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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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 ‘피라미드’, ‘공룡’, ‘미이라’, ‘미스테리’. 나에게 고고학이란 이런 개념들이다. 아마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강인욱 교수님의 강연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 쭉 저런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연을 본 뒤, 고고학의 주 연구대상은 내가 생각한 저런 것들이 아니라, 아 물론 부수적으로 연구하는 분야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고고학의 주 연구대상은 ‘인류’였다.  고대부터 가까운 역사까지 ‘인류’와 관계된 유물을 연구하고 발굴하는게 바로 고고학이었다.


뿐만 아니라 고고학은 상상력의 산물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상상하는 그런게 아니다. 고고학자들이 하는 상상력은 인문학적 요소가 필수불가결이다. 그래서 상상력을 발휘해 추론한 내용이라고 해도, 근거가 있고, 당연히 그럴 것 이라 생각이 드는 그런 학문인 것이다.


차클 강연만으로는 고고학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관련 책을 읽자니 너무 대놓고(!!) 전문서적들이 많아서 읽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흐름출판에서 고고학 초보자를 위한 교양서가 나왔다. 그것도 강인욱 교수님이 직접 쓰신! 꼭 읽어야지 싶었는데, 세상에나. 운 좋게도 흐름출판 서포터즈가 되었다. 그렇게 첫 번째 미션으로 받은 책이 바로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감사합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차클 강연으로는 미쳐 다 채우지 못했던, 고고학에 대한 내 호기심을 드디어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고고학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즉,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킵니다.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셈입니다. (중략) 우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죽음으로 수렴이 되어 망각이 되고 망각되어버린 기억은 다시 유물이라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고학자에게 유물이란 다시 살아난 기억의 편린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P 009~010 


이 책은 강인욱 교수님이 나같은 고고학 무식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고고학이 무엇인지, 어떤 매력이 있는 학문인지 아주 쉽게 알려 준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같기도 하다. 에세이에서 고고학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느냐고 말할 수 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그런 에세이가 아니다. 강인욱 교수님은 지금까지 발굴한 모든 유적지에서 수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이 책은 바로 그 기록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살아있는 고고학이 담긴 책이기 때문이다. 진짜 강인욱 교수님께서 영혼을 갈아넣어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써준 고고학 에세이다.


책에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6페이지에 걸쳐 이 책에 어떤 유적지 및 유물 및 발굴 시기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알수 있는 사실, 위에서도 언급한 내가 생각했던 고고학의 개념은 틀렸다는 사실이다. 고고학에 대해 올바르게 생각하지 못한 건, 고고학자에 대해 이상한 환상(?)을 심어준 영화 및 TV의 영향이 크다. 매번 『몬타나존스』나, 『미이라』같은 것만 보여줬으니 ㅠㅠㅠㅠ 지금 돌아보면 이런 영화들에서 나온 고고학자들은, 고고학자가 아니라 오히려 유적지를 파괴하고, 유물을 훔쳐가는 대역죄를 짓는 것과 마찬가진데 말이다. 어휴.. 지금이라도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땅 속의 흙은 일정한 시간을 두고 마치 케이크처럼 쌓여 있다. 한 층 한 층은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의 시간을 두고 쌓인 것이다. 발굴장에서 곡학자들이 솔이나 꽃삽으로 조심스럽게 작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따. 순간의 부주의한 발굴로 지나치는 층위는 두고두고 고고학자의 실수로 남게 된다. P 022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창원 다호리에서 발견된 목관이 전시되어 있다. 나도 분명 어러번 갔던 박물관인데 왜이리 생소한지. 지금까지 내가 본 오래된 관은 대게가 옹관이었다. 항아리 두개를 이어 만드는 관 말이다. 그 어떤 박물관을 가도 꼭 보았던게 바로 옹관이었기에, 당연히 선사/청동기 시대의 관의 시작은 옹관이었다. 그런데 목관이라니! 너무 신기하기도 했고, 왜 내 기억속에는 없는지 이상하기도 했다.


목관이 발견된 창원은 경상남도에 있다. 과거에는 삼국 시대에는 신라, 그 전에는 가야(어쩌면 신라에 근접할수도), 또 그 전에는 변한이 있던 자리다. 근데 잘 생각해보니, 내가 여태 다녔던 박물관들은 백제 내지는 마한이 위치했던 서해안 및 중부지역 이었던거다. 그러니 변한 지역에서 사용되었을 목관이 생소할 수 밖에. 근데 놀라운 사실 하나. 책에 의하면 창원에서 발견된 목관과 비슷한 관이 시베리아 일대에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다. 고대에도, 지금까지도 말이다. 역시나 강인욱 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이러한 목관을 쓰는 이유는 하늘로 자라는 나무처럼 죽은 사람 역시 저 하늘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라고 하셨다.


이러한 목관이 시베리아 일대에 퍼져있다는 이야기를 보고 문득 생각난 게, 바로 신라였다. 당연히 우리 조상이라 생각하는 신라지만, 신라인들의 유물들을 보면 너무 자연스럽게 대륙너머에 있는 시베리아, 기마민족들이 떠오른다(실제로 그 지역에서는 신라에서 발굴된 유물과 비슷한 유물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까). 창원이 변한 지역이긴 하지만, 진한과 밀접한 지역이다. 진한 지역에 있었을 기마민족들이 영향이 여기까지 미친건 아닐까?


