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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말꽃모음 ㅣ 말꽃모음
설흔 엮음 / 단비 / 2019년 9월
평점 :
불과 몇 달 전에 「독립선언서 말꽃모음」이라는 책을 구입해서 읽은 적이 있다. 그저 인터넷 서점 굿즈에 혹해서 구입했던 그 책은 나에게 크게 와닿았다. 이후 말꽃모음이 시리즈로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조만간 사야지 싶었는데 그대로 까먹고 말았더랬다.....
그러다가 역사 분야 신간을 확인하던 중에 바로 이 책 「독립운동가 말꽃모음」이 새로 나온 것을 알았다. 앞서 발매된 책은 나중에 산다고 치고, 이 것부터 먼저 읽어야지 싶었다. 받자 마자 읽기 시작했다. 눈으로 천천히 읽었고, 입으로 다시 한번 읽었다. 그냥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두기에는, 모든 문장이 너무 아깝고 또 아까웠다. 이 책은 그저 그런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분들이 생전에 입에 담았던 말꽃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짧게는 두어문장, 길게는 열댓문장 정도의 말꽃이다. 거기에 독자로 하여금 말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 책의 엮은이 설흔님이 당시의 시대상황 이나 그분들의 행적에 대해 간략히 적어놓기도 했다. 심지어 보물같은, 몇 안되는 독립운동가의 사진들도 실려있다.
이 책에는 백범 김구, 단재 신채호의 말꽃은 없다. 이미 그들에 대한 말꽃모음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여성 독립운동가의 말꽃도 없다. 이 역시 앞으로 책으로 나올 예정이기 때문에 제외했다고 한다. (라고는 하지만 이 책에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말꽃이 아주 소수 실려있긴 하다)
대한의 남자들이여, 국가를 약하게 만드는 악습을 고치지 않으면 비록 오늘은 비단옷과 명주옷을 입고 있을지라도 내일은 등에 채찍이 내릴 것이다. 대한의 여자들이여, 사회를 부패하게 만드는 추한 행동을 버리지 않으면 비록 오늘은 얼굴에 분을 발랐어도 내일은 똥을 바를 것이다. - 안창호
바로 오늘부터 우리나라를 괴롭히는 강국과 전쟁을 시작해 국권을 회복할 것이다. 의아하게들 여길 것이다. 병력도 미약하고 군함과 대포도 부족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싸울 생각이냐고. 러일 전쟁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선전포고는 이삼 년 전의 일이나 개전 준비를 시작한 것은 38년 전이다. 일본은 개전을 준비한 지 38년 후에 결과를 얻었다. -안창호
1909년 30대 초반의 안창호는 60대 노인이 된 이토 히로부미를 만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본의 그릇된 태도를 하나하나 지적하며 비판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의외로(!) 안창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심지어 공식적인 연설회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기까지! 그 연설회에서 안창호가 한 말이 바로 ‘대한의 남자들이여, 대한의 여자들이여’ 였다. 이 연설은 지금 당장 뉴스에서 흘러나와도 손색이 없다. 백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일본을 등에 업고, 일본의 돈을 쓰며, 일본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에.
1919년 전무후무한 세계적 회의가 열렸고 약소민족들에게도 권리를 준다는 말이 전해졌다. 이에 동경유학생들이 독립운동의 첫소리를 냈다. 도쿄에서 사관학교를 마치고 일본 육군 기병 제1연대 사관으로 재직하던 때였다. 꿈처럼 기쁜 중에도 불 보듯 뜨거워지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김경천
여름이 끝나가고 초가을이 다가온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군사행동을 하기 어려우니 어서 무기를 준비해 압록강 한 번 건너는 것이 소원이라고들 말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형편으로는 압록강은 고사하고 개천도 건너기 어렵다. -김경천
남만주의 3천, ‘남만삼천’이라 불리우던 세 명의 장군이 있었다. 김경천, 지청천, 신동천이 그들이다. 김경천과 지청천은 일본 육사 출신이다. 그들은 탄탄한 꽃길을 버리고 가시밭길, 즉 조국을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을 택했다. 만주에 있는 신흥학교에 들어갔다. 일본 육사에는 그들의 동기였던 또 다른 인물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육군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응준. 하지만 그는 김경천, 지청천과는 달리 일본군에 남아서 독립군을 토벌하는데 앞장섰다. 그는 분명 친일파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그는 초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오래오래 잘 살았다. 우리나라는 이응준을 대한민국 육군의 아버지라 부른다.
