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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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총 25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서로 태어난 나라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달랐지만 이 여성들에게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가정, 사회, 회사 그 모든 곳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과 차별을 받았다는 것과, 이런 환경 속에서 글을 씀으로써 투쟁했고, 살아남았으며, 이름을 남겼다는 점이다(아! 그렇다고 그녀들이 전부 작가라는 건 아니다).



그녀들이 글을 쓴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 보자. 누군가는 억압받는 사회에서 정신적인 해방감(또는 자유)를 느끼고자 글을 썼고, 누군가는 억압받는 사회에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글을 썼다. 이유야 어떻든, 결국 억압하는 사회가 그녀들로 하여금 펜을 들게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했던 사회가, 훗날 각계각층에서 존경받는 25인의 여성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내 마음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무엇인가 말하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나자 일종의 해방감도 느꼈다. P 40 (버지니아 울프)




세계문학전집에서 왕왕 보이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 그녀가 남긴 일기에는, 그녀가 가정에서 얼마나 많은 차별과 억압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녀가 그러한 차별을 받은 이유는 단지 ‘여성’ 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학교는 남자들이 가는 곳’이었으며, ‘여자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면 된다고 늘상 말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보면 참으로 부조리한 아버지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곳 뿐만 아니라 동/서양 막론하고 모든 나라가 그랬다.




박경리는 “결코 남성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리라는 굳은 신념”을 글쓰기로 실천했다. 살롱처럼 운영되고 있던 남성 작가 중심의 문단을 박경리는 불신했다. 남성의 체험은 값진 문학적 소재로 평가하면서 여성의 이야기는 사소하 신변잡기로 취급하는 평단에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실전을 경험하고 전쟁 이야기만 늘 쓰는 남성 작가에게는 왜 사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는가.” P 192 (박경리)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 작가의 삶도 수 많은 핍박과 억압이 있었다. 특히 생계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문단에서는 그녀에게 ‘여류작가’, ‘사소설’ 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조금 슬픈 사실이지만 과거에는 문단 뿐만 아니라, 영화계, 일반 기업 모두가 남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였다. 여성이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에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묵살되었다. 이 당시에는 그랬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동/서양 모두가 그랬다.




당장 우리 할머니 세대를 보자. 우리네 할머니들은 대게 학교를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다. 어떤 경우에는 초등교육조차 받지 못한 분들도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여자는 배울 필요가 없다, 살림만 잘하면 된다’ 였다. 엄마 세대로 와서도 비슷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엄마들은 대체적으로 초등교육까지는 받았고, 중/고등교육의 경우는 선택적이다. 다만 이 선택 역시도 ‘여자는 배울 필요가 없다, 살림만 잘하면 된다’라는 기조 아래 행해졌다는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랄까. 즉 우리네 할머니/엄마세대는 교육을 어느 정도 받았는지에 차이만 있을 뿐, ‘여성’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당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나의 엄마는 할아버지의 지원 아래 고등 교육 뿐만 아니라 다량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문학소녀였던 우리 엄마.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엄마는 결혼을 하고, 나와 동생을 양육하며 많은 것을 희생했다(물론! 내 아빠도 많은 것을 희생했다). 지금이야 ‘결혼’ 이라던지, ‘자녀계획’ 이라던지 모든 것이 선택사항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엄마의 희생덕분에(아빠도!!), 나는 배우고 싶은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읽고 싶은 책을 전부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부모님의 엄청난 희생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가 변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불가능했을거다.




긴스버그는 여성의 자리가 커지는 것을 여성이 두려워할 때, 뛰어난 여성을 여성이 모른 척할 때, 핍박받는 여성을 여성이 지켜 주지 않을 때 여성 운동은 뒷걸음치게 된다는 경고를 소토마요르를 지켜 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P 111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결국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배우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진 건, 위 책에서 선정한 25인을 비롯하여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 핍박에 맞서 싸운 여성들이 있었기에, 그녀들을 도와준 또 다른 그녀들이(그들도)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이 나에게 남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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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트 와이프
에이미 로이드 지음, 김지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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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일반 소설보다는 장르 소설, 그 중에서도 추리/스릴러 등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굳이 따지자면 서양 보다는 동양 소설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처음 접했던 장르소설이 한국작가의 소설이었고, 이후 접했던 소설들 대게가 일본 작가의 소설이라서 그랬을거다. 그러다 학창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읽은 후, 서양 추리/스릴러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자라온 문화권 영향인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일본적인 분위기와 확연히 다른 서양 스릴러 중 내 입맛에 맞는 작품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소설 주인공들 이름이 입에 딱 붙지 않는 건 둘째치고, 내용적인 면으로 볼 때 긴장감이 넘치거나, 괜히 오싹하거나, 복선을 찾아내는 이런 부분이 확실히 한국/일본 소설과는 달랐다. 그래서 더욱 내 입맛에 맞는 서양소설을 찾기가 조금 힘든 부분도 있었다. 앞서 읽었던 그 유명한 기욤 뮈소 작품도, 내 눈에는 그저 ‘으음-, 이게 왜 베스트셀러지? 작가의 명성 때문인가?’ 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그래서 이 책 역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인문교양서가 아닌 스릴러 소설을 출간한다는 이야기에 ‘대체 어떤 소설이길래?’ 라는 호기심 정도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왠걸, 이 책은 그저 그런 서양 스릴러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책이라기 보다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감상한 느낌이랄까?






