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이런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지? - 웨이보 인싸 @하오선생의 마음치유 트윗 32
안정병원 하오선생 지음, 김소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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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기 전 부터 그 내용이 정말 궁금했던 책이다. 책의 저자가 다름 아닌 웨이보 슈퍼스타 하오선생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직업은 무려 정신과 의사. 한국에 박막례 할머니가 있다면 중국에는 하오선생이 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기에 이 책이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표지가 너무 귀여웠다! 유쾌하게 그려진 하오박사도 그렇지만, 창 밖 유령 두 마리(?)가 너무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이 유령들은... 목차에서 재등장 했다.

 

두 차례 등장한 유령을 보자니 왠지 이 유령의 모습은 하오선생이 만나 온 환자들을 빗대어 그린게 아닐까 싶었다. 본인이 만든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환자들, 타인이 말하는 정상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있는 그들 말이다. 하지만 그들도 분명 본인이 만든 세상 속이 아닌, 타인이 말하는 정상의 범주 안에 있고 싶은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닌, 한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거니까. 그래서 정상이라는 집단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현재 모습으로는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그런 모습을 표현한 게 바로 유령이 아니었을까? 하오선생의 말을 잘 듣고 증상이 좋아졌다면, 저 유령을 벗어던지고 병원 밖으로 나갔겠지만 아니라면 계속 유령을 쓰고 살아야 할 환자들 말이다.

 

이 책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그렇다고 가벼운 내용은 아니다. 이 책의 내용은 하오선생이 안정병원 정신과에서 10년간 근무하며 경험한 이야기다. 즉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막연하게 정신질환 환자들에 대해서 선입관 내지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각종 TV매체나 언론 등에서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에 대해 항시 부정적인 이야기만 보도하지않나. 생각해보면 하필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을 뿐인데, 언론에서는 모든 정신질환 환자가 범인이 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보도를 참 많이도 했다. 나 역시 그런 언론보도에 세뇌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하오선생의 이야기를 읽으니 이런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내가 그렇게나 싫어하던 선입관’, ‘편견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 이 책은 좁디 좁은 내 시각을 바로 잡는 길라잡이가 되겠구나’.

 

 

그 길고도 조용한 시간을 함께 한 끝에 드디어 환자가 입을 열었다는 군요.“당신도 버섯인가요?”

환자의 물음에 의사는 대답을 했죠. “, 저도 버섯이에요.” 그러고는 일어서서 한마디 더 건넸답니다. “전 이만 가야겠습니다.”

그러자 환자가 물었습니다. “당신도 버섯이라면서 어떻게 걸을 수가 있죠?”

버섯도 걸을 수 있어요.”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의사가 약을 꺼내 들었답니다. “전 약을 먹어야겠습니다.” “당신은 버섯이라면서 왜 약을 먹는거죠?”

버섯도 약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자 환자는 의사를 따라 약을 먹었습니다. (중략)

몇 달 후, 병원 치료에 내내 응하지 않던 버섯은 마침내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할 수 있었답니다. _P 008 서문

 

네 말이 맞아. 의사는 병을 치료해주는 사람이지. 근데 치료는 약으로만 하는 게 아니야, 마음을 써야지. 베푼 만큼 대가가 돌아오는 법, 초조해지지 마. 익숙해질꺼니까.” _P 018 <기억도둑 >

 

책 초반에 나온 하오선생의 한국어판 서문과 기억도둑 이야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상인의 시각에서 정신질환자를 대했기 때문에 TV나 언론보도에서 말하는 부정적인 상황이 나타난 건 아닐까. 모든 병은 그 종류에 따라 치료방법이 천차만별이다. 정신질환 역시 병이기에 그에 맞는 치료방법이 분명히 있다. 하오선생은 그 방법을 꽤뚫고 있었던 거다. 그들의 시각 내지는 관점에서 공감해주며 치료를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정신질환이라는 병을 치료하는 데 제일 최선의 방법이 아닐었을까? 다만 정상이라고 하는 우리들은 그들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는 너무 다른 세상이기에, 맞춰줄수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정상인이 생각하는대로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본 것이다. 이런 색안경은 그들이 병을 치료하는 데 더욱 거부감을 느끼게 하게 하여, 우리가 흔히 접하는 그런 사회문제로 대두된게 아닐까? (물론 모든 정신질환자를 이렇게 일반화하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내 생각엔 네가 우울한 감정과 우울증을 헷갈렸던 것 같다. 사업으로 충격을 받았을 떄, 초창기에 나타났던 건 부정적인 감정이 맞았을 거야. 네 생각대로 기분이 안 좋았던 것뿐이었겠지. 사람은 누구나 매일 부정적인 감정을 겪는데, 그중 일부는 약해지기도 하고, 또 일부는 없어지기도 해. 그런데 만약 이 감정이 제때에 씻겨 내려가지 않고 조금씩 쌓이게 되면,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면서 우울한 감정이 병이 되어버리고 결국엔 우울증이 되는거거든” _P 167 <우울한 새집2>

 

우을증은 단순히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병이다.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지면서 뇌의 화학 구조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자에게 좋게 생각하라든가 기분 풀어라등의 말은 삼가야 한다. 그들은 즐거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를 이미 잃은 상태다.” _P 170 <우울한 새집2>

 

 

우울한 새집 에피소드는 여러모로 슬펐다. 얼마 전 한창 아름다울 시기를 보내야 할 가수 한 명이 스스로 명을 달리하였기에, 그 장면이 오버랩되어 더욱 공감이 되었나보다. 보통 우울증은 전조증상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주변인들은 이런 증상을 마주했을 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딴에는 위로한답시고 좋은 생각을 해보라, 너는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둥 이런 이야기를 꺼내고 만다. 하지만 위에서 하오선생이 이야기 했듯 우울증은 감정이 아니라 신경전달 물질의 균형이 깨져버린 이다. 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섣불리 꺼낸다면 그야말로 환자들을 세상 밖으로 밀어내 버리는 꼴이 되버린다. 그저 그들에게 우울증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치료를 받아야 할 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할 수 있게 하고, 그래서 그들이 치료를 받을 마음을 갖게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는 신이 한 입 베어 문 사과처럼 누구나 결점을 갖고 있다.

