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내가 즐겨 읽는 분야의 역사책을 읽었다. 다름아닌 일본 고대사 역사책.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제일 관심있는 분야는 한일고대사 역사책이긴 하다. 고대 한일관계는 현재의 한일관계는 많이 달랐으니까.




보통 문명의 발달은 (구/신)석기시대 - 청동기 - 철기로 진행된다. 어떤 문명이든 그랬고, 한반도 역사도 이렇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꽤 오랜기간 석기시대를 유지하다가 급격하게 청동기+철기 혼용 시대로 점프했다. 왜? 바로 한반도 도래인 덕분에!



일본은 지형상 바다로 가로막힌 고립된 섬이다. 요즘에야 교통이 발달하여 비행기, 배만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지만 고대는 달랐다. 서로 대륙을 오가며 문명과 물자를 교류한 나라들은 점진적으로 문명이 발달했지만, 일본은 그게 불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한반도에서 일부 사람들이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들은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는 매우 선진적인 청동+철기 문명을 전파했다. 그래서일까. 본격적으로 청동기+철기문화로 점프하며 최초 통일왕조가 성립된 4세기 야마토 정권의 시작은 한반도 도래인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 



위에서도 말했듯 한일고대사를 워낙 좋아하는 지라 관련 책을 꽤 많이 읽었고, 일반인보다는 관련 지식을 꽤 많이 알고 있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일본 여행을 가도 도래인 유적지 답사도 자주했었고.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은 토대부터 착착 다져진 지식이라기보단, 과정을 뺀 ‘결과’에 대해서만 아는 경우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은 대체로 한반도 역사와 관련된 부분이 많았다(특히 백제나 가야, 그외 고대국가 전승). 



예컨데 5세기 야마토 정권을 좌지우지 한 소가씨가 도래인 출신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소가씨 씨족의 시작이 어땠는지는 몰랐다. 소가씨가 씨사로 ‘아스카데라(호코지)’를 조영할 만큼 권력을 좌지우지 한 도래인 일족이라는 건 알았으나, 그들이 권력을 잡은 방법이 ‘외척’을 활용한 방법이었다는 건 몰랐다. 소가씨를 비롯한 여러 도래인 일족들이 야마토 정권 하에 등용되었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그들이 대대로 태자(차기 천황)의 스승을 했다는 사실은 몰랐다. 아야씨가 도래인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천황가 조차도 섣불리 손댈 수 없는 무가, 즉 일종의 해결사 집단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왕인 박사 후손들이 대대로 황궁 문서업무(행정 등)에 종사했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그들뿐만 아니라 백제인 왕진이 같은 다른 도래인 씨족들도 같이 문서업무에 종사했다는 사실은 몰랐다. 이런 모든 내용을 「소가씨 4대」를 통해 확인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일본 고대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꽤 있었다면, 「왜 5왕」에 대한 내용은 약간 내 머리속에 물음표가 다분한 내용이라,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그도 그럴것이 일본 사서 『일본서기』, 『고사기』 (일명 기기전승/기기사관)등에는 중국 사서에 실려 있는 왜 5왕에 대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 사서(『송서』)에서 말하는 왜국왕 5명은 ‘찬, 진, 제, 흥, 무’를 말한다. 이들은 송나라에서 안동장군이라는 작위를 제수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짤막하게나마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의 기록은 일본 기기전승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뭐, 생각해보면 그렇다. 중국 사서에는 5세기 왜국5왕 뿐만 아니라, 3세기 야마타이국 히미코 여왕에 대한 기사도 있다. 하지만 히미코 여왕 역시 기기전승에는 그 이름이 없다. 여기서부터 이미 일본 기기전승은 역사서로써 과장과 왜곡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것이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 『고사기』는 중국사서보다도 한참 뒤, 8세기에 ‘왕권강화(천황가 정당성)’를 위해 쓰여진 역사서이기 때문이다. 왜곡과 과장 및 윤색이 많이 들어가있다. 특히 연대가 그렇다.



기기전승에 왜곡과 과장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주 다행스럽게도 중국사서나 우리나라 사서와 교차 검증할 수 있는 사실도 있다. 그 덕분에 기기전승에서 부풀린 연대를 역산한결과, 대충 120년의 오차가 있다는게 현재 통설이다(특히 백제사 기록과 교차검증). 



기기전승에서는 중국 사서에 있는 3세기 히미코 여왕을, 진구천황과 동일시 하고 있다. 하지만 연대 검증결과 적어도 진구천황 재위 시절에 쓰여진 기사는 4세기로 확인된다. 즉, 8세기 당시 『고사기』, 『일본서기』 집필 과정에서 이미 쓰여진 중국 사서에 나와있는 히미코여왕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연대를 위로 끌어올려버린 것이다. 그렇게 연대를 끌어올리다보니, 그 과정에서 기기전승에만 남은 소위 백년 넘개 살았던 허구의 천황들이 탄생했다. 또 그렇게 허구의 천황들을 만들어내고 보니, 히미코 여왕 이후 중국 사서에 실려있는 왜 5왕에 대해 끼워맞추기가 어려워진 상태가 되었달까?



근/현대에 이르러 학계에서는 중국 사서에 실린 왜 5왕를 천황가 계보에 따라 리추, 한제이, 인교이, 안코, 유라쿠 등으로 추정했고, 이로 인해 ‘기마민족정복왕조설’과 ‘왕조교체설’등이 대두되는 등 만세일계 형통이라는 천황가의 계보도 예전만큼의 힘은 없다.



일단 『송서』 「왜국전」의 기록을 통해 보면 찬이 왜국에서 정통성이 있는 왕으로 인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438년 왜왕 진이 송으로부터 ‘안동장군 왜국왕’의 칭호를 받았던 것을 참고하면 찬도 ‘안동장군 왜국왕’의 칭호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고구려나 백제보다는 서열이 낮은 작호였다. p 015 


원래 『송서』의 왜5왕보다 앞선 시대인 3세기경 일본열도의 상황이 중국 사료에 등장한다. 그것이 잘 알려져 있는 야마타이국이다. 야마타이국이란 중국의 진수가 쓴 『삼국지』의 「동이전」 왜인조에서 3세기 초반의 왜인국을 아울렀다는 여왕국을 말한다. 『삼국지』에 따르면 왜인의 나라는 30여 개의 소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여왕 히미코의 야마타이국이 가장 강성한 국가로, 특히 히미코가 3세기 초에 중국의 위나라에 조공을 하여 ‘친위왜왕’이라는 칭호까지 받은 사실에 대해 적고 있다. p 039



정작 일본의 사서에는 히미코라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일본서기』를 기술한 편찬자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진구 황후를 히미코와 동일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진구 황후라는 인물은 사실 일본 고대사 수수께끼 가운데 한 인물이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나오는 진구는 남편인 주아이 천황이 죽은 이후, 천황에 버금갈 정도의 섭정을 하였다고 전하는 황후다. 특히 우리에게는 ‘진구의 삼한정벌’로 알려진 인물이다. p 040



『일본서기』의 연대에 따르면 진구는 서기 201년부터 269년까지 재위했던 것으로 나온다. 이렇게 진구를 3세기의 인물로 위치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이 바로 중국의 사서였다. 『일본서기』에서는 진구의 재위 기간 중간 중간에 “「위지」에서 말하였다”는 표현을 빌어가며 240년 위나라 제왕이 조서를 갖고 왜국에 갔따든지, 243년 왜왕이 사신을 보내 헌상했다든지 하는 「위지」의 기록을 직접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p 040



일본 학계에서는 일찍이 소가씨 자체가 도래인이라는 점이 제창되었다. 이 학설에서는 『일본서기』에 오진 천황 25년에 도래했다고 하는 백제의 고관 목만치와 소가씨가 자신들의 선조로 주장하고 있는 소가마지를 동일인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소가씨 도래인설은 그 후에도 유력한 연구자에 의해 계승되었고 현재에도 일반에 소가씨 도래인이라는 이해가 널리 유포되고 있다. p 015



소가씨는 문자를 읽고 쓰는 기술, 철 생산 기술, 대규모 관개수로 공사의 기술, 건전, 스에키, 견직물 등 대륙의 새로운 문화와 기술을 전한 도래인 집단을 지배하에 두고 조직하여 왜왕권의 실무를 관장함으로써 정치를 주도하게 되었따. 이나메 이전부터 소가씨가 한반도 정책, 도래인, 창고 관리와 같은 왕권의 정치조직의 몇 부문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의견도 있으나 오히려 가쓰라기 지방의 호족 가운데 그러한 직장을 담당하고 있던 가쓰라기 집단의 중추적인 집단이 중심이 되어 소가씨로 독립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p 028