시베리아와 우리와 연관된 문화는 또 있다. 바로 하프다. 누가봐도 서양,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악기인 하프가 우리 문화와 연관되어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뭐 정확히 말하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손으로 현을 뜯는 하프가 아닌, 입으로 부는 하프라는 점이지만. 입으로 부는 하프는 옛 기록에는 ‘구금’이라고 하고, 유목민들은 바르간이라고 부른다. 근데 이 바르간이라는 악기가 시베리아를 비롯한 유목민들에게 널리 유행한 악기라 한다.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쭉 말이다. 물론 나는 이렇게 책에 나오기 전 까지는, 그 생김새 조차 몰랐던, 완전 초면인 악기였으니 말 다했다. 그런데 이 구금 유물이 발해유적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


역사 기록에 따르면 발해의 음악은 당시 일본과 중국에도 널리 퍼졌다. 발해의 사신이 전한 음악은 일본 도다이지에서 공연할 정도이고,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송나라에서는 발해의 음악이 너무 유행해 이를 강제로 금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도대체 발해의 음악에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이렇게 주변 나라의 사람들을 매혹시켰을까 궁금했다. 구금이 등장한 것을 보니 발해는 초원, 중국, 그리고 고구려의 여러 음악을 조화시켰던 건 아니었을가. 비록 과거의 음악은 복원하여 듣기 어렵지만, 그들이 이뤘던 문화의 힘은 지금도 느낄 수 있다. P105


지금은 안 사고, 안 가는 나라가 된 일본이다. 덕분에 내 여행 및 답사 계획도 많이 일그러졌더랬다. 그럼에도 난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하면서 미워한다. 좋아하는 이유도 역사 때문이고, 싫어하는 이유도 역사 때문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 라면 아이러니랄까(일본을 가고 싶은 이유도 오로지 역사때문이니). 이렇든 저렇든 일본에는 아직도 우리 고대 문화가 곳곳에 남아있다. 강인욱 교수님이 말한 도다이지(나라현 동대사)에서 공연하는 발해음악이 그렇고(도다이지 자체도 도래인과 깊은 연관이 있고), 고대부터 내려온 도래계 신사나 도래인 마을 등에서 내려오는 음악이나 마츠리 등이 그렇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고대 음악에 대한 흔적은 지금의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 남아있는 것이다. 정말 일본이라는 나라는 참... 국민모두가 과거사에 대한 반성만 하면 더할나위 없을건데, 후 참 할말하않이다.


일본을 이야기 하고 보니, 꼭 집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일제강점기 당시 무분별한 발굴과 문화재 약탈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대해서 고대사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일본 일왕의 혈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인이 나온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간무덴노의 모친인 백제인 고야신립(다카노노 니가사)이다. 그리고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가야 4국이 있던 시대, 통일신라와 발해로 나뉘어진 남북국시대 이 때까지 한반도에 있던 사람들은 일본으로 많이 넘어갔고, 일본 문화의 꽃을 피웠다. 학문을 전해줬고, 건출기술을 전해줬고, 예술을 전해줬고 뭐 기타등등 다 전해주었다. 이러한 내용은 일본의 정사인, 그것도 왕실 주도로 작성한 역사서인 『일본서기』, 『고사기』에도 대놓고 기록되어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우리나라에 대해 고대사 컴플렉스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거다.



그러다 고려, 조선을 지나 시대는 바뀌었고 우리에겐 최악이라 일컫는 일제강점기가 왔다. 일본은 한반도에서 본인들의 기원을 찾으려 했다. 기원을 찾음으로써 고대사 컴플렉스를 회복하고, 조선을 식민지배하는 정당성을 세우려 했다. 그래서 오래된 고분이 발견되면, 파헤치고 또 파헤쳤다. 참으로 졸속이었다. 당시 일제에게 유물보존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의 문화재를 약탈한 이유는 단순한 유물의 수집이 아니라, 일본 민족의 기원이 북방 어딘가에 있었다는 설을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근동지역을 약탈한 서구 열강이 유럽 문명이 근원인 성서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선 거라고 주장하는 의도와 일맥상통한다. (중략) 기마민족설은 역설적으로 일본이 패망한 후에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일본인들은 아시아 전체를 정복할 것이라는 정부의 허황된 선전 아래 전쟁에 내몰렸다. 그리고 전쟁에서 패망하면서 다시 섬으로 쫓겨났다. 갑자기 빈털터리가 되어 버린 일본인들을 위로해준 것은 일제의 전장을 따라다니며 발굴하고 문화재를 약탈해 조사했던 고고학자들이었다. P 219~220


일제는 당시 조선에서 찾으려 했던 자기네 민족의 기원을 결국 찾지 못했다. 하지만 정신승리했다. 자기네 민족은 고작 작은 반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더 넓은 대륙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드넓은 대륙에서 조차도 자기들이 원하는 민족의 기원은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일제는 패망했다. 패망 후 일본이 택한 건, 그들이 도굴해 간 유물로 끼워맞추는 역사왜곡이었다.


일본이 도굴해 간 우리 문화재, 정말 극히 일부겠지만 그래도 보고 왔다. 도쿄 우에노 공원에 있는 도쿄국립박물관에서 말이다. 정말 하나하나 보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히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어떻게든 돌려받아야 할 우리의 문화재인데, 왜 우리는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건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듯, 당시 서양 열강에 의해 약소국들이 식민지로 전락했으며 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했다. 하지만 각각의 독립국이 된, 당시 약소국들도 문화재를 돌려받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다.


