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 푸른숲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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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을 속이기만큼 쉽고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요, 심지어는 나 자신도 속여버릴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특히나 이런 거짓말에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많죠, 사기꾼들은 거짓말로 사람을 현혹합니다.. 일반인들도 자신을 보호하거나 어떠한 이유때문에 거짓말을 합니다.. 아무런 이득이 없는 거짓말은 없습니다.. 누군가는 분명 하나의 거짓말로 인해 누군가는 이득을 보기 마련입니다.. 거짓말을 그렇습니다.. 이득이 없는 거짓말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살까요, 저만해도 참 착실하고 정직하고 시키면 불만이 있어도 겉으로 드러내지않고 묵묵하게 일을 하는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겉과 속은 다를때가 많죠, 그리고 내 속을 그 누군가가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되물었을때 난 무슨 그런 말씀을, 절대 아닙니다..라고 하곤 하죠, 그렇게 하는 이유야 다양하죠, 나를 위해서도 그를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좋은 관계의 영향력을 주기 위한 거짓말을 수도 없이 자행합니다.. 거짓말은 항상 옳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득을 주니까요, 하지만 이 거짓말이 이득은 있으되 무해하지 않아야될진데 어느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져놓던 거짓말이 유해하게 되어버리면 어떻게할까요, 과연 그때 그 거짓말을 멈출 수 있을까요, 전 사실 제가 잘생긴것을 압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겸손한 자세로 평범하다고 아니 돼지얼굴에 성난 표정의 몬난 아저씨라고 매력은 당신이 더 많다라고 말하곤 하죠, 무해합니다.. 남들에게 있어서 최소한의 겸손과 배려를 했으니까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나의 이런 무해한 거짓말이 상처가 될 수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그 사람에게는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진실을 이야기해야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 잘난 나를 못났다고 하는 것은 유해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가 보는 나는 못난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진실이라면 또 우찌되는겁니까, 헉, 머지....


    2. 거짓말을 하려면 나 스스로 그 거짓말에 대한 합리적 방향성을 일단 모색해야됩니다.. 그 거짓말이 생명력을 얻는 방법이죠, 그럴려면 내가 하는 거짓말이나 행동이 항상 옳다는 자기 합리화가 필요합니다.. 아님 거짓말로 인해 나조차 유해함을 받게 될 지도 모를테니 말입니다.. 여하튼 타고난 거짓말장이는 이야기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모든 허구적 상상을 만들어 스토리로 엮어 독자들을 현혹시키는 작가들은 타고난 사기꾼으로 그 능력을 합법적으로 인정받는 분들이죠, 그런 점에서 길리언 플린 작가는 유독 눈에 띕니다.. 몇 작품만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작가로서 인정 받은 작가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작가가 발표한 국내 출시된 작품들을 읽어보았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스토리텔링과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는 방법론은 아주 대담하면서도 강렬했습니다.. 모든 작품의 중심은 여성의 시선과 시점과 심리적 내면을 통한 진실의 왜곡된 거짓의 삶을 보여주죠, 그녀가 보여주는 주인의 입체적 이미지는 항상 일그러진 이중성의 자아를 드러내는 듯 헀습니다.. 혹시 이 잘난 아저씨가 뭔 이야길 하나 싶으시면 '몸을 긋는 소녀'나 '나를 찾아줘', '다크 플레이스'같은 작품을 필히 읽어보시길 바라며 이런 장편의 강렬함속에서도 그녀가 새롭게 선보인 단편인 "나는 언제나 옳다"는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매력저인 단편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듯 합니다.. 소설은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3. 소설속에 등장하는 '나'는 어린시절 일반적인 삶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않은 결손가정의 아이로 나옵니다.. 엄마는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동냥을 해서 하루하루 살아가죠, 게으러고 그때그때의 생계만 유지하고 살아갑니다.. 나는 그런 엄마의 삶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재능을 발휘하고 살죠, 필요할만큼의 동냥과 사람의 눈치를 빠르게 캐치하고 돈을 뜯어낼 가능성을 높이는 재능을 알아가면서 세상의 인간의 생각과 내면을 어느정도 읽고 파악할 수 있는 재능을 깨우친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재 유사성행위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손목 터널 증후군같은 직업병으로 인해 그동안 쌓아온 남다른 재능의 평판을 뒤로한 체 눈치껏 파악 가능한 점을 보게 되죠, 그러던 어느날 '나'에게 한 여성이 찾아옵니다.. 제법 고급스럽고 부티가 나는 여성은 자신을 수전이라 부르며 자신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가족간의 일을 털어놓죠, 그녀에게는 두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재혼한 남편이 데리고 온 의붓아들 마일즈는 그녀에게 있어 골치거리입니다.. 그런 마일즈의 행동이 새로 이사온 카터후드 메이너가의 오래된 저택에서 더욱 과격하고 거칠고 이상하게 변질되어 감을 두려워하고 있죠,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항상 이런 사람은 존제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이럴때 돈을 좀 뜯어내야죠, '나'는 저택의 불안한 기운과 약한 영향을 제거하기 위해 퇴마사처럼 저택을 정화하기 위한 비용을 청구하고 몇차레에 걸쳐 저택을 방문하여 같잖은 굿거리를 하게 되죠, 그리고 그곳에서 골칫거리고 변해가는 마일즈를 만나게 됩니다.. 또한 저택의 기구한 내막에 대해서도 '나'는 알게 되죠, 과거 카터후드 저택에서는 공포스러운 일이 벌어졌던 모냥입니다.. 그 이야기속의 인물들과 현재 수전의 가족의 생활이 너무 닮은 것이죠, 과거 카터후드의 큰아들이 가족을 몰살한 사건이 현재의 수전의 가족에게도 벌어질 지 모를 일입니다.. 눈치껏 돈만 챙기려던 '나'로서는 감당하기 싶지 않죠, 하지만 이제 쉽게 벗어나지도 못하게 된 지금 조금씩 그녀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는.......