‘소가’라는 씨족명에 대해서는 거주지 주변에 서식하는 식물 ‘스가(골풀)’에서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 좀더 주목되는 점은 소가씨의 거주지인 소가 지역에 ‘구다라가와(百濟川)’ 즉 ‘백제천’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소가씨와 백제의 관련성을 시사한다. 한편 소가씨 가문의 계보 중 마지(滿知), 가라코(韓子), 고마(高麗) 등 한반도와 관련된 이름이 보이고 있다는 점, 소가씨가 그 아래에 아야 씨, 후네 씨 등과 같은 백제계 도래씨족을 다수 거느리고 있는 점, 소가씨 가문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대외정책에 있어서 친백제 정책을 견지하고 있는 점, 목만치와 마지가 동일인물로 추정되며 백제 목 씨의 후예로 볼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소가씨 집안을 한반도 백제에서 건너간 도래계 씨족으로 보아도 큰잘못은 없을 것이다. p 029


이나메와 도래인의 관계를 살펴보면, 한반도 특히 백제에서 왜국으로 건너 온 도래인들은 전문 관료, 테크노크라트 및 외교 사절로서 활약하고 율령 및 각종 사서편찬에도 직접 관여한 사실들이 주목된다. (…) 국내의 지배체제 확립에 꼭 필요한 문서행정, 문필 담당자 또한 도래계 씨족과 그 후예들이었다. (…) 이후 국가 차원의 문서담당 전문집단인 사부집단의 성립으로 이어진다. 왕인박사의 후예인 가와치노후미노오비토 씨 및 왕진이 후예씨족인 후네노후히토 씨, 야마노아야 씨 일족인 야마토노후미 씨 등이 그 중실을 이루고 있었다. 요컨데 고대 일본의 문서행정에 꼭 필요한 문필업은 도래계 씨족과 그 후예들이 담당 주체였던 것이다. p 061



소가씨의 강제력 즉 무력, 군사력은 주로 도래계씨족인 야마토아야 씨에 기초하고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스슌 천황의 암살에 야마토노아야노아타이 고마가 직접 관여한 사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야마토아야씨야말로 왜국(소가씨)의 흑막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야마토노아야씨는 소가씨 정권 하에서 이른바 해결사로서 각종 청부 일을 도맡았다. 그런 만큼 당시에 있어서 야마토노아야씨 일족이 무시 못할 세력을 보유했음을 말해준다. 그 단적인 증거가 다음에 보이는 야마토노아야노타이 씨 등에게 내려진 덴무 천황의 「조서」다. p 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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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셀프 트래블 - 2024~2025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24
송윤경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믿고보는 여행책 시리즈 셀프트래블 신간이 나왔다. 이번 편은 서유럽 포르투갈이다. 셀프트래블 시리즈는 여행을 계획중인 사람이나 여행중인 사람에게 여행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전해주는 더할나위 없는 책이다. 심지어 주기적으로 개정판이 나오고, 최신 정보를 전달해주는 만큼 정말 믿고 볼 수 있는 여행책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셀프트래블 시리즈는 실제 여행을 가지 않고, 눈으로 간접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여행책이기도 하다. 특히 나처럼 육아로 인해(?) 장거리 해외여행을 못가는 사람들에겐 이만한 책이 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서유럽 포르투갈로 여행을 떠나본다♬

※셀프트래블 시리즈는 책 말미에 미니책자가 있어서, 여행시 휴대하기 편리하다.


포르투갈, 서유럽에 속한 나라이자 과거 대항해시대 포문을 연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15세기 아프리카/인도 항로를 개척하고 희망봉을 찍고 온 ‘바스코 다 가마’가 바로 포르투갈 사람이다. 또한 이 시기를 기점으로 19세기까지 아프리카, 아시아 일대가 유럽 식민지로 바뀌며, 식민지 무역이 활발해진 것 역시 포르투갈이 포문을 연 대항해시대에서 기인한다.

소금 가득한 바다여

얼마나 많은 그대의 소금이 포르투갈의 눈물인가.

그대를 건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들들이 헛된 기도를 하고

어머니들이 눈물을 흘렸는가.

얼마나 많은 처녀들이 신부가 되길 기다리며 죽었는가.

그대가 우리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 속에서, 바다여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만약 영혼이 작지 않다면 말이다.

곶 너머로 항해하려는 자라면

누구나 두 배는 슬퍼해야 한다. 도망칠 곳은 없으니.

위험과 심연은 신께서 바다에게 주신 것이니

그럼에도 바다를 천국의 거울로 만든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서사시 『메시지』 중에서



포르투갈 여행 Q&A

  1. 포르투갈 여행은 언제 떠나야 할까? 포르투갈은 지중해성 기후로 온화하고 사계절이 뚜렷하다. 세로로 길게 뻗은 지형으로 인해 날씨 차이가 있어서 여름에는 북부, 겨울에는 남부를 여행하면 좋다.

  2. 패키지와 자유여행,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일까? 패키지라면 역사나 음식, 패션, 소도시 투어 같은 특화된 여행사를 이용하자. 자유여행이라면 내가 짠 여행에 현지 패키지를 추가하면 좋다. 동네 이야기를 들려주는 워킹투어나, 전문가 동반 역사유적지 당일 투어도 많다.

  3. 포르투갈에는 소매치기가 많다는데, 어떻게 예방해야할까? 포르투갈 소매치기는 특히 리스본 트램에서 많이 발생한다. 트램이나 지하철에서 안전한 곳은 제일 뒤 칸 벽면이다. 벽면에 몸을 기대고 가방을 안고 있으면 가져가기 힘들고, 출입문과 떨어져 있는 것이 좋다.

  4. 소매치기를 당하면 어떻게 해야하나? 여행보험을 들었다면 보상받을 수 있다. 가까운 경찰서로 가서 폴리스 리포트를 작성한다. 여권 또는 여권 사본이 있다면 들고 가자. 경찰관의 사인, 도장을 찍고 사본을 받은 뒤 한국으로 돌아와 보험사에 제출하면 된다.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나라다. 뿐만 아니라 세계가 놀란 문화유산도 있고,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성지 ‘파티마’가 바로 포르투갈에 있다. 음식은 말해 뭐해! 일반적인 서유럽 음식과는 달리, 그 양이 아주 푸짐하다. 특히 와인 산지가 유명한 만큼, 포르투갈에서는 와인 한 모금도 필수!

포르투갈 식당 방문시 주의할 점이 있으니, 바로 ‘코우베르트’라는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문화다. 포르투갈은 우리나라와 달리 식전 사이드 음식이 유료다. 당연히 주는 거라 생각하고 먹었다가는, 추가요금이 나오니 주의! 원치 않으면 식전 음식을 빼준다고 하니, 직원에게 말하면 된다.


포우자다는 옛 성주들의 고성이나 수도원, 대부호의 저택을 국가에서 개조해 만든 국영 호텔이다. 포르투갈 내 35곳에 자리한 포우자다는 5성급 호텔 정도의 가격으로 비싼 편이나, 독특한 문화 체험 덕분에 항상 예약이 꽉 차있으므로 몇 달 전에 예약하는 것이 좋다. 성의 고전적인 인테리어는 그대로 두고 시설만 현대적으로 개조해 불편함이 없으며, 휴양에 딱 맞게 리조트처럼 꾸민 호텔도 있다. 비싼 숙박료가 부담스럽다면 식사만 즐기는 것도 좋다. 포르투갈 고유의 맛을 낸 전통요리와 현지 와인, 서비스 철학을 고수하고 있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중세로 시간여행을 떠나 유럽 귀족이 되고 싶다면 하루 쯤 투자해보자. p 050

무려 포르투갈에 있는 고성이 국영호텔로 변모했단다. 심지어 내부는 현대적으로 개조해 사용에 불편함이 없다고! 어렸을 때 디즈니 만화를 보면서, 공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나만 그랬나ㅋㅋㅋ). 포르투갈 포우자다에서 숙박하면, 어렸을 때 완전 드림스컴투르★. 실질적으로 내 인생 통틀어서 포르투갈 여행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_T.

아래는 내 기준(!) 포르투갈 여행지 픽 이다.