2010년에 파리에 있던 외규장각 의궤 반환(말이 반환이지, 소유자는 프랑스인 영구대여 형식) 관련하여 프랑스에서는 잡음이 정말 많았다.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수많은 프랑스인들이 반대를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내세우는 주요 논리는 제3세계 국가는 후진국이어서 문화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9년 4월에 프랑스의 자랑 노트르담 성당도 화재로 불타버렸다. 프랑스가 다른 나라보다 문화재를 더 잘 관리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없음이 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속내는 외규장각의 의궤가 반환되면 그들이 수백 년 간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문화재를 다시 뺏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P 205


결국 그렇다. 당시 열강이었던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박물관에는 그들 나라가 침략했던 수 많은 나라의 문화재가 잠들어 있다. 그리고 그들 나라들은 선진국의 가면을 쓰면서, 정막 본인들이 약탈한 문화재는 본국에 돌려주려 하지 않는다. 프랑스처럼 저런 궤변을 늘어 뜨리면서 말이다. 정작 그 속내는 한 번 돌려주면, 그동안 모아온 수 많은 약탈문화재를 다 돌려 줘야하고, 그렇게 되면 그들이 자랑하던 박물관은 텅텅 비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할 뿐이다.


역사 유적지 답사를 좋아하는 내가, 이 책을 이제야 읽었다는 게 그저 후회스럽다. 하루도 더 빨리 읽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렇다면 그동안 다닌 여러 유적지를 보며, 이 책을 읽기 전과는 조금 다른, 한층 깊이 있는 기분을 느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니, 이제라도 이 책을 읽은 걸 다행이라 생각해야하나? 오늘 이후로 다닐 내 역사 여행이, 얼마나 더 풍부해질지 기대된다.


고고학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즉,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킵니다.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셈입니다. (중략) 우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죽음으로 수렴이 되어 망각이 되고 망각되어버린 기억은 다시 유물이라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고학자에게 유물이란 다시 살아난 기억의 편린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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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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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유명한 82년생 김지영을 읽어본 적이 없다. 영화를 본적도 없다. 리뷰를 쓰는 책 이름은 붕대감기인데, 왜 갑자기 82년생 김지영을 이야기 하는가? 내 머리속에 있는 대표적인 페미니즘 도서가 82년생 김지영이라서 그렇다. 한 번은 읽어볼까 싶기도 했지만, 나는 아직 한국 사회에 펼쳐있는 페미니즘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내릴 자신이 없었기에 읽지 않았다. 따라서 비슷한 책들도 읽어볼 생각을 1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왠걸, 작정단으로 읽게 된 책 붕대감기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다른 페미니즘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하지만 서로 다른 페미니즘을 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은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중요한 건 10대부터 50대까지, 그녀들이 살아온 사회가 바라보는 여성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는 점이다. 지금의 40대 후반부터 50대가 살아온 사회는, 여성이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희생을 하는게 당연한 사회였다. 반면 지금의 10대부터 20대 초반이 사는 사회는 여성이 왜 그렇게 희생을 해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다. 그 사이에 끼어있는 세대는 어린시절 무언가를 희생하는게 당연하다고 교육받다가, 어느 순간부터 정 반대의 가치관을 교육받게 되었다. 지금은 모두 2020년이라는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 여성이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같은 여성이라는 범주에 있으면서도, 그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게 당연한 일일진데, 오늘날 여성사회는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여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대표적인 문제를 꼽자면 진짜 페미’vs‘가짜 페미’, ‘탈코르셋vs 탈코르셋 반대논란이랄까? 대체 이들이 말하는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이 책 붕대감기가 나에게 그 답변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진경과 세연이라는 두 여성의 이야기가 메인이지만, 그녀들의 주변 인물(정확히는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가 가지치듯 엮여간다. 어찌보면 옴니버스형 단편소설집 같으면서도, 서로 서로가 관계가 있는 그런 여성들의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볼 법한 소소한 이야기 일 수도 있고, 혹은 뉴스에서 볼 법한 그런 이야기 일 수도있다.

 

진경과 세연은 학창시절, 반에서 한 두명쯤은 있었을 법한 그런 아이들이다. 언제나 밝고 주변 인물들이 모두가 사랑하며, 빛이 나는 학생이 진경이다. 반면 언제나 어둡고, 주변 인물들이 피하며 , 콤플렉스 덩어리에,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세연이다. 하지만 이 둘은 신기하게도 친구가 되었다. 성인이 되고 그들의 관계는 달라진다. 진경은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겼다. 세연은 그런 진경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렇게 틀어졌다. 내 눈에는 그 이유가 오롯이 세연에게 있다고 보였다.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진경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아이가 자고 있어서 친구인 자기를 만나러 올 수 없는 진경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 세연은 진경을 이해할 생각이 없었고, 그 마음은 질투 또는 미움으로 바뀌었으며, 학창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진경을 자기 입맛에 맞는 잣대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세연은 진경을 보며, 정말 남자라는 족속은 왜 이렇게 내 친구를 피곤하게 할까, 생각했다. 너희들 때문에 진경이가 할 일을 제대로 못하잖아. 그리고 그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왜 저렇게 남자가 없으면 못사는거야, 창피하게. 언젠가부터 세연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중략) 하지만 세연은 진경에게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섭섭하고 무시당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진경을 좋아했고, 경외심을 품고 진경이 읽는 책들과 쓰는 문장들을 바라보았다. (중략) 세연은 진경을 동경하면서 남몰래 미워했다. P 134~137

 