    4. 중편의 분량에 조금 못미치는 단편소설입니다.. 시작과 동시에 한달음에 마지막까지 도달하는 상당히 재미진 작품입죠, 한 여성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기묘하면서도 공포스러운 한 저택의 내막을 둘러싼 작품입니다.. 스릴러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죠, 그리고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입체적 이미지 또한 작품의 집중에 도움을 줍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여성으로서 그녀가 바라보는 인간의 내면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스토리적 반전보다는 작품속의 감성적 반전과 함께 인물들의 입체감이 아주 뛰어난 작품입죠, 게다가 고전 공포소설의 한 범주인 고딕풍의 공포적 감성이 물씬 풍기는 스토리 역시 작가의 의도와 잘 맞물려 스릴러소설로서의 이 작품의 매력을 한껏 부풀려줍디다.. 아시다시피 길리언 플린이라는 작가는 심리의 고농도 농밀한 끈적거림을 표현해내는데 아주 뛰어난 작가라는 점이 이 단편소설의 감성과 결말의 반전과 함께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초중반의 상황들이 주는 대중적 스토리는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 아주 뛰어난 개방적 마무리와 함께 이 작품의 의도를 제대로 그려내며 끝을 냅니다.. 만족스러운 마무리입죠, 솔직히 스릴러와 서스펜스가 가득한 작품을 단편으로 엮기는 쉽지 않습니다.. 인물과 상황들이 주는 호흡이 길게 이어지면서 그 상황의 표현이 그려져야만 장르의 즐거움을 느낄 가능성이 크죠, 하지만 길리언 플린은 자신의 재능적 문장과 감성적 서스펜스의 능력을 단편에 고스란히 쏟아놓은 것 같아서 짧지만 그 충격적 감성은 아주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릴러의 고급짐을 다시한번 느껴봤습니다..


    5. 작가는 그동안 작가의 작품속에서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내면과 이중성과 고통을 어둡게 그려내는 이야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언제나 가족은 옳습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가족이 문제가 됩니다.. 항상 옳아야되는 가족간의 이중적 심리가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 지 작가는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으로 대중에게 다가왔죠, 이 작품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의지해야될 존재들이 가족들이 각자의 이기적 욕망과 탐욕으로 인해 진실을 감추고 서로를 속이곤 하죠, 그리고 누군가는 그 이유로 상처를 받고 삶의 고통을 당하곤 합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가족이라는 존재적 가치는 언제나 옳습니다.. 그렇게 보여지기를 바라고 그렇게 대다수의 사람들은 판단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족의 내면속에 숨겨진 위선과 거짓말의 세상은 추악하고 공포스러울 정도로 서로에 대한 악의가 가득한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도 우린 알죠, 항상 우린 이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미디어를 통해 현실적으로 접하고 있으니까요, 작가는 이러한 현대적 가족의 부재와 소통의 딜레마를 작품속에 리얼하게 담아내는 재능이 뛰어난 작가입니다.. 이 작품도 이러한 작가적 의도와 고딕소설의 공포적 결합을 잘 적용하여 매우 매력적인 작품으로 그려냅니다.. 그것도 단편으로 말입니다.. 짧은 작품속에 작가는 하고자하는 이야기의 모든 것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간의 추악한 내면과 그 이면의 진실을 일반적이지 않은 가족의 관계와 결손가정의 트라우마를 가진 한 여성의 관계를 통해 미스터리한 방법으로 그려내며 마지막 진실의 끝자락을 개방적으로 마무리하며 거짓된 진실과 진실된 거짓의 경계의 모호함으로 결국 제목처럼 스스로의 진실에 대한 합리화의 방식으로 누군가는 언제나 옳다라는 사실은 드러내죠, 멋집니다..  


    6. 독후감을 적다가 임시저장이 되지않아 중간부분이 모두 날아가는 관계로 정리가 안되는 듯 하지만 여하튼 이 작품은 단편스릴러소설로서 보여줄 수 있는 아주 많은 즐거움을 가진 작품이라꼬 전 평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거짓과 진실에 대한 설정이죠, 이 작품은 가족과 소외된 인간의 두려움에 대한 자기위선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선과 악이라는 개념의 모호함과 애매한 사회적 관계의 대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모든 가치관의 중심은 '나'라는 인물의 자기중심적이고 자기합리화속에서 그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길리언 플린은 작품속에서 언제나 여성적 시선의 관점적 혼란을 아주 리얼하게 그려내는 작가입니다.. 심리적 불안을 정말 잘 묘사하시는 작가님이시죠, 제가 아는 한 작가의 작품들 속에서 내면의 이중성과 거짓된 위선의 합리화가 설정되지 않은 작품은 없습니다.. 우리 현대사회의 인간의 내면과 닮아 있습니다.. 우린 언제나 자신의 삶과 내면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옳다고 단정하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과 슬픔과 아픔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인생의 어둠만이 남겨질테니까요, 작가는 이런 우리의 단면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곤 합니다.. 옳든 그르든,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그 자체로 나에게는 언제나 옳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렇게 여기는것이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편한 방법일테니까요, 작가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인간의 악한 내면과 거짓된 위선의 세상은 오히려 이 세상의 희망과 포용적 따스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반동의 방법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성장하고 어른이 되고 자라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죠, 작품의 원제(The Grown Up)처럼 말입니다.. 이 말은 제가 영어를 이해했다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제가 교과서적 영어는 좀 됩니다.. 맨투맨기초와 성문기본 정도는 밑줄 그어가면서 공부한 전력이 이꺼덩요,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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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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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싫은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심지어는 분노하고 증오하고 사라져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항상 있죠, 그들은 나를,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이 개인적 감정은 내가 정당하고 진실하고 정의롭다는 전제가 꼭 필요합니다.. 타인에 대한 감정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니까요, 나에게만 해가 되고 고통스러운 존재가 아닌 사회악인 존재가 나에게 해를 가할때 그 존재에 대한 부당성을 표출하기에 분노나 증오의 감정이 용납될겝니다.. 지금도 유행하곤 있지만 한 예로 일본의 유명 만화중에 '데스노트'라는 작품이 기억납니다.. 누군가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데스토트에 이름을 기입하면 그는 어떠한 방법이든 현실속에서 죽음을 당하는 내용입죠, 정당하진 않습니다만 인간이라면 한번쯤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누군가가 상처를 주는 악한 존재에 대한 거부감으로 부정적 상상을 해보게 되는 것이죠, 물론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일이길 바랍니다만, 만약 그런 개인적 복수나 대처가 현실적 폭력이나 사회적 불법성을 전제로 일어난다면, 아니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회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벌어질 수 있다면, 난, 우린 그들의 존재를 머리속에서, 삶속에서 지워버릴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만약 그 당사자가 나라면 나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던 이가 사라진 것에 대한 편안함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참고로 전 그가 누구나에게 악한 존재로 해가 가하는 인간이라면 그럴 수 있을것 같긴 합니다.. 조금은 정의롭지 못하더라도 정당하고 정의롭고 진실된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있다면,