바다를 향한 영원의 꿈

리스본 & 리스본 근교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라고 설명하기엔 한없이 모자라다. 화려하거나 세련된 건물이 없다. 사람들은 척박한 일곱 언덕에서 카페의 문을 열고 비카를 마시며 정어리를 손질하고 농담을 주고 받는다. 이 평범한 도시에 가면 설렌다. 그것은 이상향을 느낀다고 하는 애매모호한 것 처럼 분위기라는 알 수 없는 끌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리스본 사람들은 최고의 부를 경험했고, 바다로 나간 이를 그리워했으며, 최악의 재앙을 함께했다. 그들은 여행객을 영혼으로 대하고 숨겨 높은 미소를 내민다. 리스본은 포르투갈어로 ‘매혹적인 항구’라는 뜻. 당신은 홀린 듯이 리스본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p 055

일단 외국을 가면 그 나라 수도는 꼭 가봐야한다. 고로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은 무조건 가야된다는 것! 특히 리스본에 있는 성당 중 솔로를 위한 성당이 있다는 게 너무 매력적이다. 넘 반전이잖아?! 가톨릭 성인이 가난한 사람이나 고아, 임산부 수호하는 건 뭔가 당연한데, 거기에 더해 결혼을 장려하는 성인이라니. 반전매력이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리스본 외곽에 있는 헤갈레이라 별장도 눈여겨 볼만한 관광지다. 이 별장 주인이 ‘프리메이슨’ 단원이라고!!! 심지어 이 별장에서 프리메이슨 입단식이 열렸다고!!!! 아, 참고로 프리메이슨은 중세시대 비밀결사로도 유명한 비밀단체다. 헤갈레이라 별장에 있는 입회식 우물이 정원 상부 부터 지하까지 나선형 계단으로 9층까지 나있는데, 이곳 바닥에 프리메이슨 표식인 나침반이 있다고 한다. 여기가 프리메이슨 입단식이 열리는 장소. 거기다 나선형 계단 중간 층에 가짜 돌문이 있는데, 이 돌문을 빌면 원통형 탑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아 진짜 여긴 꼭 가고 싶다.


*산토 안토니우 성당

리스본 수호성인 안토니우가 태어난 지 3세기가 지난 뒤 지은 성당이다. 성인 안토니우는 가난한 사람과 고아, 임산부 그리고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리스본에서 소매치기당한 여행자들은 경찰서 다음으로 이곳을 찾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또한 결혼을 장려하는 성인으로 유명해 미혼 자식이 있는 집에선 안토니우 사진이 담긴 액자를 둔다고 한다. 신랑감 신붓감을 찾아준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p 084

*헤갈레이라 별장

포르투 상인 가문인 헤갈레이라 자작부인이 소유하던 별장이다. 1892년 브라질 커피 무역으로 거부가 된 카르빌류 몬테이루가 사서 여름 별장으로 재단장했다. 당시 화재가 된 건축 도안은 이탈리아 크레마 시립박물관에 있다. 무대 연출가를 겸한 루이지 마니니는 입구를 숨겨놓거나 비밀통로로 연결되는 등 장치를 설치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하다. p 158



대서양 입구의 영원한 항구

포르투

국명의 어원인 포르투는 부두를 뜻하는 ‘port’에서 유래되었다. 도우루 강 하구에 위치한 항구도시 포르투는 이웃 나라와의 교역을 통해 일찍이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대항해시대를 연 엔리케 왕의 출생지이자 포르투갈의 오래된 도시로 다양한 건축양식의 진화를 살펴볼 수 있다.

낭만의 도시라 하면 프랑스에는 파리, 체코에는 프라하를 떠올리듯이 포르투갈에는 포르투가 있다. 동 루이스 1세 다리 아래로 도우루 강이 흐르고 그 위로 크루즈가 지나간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히베이라 지구의 건물은 파스텔 빛이 바랜 빈티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지의 포도가 무르익으면 빌라 지 노바 가이아의 와이너리에서는 빈 오크통을 채운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클레리구스 탑의 종이 울리고 노을을 닮아 오렌지빛 지붕 위로 새가 날아 오른다. 당신만 있다면 이곳은 완벽한 포르투가 된다. p 171

‘포르투갈’ 이라는 국가 이름 어원이 된 도시 ‘포르투’. 국가 이름이 된 도시이니만큼 포르투도 꼭 들러봐야 하지않을까 싶다. 특히 ‘대항해시대’를 연 엔리케 왕의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대항해시대고 뭐고, 오로지 렐루 서점!!!!! 해리포터 쳐돌이라면 무조건 가봐야 할 렐루 서점!!!!!!!!!!!!

*동 루이스 1세 다리

어느 도시에서나 지역을 나타내는 랜드마크가 있는데, 포르투는 동 루이스 1세 다리가 그렇다. 도우루 강 하류에 있는 6개 다리 중 하나로 포르투 올드타운과 와이너리가 즐비한 빌라 노바 지 가이아를 연결한다. 포르투 주요 명소인 만큼 평일과 주말 상관없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다. ㅗ루 공원이나 세하 두 필라스 수도원에서 보는 노을과 야경도 좋지만, 북적대는 인파가 고민이라면 이곳으로 가자. 긴다이스 푸니쿨라 정류장 인근에 있는 두키 지 롤레 주차장이다. 세하 두 필라르 수도원과 마주한 절벽에 있어 시야가 확 트인다. 위치 상 해가 지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일몰 분위기와 야경, 웅장한 수도원과 활기찬 모루 공원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p 185

*렐루 서점

종이냄새가 주는 편안함과 책이 주는 느긋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서점처럼 좋은 곳이 없다. 1881년 렐루 형제의 서점은 포르투의 일반 건축물에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해 아르누보 양식의 이국적인 외관으로 꾸며졌다. 렐루 서점은 ‘해리포터 서점’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지은 조앤 K.롤링 작가는 신혼을 포르투에서 보냈고 해리포터가 다니는 마법 학교의 계단을 렐루 서점의 계단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p 192



성모발현의 순례지

파티마

이탈리아 바티칸 시국 다음으로 많이 찾는 세계적인 가톨릭 순례지다. 1917년 성모 마리아가 세 명의 목동 앞에 나타난 곳이기 때무니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은 가톨릭을 믿는 포르투갈 대부분의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다. 마음이 아픈 자와 몸이 고통받는 자들이 파티마로 찾아왔다. 나았다는 사람도, 안식을 찾았다는 사람도 있으나 분명한 건 이곳을 찾은 여행자는 무언가 깨달음을 마음에 담고 간다는 것이다.

성모발현일인 5월 13일이 되면 어마어마한 광장이 발 디딜틈도 없이 꽉 찬다. 이때 여행하게 된다면 저녁에 있는 촛불미사와 행렬이 장관을 이루니 놓치지 말자. p 266

‘파티마 기적’은 꽤 유명한 일화라 잘 알고 있는 내용이긴 했는데, 파티마가 포르투갈인지는 몰랐다. 분명 파티마가 포르투갈이라는 정보까지 같이 보았을 테지만, 일화 속 중요한 내용은 ‘성모 발현’과 ‘목동들’, ‘예언’ 그리고 발현 시점이 무려 꽤나 가까운 과거였던 1917년이다보니, 내 머리속에는 그닥 중요하지 않은 정보였던 ‘포르투갈’이라는 국가 이름은 사라졌었나보다.

아니 근데 진짜로 성모 발현이 1917년이라는게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고대 사회야 뭐 전설이니 뭐니 하면서 이야기하겠다면, 1917년이면 너무 가까운 과거가 아닌가. 근데 심지어 마을 사람은 말해 뭐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7만명이 봤어! 와. 거기다 목동 중 한명인 루시아 수녀는 2005년에 선종. 이건 진짜.

난 종교는 없지만, 그럼에도 국내에 있는 역사적인 종교시설 답사를 주구장창 다녀온 사람으로써!! 파티마 만큼은 꼭 한번 가보고 싶다.