세연은 그랬다. 어쩌면 어둡게 살아온 청소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유독 여성에게 씌어진 굴레에 대해 반발감이 있었다. 그녀는 어릴적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안들어, 외모가꾸기에 열중한 적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세연은 화장은 꾸밈노동이라 이야기한다. 맨얼굴을 예의 없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강요하는 노동이라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 있는게 요즘 말하는 탈코르셋 운동이며, 세연은 이러한 목소리를 내는 여성을 지지한다. 그러면서 본인들을 지지하지 않는 진경을 보며, 본인이 만든 그 잣대로 진경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경은 어떨까? 어린시절 진경은 엄마가 규정한 여성상에 맞춰 살았다. 여자는 언제나 단정해야하며, 쓸데없이 눈웃음 치지말아야 하며, 징징거리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귀게 못 막히듯 듣고 살았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 그렇게 숨 막히는 삶을 살았으며 결혼하고 나서야 그 삶에서 벗어났다. 족쇄같은 삶을 벗어난 다음에야 진경은 조금씩이나마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다만 그 삶이 제 친구인 세연의 눈에 차지 않았다는 것뿐. 진경은 세연이 말하던 그런 여성운동에 대해, 여성들의 갈등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진경이 그런 여성운동에 대해 생각하거나 평가할 의무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네가 전에 말했었잖아. 여자들 사이에 갈등이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이야. 너는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 너의 말을 듣고서야 그런 게 있었다는 걸 알고 정말 많이 놀랐어. 그날 집에 가서 어떤 사람들이 결혼한 여자들을 가리켜 하는 말들을 찾아보았어. 그 말들에 대해 내가 반발심이나 슬픔이나 분노나, 혹은 어떤 사람들처럼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 것 처럼 보여서 너는 놀았을지도 모르겠어. 그것에 대해 무엇을 느낄 만한 자리 자체가 내 삶에 없다는 걸 네가 이애하게 되면 더 놀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사실이야. 내가 삶으로 꽉 차서 폭발해버리지 않게 하려면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을 헐어서 공간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렇게 얻어낸 공간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부정적 감정을 채울 수 없다는 것,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전혀 모르고 내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미움을 집어넣을 수도 도저히 없다는 것, 그게 내가 해낼 수 있었던 최선의 생각이야. P065

 

그저 서로 생각하는 방향이 달랐고 가치관이 달랐을 뿐이다. 하지만 세연은 그걸 알면서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진경처럼 세연이 말하는 여성들의 갈등을 보지 않았으며,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괜히 정신이 더 피폐해지고, 마음만 안좋아지니까. 그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되는건데, 왜 그렇게들 서로 헐뜯지 못해서 안달들인지, 참 그랬다. 화장을 하고 싶으면 하는거고,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는데 왜, 굳이, 무엇때문에 자신들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주장하며 싸우려 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세연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세연이 상상속의 진경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면, 난 세연을 계속 공감할 수 없는, 최악의 캐릭터로 남겼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내가 아주 융통성 없는 사람처럼, 단지 수천 수만개의 비뚤어진 잣대들을 뭉쳐놓은 덩어리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져. 그래서 말을 잘 못하곘어, 진경아,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삶을 사는 방법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겁이나서,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면서 그립고, 기분지 좋으면서 두려워. 내가 너한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말이었는데. P 164

 

세연이 진경이를 미워하던, 표면적인 이유는 그저 변명에 불과했다. 세연은 스스로 알고 있었다. 자기가 그토록 진경을 좋아하고, 또 미워했는지. 세연과 진경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그 자체에 생각을 하는 것 보다는 그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더 생각하게 한다. 비단 진경과 세연이 이야기 뿐만이 아니다.

 

가정에서 애를 키우는 엄마들과는 달리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워킹맘 은정의 이야기, 동료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제자 채이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채이를 어떻게든 돕고자 했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던 선생님 경혜, 친구사이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채이와 형은, 그녀들의 이야기는 분명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녀들이 이야기 하는 페미니즘은 서로 다르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작가는 그렇게 나이 든 페미니스트와 젊은 페미니스트를 각각 영악한 여자 꼰대/분노하는 천방지축 어린애로 대립시키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문제삼는다. 그 프레임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인가. (중략) 그리고 이러한 늙은 여성/젊은 여성으로 대변되는 페미니즘 이분법의 프레임은 선악의 마니교적 이분법으로 전화하면서 페미니즘을 좋은 페미니즘/나쁜 페미니즘’. ‘진짜 페미니즘/가짜 페미니즘으로 나누는 진풍명품쇼로 전락시킨다. 그런데 도대체 좋은, 진짜 페미니즘은 어디에 있나. P 189~190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내 머릿 속에 떠오른 페미니즘은 적어도 이 책에서 나온 여성들이 외치는 그런 부분은 아닌 듯하다. 서로 간에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는 태도, 그러면서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진짜 페미니즘인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하라고 생겨난 단어는 아닐진데 말이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며 내 머리속에서 정리된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었다. 여성이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사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휴머니즘으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는 그런 사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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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표류기 - 낯선 조선 땅에서 보낸 13년 20일의 기록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3
헨드릭 하멜 지음, 김태진 옮김 / 서해문집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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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드릭 하멜, 그는 누구일까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소속된, 야하트 선 데 스페르베르 호의 선원이었습니다. 무역으로 인해 일본 나가사키로 가는 중에 풍랑을 만나 제주도로 표류했죠. 하멜을 포함한 살아남은 선원들은 조선 정부에 본인들을 돌려보내주길 수 차례 요구했지만, 그 요구는 묵살되었습니다. ‘조선으로 들어온 외국인은 밖으로 나갈 수 없다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하멜을 포함한 선원들은 조선 밖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은, 하멜이 제주도로 표류해 온 때가 임진왜란이 끝난 뒤, 몇 십 년이 흐른 1653년이라는 점입니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쇄국정책을 단행하긴 하였으나, 일본 나가사키만큼은 서양과 교류의 문을 열어두었습니다. 그렇게 네덜란드와 교류를 해왔고, 발전된 서양의 과학을 비롯한 여러 문물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헨드릭 하멜이 일본 나가사키로 가려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서양의 문물을 전해주기 위함이었죠. 그런 하멜이 일본에 가지 못하고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발달한 서양의 문물을 가지고 말이죠. 조선의 입장으로 보면 굴러들어온 떡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정부는 무능했습니다. 무능한 국력 탓에 임란/호란이라는 두 차례 외세가 처들어 온 직후 였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정부는 발달한 서양 문물을 가지고 온 하멜일행을 써먹지 못했습니다. 하멜일행은 그저 머나먼 이국에서 온 신기한 사람들이었고, 구경거리였습니다. 또한 죄인(이방인이라는 이유 하나로..)이었습니다. 양반집 앞으로 불려가 동물원의 원숭이 마냥 있어야 했습니다. 관에 의한 강제노역도 해야 했습니다.