    2. 공감되는 내용입죠,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인간관계를 맺고 삶을 영위하는 우리에게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명제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하나같이 다릅니다.. 모든 사람이 나 같을수는 없죠, 심지어 가족간에도 다릅니다.. 다투고 싸우고 애증으로 똘똘 뭉쳐서 심지어 증오하고 아픔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타인은 오죽하겠습니까, 하지만 대다수의 인간은 자신에 대한 주변인에 대한 감성적 반항에 국한되지만 이 사회속의 어떤 이들, 특히 갑질과 기득권과 권력욕에서 자신의 욕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인간들은 끊임없이 타인에 대한 가해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들은 대체적으로 사회의 중심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가진 이들입죠, 어떤 방식이든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득권의 영역속에서 개인적인 탐욕과 사적 욕구는 포용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멀리 볼 것도 없어요, 한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박모여성은 일반인조차 오랫동안 입원하지 못하는 간단한 수술로 수감된 구치소를 벗어나 병실에서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세상은 항상 위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입죠, 좀 염세적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러합니다.. 이러한 사회속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자신의 일을 하고자하는 한 여성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렇게 정당하질 않습니다.. 여성이기에 더욱 그렇죠, 이 작품도 그러한 여성의 관점속에서 세상이 주는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 여성의 권리를 말하고 논하고 싶진 않습니다.. 남성이라고 기득권의 중심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통념과 중심에서 내쳐지고 외면되고 가해를 입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데, 그게 정당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고마하고 이쯤에서 넘기고 소설은 영국의 스릴러 소설입니다.. "29초"라는 제목으로 출시된 대단히 매력적인 공감으로 그려진 스릴러소설입니다.. 재미집니다..


    3. 두아이의 엄마인 세라는 대학의 시간강사입니다.. 자신의 미래와 능력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지금의 강사자리에서 승진을 기다리고 있지만 쉽진 않습니다.. 그 이유로 자신의 상사인 러브록 교수가 끊임없이 치근덕대고 먹이사슬의 끝으로서 그녀를 이용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여성들과 달리 아직 자신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그런 세라에 대한 위협으로 러브록은 그녀의 미래를 목줄을 꽉 쥐고 그녀를 자신의 노리개로 만들려고 하죠, 그리고 이러한 그의 행태는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지만 그가 가진 재능과 사회적 위치와 기득권의 영역에서 이러한 그의 불법적 행위 전체가 묻혀져버리고 있죠, 그는 갈수록 악랄해지고 대놓고 세라에게 성희롱과 성상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녀의 미래는 바닥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거부하고 반항하고 대처해야함에도 러브록이라는 인간이 가진 권력은 그녀를 나락으로 밀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죠, 그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한 모든 권력을 그는 쥐고 그녀를 옥죕니다.. 그게 현실이죠, 두려움과 공포는 어쩔 수 없이 권력에 수긍하게 만들 수 밖에 없지만 끝까지 세라는 자신을 지켜보려 합니다.. 그러던 그녀에게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러브록에게서 최악의 상황을 전달받은 세라는 운전중에 살인사건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그 사건으로 인해 세라는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를 감시하던 누군가가 어느날 그녀를 납치합니다.......


    4. 상당히 재미지고 매력적인 공감가는 현실적 스토리의 무게감이 가득한 즐거운 스릴러소설입니다.. 특히 세라라는 여성을 통해 보여지는 모든 시점과 심리적 표현은 남녀를 불문하고 현실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만연해있는 남성위주의 권력적 구조의 형태를 과감없이 그려내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이나 여성의 사회적 관점에 역점을 둔다 만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모습들이죠, 우린 모든 것이 남성 위주의 삶속에서 소외되는 여성의 삶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가족과 우리의 주변과 우리의 모습을 보면 됩니다.. 굳이 합리화하지 않아도 우리가 여성을 바라보는 모든 시선의 중심에서 어떤 편견과 차별과 선입관이 없는 지 말이죠, 차를 운전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늦은 시간 거리를 걷거나 옷을 입거나 티비를 보거나 뉴스를 보거나 영화를 보면서도 우리가 판단하는 여성의 모습과 그 모든 것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거부감이 없는 지 말이죠, 저 또한 남성의 그것도 시대의 꼰대가 되어가는 중년의 아저씨로서 고민해볼 필요가 느껴집니다.. 만약 그 꼰대적 기득권의 중심속에서 벗어난 남성으로서의 삶이라 하더라도 소설속의 세라같은 여성이 당하는 부당하고 부정한 사회적 불편과 차별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무관심으로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삶으로 치부하고 합리화하고 살아가고 있진 않은 지 고민해봅니다.. 만약 나의 딸이, 나의 부인이, 나의 엄마가 나를 키우면서 그러한 아픔과 고통과 차별과 편견속에서 힘겹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죠, 이 작품은 단순한 스릴러소설로서의 한 인간에 대한 감정적 복수와 그 이야기를 대중적 공감으로 그려내긴 했지만 중심은 여성적 시선으로 바라본 사회적 차별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전반적으로 독자에게 보여지죠,