*파티마의 기적

1917년 5월 13일 파티마의 목동들 루시아와 프란치스쿠, 프란치스쿠의 동생이자 루시아의 사촌인 히야친타는 현재 망령들의 예배당 위치에서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했다. 성모는 기도를 많이 하고, 매달 같은 날에 같은 곳으로 나오라고 했다. 목동들은 6월과 7월에 이를 행했으나 8월에는 그럴 수 없었다. 정부관리가 목동들을 감옥으로 데려가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다. 약속한 날의 6일 후 다른 곳에서 발현을 목격했고 9월이 지나 10월에는 약 7만 명의 사람들 앞에서 발현하는 기적을 보였다. 일명 ‘태양의 춤’이라 불리는 이 기적은 움직이며 굴곡이 지는 태양을 모든 사람들이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한다. 목동 중 프란치스쿠와 히야친타는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으로 죽고 루시아는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녀로 살았다. 성모는 파티마의 비밀 3가지를 루시아를 통해 전하였다. 토요일에 가톨릭 미사의 예식 중 하나인 성채를 하고 죄인을 위해 기도하며, 묵주기도를 계속하면 러시아는 회개하여 평화가 올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종교를 박해하고 교황은 고통받으리라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는 공산주의에서 벗어났고 요한 바오르 2세는 암살에서 살아남았다. 몸에서 나온 총알은 파티마 성당 성모상 왕관에 봉헌하였다. 다음 해 요한 바오르 2세는 파티마로 순례를 왔고 이를 기념해 광장에는 그의 조각이 남아있다. p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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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파괴 - 군중에서 공중으로
윤동준 지음 / 파람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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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잘 읽지 않는 분야가 정치, 사회학책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불편하니까. 매일 듣는 뉴스에서도 듣기만 해도 불편한 사건, 사고가 나오는데, 내가 읽는 책에서까지 그런 불편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날 불편하게 하는 사회 인문학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었다. 왜? 이 땅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알아야 하는 불편함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회문제에 있어서 최소한 방관자는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나보다 한참 어리다. 나나 신랑이 우스갯소리로 “2000년에도 사람이 태어났어?” 하던 새천년둥이다. 그러니까 저자는 지금 한창 놀아야할 20대 청춘이다. 그 청춘이 사회 인문학책을 썼다. 수박 겉핥기로 쓴 책이 아니라, 깊은 식견을 가지고 쓴 책이었다.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그맘때 놀....지는 못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열씸히 일하느라 바빴기에 사회문제에 관심이 1도 없었다. 나 먹고 살기도 바쁜데, 남이 어떻게 살든 내 알바 아니었으니까. 굳이 사회문제나, 떠올리기만해도 불편함을 야기하는 적폐들은 신경쓰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나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다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든 신경조차 쓰지 않던 방관자 중 하나였다. 그렇게 나 살기도 바쁘다는 이유로 많은 고통들을 무시했다. 남이 배를 곯든 맗든, 나와 내 가족 끼니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굳이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누군가 나서서 해결하려 할테니, 나서지않고 신경쓰지 않았으며, 그렇게 터져나오는 사회문제들을 무시했다.



군중은 사회와 자신의 내면에서 절대시되는 낡은 가치들 곧 우상을 파괴함으로써 공중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정의한 우상은 영웅을 숭배하는, 고통을 방관하는, 승자독식주의를 추구하는, 자유를 보장하는 규칙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그러한 행동이 축적된 집단은 적자생존을 보장하는 교육, 보편적 윤리를 무시하는 부족주의적 공감, 책임을 방임하는 신념윤리, 교양을 파괴하는 전문가주의, 다원주의를 간과하는 상대주의, 허무감을 발생시키는 이기주의, 이성을 얕보는 직관이 뿌리를 두는 전근대적 사회를 조장합니다. 역사는 변증법적으로 진보하며 과학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은 불문율입니다. 이는 곧 하나의 전제는 미래의 새로운 전제의 토양에 불과할 뿐, 절대시 될 수 없는 가치를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낡은 우상들은 새로운 토양을 가꾸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파괴되어야만 합니다. p 014



점점 나이를 먹고, 아이를 낳고 나니 내가 좀 바뀌었나보다. 아이와 관련된 사회문제에 신경쓰이고, 생계가 어려운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아리기 시작했고, 학대받는 아이들을 보고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사회문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멀게는 바다 건너 아직도 깨끗한 물 한모금 마시기가 어려운 사람들. 의료, 교육, 문화생활은 커녕 등 기초적인 생활조차 어려운 사람들. 더 슬픈 건, 이렇게 최소한의 의식주가 보장되지 않는 삶은 바다 건너에만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도 기본적인 삶이 어려운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회 문제를 방관했을 때,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전 세계적으로 문명, 과학이 발달하여 살기 편해졌다는 말을. 하지만 실상을 보면 아직도 최소한의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이 내가 사는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 곳곳에 있다. 이말은 전 세계적으로 살기 편해졌다는 말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 따르면(정확히는 저자가 읽었던 수많은 명사들의 책을 인용했지만) ‘세계 인구의 1퍼센트가 전 세계 재산 총액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장 부유한 상위 10%가 전체 자산 가치의 85%를 독점’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전 세계에서 10명 중 7명이 하루 10달러도 못 번다고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1970년대 이후 소득 분포 하위 50%의 노동자들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실질 임금은 같거나 하락했지만, 소득 분포 상위 1퍼센트의 실질 소득은 4배 이상 증가했고 상위 0.1퍼센트의 소득은 그보다 훨씬 많이 증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능력주의가 아닌 승자독식주의이며, 그 어떠한 이념으로도 정당화하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두는 나름의 수고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런데도 극소수의 몇몇 인간만 그들보다 수억 배나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었을까요? p 061



즉 세계 인구 하위 90%가 남은 자산 가치 15%를 나눠가지는데, 적어도 이 중 20%는 나처럼 최소한 의식주가 해결되는, 하루 10달러(한화로 대략 1만 4천원) 이상은 벌 수 있는 서민들이다. 이 20%까지 제외하면, 결국 전 세계에서 70%의 인구에게 분배되는 자산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으며, 이들은 최소한의 의식주조차 해결이 어려운 빈곤층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 바로 우상을 숭배하는 군중들에 기인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우상이란 1)영웅을 숭배하는, 2)고통을 방관하는, 3)승자독식주의를 추구하는, 4)자유를 보장하는 규칙을 무시하는 행동 등이다.



군중은 ‘내가 아무것도 안 하더라도 다 잘 될 것이다’라는 낭만적인 믿음을 가집니다. 공적 가치와 제3세계 구제와 공교육에 무관심하면서도 진보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은 언제나 실패하지 안고 발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군중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직장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나 다른 일자리를 찾을 권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식의 부조리가 아직도 만연한 줄 알면서도 모든 개인이 똑같이 존엄하고 평등함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p 033



롤 모델의 부재가 빈곤층의 부족한 의지와 실행력의 일부 외부적 요인을 설명하지만, 근본적으로 빈곤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왜냐면 롤 모델을 가진 소수의 빈곤층이 자신 스스로 성공하고자 노력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도전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그것 자체가 불가능한 꿈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빈곤의 원인으로 ‘자유의 부재’를 제시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국이 분쟁 중이거나 기후변화로 재앙이 불어 닥쳤거나 특정 배경의 인종을 차별하는 문화가 뿌리 깊다면 그곳의 사람들은 빈곤에 빠질 확률이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p 050



나 역시 지금 당장 내 삶에 위해가 가해지는건 없기에, 내 주변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여러 문제에 눈을 감았다. 누군가 앞장서길 바라며, 정작 나는 편하게 인터넷 기사를 보며 좋아요, 또는 싫어요 누르는 행위로 나는 내 의견을 표시했다고 만족했다. 난 방관자였고, 누군가가 앞장서길 바랐던 수많은 군중 중 하나다.



철학자 오르테가는 학교가 대중들에게 오로지 현대적인 삶의 기술만을 가르쳤을 뿐 계몽시키지는 못했다고, 대중들에게 열심히 생존 수단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위대한 역사적 사명감을 심어주지는 못했다고, 그들에게 현대적인 도구의 힘과 긍지를 허겁지겁 전해주었지만, 그 정신을 심어주지는 못했다고 무참하게 비판했습니다. (…) 기술의 습득을 목표로 교육받은 현대의 군중은 같은 일만 반복하는 단순 무식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판단력이나 도덕 감각을 자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해 자신의 한계에 만족하는 폐쇄적인 인간이 되기 쉽습니다. p 093



저자는 이렇게 대다수의 사람들이 방관하는 군중으로 만든 우상 중에는 아이를 한 사람의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밑교육을 도맡아온 ‘학교’도 해당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금의 학교교육 현실을 보자. 그저 전문교육을 가르치고, 좋은 대학을 보내고, 대기업 취업이 가능한 전문가를 배출하기 위해 사활을 건다. 어린 학생들에게 경쟁을 부추기며, 서로를 밟고 올라가게 한다. 학교는 어린 학생들에게 어른들이 말하는 이상향(우상)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그 우상을 위해 어른들이 주는대로 따라가게 만들고 있다.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부조리한 문제를 마주했을 때, 과연 대처가 가능할까? 비판적인 사고는 커녕 문제의식 조차 가지지 못할 것이며, 그저 앞 사람 의견에 동조하는 삶을 살거나, 방관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미래가 되면, 차라리 이정도면 그나마 제대로 된 ‘어른’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왜? 이미 우리는 학교교육의 실패를 목도했기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청소년 범죄들을 비롯하여, 나이로는 이제 갓 성인이 된 미성숙한 어른의 범죄가 매일 연이어 뉴스에 보도되고 있지 않은가.