자 그럼 다시 김경천, 지청천, 신동천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김경천, 지청천 장군은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을 양성했다. 하지만 위에 김경천 장군의 말꽃에서 보이듯 독립운동을 하는 그들의 생은 힘겨웠다. 김경천 장군은 스탈린의 강제이주로 인해 중앙아시아로 끌려갔고 그 곳에서 사망, 신동천 장군은 신흥학교학생들과 군사훈련 중 일본군에 매수된 중국군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다. 지청천 장군만 유일하게 살아남아 광복을 보았다.
같은 일본육사 출신이었던 김경천 장군과 이응준. 김경천 장군은 독립군을 양성하며 독립운동을 한 반면, 이응준은 독립군을 일본군에 남아 독립군을 토벌하는데 앞장섰다. 김경천 장군은 비참하게 죽었고, 이응준은 대한민국 육군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으며 오래오래 잘 살았다. 정말 슬프지만 친일파는 3대가 떵떵거리고, 독립운동가는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들어맞는 순간이다.
나는 평생을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에 바쳤다. 젊은이들은 그 정신을 잊지 말고 이어 가야할 의무가 있다. -이동휘
칼날보다 날카로운 삭풍이 나의 살을 벤다. 살은 깎여도 참을 수 있고 창자는 끊어져도 슬프지 않다. 내 발 내 집 빼앗은 것도 모자라 내 처자까지 넘겨다보니 차라리 머리를 잘릴지언정 무릎 꿇어 종이 되지는 않겠다. -이상룡
2019년은 대한민국 임시정수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일부 일본 지원을 받는 종자들은 임시정부가 망명정부라서 정식정부가 아니라는 개소리를 하고 있지만. 잊지말자! 지금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정부라는 것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나라가 있다는 것을.
한국인들이 열망하는 건 단 두가지였다. 독립과 민주주의. 다른말로 바꾸어 쓰면 바로 자유.
자유를 모르는 이들에게 자유는 금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그 무엇! -김산
우리 혁명가들에게 나라가 넷이나 있다. 시베리아, 만주, 중국, 일본, 그러나 나라를 넷이나 가진 인간은 나라를 하나도 갖지 못한 인간보다도 훨씬 비참하다. 한국인들은 일본인, 중국인, 상하이의 영국인과 프랑스인 경찰, 심지어는 같은 한국인 경찰들에게도 합법적으로 체포된다.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는 보호받지 못한다. -김산
독립운동가 김산. 다큐를 보며 여러번 들어본 이름이지만 다른 분들에 비하면 크게 기억에 남지는 않았더랬다. 헌데 이 책에서 김산의 말꽃 비중은 꽤 많다. (엮은이 스스로도 머릿말에서 김산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이 있기에 말꽃 비중이 높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책 중간 중간에 분산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김산의 말꽃을 따라가다 보면 이 사람의 일생을 따라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1919년 한국을 떠나며 이 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원망했으나, 그럼에도 울면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싸워서 승리한 후 조국으로 돌아오겠다고 한 15살의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독립운동을 하다 한국 감옥에 투옥되었다. 한국에서 석방된 후 중국으로 가니, 중국에서는 일본에 굴복했다는 무고를 받고 중국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렇게 그는 끊임 없이 싸웠고, 그만큼 오랜 감옥생활을 이어갔다. 종국에는 자신의 젊은 시절은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그 어떤 나라도 자기를, 동지를, 한국인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힘 없는 한국인 김산은 친구와 동지들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내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오직, 나 스스로에게는 승리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1938년 일본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중국에서 처형당했다. 나로써는 그가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았는지, 감히 상상해볼 수도 없다.