 

매일 우리는 고관들의 집을 방문하도록 명령받았는데 그들과 그들의 가족이 우리를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었다. 제주도 사람들이 우리가 사람이라기보다는 괴물과도 같다는 소문을 퍼뜨렸던 것이다. (중략) 한마디로 처음에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골목길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심지어 집에서조차 구경꾼들 때문에 편히 쉬질 못했다. (중략) 때로는 노복들도 주인 몰래 우리를 불러내어 놀렸기 때문이다. - 서해문집 하멜표류기48P

 

왕의 고문관들이나 그 밖의 고관들은 우리들에게 질려서 이제 그만 없애 버리자고 왕에게 간언했다. 3일 동안이나 이 문제에 대해 토의가 있었다. (중략) 장군은 우리를 죽이기보다는, 우리들 한 사람에 대해 조선인 2명씩을 붙여 똑같은 무기로 싸우게 하여 우리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대결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그렇게 하면 왕도 국민으로부터 공공연히 외국인을 죽였다고 인식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말은 우리 쪽에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 서해문집 하멜표류기53P

 

이 조선 사람들은 외국의 풍물에 대해 몹시 호기심이 많고 듣고 싶어했다.이 나라에서는 구걸한다는 것이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구걸이라도 해서 어려움을 타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린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일을 참아내기로 했다. 구걸과 남아 있는 식량과 필수품으로 추위에 나름대로 대비할 수 있었다. - 서해문집 하멜표류기57P

 

하멜일행은 제주에서 해남으로, 해남에서 한양까지 머나먼 길을 끌려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하멜 일행 중 일부가 죽기도 했습니다. 한양까지 갔던 하멜일행은 또 다시 전라도로 유배됩니다. 이후 하멜 일행은 여수, 순천, 남원 세 고장으로 분산 배치됩니다. 이게 바로 당시 조선정부가 굴러들어온 인재를 다루는 방법입니다.

 

16669, 우여곡절 끝에 하멜일행은 탈주에 성공하여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1320일간 억류되어있던 조선에서 벗어나, 고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갈 수 있었고, 억류된 기간만큼의 수당을 받기 위해 동인도회사에 제출할 보고서를 썼습니다.

 

그 보고서의 이름은 야하트 선 데 스페르베르호의 생존 선원들이 코레왕국(조선)의 지배하에 있던 켈파르트섬(제주도)에서 1653816일 난파당한 후 1666914일 그 중 8명이 일본의 나가사키로 탈출할 때 까지 겪었던 일 및 조선 백성의 관습과 국토의 상황에 관해서 - 네덜란드령 인도총독, 요한 마짜이케르 각하 및 형의원 제위 귀하입니다.

 

참 길죠? 즉 우리가 알고 있던 하멜 표류기는, 조선에 억류되어있던 하멜이, 억류되어있던 기간 만큼의 임금을 달라고 회사에 제출한 보고서였던 겁니다. 좋게 보면 조선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게 한 보고서이기도 하고, 나쁘게 보면 당시 조선이 얼마나 불통한 국가였는지를 온 세상에 공개한 보고서이기도 합니다.

 

서해문집 하멜표류기옮긴이 김태진 님은 서문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17세기 선조들이 낯선 네덜란드인들 36명이라는 집단을 적절하게 응대하고 잘 활용하였더라면 서양 문명의 발달을 일찍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요, 조선의 개화도 더 빨리 이뤄졌을 것이 아닌가! 그랬더라면 일제 침략도 지배도, 그리고 남북분단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일본이 나가사키를 통해 이 네덜란드인들과 교역을 함으로써 그들의 근대 국가 형성에 결정적 계기를 삼은 것임은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바다. (중략)

 

하멜의 탈출 이후, 계속 유지되어 온 고립정책으로 조선은 기본 질서에 대한 존중이 손상되지 않은 채 왕국이 보존되었으며, 어떤 변화도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세기에 강제로 조선이 외국인에게 문호가 개방되었을 때, 새로 온 사람들이 관찰한 조선과 2세기 전 하멜이 관찰한 조선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하멜의 서술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이코스트는 조선 역사에 고요히 흩어져 있는 기록들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네들란드 배 화물 감독인 하멜은 조선의 예절과 관습에 대해 백성과 나라에 대해서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죄수로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고 하는 장소들이 확인되고 있으며, 과거 이야기의 모든 특징이 마치 오늘날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언어와 풍속, 양면에 있어서 토착적인 보수주의가 너무 강해서 200년 전 하멜의 표현은 오늘날 조선인들의 모든 생활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서해문집 하멜표류기옮긴이의 서문

 

 

하멜일행이 나가사키로 탈출한 뒤, 일본 정부은 하멜 일행을 불러 많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 중 일부를 발췌해보았습니다.