    5. 이러한 사회적 차별은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없습니다.. 남성 역시 차별과 소외를 당하고 살아갑니다.. 기득권이라는, 권력이라는, 갑이라는 사회적 존재의 가치가 주는 틈바구니속에서 우리 인간, 그중에서도 그들속에서 어쩔 수 없이 예속되어 살아가는 일반적인 삶의 세상속에서는 누구나 당하는 일이죠, 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은 인간에게 있어서도 통용되는 자연의 법칙이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약자로서의 내 살코기는 고통속에서 저며질대로 저며져 강자의 저장고의 바닥에서 차곡차곡 쌓여서 그 부유함을 채워주는 역할까지 하니 일반적인 자연의 법칙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죠, 인간에게 있어서 생존법칙은 먹이사슬의 순환구조와는 맞지 않습니다.. 인간은 느끼고 생각하고 다룹니다.. 희열을 가지고 즐거움을 가지고 욕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존재입니다.. 단순한 생존의 법칙속에서 인간이 존재하진 않습니다.. 그렇기에 먹이사슬이라는 구조속에서 누군가는 고통과 아픔과 괴로움을 당하며 저며지는 것이죠, 단순한 죽음이 아닌 끝없는 고통이 주는 아픔속에서 버려지는 것이라고 하면 좀 과격하고 느무 염세적일까요, 그래서 인간은 복수를 꿈꾸고 반항을 하고 선동을 하고 군중을 독려하죠, 불의와 부당함을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혼자로서는 힘듭니다.. 그렇기에 약한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보듬습니다.. 상처받고 고통받고 저며진 체 아파하는 동료를 찾아 그들과 함께 합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인간의 삶은 살만한 것이죠, 이 작품은 그러한 인간사회의 한 단면을 매우 재미지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말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삭제하고 싶은 이름이 하나쯤은 있다'..라고 말이죠, 그게 내가, 우리가 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6. 한 여성의 이야기로서 이 작품이 주는 감흥은 대중적이지만 무척이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사회적 권력으로서의 남성에게서 당하는 수많은 부당성에 대해서 여성의 대처와 그 영향에 대한 고통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냅니다.. 누구나에게 당사자가 아닌 이상 답답함이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소설은 그 대중적 답답함이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더 혼란스러운 정체적 고통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나가 아닌 이상 나의 고통과 감내하는 아픔을 이해하기 쉽진 않으니까요, 그런 소설속의 주인공에게는 그녀의 삶과 아픔을 이해하고 공유하고 포용하고 함께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라에게 있어서는 그녀의 가족 - 아버지 - 가 있고 그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주는 친구가 있죠, 그리고 그녀의 아픔을 경험한 그 누군가가 있습니다.. 나에게 닥친 사회적 차별을 지금 이순간에도 당하고 경험한 그 누군가는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세상은 강자와 권력과 기득권의 편으로 끊임없이 이어져가진 않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하지만 빠르게 변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약자가, 여성이, 사회적 소외자가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삶과 세상의 부당함을 알리면서 말입니다.. 이 작품은 흔한 대중소설이죠, 전형적인 스릴러소설입니다.. 심지어는 누구나 아는 사회적 문제나 현상을 다룬 작품입니다.. 오히려 조금은 극단적이고 과한 감정선으로 몰아가는 느낌도 있는 작품입죠, 큰 진중함이나 무게감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사회적 딜레마를 묵직하게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허나 개인적으로 세라라는 인물의 이야기와 후반부의 결말에 있어 그녀와 그녀의 삶속의 정의로움이 선택한 방법은 가장 매력적인 즐거움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한 29초의 찰나 사이 세라의 삶이 뒤바뀌어버렸지만 그 29초가 새로운 세라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친 것인 지는 한번정도 읽어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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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즌 아티스트
조너선 무어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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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젠 돋보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이가 되어버린 중년의 배불뚝 꼰대 아저씨, 심지어는 모니터 화면창마저 흐릿해져버려 돋보기를 쓰고 타자를 쳐야될 정도로 나이가 들어버린 인생의 덧없음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서러운 아저씨, 그런 나에게도 사랑이 필요할 지 모를 일입니다.. 가정을 가지고 아이가 성장하고 버젓이 아내가 있는 아저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꿈꿉니다.. 실재하지 않을 사랑입죠, 무한정 그런 내로남불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보거나 읽거나 경험하게 되면 한번씩 떠오르는 상상속의 사랑입죠, 나에게 저런 경험이 생긴다면, 나에게 누군가가 갑자기 가슴속에 들어온다면, 단지 그것은 나이 쳐먹고 주책이라고, 불륜스럽고, 저질스러운 행우지라고 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굳이 합리화할 필요도 없이 현재의 삶과 인생과 헛헛한 중년의 슬럼프를 겪는 아저씨의 같잖은 욕망덩어리로서의 변입죠, 이제 나에게도 저런 사랑이 가능할까, 한순간에 휘몰아치듯 누군가가 순식간에 나의 모든 것을 잠식하면서 사랑의 나락으로 끌어내는 것이 가능할까, 많은 것이 메말라버린, 삶의 현실에 찌들어버린 매력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나라는 존재에 있어서 그러한 사랑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불가능하다는 단정과 함께 상상은 피식, 생각을 접습니다.. 나도 모르게 자괴감이.....


    2. 사실 사랑은 어려워요, 남녀간의 사랑은 쉽지 않죠, 결혼을 하고말고와 상관없이 사랑은 끊임없이 난관에 봉착합니다.. 사랑이 사랑이어야함에도 늘 사랑은 사랑 그 자체의 감정만이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죠, 언제나 그대로인 사랑은 인간이라는 우리의 감성속에서 퇴색되곤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배려와 양보와 포용과 심지어 포기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것 역시 사랑의 일부라 할 수 있습니다만 언제나 사랑의 근원적 욕망은 갈구함을 전제로 하죠,, 끊임없이 상대를 원하고 집착하고 바라보는 것이 사랑의 목적입니다.. 인간이기에 식어버린 그 감정의 도화선을 다시 되살려 불씨를 불어보려 하지만 동일한 존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불태우기에는 제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불씨가 존재하고 그 불씨의 따스함을 끊임없이 배려와 양보와 포용과 이해와 수긍으로 꺼뜨리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사랑은 돌아오는거야, 그게 나만의 상상속의 사랑이라고 할지라도, 안돌아오면 자신을 돌아봐봐봐, 라고 헛소리 좀 그만하겠습니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조너선 무어라는 아직은 크게 알려지지 않은 미국 스릴러작가의 고급스러운 스릴러소설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을씨년스러운 축축한 겨울날씨를 배경으로 하드보일드한 느낌마저 감도는 멋진 스릴러소설 "포이즌 아티스트"입니다.. 게다가 심리적 불안과 혼란이 가득한 감성적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그런 작품입죠,


    3. 소설속의 주인공 케일럽은 독성학을 전공한 화학자입니다.. 그런 그에게는 브리짓이라는 연인이 있죠, 그런 그녀와 케일럽은 다툽니다.. 심각한 싸움으로 그의 이마는 찢어지고 브리짓을 그를 떠나버리죠, 그리고 케일럽은 우울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집을 벗어나 호텔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케일럽은 생각치도 못한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블랙 실크 드레스를 걸친 그녀, 짙은 향수와 잊지 못한 고혹스러운 자태를 가진 그녀를 바라본 케일럽은 금새 사라진 그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늦은 시간 호텔 근처의 바에서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죠, 그리고 프랑스산 압생트로 베르트 드 쥬를 마시는 그녀에게 빠져버립니다.. 다시금 진득한 내음과 손길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여인을 생각하며 케일럽은 브리짓과의 헤어짐으로 인한 혼란속에서도 그녀를 잊지 못해 다시 그녀는 만났던 곳으로 다음날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케일럽은 살인사건과 관련된 탐문을 받게 됩니다.. 케넌이라는 형사에게서 자신이 전날 있었던 곳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한 남자에 대한 탐문을 받지만 케일럽은 자신과 함께 있었던 묘령의 여인에 대해서는 함구를 하죠, 그리고 자신의 친구인 법의학자 헨리의 요청으로 살인사건과 관련된 독성에 대한 도움을 주게 됩니다.. 그 사건이 바로 그에게 탐문을 했던 형사들이 말하던 사건임을 케일럽은 인식을 하게 되죠, 며칠동안 브리짓을 잃은 고통과 자신에게 우연히 나타난 한 여인의 감정속에서 허우적대던 케일럽은 운명처럼 묘령의 여인을 찾기로 하죠, 자신의 스케치로 그녀를 그려서 자신이 만난 그 주변의 바에 돌립니다.. 계속되는 연쇄살인과 함께 그에게 그녀가 전화를 걸어옵니다.. 자신을 에멀린이라 칭한 그녀는 그를 만나려하죠, 그리고 그녀를 만나며 그동안 그의 주변에서 발생했던 혼란과 의문의 살인은 더욱더 미궁으로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에멀린, 그녀는 누구일까요,,,