만약 그 결점이 비교적 크다면, 그것은 신이 특히나 그 사람의 향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_P 217 <별에서 온 아이>

 

 

 

아참, 책을 읽는 내내 내용과는 별개로, 이 책이 중국어 원문이 있는 책이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다. 내 개인적으로는 일본어 원문이 있는 책을 자주 읽는데, 읽으면서 특유의 번역투가 거슬린 적이 꽤 많았다. 뭐랄까, 번역가들이 일본어 실력은 정말 뛰어난 듯 싶은데, 한국어 실력(어휘나 문맥 등..)은 조금 뒤쳐지는 느낌??그 느낌이 너무 거슬렸다. 차라리 원서를 보자 싶어서 일본어 원문이 있는 책은 왠만하면 원서를 읽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꼭 처음부터 이 글이 한글로 쓰여 있었던 것 처럼 입에 착착 감겼다.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해 김소희님은 본인이 잘하는 중국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나, 이런 것들을 하나부터 열 까지 얼마나 신경을 썼을지 생각하니 이 책에 정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었다.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고, 강력한 개그드립으로 웃음 없이는 볼 수 없고, 소통이 무엇인지 공감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하오선생의 이야기. 지금을 사는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은 사회를 바라보던 좁은 시야를 한층 더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신이 한 입 베어 문 사과처럼 누구나 결점을 갖고 있다.

만약 그 결점이 비교적 크다면, 그것은 신이 특히나 그 사람의 향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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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내 곁에 있어줘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전승환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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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쯤 읽어보고 싶었던 카카오프렌즈 에세이. , 정확히는 카카오 프렌트 각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에세이다. 이런 책이 책장에 꽂혀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직접 구입해서 읽기엔 조금 고민이 되는 부분도 있긴 했다. 그런 와중에 독서통신이라는 회사 찬스로 겟 ! 이럴 때는 우리 회사가 정말 좋다....ㅋㅋㅋㅋㅋ 피치 편을 선택할까 하다가, 요새는 라이언에 더 마음이 가서 바로 라이언, 내 곁에 있어줘를 선택!

(근데 얼마전에 무지편이 새로 나왔더라......세상에.. 이왕 이렇게 된 거 피치, 무지편 각각 사서 시리즈로 모을까 고민...)

 


목차를 열어보니, 짧은 글로 이루어진 에세이가 모여있는 에세이집이었다. 대부분은 한 페이지에서 반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고, 간혹 두 페이지 분량을 차지하는 글도 있다. 하지만 짧다고 얕보면 안되는 글이다. 짧지만 글 한 문장, 한 문장이 나를 혹은 읽는이를 위로해주는 손길이었다. 또 하나, 이 책에서 만나는 수 많은 라이언은 힘든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해 태어난 아이였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별일 없었다고?

나름 괜찮았다고?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물어봐주는 것,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질문일 지도 모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치유다. 항상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 세상 어느 쪽에서는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고, 세상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이런 사소한 말 한 마디는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며, 나 혼자 지고 있는 줄 알았던 무거운 짐이 알고보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저 옆 사람의 상황을 물어봐주고, 나도 당신의 기분을 나도 느끼고 있다고 공감해주는 것.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사소한 한 마디가 필요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

내가 옆에서 들어줄게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바로

들어주는 거야!

 

경청(傾聽):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다.’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것 중 하나인 듯 하다. 어려서부터 말하는 것 보다는 보고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냥 말하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서 보고 듣는 게 쉬웠다.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참 좋았고,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이야기 하면 역시나 그냥 듣는 게 좋았다. 이런 내 성향은 내 취향이나 각종 취미생활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건 안 비밀! 지금도 누군가를 만나면 난 말을 하기 보다는 듣는 쪽이다.

 

아 이게 또 썩 좋은 성향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최근 몇 년간 강하게 들었다. 난 그저 듣는 것을 잘해서 누구를 만나도 주로 듣는편이야!’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참, 의도하지 않게 낯을 가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가끔은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기도 해야하는데 하.... 아니면 난 들어주는 걸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말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던 걸까? 아니면 정말 난 낯을 가리는 사람이었나.........급 자기반성의 시간....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정말 수 많은 스트레스에 갖혀 사는 게 일상이다. 근데 이게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려, 스트레스로 인해 내 삶이 좀 먹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빵! 그렇게 쌓이고 쌓이다 어느 순간에 터져버리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과와 마주하는 슬픈 결말.

 

가끔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것. 그 어떤 가치도 쉼표보다 높이 둘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하여 지금을 사는 현대인에게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쉼표(,). 한 박자 쉬어간다고 내 삶이 무너지거나 그런 일은 단연코 없다. 그러니 제발 쉬자.