한 소녀가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소녀를 죽인 살해범으로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소년 데니스 댄슨이 지목되었다. 당시 데니스가 범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여러 의혹이 많았지만, 의혹은 해소되지 않는 채 데니스는 살해범으로 교도소에 갇혔다. 이후 당시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에 여러 의혹이 붉어졌다. 데니스가 누명을 쓴 것이며, 무죄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본 수 많은 사람들은 데니스가 무죄라고 믿었다. 서맨사도 그랬다. 서맨사는 그렇게 누명을 쓴 데니스에게 빠졌고, 교도소에 갇혀있는 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이런 스릴러 책을 읽은 뒤 리뷰를 쓰는 건 정말 어렵다. 스릴러의 백미는 반전이다. 즉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읽어야만 그 재미가 배가 된다. 헌데 리뷰를 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책의 내용 일부를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이 책을 읽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게 스포를 하게 되어버리는 상황. 괜시리 예비 독자들에게 미안함이 앞선다. 그래서 내용에 대해서는, 최대한 출판사의 책 소개 문구와 관련된 만큼만 쓰고자 하는데, 이게 마음처럼 될런지 모르겠다.




“사람들 말로는 경관님이 그 이후에 데니스에게 원한을 품었다고 하던데요. 홀리의 시신이 발견된 후 데니스의 집으로 찾아간 게 경관님이었다면서요. 데니스와 그 범죄를 연관 지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도 말이죠.” P 061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당신 쪽 사람들은 체모를 잃어버렸죠. 당신은 증인들을 유도해서 당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하게 만들었고요. 아들의 친구에 대한 당신의 개인적 원한 때문에 말이에요. 결국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한데 엮어 십 대 남학생한테 누명을 씌운거에요” P 067



“왜 이곳 사람들은 그애들이 죽었다고 그렇게 확신하는 거죠? 조사는 전부 날림으로 이루어졌어요. 그애들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왜 그렇게 했는지 한 번도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P109





누명.


주인공 데니스 댄슨이 교도소에 수감된 이유는, 한 소녀를 참혹하게 살해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가 소녀를 죽였다는 증인과 증거는 완벽하지 않았다. 많은 의혹이 있었고, 경찰들의 수사 조차도 날림수사, 함정수사 같았다. 댄슨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와, 각종 수사자료. 이 모든 자료는 누가봐도 범인을 잡아야만 하는데, 범인의 윤곽이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든 증거를 만들고, 범인을 만들어 내려고 한 듯 보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범인은 돈 없고 빽 없는 데니스 댄슨. 이러한 상황은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왕왕 있는 일이다 보니, 이게 정말 사실이라면 얼마나 암담할까 싶었다(흔한 그알 애청자 감상1)​. 



정의감에 넘치는 언론인이 억울한 누명을 쓴 데니스를 돕기 위해 다큐를 만들었고, 수 많은 사람들이 그런 데니스의 무죄 판결을 위해 온/오프라인에서 활동한다. 이 소설의 주요 인물들은 데니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앞장섰던 서맨사(샘)과 다큐 감독 캐리. 그리고 그녀들은 데니스의 무죄판결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무엇보다 서맨사는 그토록 바라던 데니스의 사랑도 얻었다. 