    4. 소설은 끝없이 축축함과 을씨년스러움을 배경으로 독자들에게조차 혼란스러운 사건의 궁금증과 의구심을 이끌어냅니다.. 우연히 만난 한 여성의 정체와 그 의도속에서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과 연관성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고급집니다.. 아마도 주변의 소재로 설정한 그림과 압생트라는 술에서 비롯한 끈적한 남녀의 관계적 혼란들이 매력적인 고전 하드보일드한 미스터리소설의 한 형태로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 케일럽이라는 인물의 시점과 심리를 중심으로 현재의 사랑하는 여인과 우연히 자신에게 찾아든 팜므퐈탈의 한 여성의 격정적 사랑에 혼란스러워하는 지적인 남자의 심리적 불안과 함께 살인사건의 영역을 다루는 것이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문체와 스토리로 이어지는 것이죠, 소설은 대체적으로 밤의 어두운 시선속에서 지역적 배경으로 외부의 내음을 만끽하게 합니다.. 안개와 끊임없이 내리는 겨울비가 그려내는 감성적 분위기는 이 작품이 주는 혼미한 일상과 감정적 혼란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죠, 그리고 에멀린이라는 여성의 이미지는 고전 소설속에서 현혹하는 퇴폐적 여성의 중독성을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그녀가 모는 고전 클랙식 자동차와 도시의 오래된 고택에서의 한 유명화가의 작품과 같은 소재나 압생트와 같은 몽환적 중독에 이르게하는 알콜등은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하는 암울하고 비현실적인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그려내는데 한몫을 단단히 합니다..


    5. 작품은 한 남성의 시선을 통해 그가 겪는 상황으로 이어지기때문에 집중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잘 읽히죠, 그에게 닥친 혼란스러운 상황속에서 스릴러소설이 주는 매력을 만끽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서사적 느낌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조금 혼란스럽기도 해요, 이 소설의 중점이 되는 연쇄살인사건과 관련된 이야기가 큰 줄기를 차지하고 흐름을 이어가지만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남녀의 격정적 사랑의 감정입니다.. 아주 중요한 설정이자 개연성의 중심이긴 하지만 이 에멀린이라는 여성적 정체성과 존재의 의도에 집중하다보니 이 작품의 독자적 호기심과 의심에 집중하게되는 연쇄살인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비롯한 주인공 케일럽에게 숨겨진 과거의 스토리는 그 생명성을 크게 부여받질 못하는 것이죠, 그렇다보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경찰이나 친구인 법의학자 헨리의 영역은 자연적으로 좁혀질 수 밖에 없습니다.. 후반부의 전반적인 흐름의 반전이 밝혀지고 본질적인 상황적 진실이 등장하게 되지만 흐름에 따른 전반적이 눈치는 이미 독자들도 짐작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고집스럽게 그 상황적 혼란을 끝까지 이어가려는 작가의 인물적 감정선과 의도에 따라 독자는 조금 더 나은 상황적 이해만 만나게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 이야기의 마무리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애초 시작점에서 보여주었던 모든 부분들이 후반부에 그 진실의 끝을 찾아나가지만 마무리에 이르러서는 헛헛하고 미적지근하게 처리되어버리는 것이죠, 아무래도 주인공의 인물적 집중도에 너무 작가님께서 집착하신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그 인물이 주는 입체감으로 인해 초중반에 드러난 감성적 서스펜스가 돋보였긴 하지만 너무 끝까지 인물에 부여된 혼란적 심리와 난삽한 상황적 해결만 남겼던 것 같습니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대단히 고급지고 지적이고 매력적인 심리스릴러소설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배경이나 주변의 상황들, 인물의 심리적 혼란으로 치닫는 문체가 보여주는 감성적 공감과 동조적 의도는 아주 뛰어납니다.. 특히나 두명의 여성에게서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심리적 두려움과 혼란적 감성은 무척이나 매력적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우연히 자신에게 격정적 사랑으로 끌어들이는 여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남성에게 벌어지는 주변의 이야기와 밝혀지지 않은 과거의 추악한 진실의 아픔을 드러내는 연결적 요소들은 이 작품이 주는 즐거움중 하나이죠, 대다수의 여성적 시선의 혼란스러운 상황적 심리 스릴러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는 요즘 이렇게 전형적이고 고전스러운 남성적 심리 스릴러의 분위기가 몽환적이 작품은 충분히 즐거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하드보일드한 감성적 문체와 팜프파탈의 매력들이 끊임없이 넘쳐나는 대화체와 문장의 감성은 흔한 대중스릴러소설이 주는 흔한 감성적 공감보다는 조금 더 우아하고 엘레강스하고 고저스한 퀄리티가 느껴진다고나할까요, 맨날 맨투맨 기초 영문법만 들고 댕기다가 마스터하고 간만에 토플 완성 영문법 1권 정도 들고 다느는 듯한 뿌듯함은 있습니다.. 읽기에 큰 무리가 없고 읽음에 있어서 막히는 부분도 그렇게 크지 않은 잘 읽히고 가독성은 뛰어난 작품이니만큼 기회가 되시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듯 싶은 수작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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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 1 - 전쟁의 서막
김진명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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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능하면 꾸준히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아이들이 물어보죠, 대부분은 미디어를 통해서 알게된 근대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대다수입니다.. 중요한 부분입니다.. 누군가의 관심으로부터 시작된 정확한 역사관은 수많은 사관적 견해의 의견속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역사적 진실을 판단함에 도움이 되니까요, 단순하게 미디어에서 본 내용만으로 그 역사의 진실이 이러하다라는 편견을 가지기보다 누군가와 그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혹여 생각지못한 역사적 이야기의 놓친 부분을 끄집어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일제 식민지화에서의 독립운동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그 주체들과 아픔을 안고 살아간 민족의 역사적 고통을 부모된 입장이지만 저 역시 어떻게 정확하게 알겠습니까, 오히려 아이들의 역사인식의 기준보다 더 밑에 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렇게 어른 역시 아이를 통해 그동한 무관심했던 역사적 진실을 배우는 것이죠, 많은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오면서 간과하고 놓쳤던 역사속에 담긴 의미를 이렇게라도 깨우쳐가는 것이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학습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우린 5천년 역사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우리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정말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솔직히 말해봅시다.. 지금 우리의 모습속에서 항상 역사속에서 제대로 인지하고 관심을 가지고 알고 싶고 깊게 다룰 수 있는 역사적 시간속에 조선시대를 제외하고는 어떨 지,,