 

오늘 하루는 짧지만 강한, 라이언의 한마디와 함께!

 


나는

언제나

너의 길을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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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고 - 잊혀진 제국 발해를 찾아서, 오래된 책방 11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1
유득공 지음, 정진헌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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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역사 속에 살던 사람들이 지은 책을 읽어보고 싶었고, 읽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원문이 아닌 한글로 번역된 책으로! 어려서는 인현왕후전이나 박씨전, 구운몽 같은 어린이 동화용으로 나온 고전을 주로 읽었다. 다 커서는 매천야록이나 조선상고사 같은 책으로 취향이 옮겨갔다. 그러다 한일고대사 쪽에 관심이 생기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무슨 책을 살까 여기저기 골라보던 중 서해문집이라는 출판사에서 오래된 책방시리즈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책 목록을 보니 세상에나! 내가 그토록 읽고 싶었고, 읽었고, 읽으려 했던 역사 속 사람들이 집필한 그런 책들이었다. 맘 같아서는 한 번에 다 사고 싶었지만, 일부는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가지고 있는 것도 있고, 또 비용의 압박도 있고 해서 우선 딱 3권만 구매했다. 그중 한 권이 바로 유득공의 저서 발해고(원문을 옮긴 이는 정진헌님).

 

기원 전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에서는 여러 나라가 건국되었다가 사라졌다. 발해도 그 중 하나였지만, 발해가 우리의 역사라고 이야기 한 사람은 없었다. 926년에 발해가 멸망 한 뒤 약 800년이 지났다. 조선 22대 왕 정조가 재위하던 1784. 그 해 발해가 한반도의 역사라고 인지하고, 알리려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유득공이다. 대체 그는 누구일까?

 

때는 바야흐로 조선 후기 르네상스라 불리우는 영조, 정조 재위기간.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던 서얼들이 정계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관직에 대한 서얼철폐는 정조 때 허용되었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영조 때 부터 서얼들이 관직에 등용되기 시작하였다. 이를 공식화 한게 바로 서얼소통절목을 반포한 정조였다. 유득공은 영조 때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에 채용되었다. 이 때 정조의 지원하에 채용된 대표적인 사람들은 유득공을 포함하여 이덕무, 홍대용, 박제가 등이 있다. 우리가 북학파 내지 실학자라고 알고 있는 바로 그들이다.

 

요컨대 북학 사상은 이용과 후생을 통해 정덕이라는 유교적 이상 사회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중국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 규격 벽돌을 만들고, 수레를 스며, 물이 스미지 않는 배를 만드는 기술, 그리고 상업을 장려하는 등의 제도들을 배우자는 것이다. _P 014

 

유득공은 정조의 지원 아래 정말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곳을 다녔다. 그렇게 얻은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책을 집필했다. 유교적인 모순에 빠진 조선사회를 바꿔보고자 노력했다. 수 많은 사회문제에 대해 그저 한시적으로 문제 해결방안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파악했다. 조선의 고질적인 폐쇄관,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 등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허용되는 방안에 대해 고심했다. 하지만 정조가 죽으며 유득공의 날개는 꺾였다. 유득공 뿐만 아니라 그 많은 실학자들의 날개가 꺾였다(이후 시기는 할말하않). 정조 사후 유득공에 대한 행적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집필한 책도 없다. 유득공이 집필한 모든 책은 정조 재위기에 발간된 것들 뿐이다.

 

자 그럼 이 책의 제목인 발해고로 와보자. 유득공이 발해고를 집필한지 이 백년이 흐른 지금, 실제 발해의 터를 조사하고 연구한 지금의 발해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정말 소름돋게도 이백년 전과 지금 연구된 발해의 역사는 거의 흡사하다. 이 백년 전의 사람인 유득공의 연구에서 많은 진보가 없는 지금의 사학이 문제인건지, 아님 이백 년 전에 태어난 유득공이 세상을 앞서 갔는지는 모르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이거다. 유득공은 발해에 대하여 치밀하고 끊임없이 연구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유득공이 어떠한 책을 인용하였는지 한번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중국 역사서가 많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며 제일 오래된 역사서는 고려 초에 편찬된 김부식의 삼국사기. 인용문헌에는 없으나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역사서 삼국유사는 고려 중기에 편찬되었다.

 

반면 인용문헌 제일 첫번째 줄에 위치한 중국 역사서 구당서945년에 편찬되었고, 신당서는 구당서의 오류를 잡기 위해 1060년에 편찬되었다. 발해가 926년에 망했으니, 구당서는 발해 멸망 직후에 쓰여진 것이다. 일본 역사서 속일본기797년에 편찬되었다. 이 당시는 발해 최전성기였다.

 

유득공이 발해고를 편찬하는 데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편찬한 역사서가 아닌, 외국 역사서를 인용한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당대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기록들도 정보가 많지 않았다. 반면 중국과 일본에는 당대의 기록이 남아있었다. 심지어 아주 방대한 양과, 세밀한 정보가.