학교는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소양과 교양을 가르쳐야 한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삶의 나침반 찾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는 오로지 우상을 추구하는 교육에 매몰되어 버렸다.



인류를 야만에서 벗어나게 해준 ‘협력’은 서로에게 약간의 희생이 요구될지라도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큰 발전을 이루어낸다는 ‘공통의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p 108



그러한 ‘공통의 인식’은 미국의 도덕철학자 샘 해리스의 말대로 핵확산, 집단학살, 에너지 안보, 기후변화, 빈곤, 그리고 실패하는 학교 등의 근본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면 자신만의 도덕적 기준을 내세우며 독단의 함정에 빠지면 모든 것이 낭비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은 문란한 성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오히려 동성애자를 비정상인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논쟁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도그마에 빠진 자의 시간 낭비입니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의 말대로 추상적인 선을 실현하려고 하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p 111



우리가 직면한 대다수의 사회문제는 거대한 악, 즉 빌런에 의해 발생되는게 아니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무관심, 방관 속에서 생겨난다. 내 자유가 중요하다면, 마찬가지로 타인의 자유도 중요하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라는데 앞장서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인식’하고 있느냐, 아니냐. 거기서부터 시작이지 않을까?



그래서다. 20대가 쓴 이 사회 인문학책을, 저자와 동년배인 20대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기본적인 교양, 소양교육이 사라진 학교에서 교육받은 20대들에게 말이다. 이미 앞서 있은 어른들보다도, 훨씬 더 나은 어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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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범접할래야 범접하기 어려운 문화콘텐츠다. 한창 뮤덕시절에 오페라를 봐볼까? 싶던 시기도 있었지만 일단 티켓값이 뮤지컬보다 높았다. 거기다 대체로 외국어로 진행되는 특성으로 인해 도전할 의욕조차 팍(!) 꺾여버렸더랬다. 그렇다고 오페라를 아예 모르느냐? 한번도 본적이 없느냐? 라고 하면 대답은 NO다. 지자체에서 어린이 대상(ㅋㅋㅋ)으로 하는 오페라 <마술피리>나 <피가로의 결혼>을 본 적이 있다. 제목은 기억이 안나지만 간혹 TV에서 오페라를 중계해주는 것도 본적이 있다. 또 어떤 작품은 오페라를 본적은 없지만, 책으로 읽어서 그 내용을 아는 경우도 왕왕 있고. 그래도 오페라를 조금이나마 보긴 봤다고, 오늘 리뷰하는 에세이 「방구석 오페라」에 수록된 25편의 명작 중에서 일부 아는 작품들이라 꽤나 반가웠다.


저자는 전작 에세이 「방구석 뮤지컬」처럼, 각 챕터마다 작품의 줄거리 및 가사를 수록하는 것은 물론이고, QR코드를 삽입하여 대표곡을 들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얼마나 친절한지! 특히 오페라 작품의 줄거리와 가사, 작품 해석은 진짜 친절에 친절에 친절에 친절을 곱한 친절곱빼기다. 왜? 솔직히 오페라는 외국어(ㅠㅠ)로 진행되다보니 배경지식없이 보고 있으면, 당최 이게 무슨 내용인지. 걍 외국어로 된 성악(또는 가곡) 듣는 기분이다. 하지만 줄거리와 가사를 알고 있고, 심지어 해당 장면에 대한 해석까지 알고 있다면? 어떤 장면을 보든 문제없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진짜 이렇게 오페라를 해설해주는 에세이 라니! 정말 추천 오백개!

그도 그런것이...어린이 대상 오페라나 한국말(ㅋㅋㅋ)로 진행하지, 일반 성인들이 돈 내고 관극하는 오페라는 후후후. 듣는 내 꼬부랑글씨들이 내 귀로 미친듯이 침투하지 않을까? 물론 성인 상대 오페라를 직접 본적은 없으니, 확실하지는 않다. 하하하

이 에세이 서두에는 오페라 전문용어 사전이 실려있다. 오페라 초심자들에겐 정말 중요한 것! 오페라에 입문할 생각이라면, 이 용어들을 익혀놔야 좋지 않을까 싶다.


#방구석오페라 전문용어 사전

  1. 서곡(Overture): 극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곡으로, 오페라가 시작되기 전에 연주

  2. 전주곡(Prelude): 서곡보다 작은 규모로, 음악 전에 나오는 자유로운 형식의 음악

  3. 합창(chous): 그룹으로 구성된 가수들이 부르는 곡. 대규모 무대에서 배경 음악이나 대사를 강화하는 데 사용

  4. 레치타티보(Recitative): 대사를 가끼운 멜로디에 맞춰 말하거나 노래하는 스타일. 주로 대화를 전달하고 흐름을 유지하는 데 사용

  5. 아리아(Aria): 주인공 또는 주요 등장인물이 자주 부르는 솔로곡. 주로 주제나 감정을 강조하고, 가수의 기량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

  6. 군무(Group dance): 오페라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무용 시퀀스를 가리키는 용어로 여러 명의 무용수가 함께 춤을 추는 부분을 의미

  7. 음악(Orchestra): 오케스트라로 연주 된 음악

  8. 간주곡(ntermezzo): 두 개의 악장 사이에 삽입되는 짧은 악곡. 관객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함

  9. 무대미술(Siage ar): 무대 디자인과 조형의 총체적인 개념으로 공연의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하는 요소들을 포함

  10. 리브레토(bretto): 극적인 음악작품에 쓰이는 텍스트로, 오페라의 대본

  11. 듀엣(Duet): 두 명의 가수가 함께 부르는 곡. 주인공들이 서로 대화하거나 대립하는 상황에서 사용

  12. 앙상블(Ensemble): 두 명 이상의 가수가 함께 부르는 곡. 대규모 장면에서 캐릭터들이 함께 노래하거나 대화하는 경우에 사용

  13. 클라이막스(cfrax): 작품의 긴장과 감정의 정점을 나타내는 부분. 작품의 결정적인 상황에서 나타나 전환점을 표현

  14. 결말(Fnale): 주로 작품의 이야기와 갈등이 해소되고, 등장인물의 최종 운명이 결정되는 부분

  15. 레치타티보 세코(Peciftative secco): 피아노나 기타와 같은 간단한 반주와 함께 말하는 스타일의 레치타티보

  16. 아페투오소(Affetuoso): 악보에서 감정을 지니고 연주하라는 말로, 감정적이고 열정적인 표현을 위해 주로 사용

  17. 오프스테이지 트럼펫(offstage trumpet): 오페라에서 특정한 효과를 위해 트럼펫 연주자가 무대 위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지 않고, 무대 뒤에서 따로 연주하는 것

  18.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 18세기 나폴리파 오페라에서 성립된 것으로, 그리스 신화나 고대의 영웅담을 제재로 한 엄숙하고 비극적인 이탈리아 오페라

  19. 오페라 부파(Opera buffa): 18세기 발생한 희극적 오페라로, 가벼운 내용의 대중적인 오페라

  20. 리얼리즘(Reallom): 리얼리즘 오페라는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사건을 통해 인간의 추악함과 잔학성. 연약함 등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식

  21. 프리마 돈나(Pima donna): 이탈리아어로 오페라의 주역 여가수

  22. 프리모 우오모(Primo uomo): 이탈리아어로 오페라의 주역 남가수

  23. 베이스(Bass): 가장 낮은 음역대를 맡는 남성

  24. 테너(Tenor): 라틴어에서 유래한 용어로, 음악에서 최고 음역대의 남성

  25. 바리톤(Barttone): 테너와 베이스의 중간 목소리로 베이스 음색의 깊이와 테너에서의 화려함을 함께 지님

  26. 알토(Ao): 악기의 4도를 전후하여 소프라노 악기보다 낮거나 테너 악기보다는 높은 음을 의미

  27. 콜로라투라 소프라노(Coloratura soprano): 화려한 음악을 노래하는 것을 의미. 구슬을 굴리는 듯 화려한 소리로 노래 하는 선율