    2. 내가 나고 자라고 살아온 역사적 이야기를 나만이 알고 있다면 다른 누구가 나에 대한 존재적 가치를 인정해줄 수 있을까요, 있는 그대로의 현실속의 내가 존재함은 누군가에게 나의 삶과 인생에 대한 판단적 근거가 작용했기 때문일겝니다.. 과거가 없는 현재의 나는 없는 것이니까요, 나라도 다르지 않죠, 현재의 나의 조국과 나라의 틀을 잡아온 과거의 대한민국의 역사적 삶이 있었기에 우린 당당하게 인정받고 그 진실의 영역속에서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역사적 자료를 가진 조선시대를 벗어난 고려와 삼국시대와 북방의 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고구려와 앞선 고조선의 역사, 현재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시간보다 더 오랜 역사적 시간을 보내온 고대 광활한 북방의 영토를 지배했던 민족으로서의 동이족과 부여의 고조선에 대해서 우린 얼마나 알고 얼마나 그 역사적 자료를 보관하고 있을까요, 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우리가 아는 고대사의 중심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속에서 시대적 역사의 편견속에서 제시된 간단한 역사적 자료외에는 지금도 중국의 문헌과 역사서속에서 그 정체성을 찾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미명하에 우리를 자신들의 속국으로 밀어넣어려는 의도에 큰소리 한번 제대로 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죠, 허나 조금씩 그 정체적 역사의 진실을 찾기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국민으로서 그 역사의 숨결속에서 존재성을 인정받는 우리나라의 아이로서 그동안 우리가 외면하고 무시하고 무관심했던 역사를 다시 돌이켜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아무리 그것이 흥미위주의 대중적 화제가 될 지언정 그렇게라도 서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 또한 내 나라의 역사를 알아가는 한 방법이라 이 연사 또 꼰대처럼 주절주절 외칩니다..


    3. 유명한 작품이자 유명한 대중소설 작가입니다.. 김진명 작가의 "살수"가 재간되어 다시 선보여집니다.. 아시다시피 김진명 작가는 과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아주 강력한 베스트셀러로 그 위상을 떡하니 세우시고 끊임없이 재미진 소설을 집필해오시는 국뽕(?!)작가님이시죠, 어감이 좀 저급해도 좋은 의미라 생각해주십쇼, 지금은 그 좋은 의미를 말하려고 하니, 김진명작가는 주제의식이 확고한 분이십니다.. 우리나라라는 이 대한민국의 사회적 문제와 그 틀을 어떻게하면 대중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드러낼까라는 노력으로 작품을 줄기차게 집필해오시는 분이시죠, 아마도 그의 작품을 읽어보시지 못한 분을 계셔도 그를 모르는 대중은 그렇게 많지 않을겝니다.. 근래에는 한국적 역사적 문제에 대한 인식적 토대를 만들어나가시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계신 분이시기도 하죠, 아직까지도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고구려'의 경우에는 현대에서 잊혀진 고대 고구려사에 대한 작가의 역사적 소명이 대단히 위력적으로 드러난 작품이고 베스트셀러라고 하더군요, 뭐 전 아직 읽어보질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전에 작가는 "살수"를 통해 고대 북방민족으로서 고구려의 '을지문덕'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대중에게 알린 적이 있습니다.. 물론 우린 학교에서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으로 인해 수나라가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역사적 자부심을 일깨워주는 명제를 머리속에 각인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말고 뭘 더 배웠을까요,


    4. 이 작품은 줄거리가 필요 없습니다.. 고구려의 영양왕시대의 을지문덕이라는 걸출한 인물로 인해 진나라, 한나라를 이어 우리가 아닌 삼국지의 위촉오시대를 지나 위진남북조시대의 혼란한 시기를 통일한 수나라가 고구려를 정벌함에 있어 이를 지켜낸 살수대첩이라는 그 단순한 명제에 대한 역사적 진실과 허구적 스토리를 엮었으니 우리가 과거 또는 현재 국사쌤을 통해 이야, 고작 고구려의 군사 몇만명으로 100만이 넘는 수나라 대군을 물리쳤어, 라고 하던 말을 그냥 소설속에서 다시한번 상상하며 즐기는 것이죠, 즐겁고 재미지고 무척이나 흥미진진합니다.. 머리속에서 그 이미지가 입체화되면서 을지문덕과 과거 고구려라는 나라가 우리의 조상이라는 자부심이 불끈 솟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우린 동북아의 중심, 우리의 뿌리를 잊지말자는 작가적 소명을 다시한번 머리속에 기억하는 것이죠, 하지만 앞서 말했지만 이 작품속에서 그려지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이야기 또한 우리가 보관하고 지켜온 역사적 자료가 아닌 중국에서 수천년에 걸쳐 내려운 역사서를 중심으로 그 내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매우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우리의 이야기지만 나의 뿌리인 을지문덕과 고구려의 이야기지만 소설은 어쩔 수 없이 중국의 역사와 인물과 그 중심을 토대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현존하는 역사적 진실의 이야기이니까말이죠, 이것은 작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역사적 이야기의 대부분은 중국의 문헌에서 나오는 것들의 연결선상에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이야기에 덧입힌 역사적 진실로서 추정할 뿐입니다.. 안타까운 일입죠,


    5. 하지만 작가는 비록 그러할지라도 역사적 진실을 꾸며지고 숨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왜곡되지 않은 역사적 진실의 틀속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물적 허구를 작가적 상상속에서 그려내어 대중적 즐거움으로 혹여나 잊고 외면했던 역사를 조금이나마 관심속에 두려고 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마 이러한 작가적 노력은 제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시점과 틀과 구성의 배경들이 중국의 수나라의 양제 양광의 시점속에서 고구려를 바라보는 이야기로 꾸며짐을 미루어볼때 조금 더 사실적인 역사적 진실에 근접해보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만고 제 생각이긴 하지만서도, 여하튼 이 작품은 그러한 고구려사의 가장 중요한 시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이 시기는 아주 중요하죠, 수가 중국을 통일하고 고구려를 정벌하는 시점은 고구려의 쇠락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거니와 이 전쟁으로 인해 수의 자멸과 당의 성립이 이루어지고 이로인해 고구려는 연개소문이후의 멸망의 길과 함께 우리의 삼국시대는 아시다시피 통일신라의 연결로 이어지니까 말입니다.. 우찌 좀 역사적 공부가 되셨는 지,, 아, 참고로 유명한 안시성 싸움도 을지문덕장군 이후 등장한 '연개소문'과 관련이 있죠, 연개소문은 중국에서도 대단히 칭송받는 장수라는거 아시죠, 모름 할 수 엄꼬, 근데 우린 연개소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단순히 왕을 넘본 반역과 고구려의 멸망에 일조한 부정적 인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 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아따 꼰대 그 참 말 많네....