 

유득공은 발해고 서문에서 남북국시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다. 그러면서 전 왕조인 고려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고려가 발해사를 짖지 않은 것을 보아, 고려가 부진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부여 씨가 망하고 고 씨가 망하자 김 씨는 남쪽을 차지했고, 대 씨는 그 북쪽을 차지하고서 이름을 발해라고 했는데, 이 것이 남북국이다. 그러니 마땅히 남북국사가 있어야 하는데도 고려가 이를 쓰지 않았으니 잘못이다. 무릇 대 씨는 어떤 사람인가? 바로 고구려 사람이다. 그들이 가졌던 땅은 어떤 땅인가? 곧 고구려 땅으로 그 동쪽, 서쪽, 북쪽을 물리쳐서 크게 했을 뿐이다. 무릇 김 씨와 대 씨가 망하게 되자 와아 씨가 이를 통합해서 소유했으니, 이것이 고려다. (중략) 끝끝내 발해사를 짓지 않아서 토문 이북 지방과 압록강 이서 지방이 누구의 땅이 되었는지 몰랐다. 여진을 꾸짖고자 했으나, 할 말이 없었고, 거란을 혼재려고 했지만 그 근거가 없었다. 고려가 끝내 약소국이 된 것은 발해의 땅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말로 한탄스럽구나! _P 037 ~ 038, 유득공의 서문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 역사 어린 시절 국사시간에는 이 시기를 통일신라시대라고 배웠다. 꽤 오래 그렇게 배워오다가, 학교 졸업 뒤 한능검을 한번 보고자 인터넷강의를 보았을 때, 그 때서야 남북국시대라는 용어를 보았다. 유득공 사후에도 꽤 오랜 시간 남북국시대가 아닌, ‘통일신라시대라고 가르쳐온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발해의 역사를 잊고 살았기에, 중국이 동북공정을 일으킨 것이다. 이거 참.. 유득공이 지하에서 통탄을 금치 못하겠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발해를 보자. 유득공의 발해고는 크게 9가지 테마로 나뉘어있다. 발해 역대 임금을 기록한 군고(君考), 발해의 신하들을 기록한 신고(臣考), 발해의 지리를 기록한 지리고(理考) 그리고 발해의 관직, 의장, 특산물, 언어, 외교문서, 발해의 후예를 기록했다. (한자쓰기 귀찮..통으로 ㅋㅋ)

 

아주 어릴 때라면 한반도에 있던 다른 나라에 비해 발해가 익숙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 KBS에서 사극 드라마 대조영을 방영해주었고, 나는 본방사수를 할 정도로 너무 좋아하는 드라마 였기에 ㅋㅋㅋㅋ 라고 해봤자 진국공(대걸중상), 고왕 (대조영) 이야기에서 끝이지만 하하하하.

 

고려 멸망 후 고려 유민 대조영은 세력을 규합하여 698년에 동모산에서 고려를 이은 나라, ()을 건국했다. 713년에 당나라에서 발해군왕으로 책봉되었다. ! 책봉이라고 해서 무작정 반감을 가지면 안된다. 한반도를 비롯하여 아시아 여러 나라는 중국과 정말 오랜기간 동안 책봉-조공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적어도 고려까지는 정말 표면상 책봉-조공 관계였는데,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후.... 또 다시 할말하않 ㅠㅠㅠ

 

표면적인 책봉-조공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제일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연호다. 발해는 황제국만 사용하는 연호를 사용했다. 제일 가까운 예시를 들자면 조선 말 고종이 이제 조선은 황제국이다라고 칭하며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이라고 한 뒤, 연호를 광무라 선포한 거랄까..?

 

고왕 대조영 이후로 2대 왕 무왕 대무예와 3대왕 문왕 대흠무 까지는 우리 국사책에서도 배우는 인물이다. 무왕은 장문휴를 시켜 당나라를 공격했는데, 이는 우리 역사에서 외국을 침범한 최초이자 마지막 전투라고 한다. 무왕의 무는 한자로 ()로 표기한다. 이 시호를 통해서 무왕이 얼마나 무력을 잘 이용했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무왕 때 발해의 영토가 크게 확장되었다. (흡사 고구려 광개토대왕 마냥..)

 

문왕은 아버지 무왕과는 정 반대의 성향을 가졌다. 아버지가 영토 확장 같은 외치에 힘을 썼다면, 문왕은 내치에 힘을 쏟았다. 이 역시 시호인 ()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문왕보다 유명한 사람은 실상 따로 있다. 발해고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우리 국사책에는 나오는 여인 두 명! 문왕의 딸 정혜공주와 정효공주다. 그래서 나에게도 문왕은...두 공주의 아버지 (...) 로 인식되었다. ! 그리고 문왕 때, 당나라는 발해군왕에서 발해국왕으로 올려서 책봉한다.

 

문왕 다음 왕은 문왕의 형제 내지는 사촌으로 추정되는 대원의다. 당시 문왕이 너무 장수하는 바람에 아들 대굉림이 아비보다 일찍 죽었다. 다행히 대굉림에게는 아들 화여가 있었에게, 정석대로라면 문왕 사후 문왕의 손자인 화여가 왕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정작 왕이 된건 문왕의 사촌 대원의. 추정컨데 대원의는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정의는 살아있다! 대원의는 즉위 1년도 안되서 폐위되었고, 순리대로 대화여가 왕위에 올랐다. 삼촌이 조카의 왕위를 빼앗는 스토리는 가깝게는 단종-세조(수양대군), 고려 헌종-숙종, 백제 사반왕-고이왕 정도에 이어 발해도...!!

 

근데 소름 돋는건 순리대로 왕위에 오른 성종 대화여는 즉위 1년만에 사망. 결국 다음 왕위는 대화여의 또 다른 삼촌이 이었다. 뭐 근데 발해 역대임금들을 잘 보니 장자승계랑 형제승계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 그놈의 유교 때문에 장자우선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혔나보다 ㅠㅠㅠ...

