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대문명’, ‘피라미드’, ‘공룡’, ‘미이라’, ‘미스테리’. 나에게 고고학이란 이런 개념들이다. 아마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강인욱 교수님의 강연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 쭉 저런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연을 본 뒤, 고고학의 주 연구대상은 내가 생각한 저런 것들이 아니라, 아 물론 부수적으로 연구하는 분야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고고학의 주 연구대상은 ‘인류’였다.  고대부터 가까운 역사까지 ‘인류’와 관계된 유물을 연구하고 발굴하는게 바로 고고학이었다.


뿐만 아니라 고고학은 상상력의 산물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상상하는 그런게 아니다. 고고학자들이 하는 상상력은 인문학적 요소가 필수불가결이다. 그래서 상상력을 발휘해 추론한 내용이라고 해도, 근거가 있고, 당연히 그럴 것 이라 생각이 드는 그런 학문인 것이다.


차클 강연만으로는 고고학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관련 책을 읽자니 너무 대놓고(!!) 전문서적들이 많아서 읽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흐름출판에서 고고학 초보자를 위한 교양서가 나왔다. 그것도 강인욱 교수님이 직접 쓰신! 꼭 읽어야지 싶었는데, 세상에나. 운 좋게도 흐름출판 서포터즈가 되었다. 그렇게 첫 번째 미션으로 받은 책이 바로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감사합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차클 강연으로는 미쳐 다 채우지 못했던, 고고학에 대한 내 호기심을 드디어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고고학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즉,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킵니다.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셈입니다. (중략) 우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죽음으로 수렴이 되어 망각이 되고 망각되어버린 기억은 다시 유물이라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고학자에게 유물이란 다시 살아난 기억의 편린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P 009~010 


이 책은 강인욱 교수님이 나같은 고고학 무식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고고학이 무엇인지, 어떤 매력이 있는 학문인지 아주 쉽게 알려 준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같기도 하다. 에세이에서 고고학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느냐고 말할 수 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그런 에세이가 아니다. 강인욱 교수님은 지금까지 발굴한 모든 유적지에서 수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이 책은 바로 그 기록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살아있는 고고학이 담긴 책이기 때문이다. 진짜 강인욱 교수님께서 영혼을 갈아넣어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써준 고고학 에세이다.


책에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6페이지에 걸쳐 이 책에 어떤 유적지 및 유물 및 발굴 시기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알수 있는 사실, 위에서도 언급한 내가 생각했던 고고학의 개념은 틀렸다는 사실이다. 고고학에 대해 올바르게 생각하지 못한 건, 고고학자에 대해 이상한 환상(?)을 심어준 영화 및 TV의 영향이 크다. 매번 『몬타나존스』나, 『미이라』같은 것만 보여줬으니 ㅠㅠㅠㅠ 지금 돌아보면 이런 영화들에서 나온 고고학자들은, 고고학자가 아니라 오히려 유적지를 파괴하고, 유물을 훔쳐가는 대역죄를 짓는 것과 마찬가진데 말이다. 어휴.. 지금이라도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땅 속의 흙은 일정한 시간을 두고 마치 케이크처럼 쌓여 있다. 한 층 한 층은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의 시간을 두고 쌓인 것이다. 발굴장에서 곡학자들이 솔이나 꽃삽으로 조심스럽게 작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따. 순간의 부주의한 발굴로 지나치는 층위는 두고두고 고고학자의 실수로 남게 된다. P 022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창원 다호리에서 발견된 목관이 전시되어 있다. 나도 분명 어러번 갔던 박물관인데 왜이리 생소한지. 지금까지 내가 본 오래된 관은 대게가 옹관이었다. 항아리 두개를 이어 만드는 관 말이다. 그 어떤 박물관을 가도 꼭 보았던게 바로 옹관이었기에, 당연히 선사/청동기 시대의 관의 시작은 옹관이었다. 그런데 목관이라니! 너무 신기하기도 했고, 왜 내 기억속에는 없는지 이상하기도 했다.