    6. 10년만에 다시금 재간된 소설 "살수"는 무협지와도 같은 인물적 스토리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조금은 과장스러운 인물적 입체감은 이 작품이 대중소설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해주죠, 독자들은 이러한 허구적 포장속에서 역사적인 진실의 그림찾기를 하게 됩니다.. 을지문덕이라는 인물에 대한 적확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추한 스토리적 구성은 매우 즐겁습니다.. 역사적 긍지를 이끌어내는데 있어서도 작가의 문장력은 그동안 닦아온 역량을 토대로 독자들의 공감을 잘 만들어내죠, 오히려 작가는 앞서 말씀드린 중국의 역사적 자료에 일부분 의지한 느낌처럼 중국의 수나라의 양제에 대한 그리고 중국의 고구려 정벌에 대해서 선과 악의 흑백논리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나름의 객관적 진실을 토대로 인물에 대한 허구적 상상력을 덧입히는 부분만 존재할 뿐이죠, 물론 사리지고 잊혀진 역사의 틈을 메꾸는 방향성에 있어서 작가적 의도가 담기긴 했지만 이 작품속에서 작가는 중국이나 우리의 역사를 어떠한 점도 왜곡하지 않고 확인된 역사적 자료를 중심으로 그 객관적 진실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은 흥미위주이고 집중도가 높은 역사적 팩션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어느정도 가벼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죠, 흔한 무게감 넘치는 진중한 역사적 이야기를 다룸에 있어서 묵직함도 좋긴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단순하고 간결하고 가볍게 읽히지만 읽은 후 내용의 진실을 검색하고 판단하고 알아가는 방법으로서 이 작품이 주는 영향력도 적지않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그동안 이 작품을 모르셨던 분들이나 고구려의 역사와 을지문덕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시라면 한정도 읽어보심 좋으실 듯, 이 작품에서 살수는 대단원이지만 그 이전의 역사적 이야기가 무척 재미집니다.. 요동성과 고구려의 북방영역도 함 살펴보시면 즐거우실 듯... 듯듯,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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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어머니의 날 1 타우누스 시리즈 9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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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군가의 말처럼 '악은 특별하지 않고 항상 인간적이며 우리와 함께 자고 함께 먹는다'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악은 멀리있지 않죠, 언제나 우리의 주변을 서성이며 달려들 틈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린 인간이기에 이러한 '악'을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는 그 '악'을 이용하고 또 누군가는 그 '악'에 상처받고 고통을 당하고 지옥을 맛보죠, '악'은 인간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리고 이용할 줄 압니다..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근원적 욕망과 자아의 일그러진 본능은 '악'이 구현되는 가장 매력적인 방법입죠, 항상 하는 말이지만 생물이 존재성은 탄생과 동시에 자신만의 본능에 충실한 존재죠, 하지만 인간은 생각과 학습과 교육과 공동체의 인식과 사회성을 배우는 존재입니다.. 야생적인 존재가 아니죠, 약육강식의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난 존재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서 인간은 우리만의 삶의 틀을 깨우치고 만들어나가는 존재이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죠, 대다수의 인간과 우리의 삶은 우리가 경계하는 반사회적 행위라고 일컫는 범죄적 야만성을 막기위해 그 울타리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려합니다.. 하지만 항상 이 사회적 통제의 틀을 벗어나 야만과 파괴적 본성으로 가해만 저지르는 인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런 인간은 우리에게서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크든 작든, 옳든 그르든, 추악하든 깨끗하든, 이러한 개인적 욕심에 물들어 주변인에게 고통은 주는 인간은 지금 이순간 나와 당신의 주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 틀을 넘어서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


    2. 왜 이런 생각을 하냐믄 하루에도 수많은 매체를 통해 아동 폭력과 학교 폭력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사회적 폭력을 접하기 때문이죠, 특히 우리나라에서 아동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도 60년대의 기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감금하고 방치하고 폭력을 휘둘러 살인을 저지르고 불구자로 만들고 심지어 이로인한 가책조차 가지지 못하고 있는 부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그 규제의 방법이 이슈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아동 폭력과 학교 폭력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세계에서 치안이 가장 뛰어난 나라중 하나라고 합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그리고 우리의 주변에서 개인적으로 사적으로 발생하는 범죄는 그 안에서 해결하고 처리되어야한다는 인식들이 여전히 우리의 삶을 침범하는 '친근한 악'이 편안하게 또아리를 트는 것이죠, 자신의 친부모에게 폭력을 당한 아이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뉴스는 현재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정치적 이슈의 끝자락에도 끼어들 지 못합니다.. 우린 지금 그런 사회속에서 살아갑니다.. 간만에 다시 돌아온 타우누스 시리즈의 9번째 작품입니다. 넬레 '소시지'노이하우스 누님께서 집필하신 "잔혹한 어머니의 날"입니다.. 분권으로 나눠진 작품이지만 아주 매력적인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재미있어요,


    3. 국내에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나온 지도 10년 가까이 되었나요, 여하튼 9번째 작품이라는데 전작들의 내용은 머리속에서 지워진 지 오랩니다.. 그리고 남는 것은 피아와 보덴슈타인의 캐릭터성입죠,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이들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아픔을 주고 상처로 남은 것 같은데 이렇게 세상은 또 다른 듯 변함없이 이어져갑니다.. 여전히 프랑크푸르트의 인근 타우누스 지역의 호펜하임 경찰서의 이야기입니다.. 프롤로그에서 1981년의 한 상황에서 여자아이가 한 아이에게 살해되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조금 앞선 한달전의 상황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엄마의 죽음과 이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되는 이야기가 드러나죠, 그리고 현재시점, 피아는 그동안 살던 목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고 보덴슈타인은 개인적 문제를 어느정도 갈무리하고 미해결 사건을 담당하며 다시 반장으로서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 지는 전작들을 살펴볼밖에요, 여하튼 그렇게 다시 변함없는 경찰로서의 일상으로 살아가는 피아에게 사건 신고가 접수되고 시체가 있는 곳으로 출동합니다.. 그리고 한 노인의 죽음과 마주하죠, 테오 라이펜라트라는 인물은 과거 보육원이었던 저택을 자신의 부친이 사들이고 그곳에서 죽기전까지 생활하다가 죽은체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고 이웃집의 여자 아이만 그의 친구였던 모냥입니다.. 그리고 그는 동물에 대한 애정이 많은 인물이었지만 주변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며 인간을 멀리하는 괴팍한 인물이었던 모냥입니다.. 주변을 탐문하던 피아는 여자아이에게서 테오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한마리의 개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저택 뒷편의 마당 견사에서 아사직전의 개를 발견하게 되죠, 그리고 개가 있던 공간에서 생각지도 못한 증거가 드러납니다.. 인간의 뼈들이었습니다.. 한구의 시체가 아닌 듯 보이는 사건의 정황으로 피아는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수사를 시작합니다.. 아시죠, 피아가 대단히 직관적이고 정확한 감각으로 사건의 냄새를 잘 맡는 것, 이 사건은 그렇게 시작하여 장장 두권에 걸쳐 사건을 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테오의 죽음으로 인해 그 저택에서 벌어졌던 과거의 사건이 들춰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앞서 우리가 인지했던 과거 누군가가 자신의 살인본능에 눈떤 시작점과 함께 한 여성의 엄마찾기 스토리가 살인사건의 이야기와 함께 엮여 나가기 시작합니다..