Q 일본: 켈파르트 섬은 본토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으며 그 섬의 상황은?

A 하멜: 본토 남쪽으로부터 75km 내지 9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인구는 조밀하고 땅은 비옥하다. 그 섬 주위는 110km 정도 된다.

 

Q 일본: 제주에서 서울은 얼마나 먼가? 그리고 가는 데 걸린 시간은?

A 하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제주도는 본토에서 75km 내지 95km 되는 곳에 있다. 그 후 14일간 말을 타고 갔는데 육로와 수로를 합하여 약 650km 정도 된다.

 

Q 일본: 너희들은 조선 땅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있는가?

A 하멜: 짐작이 맞다면 조선은 남북 길이가 1,000km에서 1,100km정도 되고 동서로는 500km 내지 600km 정도 된다. 8개 도로 나뉘어져 있고 360개 고장이 있는데 크고 작은 섬도 많이 있다.

 

Q 일본: 조선인이 가지고 있는 무기와 군사 장비는?

A 하멜: 그들의 무기는 화승총과 칼, , 화살이며 그 밖에 조그만 창도 있다.

 

Q 일본: 조선에는 성이나 성채가 있는가?

A 하멜: 고장마다 작은 성채들이 있다. 산 높은 곳에 있는 성채도 있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그리로 피난간다. 그곳에는 항상 3년분의 식량이 비축되어 있다.

 

Q 일본: 바다에는 어떤 종류의 군함이 있는가?

A 하멜: 고장마다 한 척의 군함이 있다. 각각의 군함에는 군인과 노 젓는 사람 합하여 2~3백 명씩 타고 있고 작은 대포도 몇 문씩 있다.

 

Q 일본: 절과 불상은 많은가? 예불은 어떻게 보는가?

A 하멜: 산에는 많은 사찰과 수도원이 있으며 그 안에 불상이 많이 있다. 우리 생각으로는 중국식으로 예불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Q 일본: 쌀과 그 밖의 곡식은 많이 생산하는가?

A 하멜: 강우량이 충분한 해에는 남부 지방에서 쌀과 그 밖의 다른 곡식이 많이 생산된다. 비에 의존하는 작물들이기 때문이다. 비가 적게 오는 해는 큰 기근이 든다. 목화도 많이 재배된다. 그러나 북부지방에서는 보리와 기장으로 연명해야 하는데 그곳은 추워서 쌀을 재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Q 일본: 은광이나 그 밖에 다른 광산이 많이 있는가?

A 하멜: 몇 년 전에 은광을 몇 개 개발했으며 왕이 그중 1/4를 차지한다. 다른 광산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Q 일본: 중국과 조선 사이가 육로로 연결되어 있는지 떨어져 있는지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가?

A 하멜: 우리가 들은 바에 의하면 두 나라 사이는 큰 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다. 겨울에는 추위 때문에, 여름에는 맹수 때문에 여행하기가 위험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주로 해로로 가는데, 겨울에는 꽁꽁언 얼음을 건너간다.

 

Q 일본: 전라도의 크기와 위치는?

A 하멜: 전라도는 조선 남쪽의 도인데 52개의 고장이 있다.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조밀하고 식량 생산량도 많다.

- 서해문집 하멜표류기P 78 ~ 88

 

 

일본과 하멜일행은 이런 식으로 총 54개의 문답을 주고 받았습니다. 일본의 질문들을 보며 무언가 느끼셨다면, 제대로 느끼셨습니다. 전부 조선의 안보, 경제와 관련된 것들이죠. 이후 약 2백년 뒤에 일본이 강화도로 쳐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조선의 많은 것을 잠식했습니다. 조선의 땅과 해안을 측량했고, 각종 채굴권을 가져갔으며, 각종 불상 등 문화재를 털어갔고 전라도에서는 쌀을 수탈했습니다.

 

하멜 표류기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해외에 알렸던 기록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조선의 위정자들이 얼마나 아둔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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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 - 스탠딩에그 커피에세이
에그 2호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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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커피를 너무나 사랑한 사람이, 보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니고, 종국에는 맛있는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 직접 카페까지 차려버리는(!!) 오롯이 커피를 위한, 커피를 향한, 커피에 대한 에세이다. 하루에 적게는 3, 많게는 8잔까지도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나에게 커피에세이라니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지금 나에게 커피생명수였다. 저자처럼 커피의 이나, 커피를 마시던 그 시간을, 감성을 추억하기 위해 마시는 게 아닌, 회사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한 생명수인 것이다. 옛날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분명 커피의 향을 느끼고자 했고, 카페의 분위기를 즐겼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멋진 카페를 찾아다니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던 그 때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그저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텀블러에 담겨있는 인스턴트 커피, 예를 들어 카NU, DI야 를 마시고 있는 신세다(인스턴트 커피를 비하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좋아한다. 특히 카누!).

