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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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총 25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서로 태어난 나라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달랐지만 이 여성들에게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가정, 사회, 회사 그 모든 곳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과 차별을 받았다는 것과, 이런 환경 속에서 글을 씀으로써 투쟁했고, 살아남았으며, 이름을 남겼다는 점이다(아! 그렇다고 그녀들이 전부 작가라는 건 아니다).



그녀들이 글을 쓴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 보자. 누군가는 억압받는 사회에서 정신적인 해방감(또는 자유)를 느끼고자 글을 썼고, 누군가는 억압받는 사회에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글을 썼다. 이유야 어떻든, 결국 억압하는 사회가 그녀들로 하여금 펜을 들게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했던 사회가, 훗날 각계각층에서 존경받는 25인의 여성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내 마음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무엇인가 말하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나자 일종의 해방감도 느꼈다. P 40 (버지니아 울프)




세계문학전집에서 왕왕 보이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 그녀가 남긴 일기에는, 그녀가 가정에서 얼마나 많은 차별과 억압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녀가 그러한 차별을 받은 이유는 단지 ‘여성’ 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학교는 남자들이 가는 곳’이었으며, ‘여자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면 된다고 늘상 말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보면 참으로 부조리한 아버지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곳 뿐만 아니라 동/서양 막론하고 모든 나라가 그랬다.




박경리는 “결코 남성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리라는 굳은 신념”을 글쓰기로 실천했다. 살롱처럼 운영되고 있던 남성 작가 중심의 문단을 박경리는 불신했다. 남성의 체험은 값진 문학적 소재로 평가하면서 여성의 이야기는 사소하 신변잡기로 취급하는 평단에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실전을 경험하고 전쟁 이야기만 늘 쓰는 남성 작가에게는 왜 사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는가.” P 192 (박경리)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 작가의 삶도 수 많은 핍박과 억압이 있었다. 특히 생계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문단에서는 그녀에게 ‘여류작가’, ‘사소설’ 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조금 슬픈 사실이지만 과거에는 문단 뿐만 아니라, 영화계, 일반 기업 모두가 남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였다. 여성이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에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묵살되었다. 이 당시에는 그랬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동/서양 모두가 그랬다.




당장 우리 할머니 세대를 보자. 우리네 할머니들은 대게 학교를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다. 어떤 경우에는 초등교육조차 받지 못한 분들도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여자는 배울 필요가 없다, 살림만 잘하면 된다’ 였다. 엄마 세대로 와서도 비슷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엄마들은 대체적으로 초등교육까지는 받았고, 중/고등교육의 경우는 선택적이다. 다만 이 선택 역시도 ‘여자는 배울 필요가 없다, 살림만 잘하면 된다’라는 기조 아래 행해졌다는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랄까. 즉 우리네 할머니/엄마세대는 교육을 어느 정도 받았는지에 차이만 있을 뿐, ‘여성’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당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나의 엄마는 할아버지의 지원 아래 고등 교육 뿐만 아니라 다량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문학소녀였던 우리 엄마.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엄마는 결혼을 하고, 나와 동생을 양육하며 많은 것을 희생했다(물론! 내 아빠도 많은 것을 희생했다). 지금이야 ‘결혼’ 이라던지, ‘자녀계획’ 이라던지 모든 것이 선택사항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엄마의 희생덕분에(아빠도!!), 나는 배우고 싶은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읽고 싶은 책을 전부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부모님의 엄청난 희생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가 변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불가능했을거다.




긴스버그는 여성의 자리가 커지는 것을 여성이 두려워할 때, 뛰어난 여성을 여성이 모른 척할 때, 핍박받는 여성을 여성이 지켜 주지 않을 때 여성 운동은 뒷걸음치게 된다는 경고를 소토마요르를 지켜 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P 111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결국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배우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진 건, 위 책에서 선정한 25인을 비롯하여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 핍박에 맞서 싸운 여성들이 있었기에, 그녀들을 도와준 또 다른 그녀들이(그들도)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이 나에게 남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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