목관이 발견된 창원은 경상남도에 있다. 과거에는 삼국 시대에는 신라, 그 전에는 가야(어쩌면 신라에 근접할수도), 또 그 전에는 변한이 있던 자리다. 근데 잘 생각해보니, 내가 여태 다녔던 박물관들은 백제 내지는 마한이 위치했던 서해안 및 중부지역 이었던거다. 그러니 변한 지역에서 사용되었을 목관이 생소할 수 밖에. 근데 놀라운 사실 하나. 책에 의하면 창원에서 발견된 목관과 비슷한 관이 시베리아 일대에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다. 고대에도, 지금까지도 말이다. 역시나 강인욱 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이러한 목관을 쓰는 이유는 하늘로 자라는 나무처럼 죽은 사람 역시 저 하늘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라고 하셨다.


이러한 목관이 시베리아 일대에 퍼져있다는 이야기를 보고 문득 생각난 게, 바로 신라였다. 당연히 우리 조상이라 생각하는 신라지만, 신라인들의 유물들을 보면 너무 자연스럽게 대륙너머에 있는 시베리아, 기마민족들이 떠오른다(실제로 그 지역에서는 신라에서 발굴된 유물과 비슷한 유물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까). 창원이 변한 지역이긴 하지만, 진한과 밀접한 지역이다. 진한 지역에 있었을 기마민족들이 영향이 여기까지 미친건 아닐까?


시베리아와 우리와 연관된 문화는 또 있다. 바로 하프다. 누가봐도 서양,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악기인 하프가 우리 문화와 연관되어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뭐 정확히 말하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손으로 현을 뜯는 하프가 아닌, 입으로 부는 하프라는 점이지만. 입으로 부는 하프는 옛 기록에는 ‘구금’이라고 하고, 유목민들은 바르간이라고 부른다. 근데 이 바르간이라는 악기가 시베리아를 비롯한 유목민들에게 널리 유행한 악기라 한다.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쭉 말이다. 물론 나는 이렇게 책에 나오기 전 까지는, 그 생김새 조차 몰랐던, 완전 초면인 악기였으니 말 다했다. 그런데 이 구금 유물이 발해유적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


역사 기록에 따르면 발해의 음악은 당시 일본과 중국에도 널리 퍼졌다. 발해의 사신이 전한 음악은 일본 도다이지에서 공연할 정도이고,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송나라에서는 발해의 음악이 너무 유행해 이를 강제로 금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도대체 발해의 음악에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이렇게 주변 나라의 사람들을 매혹시켰을까 궁금했다. 구금이 등장한 것을 보니 발해는 초원, 중국, 그리고 고구려의 여러 음악을 조화시켰던 건 아니었을가. 비록 과거의 음악은 복원하여 듣기 어렵지만, 그들이 이뤘던 문화의 힘은 지금도 느낄 수 있다. P105


지금은 안 사고, 안 가는 나라가 된 일본이다. 덕분에 내 여행 및 답사 계획도 많이 일그러졌더랬다. 그럼에도 난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하면서 미워한다. 좋아하는 이유도 역사 때문이고, 싫어하는 이유도 역사 때문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 라면 아이러니랄까(일본을 가고 싶은 이유도 오로지 역사때문이니). 이렇든 저렇든 일본에는 아직도 우리 고대 문화가 곳곳에 남아있다. 강인욱 교수님이 말한 도다이지(나라현 동대사)에서 공연하는 발해음악이 그렇고(도다이지 자체도 도래인과 깊은 연관이 있고), 고대부터 내려온 도래계 신사나 도래인 마을 등에서 내려오는 음악이나 마츠리 등이 그렇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고대 음악에 대한 흔적은 지금의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 남아있는 것이다. 정말 일본이라는 나라는 참... 국민모두가 과거사에 대한 반성만 하면 더할나위 없을건데, 후 참 할말하않이다.


일본을 이야기 하고 보니, 꼭 집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일제강점기 당시 무분별한 발굴과 문화재 약탈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대해서 고대사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일본 일왕의 혈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인이 나온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간무덴노의 모친인 백제인 고야신립(다카노노 니가사)이다. 그리고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가야 4국이 있던 시대, 통일신라와 발해로 나뉘어진 남북국시대 이 때까지 한반도에 있던 사람들은 일본으로 많이 넘어갔고, 일본 문화의 꽃을 피웠다. 학문을 전해줬고, 건출기술을 전해줬고, 예술을 전해줬고 뭐 기타등등 다 전해주었다. 이러한 내용은 일본의 정사인, 그것도 왕실 주도로 작성한 역사서인 『일본서기』, 『고사기』에도 대놓고 기록되어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우리나라에 대해 고대사 컴플렉스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거다.