 

발해는 당나라 때부터 자주 여러 학생을 경사로 보내어 태학에서 고금의 제도를 배우게 했다. 그래서 낭다라에서는 발해를 해동성국이라고 불렀다. _ P 062 발해 마지막 왕 대인선 편

 

고려 태조 177월에 수만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서 고려로 왔다. 태조가 왕계라는 성명을 내려주고, 왕실의 종적에 덧붙였다. 원보로서 백주를 지키게 했고 제사를 받들게 했다. _P 097 대연찬의 세자 대광현 편

 

926년 발해가 멸망했다. 거란 요나라가 처들와 발해의 수도 홀한성(상경용천부)을 함락시켰다. 요나라는 발해의 땅에 괴뢰국을 세웠다. 발해유민들은 일부는 요나라로, 일부는 대거 신생국가 고려로 유입되었다. 엄청나게 넓은 영토를 다스리던 발해가 한 순간에 멸망했다는 사실은 조금 의아하다. 예전에 한 다큐에서 백두산 대 폭발에 대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발해고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긴 하지만, 현재 백두산 대폭발 추정연도를 보았을 때 930~ 940, 고려사와 당대 일본의 기록을 비추어 볼 때 946년 이다. 뭐 백두산 대폭발을 정통으로 맞지 않았다고 해도, 대폭발 이전의 전조 현상은 분명 있었을 거고, 그런 전조현상은 일종의 자연재해로 민심이 이반되고, 국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거기다 지속적으로 거란이 침입하고 있었으니 업친데 덥친격. 그렇게 발해가 멸망한 게 아닐까? 라는 사심 100% 담긴 추정이다.

 

명실공히 우리의 역사 발해, 하지만 잊혀진 역사 발해. 중국이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바꾸는 동북공정을 보며 역사왜곡을 한다며 중국 탓만 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발해를 모르고 있다. 발해를 지키기 위해서는 발해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유득공의 발해고가 더욱 특별한 이유다

고려가 발해사를 짖지 않은 것을 보아, 고려가 부진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부여 씨가 망하고 고 씨가 망하자 김 씨는 남쪽을 차지했고, 대 씨는 그 북쪽을 차지하고서 이름을 발해라고 했는데, 이 것이 남북국이다. 그러니 마땅히 남북국사가 있어야 하는데도 고려가 이를 쓰지 않았으니 잘못이다. 무릇 대 씨는 어떤 사람인가? 바로 고구려 사람이다. 그들이 가졌던 땅은 어떤 땅인가? 곧 고구려 땅으로 그 동쪽, 서쪽, 북쪽을 물리쳐서 크게 했을 뿐이다. 무릇 김 씨와 대 씨가 망하게 되자 와아 씨가 이를 통합해서 소유했으니, 이것이 고려다. (중략) 끝끝내 발해사를 짓지 않아서 토문 이북 지방과 압록강 이서 지방이 누구의 땅이 되었는지 몰랐다. 여진을 꾸짖고자 했으나, 할 말이 없었고, 거란을 혼재려고 했지만 그 근거가 없었다. 고려가 끝내 약소국이 된 것은 발해의 땅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말로 한탄스럽구나!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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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말꽃모음 말꽃모음
설흔 엮음 / 단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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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달 전에 독립선언서 말꽃모음이라는 책을 구입해서 읽은 적이 있다. 그저 인터넷 서점 굿즈에 혹해서 구입했던 그 책은 나에게 크게 와닿았다. 이후 말꽃모음이 시리즈로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조만간 사야지 싶었는데 그대로 까먹고 말았더랬다.....

 

그러다가 역사 분야 신간을 확인하던 중에 바로 이 책 독립운동가 말꽃모음이 새로 나온 것을 알았다. 앞서 발매된 책은 나중에 산다고 치고, 이 것부터 먼저 읽어야지 싶었다. 받자 마자 읽기 시작했다. 눈으로 천천히 읽었고, 입으로 다시 한번 읽었다. 그냥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두기에는, 모든 문장이 너무 아깝고 또 아까웠다. 이 책은 그저 그런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분들이 생전에 입에 담았던 말꽃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짧게는 두어문장, 길게는 열댓문장 정도의 말꽃이다. 거기에 독자로 하여금 말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 책의 엮은이 설흔님이 당시의 시대상황 이나 그분들의 행적에 대해 간략히 적어놓기도 했다. 심지어 보물같은, 몇 안되는 독립운동가의 사진들도 실려있다.

 

이 책에는 백범 김구, 단재 신채호의 말꽃은 없다. 이미 그들에 대한 말꽃모음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여성 독립운동가의 말꽃도 없다. 이 역시 앞으로 책으로 나올 예정이기 때문에 제외했다고 한다. (라고는 하지만 이 책에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말꽃이 아주 소수 실려있긴 하다)

 

대한의 남자들이여, 국가를 약하게 만드는 악습을 고치지 않으면 비록 오늘은 비단옷과 명주옷을 입고 있을지라도 내일은 등에 채찍이 내릴 것이다. 대한의 여자들이여, 사회를 부패하게 만드는 추한 행동을 버리지 않으면 비록 오늘은 얼굴에 분을 발랐어도 내일은 똥을 바를 것이다. - 안창호

 

바로 오늘부터 우리나라를 괴롭히는 강국과 전쟁을 시작해 국권을 회복할 것이다. 의아하게들 여길 것이다. 병력도 미약하고 군함과 대포도 부족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싸울 생각이냐고. 러일 전쟁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선전포고는 이삼 년 전의 일이나 개전 준비를 시작한 것은 38년 전이다. 일본은 개전을 준비한 지 38년 후에 결과를 얻었다. -안창호

 

190930대 초반의 안창호는 60대 노인이 된 이토 히로부미를 만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본의 그릇된 태도를 하나하나 지적하며 비판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의외로(!) 안창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심지어 공식적인 연설회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기까지! 그 연설회에서 안창호가 한 말이 바로 대한의 남자들이여, 대한의 여자들이여였다. 이 연설은 지금 당장 뉴스에서 흘러나와도 손색이 없다. 백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일본을 등에 업고, 일본의 돈을 쓰며, 일본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에.

