경이롭기까지한 연구과정은 구도자의 그것과 닮았다.
보기에 따라선 터무니 없이 무모해 보이는데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간다.
이강환 님의 헌정사와 석웅치 님의 추천글을 보게 되면,
평생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학생에게 공부하라고 하시는 그 원칙을 당신께서 엄격하게 지키며 살아온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종교적 색깔을 드러내는 글은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자의 글이라서 그런지,
저자가 말씀하시는 '하느님'은 하늘에, 그가 연구하는 우주에 다름 아님을 알겠다.
항상 꾸준히 연구하시고 노력하시며 그리하여 귀감이 되는 것 또한 본받을만 하다.
곳곳에서 꾸준히 독서를 하시는 것도 엿볼 수 있었다.
완당평전이나 박경리 님의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나 이영희, 윤오영, 김기림, 박칼린, 숨결이 바람될때 등등 많은 책들이 인용된다.
개인적으론 윤오영 님의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책에 들어있는 '감시를 무시하는 삶'이란 글이 좋았다.
30년 전 윤오영은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의기양양했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은 나의 이 작업으로 말미암아 권위 있게 스톱당하고 만다. 지구조차 이속에서는 돌지 않는다. 외계에서 수소탄이 터지든 태양이 물구나무를 서든 나는 결코 개의하지 아니해도 좋다. 내가 이 작업을 하고 있는 한, 이런 무관심과 태만에 대해서도 아무도 문책하는 사람이 없다.(중략) 이 지상에서 자유 해탈의 시간은 이 시간뿐.(후략)
하지만 오늘의 과학과 기술은 측상에서의 樂(즐거움)을 苦(괴로움)로 바꾸어 놓고야 말았다. '지구조차 돌지 않는다'는 그곳에서까지 과학과 기술이라는 괴물은 감시의 눈길을 거두는 법이 없다. 이제는 사방이 나를 감시하고 문책할 것이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
실은 꼭 드려야 할 말씀이 하나 있어서 얘기가 이렇게 길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하느님의 감시'는 제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분의 감시를 철저하게 무시하며 살아왔다는 저의 고백을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65쪽)
윤오영 님의 글에 등장하고, 그리하여 홍승수 님에 재인용되는 이곳은 눈치채셨겠지만 '해우소'이다.
윤오영 님의 저력이야 '방망이 깎던 노인'이 교과서에 등장할 당시부터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고,
거기서 이렇게 사유를 확장시킬 수 있는 홍승수 님의 발상 또한 놀라울 뿐이다.
그나저나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에고가 강해져서 그런지 수필을 읽기가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의 사유를 따라가기가 버겁다.
읽다보면 나만의 호흡으로,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남아있는 나날, 얼마나 더 읽을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지만,
나만의 리듬과 속도감을 가지고 나름대로 독서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읽는 양이나 책의 권수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자위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