  28. 메조소프라노(Mez20 Soprano): 여성의 가장 높은 음역인 소프라노와 가장 낮은 음역인 콘트랄토 사이의 음역

  29. 아리아 디 소르베토(Aria di sorbetto): 중요하지 않은 아리아라는 의미로 셔벗이나 젤라토를 먹으며 관람할 수 있는 아리아

  30. 유도동기(Leitmotiv): 무대극 관련한 용어로, 인물과 상황 등 반복되는 짧은 주제나 동기를 묘사할 때 공통으로 사용되는 주제 선율

  31. 라르고(Largo): 음악에서의 빠르기를 지시하는 말로, 아주 느린 속도

  32. 지오코소(GIO00so): 악보 내에서 익살스럽고 활발한 연주


▶ 요정의 여왕

<요정의 여왕>은 당시의 다른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오페라와 발레의 합작품입니다. 이를 ‘세미오페라’라고 부릅니다. 반면, 음악적 요소는 초자연적 등장인물들에 맞추어 표현하였습니다. 작곡가는 영국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헨리 퍼넬로 위대한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했습니다. p 084

독창적인 음악 스타일과 달리 줄거리는 벤자민 브리튼의 《한여름 밤의 꿈》을 원작으로 합니다. 그리고 오페라 <요정의 여왕>은 셰익스피어의 드라마에 그리스 신화를 가미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결합으로 극 중에는 수많은 신과 정령이 등장하며, 그들을 부각하기 위한 화려한 무대장치가 다수 사용됩니다. 그래서인이 이 오페라는 제작비가 많이 드는 작품으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p 85

오페라 <요정의 여왕>. 분명 본적이 없는데, 나 내용을 알고있네? 혹시나해서 큐알코드 찍고 영상(2시간짜리 두둥!!! 개이득ㅋㅋ)봤는데, 흐. 그저 내용만 알고 있을 뿐 오페라는 초면ㅋㅋㅋㅋ. 육아로 인해 영상을 풀로 보지는 못했지만, 육퇴하고 다시 제대로 달려야지! 무려 2시간 짜리 오페라 영상, 이런건 그냥 놓치면 안되지. 엣헴. 거기다 판타지 배경 오페라는 참을 수 없으니까!

​​

▶ 마술피리

이 작품의 구조는 현대의 영화나 TV 드라마와 비슷합니다. 아름답고 품위 있고 진지한 주인공 커플의 러브스토리 곁에서 우스꽝스러운 조연 커플이 개그를 펼치는 것이 기본 형식입니다. 거기에 여자 주인공의 괴팍하고 강력한 어머니가 등장해 남자 주인공 타미노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자라스트로와 대결을 벌이고, 천사같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도와줍니다. p 160

작곡가인 모차르트에게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당시 모차르트의 예약 연주회가 사라지면서 수입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수익을 내기 위해 여러 일을 하던 모차르트는 <마술피리>와 다른 두 작품의 곡을 함께 썼는데, 이 때 건강을 크게 해치면서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환상과 비참한 현실이 교차하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곡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탄생합니다. 해당 아리아의 유명세로, <마술피리>는 오페라 입문자에게 추천하는 작품으로 자주 선정됩니다. p 161

흐흐흐. 내가 봤던 오페라다! 물론 어린이 대상으로 한 미니한 오페라였지만. 근데 뭔가 이상하다? 내 기억속의 <마술피리> 명곡(ㅋㅋㅋ)은 ‘밤의여왕 아리아’ 보다는 ‘파파파파파파게노♬’ 인데?! 개인적으로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인 ‘밤의 여왕 아리아’ 보다는, 언제 들어도 신명나는 파파파파게노가 더 즐겁고 좋은듯!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 ㅋㅋㅋㅋ

하지만 이 책 큐알코드로 볼 수 있는 영상은 <마술피리> 대표곡 ‘밤의 여왕 아리아’라는 것! 즐거움이 필요할 땐, 파파파파게노 음악을 꼭 들어보길!

▶ 투란도트

<투란도트>는 중국의 공주 이야기를 소재로 한 3막 구성의 오페라입니다. 푸치니는 이 작품에서 중국 멜로디를 일곱 번 사용했고, 중국제 오르골로 들었던 ‘황제찬가’의 멜로디를 작품 속에 유용하게 녹여냈습니다. 5음계와 함께 종, 실로폰 등의 악기를 사용해 중국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점은 작품의 높은 인기에 한 몫 했습니다. p 276

푸치니는 <투란도트>의 결말을 짓지 못했습니다. “이제까지의 내 오페라들은 모두 버려도 좋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했던 작품이었지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작품은 미완성으로 남을 운명이었습니다. 그의 제자 알파노는 스승을 위해 <투란도트>를 완성하여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까지도 참신한 화음, 관악기와 타악기의 효과적인 활용 등으로 독특한 색체를 가진 오페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p 277

아주 완벽하게 책으로 먼저 접했던 <투란도트>다. 난 이게 오페라가 있는지도 몰랐네? 아니, 오페라가 먼저였다는 사실에 놀랐네? 심지어 현재 오페라 공연중이고, 티켓값이 의외로 현실적이라 더 놀랐네????????? 육아만 아니면 한번 훅! 하고 보러 가고 싶은 정도인데T_T.

하지만ㅋㅋㅋㅋ 나에겐 큐알코드가 있다! 투란도트편 큐알코드를 찍어보니, 이번에도 2시간짜리 영상! 진짜 개이득. 이것도 육퇴하고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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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10-24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투란도트>는 애초에 이탈리아 극작가 카를로 고치(고찌)가 쓴 작품으로 이를 프리드리히 실러가 리메이크한 것을 다시 푸치니가 자신의 리브레토 팀을 동원해 고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페루치오 부조니도 오페라 <투란도트>를 작곡했는데, 부조니의 것이 원작과 더욱 가깝다고 합니다. 두 오페라 간에 특히 투란도트가 칼라프에게 낸 수수께끼에 큰 차이가 있더라고요. 부조니의 수수께끼가 훨씬 고급스럽기도 합니다. 제 취향으로 관현악을 포함해서 부조니를 좀 더 좋아하고요.
글 잘 읽었습니다.

호시우행 2023-10-25 0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독하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한식 인문학 - 음식 다양성의 한식, 과학으로 노래하다
권대영 지음 / 헬스레터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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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서 전래되었다.’ 라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다. 심지어 우리 신랑도 이 사실을 정설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깊게 생각해보면 ‘이게 정말이야? 아닌거 같은데?’ 싶을 정도로 고추 임진왜란 전래설에는 여러 모순이 보인다. 


예컨데 우리나라에는 고추를 메인으로 한 음식들이 있는 반면, 일본에는 고추를 메인으로 한 음식이 없다. 무엇보다 고추가 임진왜란 당시 전래되었다는 것 치고는, 한반도에서 대중화된 시기가 너무 빠르다. 임진왜란 이후 고추가 전래되서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서 발효식품인 고추장이 되고, 갈아서 사용하는 고추가루가 되고, 고추가루를 이용해 만든 발효식품 김치가 된다는 건 불가능하다. 외국에서 들어온 식자재가 그 나라의 환경에 맞춰 적응하고, 토착화되고, 전국적으로 퍼지고, 그로 인한 음식이 만들어지는데는 지난한 시간이 걸리니까. 그걸 백년도 안되서 해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하지만 소위 지식인,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어떠한 시점을 기준으로 고추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서 전래되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고추를 이용하여 만든 수많은 한식들 역사까지 축소시켰다. 고추를 즐겨먹는 한국인이 이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한식을 깎아내리려는 중국과 일본에선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한식 역사 왜곡에 참전한다. 중국은 파오차이, 일본은 기무치 같은 배추 짱아찌들을 들먹이며, 자신들이 김치 원조라고 나서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볼 때 ‘고추가 일본으로부터 전래되었다’는 설에는 의문점들이 많았다. 일본에는 고추로 만든 음식이 없는데 임진왜란 때 무슨 이유로 우리나라에 갖고 들어왔을까? 유럽에서 중남미 고추인 아히가 들어왔다면, 그 당시 함께 들어왔다는 토마토, 타바코처럼 적어도 ‘아히’ 아니면 ‘피망’같은 유럽식 이름의 흔적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순 우리말 ‘고추’만 남아있고 심지어 ‘당초’, ‘번초’, ‘만초’ 등 순전히 중국식 이름이 붙어졌을까? 고추는 일본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도 없고, 따로 용도가 없을 때인데도 어떻게 전국으로 퍼졌을까? 어떻게 고추가 들어오자마자 김치와 고추장이 동시에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식품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가능한’ 가설, 즉 있을 수 없는 주장이다. 인문학자라도 조금만 더 세심하게 바라보면 합리적 의구심이 들었을 것이다. p 051


소위 지식인,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고추 임진왜란 전래설에서 발견된 모순을 검증하지 않았다. 그저 ‘관심’에 받는 것에 기뻐했다. 대중매체도 여기에 합류했다. 그 누구도 이의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 식품과학자가 나타났다. 바로 이 역사책의 저자다.