난 당신을 사랑해요. 내가 원하는 건 당신뿐이에요. 우리가 지금 떨어져 있는 건 내게 아무런 문제도 안돼요. 면회를 하고 싶어요. P 025




교도소에 갇혀있던 데니스에게 사랑을 느끼며, 편지로 교류하던 서맨사의 상황을 보면서 ‘스톡홀름 증후군’이 떠올랐다.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온전치 못했던 서맨사. 하지만 누구에게든 애정을 받고 싶었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누명이든 아니든 일단은 살인죄로 인해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과 사랑에 빠쪄버린건, 데니스가 서맨사의 정신적 결핍을 교묘하게 파고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톡홀름 증후군’ 을 겪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러한 정신적인 결핍의 영향으로, 가해자(범죄자)에게 어긋난 유대감을 갖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흔한 그알 애청자 감상22).



서맨사의 이런 모습을 책 제목인 「이노센트 와이프(The Innocent Wife)」로 표현한게 아닐까? 이노센트는 순진, 순수, 순결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리석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죄없는, 결백하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데니스에게 맹목적으로 사랑을 느끼는 모습에서는 서맨사의 순수함이 보이고, 무죄 판결받은 데니스와 결혼한 서맨사는 그야말로 데니스가 결백하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서맨사의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적나라하게 들어난다. 정말 책 제목 그대로  「이노센트 와이프(The Innocent Wife)」 다.




아, 스포를 피하면서 리뷰를 쓰자니 정말 너무 어려운 일이다. 진짜 한편의 영화를 본 느낌인데, 이걸 스포를 피하면서 이야기하자니, 언어실력이 부족하여 표현을 못하는게 한이다(국어 공부를 다시해야할 판..). 그저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점점 조여오는 긴장감과 심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놓치치 말고, 꼭 읽어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왜 이곳 사람들은 그애들이 죽었다고 그렇게 확신하는 거죠? 조사는 전부 날림으로 이루어졌어요. 그애들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왜 그렇게 했는지 한 번도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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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니스 - 잠재력을 깨우는 단 하나의 열쇠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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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스틸니스」는 무려 자기계발서다. 독서편식을 고치려 여러 장르의 책을 읽었던 나지만, 그럼에도 유일하게 손을 대지 않았던 장르가 바로 자기계발서다. 내가 생각하던 자기계발서는 도덕책에 나오는, 언제나 입바른 말만했다. 적어도 시중에 나온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은 그랬다. 그런 책들만 보면 세상에는 성공한 사람들만 있어야 하는데, 현실을 보면 타인의 눈에 ‘루저’로 비치는 사람들이 정말 많지않나? 그래서 더욱 자기계발서는 읽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스틸니스」를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이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철학, 고전 해설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지리상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나 성격이 얼마나 다른지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고대 철학은 완벽하게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기원전 500년에 공자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든, 그로부터 100년뒤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든, 그로부터 한 세대가 흐른 뒤 에피쿠로스의 정원에 앉아 있던 제자든지 간에 하나같이 침착함과 차분함, 평온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가르침을 듣게 될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우뻬카(upekkha)라고 하고 이슬람교에서는 아슬라마(aslama)라고 부른다. 히브리서에서는 히쉬타부트(hishtavut)라고 한다. 힌두교 3대 경전으로 꼽히는 《바가바드 기타》의 2장은 전사 아르주나에 관한 서사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로 사마트밤(samatvam), 즉 ‘마음의 평정 또는 한결같은 평화’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스에서는 에우티미아(euthtmia), 헤시키아(hesychia)라고 하고 에피쿠로스학파에서는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일컫는다. 기독교에서는 아이콰니미타스(aequanimitas)라고 한다. 그리고 영어로는 스틸니스(stillness). P 017




혼자 있는 시간, 집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다. 혹은 침대에 누워본다. 분명 나 혼자 있고 TV가 켜있지도 않으며, 라디오를 틀지도 않았다. 분명 내가 있는 우리집은 조용해야하는데, 이상하게 조용하지가 않다. 창 밖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의 빵빵거리는 소음이 주기적으로 들려오고, 저 멀리서 아파트 공사장 소리도 들려온다. 분명 나는 조용한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나와는 상관없이 외부 소음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온다. 정말 조용하게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도, 주변의 생활소음이 이를 가만두지 않는다. 현대를 살고 있는 이상, 우리는 소음에 휘둘리며, 소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이렇게 자의든 타의든 나를 괴롭히는 모든 상황에서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상황은 현대뿐만 아니라 고대부터 시작되어왔다. 우리나라 문화로 치면 고대부터 우리가 잘 아는 가까운 역사까지, 많은 조상들이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수련을 했다. 제일 쉬운 예가 바로 ‘선비’들이다. 공맹의 가르침을 공부하며, ‘군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조선의 선비들이, 심지어 조선의 왕까지도 되고자 한 ‘군자’란, 유교에서 도덕적으로 완성된 성인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말로 하면, 옳고 그름을 정확히 알고, 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군자’가 되고자 한 사람은 유교에만 있었던게 아니라, 불교에도 있었고, 기독교에도 있었으며, 힌두교에도 있었다. 그를 칭하는 말은 각기 달랐지만, 옛부터 많은 사람들이 ‘군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 대표적인 방법이 내 마음에 평화를 가지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즉 고요한 마음가짐에서 얻어지는 마음의 평정이랄까?