그러다 고려, 조선을 지나 시대는 바뀌었고 우리에겐 최악이라 일컫는 일제강점기가 왔다. 일본은 한반도에서 본인들의 기원을 찾으려 했다. 기원을 찾음으로써 고대사 컴플렉스를 회복하고, 조선을 식민지배하는 정당성을 세우려 했다. 그래서 오래된 고분이 발견되면, 파헤치고 또 파헤쳤다. 참으로 졸속이었다. 당시 일제에게 유물보존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의 문화재를 약탈한 이유는 단순한 유물의 수집이 아니라, 일본 민족의 기원이 북방 어딘가에 있었다는 설을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근동지역을 약탈한 서구 열강이 유럽 문명이 근원인 성서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선 거라고 주장하는 의도와 일맥상통한다. (중략) 기마민족설은 역설적으로 일본이 패망한 후에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일본인들은 아시아 전체를 정복할 것이라는 정부의 허황된 선전 아래 전쟁에 내몰렸다. 그리고 전쟁에서 패망하면서 다시 섬으로 쫓겨났다. 갑자기 빈털터리가 되어 버린 일본인들을 위로해준 것은 일제의 전장을 따라다니며 발굴하고 문화재를 약탈해 조사했던 고고학자들이었다. P 219~220


일제는 당시 조선에서 찾으려 했던 자기네 민족의 기원을 결국 찾지 못했다. 하지만 정신승리했다. 자기네 민족은 고작 작은 반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더 넓은 대륙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드넓은 대륙에서 조차도 자기들이 원하는 민족의 기원은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일제는 패망했다. 패망 후 일본이 택한 건, 그들이 도굴해 간 유물로 끼워맞추는 역사왜곡이었다.


일본이 도굴해 간 우리 문화재, 정말 극히 일부겠지만 그래도 보고 왔다. 도쿄 우에노 공원에 있는 도쿄국립박물관에서 말이다. 정말 하나하나 보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히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어떻게든 돌려받아야 할 우리의 문화재인데, 왜 우리는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건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듯, 당시 서양 열강에 의해 약소국들이 식민지로 전락했으며 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했다. 하지만 각각의 독립국이 된, 당시 약소국들도 문화재를 돌려받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다.


2010년에 파리에 있던 외규장각 의궤 반환(말이 반환이지, 소유자는 프랑스인 영구대여 형식) 관련하여 프랑스에서는 잡음이 정말 많았다.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수많은 프랑스인들이 반대를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내세우는 주요 논리는 제3세계 국가는 후진국이어서 문화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9년 4월에 프랑스의 자랑 노트르담 성당도 화재로 불타버렸다. 프랑스가 다른 나라보다 문화재를 더 잘 관리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없음이 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속내는 외규장각의 의궤가 반환되면 그들이 수백 년 간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문화재를 다시 뺏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P 205


결국 그렇다. 당시 열강이었던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박물관에는 그들 나라가 침략했던 수 많은 나라의 문화재가 잠들어 있다. 그리고 그들 나라들은 선진국의 가면을 쓰면서, 정막 본인들이 약탈한 문화재는 본국에 돌려주려 하지 않는다. 프랑스처럼 저런 궤변을 늘어 뜨리면서 말이다. 정작 그 속내는 한 번 돌려주면, 그동안 모아온 수 많은 약탈문화재를 다 돌려 줘야하고, 그렇게 되면 그들이 자랑하던 박물관은 텅텅 비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할 뿐이다.


역사 유적지 답사를 좋아하는 내가, 이 책을 이제야 읽었다는 게 그저 후회스럽다. 하루도 더 빨리 읽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렇다면 그동안 다닌 여러 유적지를 보며, 이 책을 읽기 전과는 조금 다른, 한층 깊이 있는 기분을 느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니, 이제라도 이 책을 읽은 걸 다행이라 생각해야하나? 오늘 이후로 다닐 내 역사 여행이, 얼마나 더 풍부해질지 기대된다.


고고학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즉,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킵니다.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셈입니다. (중략) 우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죽음으로 수렴이 되어 망각이 되고 망각되어버린 기억은 다시 유물이라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고학자에게 유물이란 다시 살아난 기억의 편린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 P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