본투비 순수 자연과학자이자 식품과학자인 저자는 고추 임진왜란 전래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과학적으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검증해서 고추 임진왜란 전래설을 박살내는데 앞장섰다. 한국학 박사 출신인 배우자 도움을 받아 오롯이 1차 원문(고문서 등)을 기준으로 연구했고, 본인 전공인 자연과학을 십분 활용했다. 무엇보다 저자는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 출신이다. 태조 이성계도 그 맛에 반해 진상하라고 했다는 ‘순창 고추장’을 만드는 그 순창이다. 태조 이성계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도 한~~~~~참 전, 조선을 건국했던 사람이다.


결정적으로 1990년 일본을 방문하였을 당시, 일본 《식품원료학》이라는 책에서 ‘고추는 조선으로부터 가토 기요마사가 가지고 들어왔다’는 내용을 접하고 나서 고추의 일본 전래설에 문제가 있다는 과학적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고추의 전래에 대해 연구를 시작하였다. p 052


결정적으로 저자가 고추 임진왜란 전래설을 파헤치기 시작한 또 다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 고추가 전래된 시점을 확인하고 나서다. 우리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서 고추가 전래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일본으로 고추가 전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고추가 전래된 역사를 파헤치는 건 이 책의 백미다. 덧붙여 고추로 이용한 한식의 역사를 비롯하여, 과거 한자 사대주의자들로 인해 왜곡되어버린 한식의 역사도 알려준다. 순 우리말인 닭도리탕이 일본어 잔재라는 이상한 논리를 앞세우며, ‘닭볶음탕’이라고 창씨개명한건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음식 이름을 지을 때 음식의 주재료, 요리방법, 종류를 의미하는 말을 붙여서 이름을 지었다. 닭을 고아서 만든 탕은 ‘닭곰탕’, 김치를 넣어서 끓인 찌개는 ‘김치찌개’, 닭을 기름에 볶으면 ‘닭볶음’, 닭을 찌면 ‘닭찜’, 닭을 도리쳐서 만든 탕은 ‘닭도리탕’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놈의 한자 사대주의자들이 우리말 ‘도리치다’는 생각치 않고, 고스톱의 ‘고도리’만 생각하며 ‘닭도리탕’을 일본어 잔재라고 몰아세웠다. 그런 한자 사대주의자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도리치다’라는 말은 칼 등으로 돌려가며 거칠게 쳐내는 요리 방법이란 걸.


요즘은 한자 사대주의를 넘어 영어 사대주의가 기승이다. 해외에서 소개하는 한식 이름을 보면 물음표가 머릿속을 떠다닌다. 그냥 한식 명 그대로 영어로 쓰면 될껄, 굳이굳이 한식을 영어로 번역하는 정성을 들이니 외국인들이 ‘피쉬케이크’라는 단어를 보고 기겁을 하지. 심지어는 외국 요리 이름을 가져다 쓰는 경우도 있다. 김치를 소개할 때 중국 배추요리인 파오차이를 사용하기도, 일본 배추 요리인 기무치를 사용하기도 한다. 청국장은? 코리아 낫토라고 소개한다. 두부는? 일본 발음인 토후로 소개한다. 그저 웃을뿐!



고추 역사왜곡! 고추는 임진왜란 전래설

‘고추 일본 유래설’이 시작된 시기는 1980년대 들어서다. 한양대 이성우 교수가 1984년 《고추의 역사와 품질평가에 관한 연구》에서 ‘1492년 콜롬버스에 의해 고추가 서인도 제도에서 포르투갈로 들어갔다가 100년 동안 인도 등을 거쳐 일본을 통하여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위 ‘고추의 일본 도입설’을 주장하면서다. (…) 이러한 주장이 기존 관념을 깨는 현대의 학문으로 인식되어 국민적 반향을 일으킨 것인지는 모르겠다. 가장 의아스러운 점은 음식 역사나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 전문가들이 이런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왔다는 점이다. 자연과학자들도 이러한 주장에 대해 과학적으로 검증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방치한 셈이다. ‘고추 일본 도입설’은 여러 가지 반증의 문헌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자나 후학들을 통해 어떤 결정적인 근거도 확보되지 못한 채 철통같은 방어 논리로 이후 다른 문헌과 책을 통해, 반복 또는 확대 재생산 되었고 어느새 정설로 굳어져 버렸다. p 085



고추 임진왜란 전래설은 명문대 식품사학과 교수 논문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그 교수 역시 나름대로 검증과 연구를 했겠지만, 그 검증이 과학적인 검증으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게 아닐까. 더 아쉬운건 이 논문을 다시 연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가공 재생산하는 일부 지식인들과 전문가들이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그들로 인해 한식의 역사가 대폭 축소 및 왜곡되었으니까.


고추가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대표적인 근거로 드는 것이 이수광의 《지봉유설》이다. 


‘남만초에는 독이 있다. 일본에서 건너 온 것이라 그 이름을 왜개자라고 한다. 소주에 타서 팔기도 하는데 이것을 마시다 죽는 자가 다수 있었다.’


이 고서에 등장하는 남만초에 대한 설명이 바로 고추가 일본을 통해 건너 온 근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봉유설에 적힌 남만초는 말 그대로 남만초다. 품종학적으로 지금의 태국, 인도네시아 등 당시 중국에서 보면 남쪽 지방 오랑캐들이 먹었던 고추로, 우리 고추와는 종과 속이 완전히 다르다. 무엇보다 남만초가 언급된 글의 맥락을 살펴보자. 남만초를 술에 타 먹다가 죽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평소 술에 고추를 타 먹는 문화가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대로 해석하면 남만초가 얼마나 매운지, 독성이나 효능에 대해 잘 모르고 평소 우리 고추처럼 술에 타 먹듯이 했다가 사람이 죽었다는 내용이다. p 080


옛 문헌을 보면 조선시대 초기에 김종서가 북벌 당시 고뿔이 나거나 맹추위를 견뎌야 할 때면 우리 고추를 술에 타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으로 보면 우리 고추와 다른 남만초를 우리 고추처럼 술에 타 먹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p 122



고추 임진왜란 전래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내세운 조선시대 저서 《지봉유설》, 《오주연문장전산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근거는 파괴되었다. 앞뒤 맥락없이 근거라고 내세웠다가, 역풍을 맞게된거다. 심지어 내용을 찬찬히 살펴본 결과 우리나라에도 이미 고추가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해주는 증거가 되었다. 



고추가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문헌은 전혀 없다. 이들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들어 일본 전래설을 뒷받침하려고 주장했으나 오히려 그 문헌에 우리 고추가 있었다는 문구가 발견되어 역풍을 맞았다.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보면 ‘고추의 종류인 번초 또는 남만초가 들어왔으며, 담배, 토마토도 임진왜란 전후에 들어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 눈 여겨 볼 것은 이 책에서 사람이 죽을 정도로 매운 번초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바로 뒤에 ‘아초’라고 하여 우리나라 고추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명한 고추장이라고 한다. 순창군 천안군에 나오는데, 한 나라에 이름이 났다. - 중략 - 요사이 ‘우리 고추’는 품질이 좋아 왜관에 팔면 심히 이익이 난다.’ p 082


고추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땅에 있었다.


임진왜란 이전 시기 많은 문헌에 이미 고추장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식료찬요(1460년)》, 《향약집성방(1433년)》, 《의방유취(1477년)》 등에서 다양하게 발견되는데, 그 내용을 보면 ‘비위나 위가 약해 몸이 허해질 때, 닭이나 꿩을 도리쳐서 고추장을 넣고 끓여 먹거나 찍어 먹으면 밥맛이나 얼굴색이 좋아진다’고 하여 주로 식치의 개념으로 많이 쓰인 음식으로 소개되었다. p 091


고추가 이미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있었다는 기록은 꽤 많이 발견된다. 적어도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온건 절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계속 재배해왔던 우리의 두가지 전통 고추를 유전자 분석한 결과, 이미 47만 년 전에 분화된 두 품종으로 밝혀졌다. 하나는 김치와 고추장을 담그는 데 쓰이는 우리 고추이고, 다른 하나는 약간 매운 고추로 국과 탕에 맛을 내는 고추, 그러니까 청양고추의 원조로 보면 된다. 지금도 일부 지방에는 좀 매운 고추를 ‘땡초’라고 이야기 한다. 많은 사람들이 청양고추가 최근에 남만초인 태국 고추와 우리 고추의 교잡종이라고 생각하는데, 식물유전학자로 세계적인 전문가인 최도일 교수는 청양고추의 뿌리는 우리나라 약간 매운 고추를 근간으로 종자 개령한 것이라고 한다. p 103



심지어 고추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보니, 이 땅에 이미 우리나라 고추가 자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콜롬버스가 들여온 고추와 우리 고추는 품종이 다르다. 완전 다르다. 동남아 고추랑 우리나라 고추랑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나? 있다면 그사람 시각과 미각, 후각에 문제가 있는 듯.