그게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고요, 즉 스틸니스 이다.



 이 책은 동/서양의 역사, 철학, 고전을 망라하며 스틸니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과거를 살았던 수 많은 인물중, 스틸니스를 끌어냄으로 나 자신을 찾고, 그들이 스틸니스를 끌어냄으로써 어떠한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이야기한다. 





고요는 외부의 방해에 취약하므로 세상의 소란함에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의 소음에, 우리 영혼과 육체의 소음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찰나의 고요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가장 힘든 상황에서조차 일관성 있게 끌어어낼 수 있는 집중과 지혜다. P 113



일상에서 마주치는 갖가지 스트레스와 곤경은 우리를 쓰러뜨릴 수 있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다 보면 우리는 하나를 닫으면 또 하나 열리는 온갖 정보 속에 사로 잡힌다. 거기에 앉아 그 모든 것을 흡수해야 할까? P243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수 많은 소음과, 수 많은 정보의 범람 속에 있다. 조용히 있어도 어딘가에서 소음이 들려오고, 정보를 취하고 싶지 않아도 tv만 틀면, 핸드폰만 보면 원하든 원치않든 수 많은 정보를 접한다. 심지어 그 정보들 중에는 가짜뉴스도 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나폴레옹의 사례를 보자.​




나폴레옹은 우편물이 밀리는 상황을 즐겼다. 그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화나게 할 수도 있고 중요한 가십거리를 놓치는 일이 생기더라도 말이다. 사소한 문제들은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해결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실시간으로 뉴스를 받아들일 게 아니라 나폴레옹처럼 여유를 갖는 태도, 유행에 한두 계절 쯤 뒤쳐지는 태도, 내 삶을 받은편지함의 노예로 만들지 않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P 056  




나폴레옹은 밀려오는 편지들을 곧이 곧대로 읽지 않았다. 물론 정말 위급한 편지는, 특히 한 밤중에 자기가 자고 있을 때 도착한 위급한 편지는 자고 있더라도 본인을 꼭 깨우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편지를 선별했다. 요즘말로 하면 정보를 선별한 것이다. 밀려오는 편지들은 몇일 뒤에 열어보면, 대게 상황 종료된 후이니 굳이 본인이 볼 필요가 없는게 대부분이라 했다. 나폴레옹은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본인 나름대로의 선별장치를 두고 있었다. 수 많은 정보에 휘둘리는 현대인이 한번 쯤은 곱씹어 볼 일화다. 



그렇다고 나폴레옹 처럼 극단적으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름대로의 선별장치를 마련한다면, 내 자신이 그러한 정보 속에서 휘둘릴 일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 뿐만인가? 수 많은 정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내면의 목소리는 듣기는 커녕 피곤함뿐인 현대인의 삶이었다. 하지만 정보를 선별하게 되면, 그 만큼 에너지가 비축되고, 비축된 에너지를 내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그렇게 나를 위해, 진정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자. 그리하면 알게 될 것이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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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 내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취향수집 에세이
신미경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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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게 있어 내 하루는 더 충만해진다.”