    4. 상당히 구조가 복합적입니다.. 프롤로그의 상황이 피아가 다루는 살인사건과 어떻게 연결되어 이어지는 지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점이 이 작품에 집중하게 되는 호기심을 꾸준히 이끌어냅니다.. 이전 작품도 꼼꼼하고 착실한 서사적 미스터리를 이용한 크라임소설의 본질에 충실했던 기억이 납니다만 이 작품도 이러한 상황적 긴장감과 꾸준한 미스터리적 측면을 이어나가며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단순한 죽음으로 보여지는 한 노인의 과거와 관련하여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들과 혼란적 진실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사건을 미궁으로 흘러들어가죠, 그리고 이 가족의 이면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관계적 불편감은 아주 큰 대중적 호응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그들의 삶과 드러나지 않고 그들의 숨겨진 삶속에서 감추어진 체 추악해져만 가는 인간의 '악'의 중독은 혐오스럽기까지 하죠,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속에서 우린 어떤 거부감도 가지지 않습니다.. 작가의 의도처럼 세상에는 이러한 태생적 '악'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작가는 우리의 주변에서 틀속에서 살아가지만 대다수의 자기위주의 반사회적 인격을 가진 인물에 대해서 꾸준히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들이 어떤 형태로 다가와 가식적 친근함과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게 만드는 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식과 속임에 눈이 멀고 무관심으로 가려졌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그 추악함이 어떤 아픔과 고통과 진실을 토해내는 지 작가는 차근히 보여줍니다.. 이제는 원숙미가 확연히 돋보이는 작가적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속에서 그려지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울 소세지 누님에 대한 애정이 조금 더 크집디다.. 나만 그런가, 응 나만 그래


    5. 1권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던 미스터리적 진실을 2권으로 들어서서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급격하게 변화되죠, 끝없이 이어지던 긴장감과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풀여나가고 미스터리의 중심이었던 테오의 죽음과 발견된 인골의 정체와 함께 프롤로그에서 살인을 저지른 아이에 대한 진실의 간격이 좁혀들기 시작하죠, 하지만 작가는 전형적이지만 재미진 미스디렉션을 좁혀진 인물들의 내면과 상황에 배치를 하면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또한 전혀 무관하게 이어지던 한 여성의 엄마찾기 또한 하나의 사건으로 뭉쳐져버리면서 사건은 속도감과 함께 대단한 활동성을 장착하고 끝으로 달려갑니다.. 독자들 역시 피아의 상황과 그의 심리적 긴장감에 공감하며 끝까지 집중해나가기 시작합니다.. 단지 이 작품은 생각했던 방향의 틀과 미스터리의 해결에 있어서 그 방향성을 꺽질 않고 지긋이 나아갑니다.. 어설픈 반전이나 결말적 충격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작가가 의도한 미스터리와 진실의 방향을 그대로 따라가는 작품입죠, 오히려 단순하고 구성적 깔끔함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을 했구요, 전형적이고 대중적이지만 작가의 노하우가 잘 담겨진 스릴러소설의 매력도 만족스러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아쉬움을 끄집어내자면 한 여성의 엄마찾기라는 갈래의 스토리와 관련하여 곁가지처럼 느껴지는 안타까움은 있었습니다.. 워낙 리이펜라트라는 인물과 관련된 본류에 집중된 사건이지만 후반부의 상황적 측면은 오롯이 이 피오나라는 여성의 스토리에 집중되는 상황이라 조금 더 갈래의 스토리에 그 힘을 실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부분과 함께 이 여성의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과 피아가 수사하는 사건과의 시간적 간격이 그렇게 길지 않고 1달 정도의 시간적 틈이기 때문에 챕터의 시작은 피오나라는 여성의 과거 이야기가, 그리고 이어지는 피아의 사건은 현재의 이야기가 연이어 진행되기에 머리 나쁜 저로서는 한참 헷갈려했던 부분도 있었다고 실토합니다..


    6. 언듯 기억에 타우누스 시리즈는 재미는 있지만 참 군더더기같은 문장과 주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작품이구나, 우리 소시지 누님이 대중적 공감과 상황적 구성과 인물에 대한 고민을 워낙 많이해서 분량도 많고 작품이 조금 지리해지는 부분이 없지않아 조금은 있구나, 그래서 항상 아쉬움이 1정도는 남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이번에는 사건에만 집중합니다.. 그리고 피아와 보덴슈타인의 삶과 관련하여 드러나는 군더더기 역시 사건과 관련이 있죠, 그렇기에 작품은 아주 매력적으로 집중해서 가독성을 전달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전작들의 내용이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갈수록 나아지는 작품적 깨달음을 울 노이하우스 누님께서 피드백을 제대로 받고 계신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언제나 가장 최근의 작품이 가장 재미진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만 이 작품이 그렇습니다.. 머리가 나쁜 까닭이겠지요, 특히나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아동폭력과 관련된 소재로 공감을 주기에 더욱 즐거웠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이중성과 그 내면의 '악'의 모습들이 섬뜩하면서도 매력적으로 그려지기에 상당히 재미진 측면이 있죠, 분량이 제법 길고 꽉찬 작품임에도 중간중간 맥이 끊기거나 지리한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은 부분 역시 누나 짱짱, 오히려 마구잡이로 속도감에 치우쳐 작품을 훌렁 읽어버리는 것보다 차근차근 조목조목 사건과 미스터리의 궁금증에 집중하며 사건속으로 빠져들어 조금 길지만 시간을 들여 읽는 즐거움으로 이 작품이 준 매력은 개인적으로는 아주 좋았다, 마 그런거지(이명박톤), 전작들에서 이어지는 스토리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주변의 일들은 무시하고 넘어가도 될 정도이니 혹여라도 처음 타우누스 시리즈를 접하시는 분들이라도 이 작품 "잔혹한 어머니의 날"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사족으로 요즘 뉴스에서 밝혀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과 관련된 이야기와 연결해보시면 더 현실감이 느껴지실 듯,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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