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천천히, 북유럽 - 손으로 그린 하얀 밤의 도시들
리모 김현길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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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표지 + 삽화 + 이야기 아름답고, 따뜻한 여행 에세이를 만났다. 어찌보면 동화같은 느낌도 드는 이 책은, 그냥 여행 에세이가 아니다. 보통의 여행 에세이가 사진을 담고 있다면, 이 책에는 사진이 아닌 아름다운 그림이 있다. 저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표지부터 마음이 따뜻해지는 북유럽의 저녁노을이 나를 반긴다. 처음엔 여행 에세이에 왠 그림인가 싶었는데, 표지를 보자마자 느꼈다. 이런 따뜻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바라보는 북유럽은, 내가 바라보는 북유럽과는 조금 다를 거라는 것을.

 

저자가 여행한 곳은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총 네 곳의 국가다. 개인적으로 북유럽 관련 여행서적이라던가 여행 프로그램을 종종 봤었기에, 더욱 반가운 나라들이기도 했다. 특히 무민이 사는 나라 핀란드! 인어공주가 있는 덴마크 !! 저자가 어떤 감성으로 이 나라들을 여행을 할 지, 읽기 전부터 궁금해졌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답게, 저자의 여행준비물은 일반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여행을 가면 끽해야 메모를 위한 볼펜 하나 정도인데! 역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혹시라도 여행을 다닐 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꽤 좋은 팁이 될 법한 준비물이었다.

 


비 구름이 사라진 청명한 하늘 아래로 핑크빛 석양이 비스듬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몹시 차가웠지만, 갑판 위에서 헬싱키 도심의 뽀얀 풍경이 석양에 물드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황홀한 그 풍경인 마치 어린 소녀의 두 뺨에 발그레 피어난 홍조 같았다. _P 048

 

만약 내가 헬싱키 구 시가지를 바라보는 페리를 타고 있다면 어땠을까? 아마 사진 몇 컷 딱 찍고 아 이쁘다-” 하고 말았을 것이다. 분명 난 문과생인데, 감성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어서, 저런 감성적인 느낌은 커녕, 찍은 사진 조차도 단조로웠을거다. 그래서 이렇게 가슴 따뜻한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감성을 조금은 훔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는 왠지 느슨하게 보내고 싶었다. 숙소를 나설 채비를 하며 단순한 목표 하나를 세웠다. 탐페레의 호수를 바라보는 것. 오늘의 여정에 그 이상의 목표는 부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_P 080

 

어디든 여행을 가면 이상하게도 하루일정이 바쁘고 또 바쁘다. 분명 일상을 벗어나, 힐링 또는 휴식을 위한 여행일텐데 말이다. 이상하게 여행만 가면 평상시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여길 언제 또 올지 모르잖아!”. 이 이유 하나 때문에 여행이 힐링이 아닌 킬링이 되버린다. 정말 힐링을 하고자 한다면, 저자처럼 딱 하나의 목표만 세우고 느슨한 하루를 보내자. 그럼 적어도 그 날은 킬링이 아닌 힐링이 가득한 하루가 될테니까.

 


정말 가고 싶었던 그 곳, 무민월드. 저자는 이 무민월드에 발을 들여 놓았다. 무민은 북유럽 설화에 나오는 트롤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다. 어찌보면 하마와도 같은 이 캐릭터는 나도 엄청 좋아라 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알게 모르게 집에 있는 무민 친구들도 꽤 있다. 사진 속에 있는 무민처럼 쪼꼬만한 무민이도 있고. 근데 여기서 함정은, 난 무민을 엄청 좋아하긴 하는데 정작 무민의 이야기를 잘 모른다는 점이다.

 

원작동화의 초기배경은 의외로 어둡고 무거운 편인다. 무민의 외모는 포근하고 귀엽지만 그들이 겪는 상황은 대홍수, 혜성 충돌 등 자현재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_P 112


순둥이 무민이 뒤에는 어두운 이야기가 있...었다니, . 이제와 말하지만, 작년에 무민 카툰북을 여러권 사놓고 아직 보지를 못했는데. 무거운 이야기라고 하니 살짝 두려워지기도 한다. 대체 얼마나 암울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거니, 무민아 ㅠㅠ

 

이 책을 언뜻 읽다보면 마음 따뜻한 그림이 있는 동화책 같기도 한데, ‘이 책도 여행 에세이가 맡구나!’ 하는 부분이 곳곳에 있다. 이 무민월드 부분을 읽으면서 특히 그랬다. 분명 읽을 때는 정말 내가 무민월드에 있는 것 마냥, 혹은 무민 동화책을 읽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왠걸? 읽고나서 보니 나도 모르게 무민월드 테마파크에 대한 정보까지도 읽은 뒤였다. 정보성 글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 까진, 정말 감성적인 그림이 있는 동화책을 읽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이 책........대단한데?

 


이 동상은 잔인하게도 온갖 수난을 겪어야 했다. 몸체에 비키니가 그려지거나 때로는 페인트 세례를 맞기도 했고, 팔이 절단되거나 머리가 잘린 채 도난당한 적도 수차례였다. 심지어 2003년에는 폭파 당해 동상이 바다로 추락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덴마크 정부는 굴하지 않고 인어공주를 매번 부활시켰다. _ P306

 

북유럽 여행 관련 서적으로 가이드북도 읽어보았고, 에세이도 읽어보았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덴마크 명소 코펜하겐 인어공주 동상정도의 뉘앙스만 있었다. 이 동상이 어떤 수난을 겪었는지, 나는 오늘에서야 알았다. 무엇이든 보는 사람의 시각 또는 관심에 따라 해석도 다르다지만, 역시 난 이 책의 저자처럼 눈 앞에 있는 에 대한 과거를 보여주는 게 제일 마음에 든다. 이러한 과거를 알고 보는 인어공주 동상과, 그냥 유명한 장소에 있는 인어공주 동상은 천지차이니까. 알고 보아야만 저자처럼 수난의 역사를 알게 되자 동상의 움츠린 어깨와 아래로 떨어뜨린 시선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P 306)’이러한 감상도 할 수 있으며, 이 느낌을 담은 드로잉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저자처럼 자기 본 무언가를, 그림으로 남기기 위해선 오래 바라보아야 한다. 오래 바라보면 볼 수록, 눈 앞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지, 무엇을 알려주려 하는지 느낄 수 있다. 그 느낌은 사진으로는 절대로 남길 수 없는, 오롯이 내 두 눈과 마음 속에 남는다. 내 두 눈과 마음 속에 남는 그 무언가를, 저자는 하얀 종이 위에다 펼쳐놓았다. 그래서 그런걸까? 사진으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따뜻함과 애정이 저자의 그림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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