 

1919년 전무후무한 세계적 회의가 열렸고 약소민족들에게도 권리를 준다는 말이 전해졌다. 이에 동경유학생들이 독립운동의 첫소리를 냈다. 도쿄에서 사관학교를 마치고 일본 육군 기병 제1연대 사관으로 재직하던 때였다. 꿈처럼 기쁜 중에도 불 보듯 뜨거워지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김경천

 

여름이 끝나가고 초가을이 다가온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군사행동을 하기 어려우니 어서 무기를 준비해 압록강 한 번 건너는 것이 소원이라고들 말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형편으로는 압록강은 고사하고 개천도 건너기 어렵다. -김경천

 

남만주의 3, ‘남만삼천이라 불리우던 세 명의 장군이 있었다. 김경천, 지청천, 신동천이 그들이다. 김경천과 지청천은 일본 육사 출신이다. 그들은 탄탄한 꽃길을 버리고 가시밭길, 즉 조국을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을 택했다. 만주에 있는 신흥학교에 들어갔다. 일본 육사에는 그들의 동기였던 또 다른 인물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육군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응준. 하지만 그는 김경천, 지청천과는 달리 일본군에 남아서 독립군을 토벌하는데 앞장섰다. 그는 분명 친일파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그는 초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오래오래 잘 살았다. 우리나라는 이응준을 대한민국 육군의 아버지라 부른다.

 

자 그럼 다시 김경천, 지청천, 신동천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김경천, 지청천 장군은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을 양성했다. 하지만 위에 김경천 장군의 말꽃에서 보이듯 독립운동을 하는 그들의 생은 힘겨웠다. 김경천 장군은 스탈린의 강제이주로 인해 중앙아시아로 끌려갔고 그 곳에서 사망, 신동천 장군은 신흥학교학생들과 군사훈련 중 일본군에 매수된 중국군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다. 지청천 장군만 유일하게 살아남아 광복을 보았다.

 

같은 일본육사 출신이었던 김경천 장군과 이응준. 김경천 장군은 독립군을 양성하며 독립운동을 한 반면, 이응준은 독립군을 일본군에 남아 독립군을 토벌하는데 앞장섰다. 김경천 장군은 비참하게 죽었고, 이응준은 대한민국 육군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으며 오래오래 잘 살았다. 정말 슬프지만 친일파는 3대가 떵떵거리고, 독립운동가는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들어맞는 순간이다.

 

나는 평생을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에 바쳤다. 젊은이들은 그 정신을 잊지 말고 이어 가야할 의무가 있다. -이동휘

 

칼날보다 날카로운 삭풍이 나의 살을 벤다. 살은 깎여도 참을 수 있고 창자는 끊어져도 슬프지 않다. 내 발 내 집 빼앗은 것도 모자라 내 처자까지 넘겨다보니 차라리 머리를 잘릴지언정 무릎 꿇어 종이 되지는 않겠다. -이상룡

 

2019년은 대한민국 임시정수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일부 일본 지원을 받는 종자들은 임시정부가 망명정부라서 정식정부가 아니라는 개소리를 하고 있지만. 잊지말자! 지금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정부라는 것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나라가 있다는 것을.

 

한국인들이 열망하는 건 단 두가지였다. 독립과 민주주의. 다른말로 바꾸어 쓰면 바로 자유.

자유를 모르는 이들에게 자유는 금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그 무엇! -김산

 

우리 혁명가들에게 나라가 넷이나 있다. 시베리아, 만주, 중국, 일본, 그러나 나라를 넷이나 가진 인간은 나라를 하나도 갖지 못한 인간보다도 훨씬 비참하다. 한국인들은 일본인, 중국인, 상하이의 영국인과 프랑스인 경찰, 심지어는 같은 한국인 경찰들에게도 합법적으로 체포된다.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는 보호받지 못한다. -김산

 

독립운동가 김산. 다큐를 보며 여러번 들어본 이름이지만 다른 분들에 비하면 크게 기억에 남지는 않았더랬다. 헌데 이 책에서 김산의 말꽃 비중은 꽤 많다. (엮은이 스스로도 머릿말에서 김산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이 있기에 말꽃 비중이 높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책 중간 중간에 분산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김산의 말꽃을 따라가다 보면 이 사람의 일생을 따라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1919년 한국을 떠나며 이 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원망했으나, 그럼에도 울면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싸워서 승리한 후 조국으로 돌아오겠다고 한 15살의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독립운동을 하다 한국 감옥에 투옥되었다. 한국에서 석방된 후 중국으로 가니, 중국에서는 일본에 굴복했다는 무고를 받고 중국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렇게 그는 끊임 없이 싸웠고, 그만큼 오랜 감옥생활을 이어갔다. 종국에는 자신의 젊은 시절은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그 어떤 나라도 자기를, 동지를, 한국인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힘 없는 한국인 김산은 친구와 동지들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내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오직, 나 스스로에게는 승리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1938년 일본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중국에서 처형당했다. 나로써는 그가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았는지, 감히 상상해볼 수도 없다.