 

 


나를 비롯한 우리 대부분은 언젠가부터 매일 SNS를 통해 다른 이들의 삶을 관찰하고 은밀히 동경하고 있다. 우리가 동경하는 누군가가 인생 커피라고 극찬하며 근사한 사진을 직어 올리면 우리는 그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며 그 카페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 동네, 나의 단골 카페, 내가 즐겨 마시던 커피는 얼마나 하찮아지고 마는가. 따지고 보면 다른 이의 인생 커피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그 순간 슬퍼지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현실의 우리 자신인 것이다. P 044

 

다른 사람의 블로그나 인그램을 구경하다 보면, 멋진 사진과 함께 인생카페’, ‘인생커피라는 해쉬태그를 정말 많이 보게 된다. 근데 진짜 사진만 보면, 그 사람은 정말로 커피를 제대로즐길 줄 아는 사람 같고, 그 사람이 가는 카페는 정말 커피를 마실 줄아는 사람들만 가는 카페처럼 보인다. 내가 마시는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 인스턴트 커피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보이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 물론 바리스타가 원두에서 직접 추출한 커피와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뭐랄까. 나는 지금 인스턴트 커피로 하루 하루를 버티는 데, SNS속에 있는 그들은 인생을 즐기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것 처럼 보이니까. 물론 실상은 나와 별반 다를 거 없는, 하루하루 직장생활에 고단한 사람일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 역시도 SNS속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엄청난 괴리감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시작은 그저 누군가의 SNS속에 있는 커피한 잔의 사진이었지만, 그 사진 속에서 누군가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묘한 우리의 현실이랄까.

 

 


만약 당신이 어느 날 평생 잊지 못할 커피 한 잔을 마시게 된다하더라도 당신 또한 그날의 커피와 똑같은 커피를 다시는 마실 수 없단 이야기다. 그러니 맛있는 커피를 대할 때는 천천히 한 모금씩 입에 머금을 때마다 그 순간에 흐르는 음악과 주변의 공기, 빛과 온도, 앞에 앉은 사람의 표정을 기억하기 위해 온 감각을 집중해야 한다. (인생의 모든 근사한 순간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태도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당신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P 060

 

 

 

아메리카노는 에프프레소를 뜨거운 물에 섞는 거잖아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물과 에스프레소는 서로 다른 성분이라서, 서로에게 완벽히 섞이고 녺아들 시간이 필요해요. 그제야 진짜 아메리카노가 되죠.” P 138

 

 

 

사람과의 관계도 그가 말한 아메리카노처럼 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이 필요한 것일텐데 나는 왜 그리 성급하게 그를 놓아버렸을까. P 142

 

 

 

위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하루에 적게는 3, 많게는 8잔의 커피를 마신다. 그것도 인스턴트 커피를. 물론 평일/휴일 마다 않고 그렇게 마신다. 회사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습관이 되었는지, 집에 있는 휴일마저도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까. 뿐만 아니다. 어디 여행을 갈 때는 인스턴트 커피 3봉을 텀블러에 타서 들고 간다. 가끔은 여행지에서 멋있는 카페에 들어가, 바리스타가 직접 추출한 커피를 마셔도 되는데 굳이 인스턴트 커피를 마신다.

 

n년 전 만해도 나도 커피 맛을 알아야겠어!’ 라는 생각으로 유명한 카페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책 속에 나왔던 블루보틀도 가보았고(물론 일본에서), %커피도 가보았으며, 국내에서 박이추 커피공장도 가보았다. 하지만 내 입맛은 인스턴트에 길들여졌는지 이상하게도 그 모든 커피 맛이 카NU와 너무 비슷한게 아닌가! 깜장 카NU, 봄 한정 카NU, 겨울 한정 카NU가 그 맛이 각각 다른데, 그 맛들이 내가 찾아다니며 마셨던 맛있다는 그 커피들과 너무 비슷한거다. 내가 워낙 오래동안 카NU를 먹다보니, 그 맛이 뇌리에 박혀서, 그 어떤 커피를 마셔도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지금은 그저 내 하루 하루를 버티기 위한 생명수가 된 커피지만, 회사에서 마셨던 이 커피한 잔, 한 잔에 생각보다 많은 추억이 있었다. 입사 초기에 커피를 마실 줄 몰랐던 그저 어렸던 내 모습. (지금은 퇴사한)회사 언니들의 권유로 마셨던 첫 커피의 씁쓸한 맛. 그 언니들과 점심시간에 커피 한 잔 하면서 시덥잖던 이야기를 하고 웃고 떠들던 나날들. 10년 간의 추억이, 쉽게 보았던 인스턴트 커피 그 속에 있었다. 언니들이 회사를 떠난 지금, 어렸던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언니들이 없는 지금, 나는 내 이야기를 이 커피 한 잔에 고이 묻었다. 회사에서, 책상 앞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다 보면, 가끔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그 언니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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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천천히, 북유럽 - 손으로 그린 하얀 밤의 도시들
리모 김현길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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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표지 + 삽화 + 이야기 아름답고, 따뜻한 여행 에세이를 만났다. 어찌보면 동화같은 느낌도 드는 이 책은, 그냥 여행 에세이가 아니다. 보통의 여행 에세이가 사진을 담고 있다면, 이 책에는 사진이 아닌 아름다운 그림이 있다. 저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표지부터 마음이 따뜻해지는 북유럽의 저녁노을이 나를 반긴다. 처음엔 여행 에세이에 왠 그림인가 싶었는데, 표지를 보자마자 느꼈다. 이런 따뜻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바라보는 북유럽은, 내가 바라보는 북유럽과는 조금 다를 거라는 것을.

 

저자가 여행한 곳은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총 네 곳의 국가다. 개인적으로 북유럽 관련 여행서적이라던가 여행 프로그램을 종종 봤었기에, 더욱 반가운 나라들이기도 했다. 특히 무민이 사는 나라 핀란드! 인어공주가 있는 덴마크 !! 저자가 어떤 감성으로 이 나라들을 여행을 할 지, 읽기 전부터 궁금해졌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답게, 저자의 여행준비물은 일반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여행을 가면 끽해야 메모를 위한 볼펜 하나 정도인데! 역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혹시라도 여행을 다닐 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꽤 좋은 팁이 될 법한 준비물이었다.