아주 박박 우겨서 콜롬버스가 가지고 온 고추가 포르투갈을 지나 일본을 거쳐 조선으로 들어왔다고 치자. 당시 콜롬버스 고추가 우리가 먹는 고추로, 진화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알고는 있는지 묻고 싶다. 100~200년이라는 시간으로는 불가능하다. 본디 생물이란 n만년, n천년이라는 오랜 기간, 아주 천천히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하며 진화한다. 본투비 문과인 나도 이건 아는데,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은 왜 안해봤나몰라.


또 다른 한식 역사 왜곡: 김치, 고추장, 비빔밥, 떡볶이

고추의 역사를 왜곡했으니, 그에 따른 부차적인 한식 역사 왜곡도 당연이 줄을 이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중국과 일본이 김치를 자기네거라고 우기지!


이 잘못된 설을 무리하게 합리화하고 꿰맞추려 하다 보니 임진왜란 이전 옛 문헌에 나오는 모든 한차 초(椒)를 일률적으로 후추, 산초 등으로 번역하고, 임진왜란 전의 문헌에 나오는 김치는 모두 백김치라 주장하고, ‘순창 고추장’도 흑색의 후추고추장이라는 주장까지 하게 된다. p 085

김치를 장아찌와 짠지의 후손으로 폄하나는 이들도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떤 학자는 김치는 원래 배추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로 만들었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우리 김치에 고추가 들어가지 않은 김치였다는 잘못된 논리에 빠져, 근거 없이 김치의 원조가 일본의 츠케모노, 중국의 파오차이라고 한다 보니, 김치의 원조가 장아찌와 짠지라는 말을 무리하게 끌어들인 것에 불과하다. p 160


김치와 고추장은 엄연한 과학이다. 발효과학이라고 들어는 봤나? 그것도 아주 고급 발효과학이다. 


인류는 발효기술을 터득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음식을 오래 보관하면 기본적으로 음식은 부패한다. 부패한 음식을 먹으면 복통을 일으키거나, 심하면 사망한다. 그렇게 몇 천년 간 인류는 부패한 음식을 먹고 아프거나 죽었다. 하지만 어떤 부패한 음식은 오히려 맛이 좋고 건강에도 좋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오랜 기간에 걸친 깨달음으로 먹어도 되는 부패한 음식을 가려낼 수 있게되었고, 심지어 손수 부패한 음식을 만들게 되었을 것이다. 그게 ‘발효’라는 과학적인 기술이란건 나중에야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겨난게 우리나라에서는 김치나 고추장, 된장, 삭힌 홍어 등이다.


고급 발효과학이 들어간 김치는 일본 장아찌나 중국 파오차이와는 그 결이 다르다. 아주 다르다. 걔들은 발효식품이 아니라, 절임식품이다. 장아찌와 짠지 같은 절임식품은 미생물의 성장과 부패를 막기 위해 수분활성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소금을 쓰거나, 식초를 사용한다. 즉 부패를 막아야 먹을 수 있고, 부패하면 못 먹는다. 미생물의 성장을 도와 발효시키는 발효식품과는 그 원리가 다르다. 태생부터 완전 다르다.


아, 이 책에 따르면 또 다른 소위 지식인들이 주장하길 우리나라엔 결구배추가 없어서, 최초 김치는 무김치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먹는 결구배추는 호배추(중국배추)라고 해서, 결구배추는 중국에서 들어온지 1백여년 밖에 안되었다는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니까 최초 한반도에는 결구배추가 없었고, 기록에 나오는 모든 김치는 무김치라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 저자는 또 한번 강력한 역공을 펼쳤다. 《고려사절요》, 《삼국사기》에 이미 찢어먹는 통배추 김치 비유 기록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배추와 배추김치를 나타내는 표현은 우리의 오래된 고문헌에 승(㮱), 추승, 승저, 승제, 침승제 등으로 다양하게 나온다. 조선 전기부터 중기까지 남아있는 기록물만해도 서거정의 《사가집(1488년)》, 김창업 《연행일기(1712년)》 등에 배추김치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이 나온다. 그런데도 고추가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왔다고? 고추가 없는 배추김치는 있을 수 없으니, 임진왜란 이전에는 무로 만든 김치만 먹었다고? 아유, ㅈ랄도 이정도면 정성이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호배추 말고도, 이미 옛날부터 우리나라 전통배추가 있었다. 조금은 작지만, 알찬 조선배추가.


고추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도입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비빔밥이란 기록이 1890년경 쓰인 《시의전서》에 처음 등장한다며, 그 이전 비빔밥의 기록이나 역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서 그 역사를 축소한다. 고추장의 역사를 짧게 할 수 밖에 없으니 고추장을 이용한 비빔밥의 역사도 짧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당연한 논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p 113


일반적으로 음식이 옛 문헌에 기록으로 등장한다면, 그로부터 수 백 년전, 수천 년 전에 이미 백성들이 먹고 있던 음식일 가능성이 높다. 《시의전서》에 ‘비빔밥’이 처음 등장했다고 하더라도 그 역사를 100년으로 확언할 수는 없다. 당연히 비빔밥은 이미 16세기 말엽 박동량의 《기재잡기》에 ‘혼돈반’으로, 1724년 권상일이 쓴 《청대일기》에 ‘골동반’으로 한자로 쓴 명칭이 수록되어 있다. 《명물기략》에서는 소리를 빌려와 ‘부비반’으로 표기하였다. 이는 《시의전서》보다 300여 년 앞선 문헌 기록이다. 비빔밥의 한글 명칭도 1819년 《몽유편》에 ‘브뷔음’으로 한글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시의전서》보다 100여 년 전에 비빔밥을 한글로 기록하였음을 알 수 있다. p 114



고추 전래시기를 축소하니 각종 한식의 역사가 축소되고 왜곡되었다. 비빔밥 역사까지 왜곡되었을 줄 누가 알았나. 뜬금없이 왠 비빔밥이냐고 할 수 있다. 비빔밥을 잘 생각해보자. 비빔밥의 백미는 고추장이다!


간장으로 만든 떡볶이는 궁중떡볶이고 고추장으로 만든 떡볶이는 일반 떡볶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고추로 만든 음식은 서민음식이고, 고추장을 넣지 않은 음식은 궁중 음식이라는 것도 잘못됐다. 꼭 집어서 말하자면, 고추나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궁중 음식’이 아니라 ‘제사 음식’이었다. (…) 일반사람이나 군왕이 평소에 먹는 떡볶이는 오늘날의 떡볶이와 같이 고추장 등으로 양념한 떡볶이였다. 《승정원일기》 등에 떡볶이가 나오는 걸로 보아 떡복이가 왕이 좋아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대부가의 남인 이익의 문집 《성호집》에도 떡볶이 기록이 있어, 사대부가에서도 떡볶이는 즐겨 먹었던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식의식감》이나 《규곤요람》 등을 보면 서민들은 고추장을 중심으로 양념을 한 떡볶이를 즐겨 먹었다. 궁중이나 사대부가들은 전복, 해삼, 쇠고기, 돼지고기 등 서민들이 구하기 어려운 귀한 식재료를 사용한 떡볶이를 즐겨 먹었다. p 118


이제는 떡볶이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빨간 고추장 떡볶이도 옛날부터 즐겨 먹었다는거. 이 내용이 생소한 당신, 당신도 한식 역사 왜곡에 세뇌된 사람이다. 이 책을 읽기전 까지는 나역시 그랬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시중에 파는 떡볶이가 대중화 된건 1960년대 이후다. 밀가루 수입과 기계를 이용한 밀떡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다.



고추 일본 전래설, 부침개와 주파수의 상관관계 외에도 일본 말이라고는 고스톱 판의 ‘고도리’ 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닭도리탕이 일본 말이다’라고 허무맹랑한 주장을 펼치는가 하면, 여기에 몇몇 언어학자까지 가세해 어느순간 ‘닭도리탕’이 ‘닭볶음탕’으로 뒤바끼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의 그릇된 연구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가는 잘못된 식품 정보에 의해 우리 음식 역사가 왜곡되고 때로는 누군가 선의의 피해를 겪기도 한다. p 061



한식은 자랑스런 우리 음식이다. 빛내지는 못할망정, 제발 까내리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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