나는 좋아하는 게 너무 많다. 이것도 좋아하고, 저것도 좋아하고,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서 어떤 걸 더 좋아하는 지 꼽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다가 문득 머릿 속에 문득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행동이든 좋아하는 게 없다면? 좋아하는 거 하나 없이 하루를 보낸다면?’. 좋아하는 게 너무 많은 나에게는 1도 상상할 수 없는 가정이지만, 그래도 한 번 상상해보니 그런 삶은 각박해도 너무 각박했다. 삶의 의욕이 없을 것만 같았다. 정말 즐거움이나 재미 없이, 태어난 김에 어쩔 수 없이 사는 인생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또 나처럼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뭐든지 부족하지 않고, 넘치지 않는, 적당한 게 제일 좋은 건데 내가 좋아하는 건 너무 넘치는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좋아하는게 넘쳐나다보니, 내가 정말 이걸 좋아하는 건지, 저걸 좋아하고 있으니 당연히 이것도 좋아하는 게 맞지! 라는 생각에 좋아하는 척 하고 있는 건지. 내 스스로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좋아한다고 내 스스로 세뇌하고 있는 지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미니멀리즘의 대표 주자이며, 말 그대로 최소한의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도 과거에는 이것, 저것 많은 것을 사들인 맥시멀리스트였다. 그러니까 내 어딘가에 있는 공허함을, 부족함을 채우는 방법으로 택한 게 소비였다.




가지고 싶은 물건을 손아귀에 넣는 순간 느끼는 성취감. 돈을 버는 건 언제나 어렵지만, 물건을 사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견디며 돈을 벌 이유가 없었다. 지금의 나와 다른 생각이지만 그때는 그게 맞는 방향 같았다. 가장 손쉬운 기분전환, 수집인지 호딩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며 돈과 시간을 많이 썼고… P 041




과거 저자가 생각한 ‘물건을 사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견디며 돈을 벌 이유가 없었다.’는 지금의 나와 동일시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 놀랐다. 각종 스트레스를 견디며 일을 하는 건, 월급을 받기 위함이다. 월급을 받으려고 하는 건 내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다. 내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돈 주고 사서, 내 눈앞에 두는거다. 어떻게 보면 정말 허망한 일이다. 죽어서 이 모든 것들을 싸짊고 저세상을 갈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쩌면 나는 ‘내 삶을 윤택하기 위해서’라고 나를 속여가며, 말그대로 손 쉽게 기분전환을 하는 방법을 택한게 아닌가 싶어졌다.




내가 오랫동안 고생했던 문제, 물질에 대한 통제력을 키우고 부러움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지 노력한 끝에 소비중독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었다. 지금은 감정적 소비가 드물뿐더러 물질 자체에 큰 비중을 두고 살지 않는다. 물질이 채우지 못한 공허와는 다른 감각으로 여백은 여유로웠으나 삶의 재미와는 거리가 있었다. 욕구를 느끼고 싶었다. 그런 내게 찾아온 부러움의 대상이 공부하는 사람들이었다. P 193




소비를 해가며 손쉬운 기분전환을 택했던 저자도 결국에는 삶을 윤택하는 방식을 바꿨다. 손 쉽게 얻은 기분전환은 지출한 비용에 비하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저 잠깐동안의 쾌락일 뿐이다. 그런 저자가 공허함을 채우는 방법으로 선택한 건 지적인 욕망을 채우는 것, 지적인 쾌락을 선택했다. 이건 비단 책을 보며 공부하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 그 모든 것을 총칭한다. 예컨대 피아노를 배우거나, 혹은 배드민턴을 배우거나. 나의 시간을 들여가며 내가 모르는 부분을 채워가는 것. 저자는 이렇게 자신의 소비생활을 절제하며, 삶의 방식을 변화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무언가를 배워감으로써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했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 저자는 자연스레 건강한 삶을 살게 되었다.




이쯤에서 돌아본 내 삶, 내 삶은 어떠한가. 지금도 나는 좋아하는게 넘쳐나고, 좋아하는 것을 사기 위해 회사를 다니고 아등바등 돈을 번다. 분명 내 수입은 내 삶을 보았을 때, 그리 적게 버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이상하게 수중에 돈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왜 그러한가 따지고 보니, 좋아하는 굿즈가 나왔으니 사고, 좋아하는 책이 나왔으니 사고, 신기한 물건이 보이니 사고, 끊없이 소비하고 또 소비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과거에는 이렇게까지 무차별적인 소비를 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소비 강도가 확실히 높아지고 있었다.



나름 내 소비에 대해 분석이라는 걸 해봤는데, 회사에서 년차가 쌓일 수록, 업무 스트레스가 커질 수록 소비강도가 높아졌다. 그러니까, 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좋아하는 물건’을 사는거라고 내 자신을 속이며, 기분전환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기분전환이 오랜 시간 지속되지 못하기에,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무언가를 사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한동안 유행하던 ‘X발 비용’ 내지는 ‘탕진잼’을 내가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알았다. 지금의 내 소비생활은 내 삶을 건강하게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 진정한, 나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답을 찾는 건 이 책이 남긴, 나를 위한 숙제다.