 


비 구름이 사라진 청명한 하늘 아래로 핑크빛 석양이 비스듬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몹시 차가웠지만, 갑판 위에서 헬싱키 도심의 뽀얀 풍경이 석양에 물드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황홀한 그 풍경인 마치 어린 소녀의 두 뺨에 발그레 피어난 홍조 같았다. _P 048

 

만약 내가 헬싱키 구 시가지를 바라보는 페리를 타고 있다면 어땠을까? 아마 사진 몇 컷 딱 찍고 아 이쁘다-” 하고 말았을 것이다. 분명 난 문과생인데, 감성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어서, 저런 감성적인 느낌은 커녕, 찍은 사진 조차도 단조로웠을거다. 그래서 이렇게 가슴 따뜻한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감성을 조금은 훔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는 왠지 느슨하게 보내고 싶었다. 숙소를 나설 채비를 하며 단순한 목표 하나를 세웠다. 탐페레의 호수를 바라보는 것. 오늘의 여정에 그 이상의 목표는 부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_P 080

 

어디든 여행을 가면 이상하게도 하루일정이 바쁘고 또 바쁘다. 분명 일상을 벗어나, 힐링 또는 휴식을 위한 여행일텐데 말이다. 이상하게 여행만 가면 평상시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여길 언제 또 올지 모르잖아!”. 이 이유 하나 때문에 여행이 힐링이 아닌 킬링이 되버린다. 정말 힐링을 하고자 한다면, 저자처럼 딱 하나의 목표만 세우고 느슨한 하루를 보내자. 그럼 적어도 그 날은 킬링이 아닌 힐링이 가득한 하루가 될테니까.

 


정말 가고 싶었던 그 곳, 무민월드. 저자는 이 무민월드에 발을 들여 놓았다. 무민은 북유럽 설화에 나오는 트롤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다. 어찌보면 하마와도 같은 이 캐릭터는 나도 엄청 좋아라 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알게 모르게 집에 있는 무민 친구들도 꽤 있다. 사진 속에 있는 무민처럼 쪼꼬만한 무민이도 있고. 근데 여기서 함정은, 난 무민을 엄청 좋아하긴 하는데 정작 무민의 이야기를 잘 모른다는 점이다.

 

원작동화의 초기배경은 의외로 어둡고 무거운 편인다. 무민의 외모는 포근하고 귀엽지만 그들이 겪는 상황은 대홍수, 혜성 충돌 등 자현재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_P 112


순둥이 무민이 뒤에는 어두운 이야기가 있...었다니, . 이제와 말하지만, 작년에 무민 카툰북을 여러권 사놓고 아직 보지를 못했는데. 무거운 이야기라고 하니 살짝 두려워지기도 한다. 대체 얼마나 암울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거니, 무민아 ㅠㅠ

 

이 책을 언뜻 읽다보면 마음 따뜻한 그림이 있는 동화책 같기도 한데, ‘이 책도 여행 에세이가 맡구나!’ 하는 부분이 곳곳에 있다. 이 무민월드 부분을 읽으면서 특히 그랬다. 분명 읽을 때는 정말 내가 무민월드에 있는 것 마냥, 혹은 무민 동화책을 읽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왠걸? 읽고나서 보니 나도 모르게 무민월드 테마파크에 대한 정보까지도 읽은 뒤였다. 정보성 글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 까진, 정말 감성적인 그림이 있는 동화책을 읽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이 책........대단한데?

 


이 동상은 잔인하게도 온갖 수난을 겪어야 했다. 몸체에 비키니가 그려지거나 때로는 페인트 세례를 맞기도 했고, 팔이 절단되거나 머리가 잘린 채 도난당한 적도 수차례였다. 심지어 2003년에는 폭파 당해 동상이 바다로 추락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덴마크 정부는 굴하지 않고 인어공주를 매번 부활시켰다. _ P306

 

북유럽 여행 관련 서적으로 가이드북도 읽어보았고, 에세이도 읽어보았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덴마크 명소 코펜하겐 인어공주 동상정도의 뉘앙스만 있었다. 이 동상이 어떤 수난을 겪었는지, 나는 오늘에서야 알았다. 무엇이든 보는 사람의 시각 또는 관심에 따라 해석도 다르다지만, 역시 난 이 책의 저자처럼 눈 앞에 있는 에 대한 과거를 보여주는 게 제일 마음에 든다. 이러한 과거를 알고 보는 인어공주 동상과, 그냥 유명한 장소에 있는 인어공주 동상은 천지차이니까. 알고 보아야만 저자처럼 수난의 역사를 알게 되자 동상의 움츠린 어깨와 아래로 떨어뜨린 시선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P 306)’이러한 감상도 할 수 있으며, 이 느낌을 담은 드로잉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저자처럼 자기 본 무언가를, 그림으로 남기기 위해선 오래 바라보아야 한다. 오래 바라보면 볼 수록, 눈 앞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지, 무엇을 알려주려 하는지 느낄 수 있다. 그 느낌은 사진으로는 절대로 남길 수 없는, 오롯이 내 두 눈과 마음 속에 남는다. 내 두 눈과 마음 속에 남는 그 무언가를, 저자는 하얀 종이 위에다 펼쳐놓았다. 그래서 그런걸까? 사진으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따뜻함과 애정이 저자의 그림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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