 


젊은이들은 서로 내가 먼저 죽으러 국내에 들어가겠다는 자세였다.

나가겠다는 사람을 모두 내보낼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니 나중에는 제비를 뽑기도 했다.

먼저 죽으러 가겠다고 제비까지 뽑는다?

지금 사람들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 김성숙(의열단)

의로운 일을 행하자. 의로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자. - 이종희(의열단)

내가 몸을 돌보는 방법은 오직 하나,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다. - 김시현(의열단)

한 번 죽기로 결심했으니 어찌 즐거운 마음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나석주(의열단)

우리가 반드시 강도 왜적을 섬멸하고 최후 목적을 이룰 날이 조만간 다가올 것이다. -윤세주(의열단)

나 홀로 적국에 들어와 사형을 선고받다니, 진실로 넘치는 영광이다. -김지섭(의열단)

 

의열단의 하루

상하이에서 나는 무정부주의를 신봉하는 의열단에 들어갔다. 뭐랄까, 의열단원들은 특별한 종교 집단의 신도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격연습은 기본이었고 수영과 테니스 등을 하면서 최고의 상태를 유지해나갔다. 독서와 오락 활동도 빼놓지 않았다. 우울해지지 않도록 늘 주의했고 특별한 임무에 어울리는 긴장된 심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의열단원들의 생활은 명랑함과 심각함의 이종 결합이었다. 늘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삶이었기에 살아 있는 한 즐겁게 생활하자는 뜻이었으리라. 단원들은 외모에도 신경을 섰다. 몸에 잘 맞는 양복을 입고 머리는 깔금하게 다듬었으며 사진찍기를 좋아했다. 늘 마지막 사진으로 여기는 것이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었다. _P131

 

학교 국사시간 혹은 한국사 시험을 위해 공부하다보면, 항일 무장독립운동사에서 꼭 알아야 3봉이 있다. 그 이름하여 김원봉, 김두봉, 양세봉. 이 중 김원봉이 바로 그 유명한 밀양 사람 김원봉, 의열단장이다. (김두봉은 조선의용군, 양세봉은 조선혁명군) 신흥학교 출신들이 만든 의열단. 김원봉이 단장으로 있던 의열단. 우리는 의열단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나마 김원봉 처럼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달달달 외웠던 의열단 출신 독립운동가 김익상, 김상옥, 김지섭, 나석주. 이들의 이름이라도 알고 있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꽤 오랜시간 의열단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잊혀져 있었다. 대게가 중국으로 넘어가서 무장투쟁을 하였고, 무정부주의 내지 사회주의에 심취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그들이 빨갱이라는 이유로 지워버렸다.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국에서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이 전남 광주 출신 의열단원이라는 것을. 위에 별도로 언급한 김산 역시 의열단원이었으며, 저항시인으로 알려진 이육사 역시 의열단원이라는 것을.

 

강우규, 김경천, 김구, 김대락, 김산, 김상옥, 김성숙, 김시현, 김원봉, 김지섭, 김창숙, 나석주, 민긍호, 박상진박열, 송학선, 신규식, 신채호, 심훈, 안중근, 안창호, 유인석, 윤봉길, 윤세주, 이동휘, 이봉창, 이상룡, 이상설이육사, 이재명, 이종희, 이회영, 장준하, 주기철, 허위, 허은, 홍범도, 홍흥순.

 

이 책에 말꽃으로 함께한 독립운동가들 이다. 잊으면 안될 이름들이다. 대부분은 독립운동 단체에 몸 담은 사람들이지만, 아닌 사람도 있다. 지금의 나처럼 그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말이다. 그런 분의 말꽃을 적으며 리뷰를 마친다.

 

나는 그 어떤 주의자도 사상가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압박하는 놈들은

백번 죽어 마땅하다는 사실, 그거 하나는 아주 잘 안다.

-송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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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셀프 트래블 - 2019-2020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이주영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같은 평범한 직장인은 해외여행을 하려면 주말 붙여서 연차를 하루 내지 이틀 사용해서 가는 게 고작이다. 그나마도 주말 붙여서 연차 이틀 사용을 허락해주는 회사라면 그야말로 럭키인거고, 대게는 연차 하루만 사용해서 23일로 가는 경우가 훨씬 흔하다. , 주말 붙여서 연차를 하루 사용하는 것도 솔직히 눈치보이는 것이 흔한 직장인의 고민이라는게 함정이라면 함정이긴 하지만.(실상은 남들 쉴 때 다 쉬는 여름휴가나 5월 가정의달 연휴를 이용해서, 비싼 돈 내고 여행을 다닐 수 밖에 없다는 점!!) 이렇든 저렇든 해외 여행을 가고 싶어도 길게 쉴 수 없는 직장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해외여행지는 선택의 폭이 정말 좁다. 최소 23일 여행간다는 가정하에, 버틸 수 있는 항공시간은 편도 최대 3시간. 3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여행하고는 했다. 나 역시 갈수록 우경화 되가는 일본을 욕하면서도, 해외여행 선택의 폭이 좁다는 이유로 일본을 자주 다녔다.

 

하지만 가면 갈 수록 얄밉게 행동하는 일본을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판단하에, 일본은 포기한 지가 벌써 반년이 넘었다. 크흡. 아마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일본은 안 갈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일본을 여행지도에서 지워버리고 최대한 가까운 해외여행지를 열씸히 골라 보았다. 그 후보 중 하나가 바로 오늘 이 책으로 간접여행을 할 타이완이다.