내가 오랫동안 고생했던 문제, 물질에 대한 통제력을 키우고 부러움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지 노력한 끝에 소비중독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었다. 지금은 감정적 소비가 드물뿐더러 물질 자체에 큰 비중을 두고 살지 않는다. 물질이 채우지 못한 공허와는 다른 감각으로 여백은 여유로웠으나 삶의 재미와는 거리가 있었다. 욕구를 느끼고 싶었다. 그런 내게 찾아온 부러움의 대상이 공부하는 사람들이었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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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수의 시대 - 펭수 신드롬 이면에 숨겨진 세대와 시대 변화의 비밀
김용섭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작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의 힐링 캐릭터는 ‘펭수’다. 그 어떤 캐릭터를 좋아할 때 보다, 어쩌면 조금 더 광적으로, 혹은 한 연예인에 빠진 것 처럼 펭수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멈추고, 펭수 굿즈가 나오면 냉큼 지갑을 열고, TV를 키면 EBS로 채널을 돌린다. 그런 나에게 『펭수의 시대』라는 제목의 책은 당연히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책에 눈길이 가는 것과, 그 책을 집어서 읽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그저 펭수 때문이 아니다. 이 책은 펭수를 분석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펭수를 지지하는 수 많은 펭클럽, 그 중에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분석한다.


예전에 밀레니얼 세대를 분석한 책으로 꽤 유명한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읽었었다. 책 전반을 메우는 밀레니얼 세대는 꽤 흥미있는 주제였고, 내 상황이나 위치와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 스스로 선택한 경제/경영 도서 중에서 정말 만족스러웠다. 그 기억이 있었기에, 『펭수의 시대』를 읽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나보다.


물론 책을 읽기 전 까지는, ‘책 판매를 위해 펭수 이용하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도 있긴 했다. 펭클럽으로써 이런 걱정이 없었다면 그건 펭클럽자격도 없는 것일테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펭수를 이용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책을 판매하기 위해 나쁜 쪽으로 이용한 게 아니라, 정말 밀레니얼 세대분석과 시대분석을 펭수와 접목하여 영리하게 이용하였다.


자 이제 여기서 문제는, 내가 이 책을 읽은 후기를 쓰는 데에 있다. 나는 누가 뭐래도 펭클럽인데, 펭클럽으로써 후기를 쓴다면 그저 그런 펭덕의 감상문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 책의 후기를 쓰는 잠시 잠깐 동안은 펭클럽이 아닌, 현재를 살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로 쓰려 한다.



펭수 ‘신드롬’. ‘신드롬’이란 어떤 것을 좋아하는 현상이 전염병과 같이 전체를 휩쓰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펭수 신드롬은 가히 놀랄만하다. 현재 핫한 스타라는 BTS 조차도 이렇게 짧은 순간에 폭발적으로 인지도를 받지는 못했으니 말이다. 대체 사람을은 왜 펭수에게 이렇게 열광하는 걸까. 아,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잔소리하지 마세요. -펭수



일명 안티꼰대다. 이제 막 사회에 말을 디딘 밀레니얼 세대가 마주한 사회는, 일명 꼰대라 부르는 기성세대가 장악한 사회다. 능력이 따라 대우를 해주는게 아닌, 나이와 사회에서 구른 연차, 직급에 따라 대우를 해주는 사회, 그게 바로 지금의 사회다. 불합리한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보기에, 이토록 불합리한 게 또 있을까? 나는 일을 하기 위해 회사에 들어왔는데, 이 회사에서 나에게 시키는 건 정당한 업무가 아니라 ‘명령’이라니. 이 얼마나 황당한가. 그 ‘명령’에 견디지 못해서 퇴사를 하면 ‘이래서 요즘애들이란 쯧쯧’이라는 오명을 쓴다. 그렇게 기성세대가 보는 밀레니얼 세대는 그저 쉬운 일만 찾는 ‘요즘 애들’이 되었고, 밀레니얼 세대가 보는 기성세대는 ‘꼰대’가 되어버렸다. 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이렇게 꼰대가 지배하는 사회는 당연히 지금의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았다. 헌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 우리가 말하는 기성세대 역시도 20~30년 전에는 드럽게 말 안듣는 ‘요즘 애들’이었다. 요즘 애들이었던 그들이 불과 20~30년 만에 초심을 잃고, 꼰대가 된걸까? 아니, 그건 아니다. 꼰대 사회가 되어버린 건, 앞선 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에 그저 순응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전 세대, 전전세대, 전전전세대 모든 기성세대들이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변화하지 않고 잘 흘러왔는데, 밀레니얼이라 불리우는 세대가 그 순응을 거부하고 변화를 선택했다. 아주 당연하게 순응하는 삶을 살았던 기성세대들은 놀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저 변화를 선택한 밀레니얼 세대, 그들은 잘못되었음에도 바로잡히지 않던 것들을 바로 잡으려 했을 뿐이고, 순응을 택한 기성세대들은 이에 발끈하여 꼰대가 되었을 뿐이다. 