젊은이들은 서로 내가 먼저 죽으러 국내에 들어가겠다는 자세였다.
나가겠다는 사람을 모두 내보낼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니 나중에는 제비를 뽑기도 했다.
먼저 죽으러 가겠다고 제비까지 뽑는다?
지금 사람들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 김성숙(의열단)
의로운 일을 행하자. 의로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자. - 이종희(의열단)
내가 몸을 돌보는 방법은 오직 하나,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다. - 김시현(의열단)
한 번 죽기로 결심했으니 어찌 즐거운 마음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나석주(의열단)
우리가 반드시 강도 왜적을 섬멸하고 최후 목적을 이룰 날이 조만간 다가올 것이다. -윤세주(의열단)
나 홀로 적국에 들어와 사형을 선고받다니, 진실로 넘치는 영광이다. -김지섭(의열단)
의열단의 하루
상하이에서 나는 무정부주의를 신봉하는 의열단에 들어갔다. 뭐랄까, 의열단원들은 특별한 종교 집단의 신도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격연습은 기본이었고 수영과 테니스 등을 하면서 최고의 상태를 유지해나갔다. 독서와 오락 활동도 빼놓지 않았다. 우울해지지 않도록 늘 주의했고 특별한 임무에 어울리는 긴장된 심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의열단원들의 생활은 명랑함과 심각함의 이종 결합이었다. 늘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삶이었기에 살아 있는 한 즐겁게 생활하자는 뜻이었으리라. 단원들은 외모에도 신경을 섰다. 몸에 잘 맞는 양복을 입고 머리는 깔금하게 다듬었으며 사진찍기를 좋아했다. 늘 마지막 사진으로 여기는 것이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었다. _P131
학교 국사시간 혹은 한국사 시험을 위해 공부하다보면, 항일 무장독립운동사에서 꼭 알아야 3봉이 있다. 그 이름하여 김원봉, 김두봉, 양세봉. 이 중 김원봉이 바로 그 유명한 밀양 사람 김원봉, 의열단장이다. (김두봉은 조선의용군, 양세봉은 조선혁명군) 신흥학교 출신들이 만든 의열단. 김원봉이 단장으로 있던 의열단. 우리는 의열단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나마 김원봉 처럼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달달달 외웠던 의열단 출신 독립운동가 김익상, 김상옥, 김지섭, 나석주. 이들의 이름이라도 알고 있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꽤 오랜시간 의열단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잊혀져 있었다. 대게가 중국으로 넘어가서 무장투쟁을 하였고, 무정부주의 내지 사회주의에 심취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그들이 빨갱이라는 이유로 지워버렸다.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국에서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이 전남 광주 출신 의열단원이라는 것을. 위에 별도로 언급한 김산 역시 의열단원이었으며, 저항시인으로 알려진 이육사 역시 의열단원이라는 것을.
강우규, 김경천, 김구, 김대락, 김산, 김상옥, 김성숙, 김시현, 김원봉, 김지섭, 김창숙, 나석주, 민긍호, 박상진, 박열, 송학선, 신규식, 신채호, 심훈, 안중근, 안창호, 유인석, 윤봉길, 윤세주, 이동휘, 이봉창, 이상룡, 이상설, 이육사, 이재명, 이종희, 이회영, 장준하, 주기철, 허위, 허은, 홍범도, 홍흥순.
이 책에 말꽃으로 함께한 독립운동가들 이다. 잊으면 안될 이름들이다. 대부분은 독립운동 단체에 몸 담은 사람들이지만, 아닌 사람도 있다. 지금의 나처럼 그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말이다. 그런 분의 말꽃을 적으며 리뷰를 마친다.
나는 그 어떤 주의자도 사상가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압박하는 놈들은
백번 죽어 마땅하다는 사실, 그거 하나는 아주 잘 안다.
-송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