 

인천공항에서 타이베이(타이완 북부/대만 북부)까지 비행시간이 2시간 30, 까오숑(타이완 남부/대만 남부)까지는 약 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심지어 직항편도 운항하니 23일 여행지로는 완전 제격이랄까?

 


여행 가이드북 퀄리티는 대충 목차만 훑어보면 딱 각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셀프트래블 시리즈는여행 가이드 북 중에서는 정말 고퀄리티를 자랑한다. 그 어떤 여행 가이드북과 비교해봐도 흠 잡을 데가 없다.

 


나에게 타이완은 꽃할배들이 갔던 여행지정도였다. 그 전까지 타이완이라는 나라에 대해 크게 생각이 없었으니까. 하하하. 그래서 오늘 이 책으로 조금이나마 타이완에 대해 알게 되었다.

 

타이완의 정식명칭은 중화민국 타이완이다. 우리나라 크기의 섬나라이며, 사용하는 통화는 뉴 타이완 달러!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다.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90일 까지 무비자 체류 가능! (하나의 중국이라고 떠드는, 대륙 중국은... 비자 발급을 해야한다지?) 전압은 110V(돼지코)를 사용하지만 호텔에 따라서는 220V도 사용한다.

 


타이완 여행 시 주의할 점은 꼭 체크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자칫하면 진상부리는 한국 여행객으로 보일 수 있으니 꼭 숙지해야 한다.

 

 

타이완은 우리나라와 달리 지하철에서 음식불 섭취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물은 물론, 껌이나 사탕도 포함이다. 이를 어길 경우 약 30만원에 해당하는 벌금이 부과된다. 또한 유명 관광지에 있는 특별관리 대상 관광물의 경우 건드리게 되면 이 역시도 벌금이 부과된다.

 

그리고 나의 안전을 위해서 숙지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모르는 사람이 공항에서 짐을 들어달라고 하거나, 모르는 사람이 길 거리에서 음식을 준다거나 이런 경우에는 절대로 NO! ‘안돼요, 싫어요가 필요한 부분인 듯 하다. 아니면 무시가 상책!

 


타이완에 갔다면 꼭 가보아야 할 여행지, 핫한 여행지, 절대 놓쳐서는 안될 여행지도 이렇게 별도로 체크되어 있다. 해당 여행지에 더 자세한 부분은 책 본문에 지역별로 소개하는 챕터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여행은 볼거리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건 역시나 먹방! 그런 의미에서 타이완은 먹방 여행에 완전 제격인 곳이다. 그야말로 미식의 나라다. 예전에는 짧고 굵은 먹방 여행은 오로지 일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 편협하디 편협한 생각이었다. 세상은 넓고 맛있는 건 많은데! 정말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타이완만 봐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많은데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샤오롱바오, 훠궈가 타이완에서 온 음식이었다. 가끔 대형마트에서 사먹는 펑리수나 누가크래커도 타이완 과자였고, 요새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지파이 역시 타이완에서 온 간식이었다. 얼마나 맛있으면 타이완에서 인기를 얻다 얻다 한국에까지 왔을까 싶은 느낌?! 특히 펑리수랑 누가크래커는 대형마트에서 외쿡산 과자 할인할 때, 가끔씩 사먹을 정도로 좋아하는 과자이기도 하고! 이쯤 되면 본 고장에서 한번 먹어보고 싶은 느낌이랄까?

 

꼭 가봐야할 타이완 명소는?

물론 내 기준^^...

 


우선 타이베이 101. 정식명칭은 타이베이 세계금융센터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타이완 야경명소&전망대다. 심지어 그 높이가 500M를 넘는다고 하니, 지상에서 올려다 보려고 하면 목이 뿌러질지도! 전망대는 89층에 있다고 한다.

 


 

그 다음이 바로 국립고궁박물원! 예전 tvN 꽃보다 할배에서 할배들이 갔던 곳으로 기억한다. 그때 취옥백채라 불리우는 양배추 모양 옥을 보고 진짜 저건 꼭 실물로 봐야 해!’라는 마음이 미친듯이 솟구쳤더랬다. 듣기론 이 취옥백채가 청나라 광서제 후궁인 근비가 예물로 가지고 온 거라고 하던데..

(광서제는 서태후의 조카, 즉 서태후는 광서제의 이모이자 고모(족보 개판ㅋㅋ). 실상 권력은 서태후가 휘둘렀고 광서제는 그저 허수아비...그 뒤 왕이 그 유명한 푸이!)

 

 

하지만 제일 가고 싶은 장소는 바로 여기, 지우펀이다. 그 유명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배경이 된 곳이니까. 지금은 별로지만 과거에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꽤 잘 나갈 적, 나 역시 푹 빠져있었더랬다. 그 중의 제일은 역시 센과 치히로. 센과 치히로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꽤 여럿이긴 한데, 역시나 메인은 바로 이 홍등가가 아닐까? (아 물론 숨겨있는 의미나 이런건 무시하고...) 그저 색감이나 풍경만 봤을 때! 오로지 딱 그것만 봤을 때 홍등가 색감이 참 이쁘달까 하하하!

 

12월에 제주도 항공권을 예약해놨는데, 타이완을 예약할 껄 그랬나보다 ..ㅜㅜㅜ... 내년엔 타이완으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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