펭수를 2030 밀레니얼 세대가 적극 지지하는 것은 펭수의 외모 때문이 아니고 펭수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듯 거침없이 사회와 기성세대에 바른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P 028


2020년 1월 초, 펭수는 ‘펭수의 고향 남극으로’라는 에피소드에서 “새해를 맞아 고향에 감. 카톡 안받아요” 라는 메모를 남기고 사라진다. 펭수를 찾아간 제작진이 다음 날 촬영인데 갑자기 사라지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내일이 촬영이잖아요? 저 오늘 월차 냈습니다.”하며 당당히 휴일에는 카톡하지 말라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휴일에 연락하면 지옥 갑니다.”, “일도 쉬어 가면서 해야죠.” 라며 사이다 발언을 이어간다. 이런 발언을 속 시원하게 여기는 2030세대가 많다는 것은 아직도 현실 직장에서는 이런 말을 당당히 하지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P 150


참 서글프지만 대부분의 직장이라면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린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휴가를 썼어도, 회사에서 최소 5회 이상은 연락이 온다. 심지어 주말에도 연락을 받는 게 빈번하다. 하지만 전화를 한 동료에게 펭수처럼 사이다 발언을 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불이익을 받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책에서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변화를 선택하고, 불합리한 것을 바로 잡는 세대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저 꼰대들에게 “넵-” 이라고 대답하는, 넵무새가 되어버릴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처럼 ‘이건 잘못된거에요’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에게, 펭수라는 존재는 닮고 싶은 존재이며, 대리만족 하게 해주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펭수에게 열광한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른이고 어른이고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면 되는거에요. - 펭수


펭수가 이야기 하는 건 안티꼰대만 있는 건 아니다. 남극출신 펭귄 답게 환경/기후 문제를 이야기한다. 본인 스스로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뿐만 아니라 복지부에서 펭수의 가족사진이라며 엄마,아빠,펭수,동생 4인 가족사진을 보내주자, 자기는 동생이 없다고 한다. 즉, 기존 우리나라에 뿌리내리던 고정관념들을 하나하나 깨트리고 있는 것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펭수는 현 시대에 사회문제로 떠오른 모든 이슈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펭수가 글로벌 스타가 되려면 환경이나 젠더, 윤리 이슈에 좀더 투자해야 한다. 한국에서 펭수가 사랑받은 결정적 계기가 안티꼰대였다. 갑질과 꼰대 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를 재미있게 풀어내며 공감을 샀던 것이 2030세대에게 사랑받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는 환경, 젠저, 윤리, 불평등 문제다. 오래전부터 있던 문제였지만, 기성세대가 상대적으로 외면헀던 이슈였고 그 결과 양극화는 더 심각해져갔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환경문제는 시대의 상식이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면서 과거와 같은 시각으로 환경문제를 보지 않는다. 글로벌 10~30대, 즉 MZ 세대의 공감과 함께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라도 펭수는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 그동안의 펭수는 빨리 배우고, 적응하고, 변화를 받아들여 왔다. 그리고 앞으로의 펭수에게 기대하는 점도 이것이다. 펭수의 진화가 결국 글로벌 스타로서 가능성을 현실로 바꿔 줄 무기가 될것이기 때문이다. P 241


이 책의 저자는 펭수가 이런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더욱 앞장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펭수의 인기가 더 길게 갈것이며,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 할 거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을 사는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써 본다면 이 의견에 매우 동감한다. 지금까지 유명한 스타들이 선한 행동을 하면, 일종의 선한 영향력이 생겨나 팬들 역시 선한 행동을 하고는 했다. 대표적인 예가 ‘기부’다. A라는 연예인이 기부를 하니, A의 팬들까지 따라서 기부를 하는 그런 현상 말이다. 같은 맥락으로 남극에서 온 펭수는, 남극 빙하가 녹는 것을 슬퍼하고, 남극 친구들을 도와달라고 한다. 펭수를 지지하는 펭클럽들은 그런 펭수를 따라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에코백을 사용하는 등 펭수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따라서 펭수가 이러한 사회 문제를 계속 이야기 한다면, 펭수를 지지하는 수 많은 사람들은 펭수를 따라 동조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펭클럽으로써 본 이 의견은 펭수에게 조금 가혹하다. 이 모든 사회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 온 문제이다. 그렇기에 사회 문제는, 문제를 만든 우리가 해결하는 게 맞다. 누군가가 나서서 행동해야 하는거다. 그러나 아무도 행동하려 하지 않는다. 이건 기성세대를 포함하여 밀레니얼 세대인 우리도 똑같다. 누군가는 행동해야하는 데 아무도 하지를 않으니, 행동하는 그 역할을 펭수에게 강제하는게 아닐까? 그저 우리 만족하자고 그 족쇄를 펭수에게 넘기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정말 펭수가 이러한 사회 문제들을 다루어야만, 지금 보다 더 글로벌한 스타가 될 수 있는걸까? 


지금까지 이런 사회문제를 침묵했던 사람으로써, 펭수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써, 펭수에게 이런 족쇄를 씌워야만 한다는 의견에 동조해야만 한다는게 슬플 따름이다.



이 책이 펭수 신드롬을 현재 밀레니얼 세대에 접목하여 분석하는 책이란 건 위 이야기로도 확실히 알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무거운 이야기만 담고 있는 건 아니다. 경제/경영도서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펭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찰한다. 심지어 펭귄으로써의 펭수를 연구한다. 이 책에서 소소하게 웃을 수 있는 부분이다.


오디션 영상에서 펭수는 남극에서 저가 항공을 타고 스위스에 불시착해 요들송을 배웠고, 스위스에서 헤엄쳐서 인천 앞바다까지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스위스에서 인천공항까지 비행기로 직선거리가 9,000킬로미터 정도다. 하지만 물길을 따라오면 지중해와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지나고 홍해 ,아덴만, 아라비아해, 남중국해를 거치는 동선이 최적일 것이다. 이렇게 해도 1만 4,000~1만5,000킬로미터는 된다. 이 정도의 장거리를 헤엄치는 것이 가능한 펭귄은 황제펭귄이 아니라 아델리펭귄이다. 아델리펭귄은 이동기가 되면 약 1만3,000~1만 7,000킬로미터의 바닷길을 헤엄치기도 하고, 귀소본능이 탁월해 비행기를 태워서 4,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떨어뜨려도 10개월 후 원래 살던 곳으로 찾아간다. (중략)

하지만 일부 펭귄은 야생 상태에서도 50년까지 살았다는 기록도 있고, 동물원이나 사육 시설에 있는 펭귄의 경우 야생 펭귄보다 수명이 길다. 펭수는 인간 세계에서 살고 있는 설정이기에 야생 상태에서보다 수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한국의 미세먼지를 비롯해 환경오염 문제, 연예인으로서 펭수가 겪는 스트레스, 펭귄 무리와 떨어져서 홀로 살면서 겪을 외로움 등을 변수로 계산할 수는 있겠다. P 056 ~ 057


펭수는 자이언트 펭귄이기에 당연히 황제 펭귄이라 생각했던 펭클럽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드려 팬다. 저자는 펭수(와 밀레니얼 세대)를 분석하기 위해서, 정말 펭수의 모든 것을 공부했다. 뿐만 아니다. 요즘 열일하는 펭수 과로를 지적하며 ‘번아웃 증후군’을 걱정하기도 한다. 어쩌면 저자도 펭수의 세계관에 흠뻑 빠진, 펭클럽이 된 건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든다. 시작은 책 집필이었으나, 그 끝은 펭클럽이랄까.


느낌적인 느낌상, 이 책은 『90년생이 온다』 처럼 여러 회사의 독서통신 교재로 등장할 것 같다. 어쩌면 몇 달 이내에 우리 회사 북클립 도서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작년 한 해동안 밀레니얼 세대를 분석한 책은 정말 많이 쏟아졌지만, 『90년생이 온다』 만큼 확 와 닿는 책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참으로 영리한 책이다.


 그건 그렇고! 우리 펭수가 이런 경제/경영 도서의 메인으로 설 만큼 돋보적인 존재가 되었다니, 펭클럽으로써 그저 뿌듯하고 또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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