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멀 피플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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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참 우린 생각이 많다.. 살다보면 단순한게 가장 빠른 답일때가 많지만 우린 사람이라서 참 생각이 많다.. 항상 그렇다.. 소심하다고해도 되고 진지충이라해도 상관없고 느리다고 해도 어쩔 수없지만 모든 일에 있어서 생각이 많다는 것은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대체적으로는 생각이 많아서 나쁜 것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힘들지라도 내 생각을 남이 아는 것도 아니고 뭔가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으니 굳이 남들이 내 생각가지고 뭐라고 할 일은 없다.. 그래서 보통은 생각이 많은 사람은 뭔 일을 해도 웬만해서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드물기도 하다.. 워낙 생각이 많으니 가장 좋은 방법을 고민하고 사고하고 생각하고 되짚어보고 돌다리처럼 두드러도 보고 하느라 그 동안 자기 머리나 아플까, 남들 눈에는 그리고 일의 결과에 있어서는 탓할 부분이 그렇게 크질 않을게다.. 그러면 생각이 많아서 굳이 나쁠게 뭐냐, 자신이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거는 지가 원한 일이니 당연지사일테고 그럼 생각은 인간으로서, 사회인으로 나쁠게 그리 많지 않아보이는데.... 그렇지 않나, 그럼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는게 제일 좋은 답안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과 사고와 차곡차곡 쌓아진 돌다리가 있음이 제대로된 답안을 마련하는 방법이거늘, 아닌가, 아니다.. 그렇다 아닐 경우도 많다.. 인간이기에 우린 어쩔 수 없이 관계속에서 살아간다.. 서로간의 역학적 관계속에서 생각은 언제나 복잡하기 마련이다.. 나만 생각하고 사는건 아니니 말이다..


    2. 그중에서도 남녀간의 친밀한 관계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참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아마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이 각자의 생각에 기대기 때문일게다.. 소통이라는 가장 대중적인 관계적 행위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들의 상호 교란관계는 시대를 불문하고 이어지고 화성과 금성을 왕래하고 있다.. 참 헷갈리는 관계이지, 자신을 고려한다면 그것으로도 문제가 되고, 상대를 배려한다면 또 방법적으로도 고민스럽고, 뭐 이런 남녀의 관계는 자신의 의지와 존재성과 맞물려 참으로 지랄맞게 엇갈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랑이라는 전제가 항상 깔리고 그 사랑속에서 서로를 확신하고 신뢰를 이어가지만 인간이라는 이 존재성이 자꾸 생각을 만들어내고 혼란을 일으키니 죽을 맛이긴 하다... 그래서 항상 남녀의 관계는 처음 시작한 그 시절, 그 순간의 감정이 가장 중요한 법인게지, 아마 그때 그 사랑의 시작점이 어떻게해서든 남아있다면 말이다.. 이렇게 참 생각많고 고민많은 한 시대의 성장을 만들어가는 남녀의 이야기를 보게되면 많은 생각이 든다.. 이제 세상의 흐트러짐속에서 자신을 부여잡고 판단을 제대로 하게되는 나이에서 어느듯 하늘의 명을 알게되는 대단히 멋진 나이로 접어든 중년의 배나온 아저씨로서 이렇게 갓 어른이 되어가는 한 남녀의 사랑과 그들의 복잡다단한 삶의 고민거리를 마주하고 있으면 그시절의 나의 삶으로 돌아가는 낭만과 그 시대를 살아온 경험자로서의 후회가 함께 몰아친다.. 비록 우리가 아닌 저 멀리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와 더블린에서 살아가는 한쌍의 남녀의 이야기일지라도,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


    3. 아일랜드의 소도시 캐릭클리에서 살아가는 코넬과 매리앤은 졸업을 앞둔 고딩들이죠, 메리앤은 변호사인 부자 부모를 둔 여학생이지만 학교에서는 소외되고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 항상 혼자인 여학생입니다.. 그리고 코넬은 그런 메리앤의 저택에서 청소일을 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남학생이죠, 물론 이 둘은 공부를 잘합니다.. 코넬은 외모와 운동을 비롯해 모든 것에 뛰어남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잘난 아들입니다.. 메리앤은 가진거라고는 돈과 자신의 성적밖에 없는 누구나 싫어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별난 존재입니다.. 그런 메리앤에게 자연스럽게 코넬은 다가옵니다.. 이들은 사랑이라고 느껴지는 가장 근원적인 친밀감으로 서로를 대합니다.. 메리앤은 일반적이진 않죠, 삶과 생각과 존재에 대한 자신만의 틀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찾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 중심에 코넬이 있죠, 코넬 역시 다르지않습니다.. 모든 면에서 주변에서 인정받고 뛰어난 공부재능을 가졌지만 자기 스스로에 대해 자존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코넬 역시 메리앤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성을 제대로 느끼게 됩니다.. 이런 이끌림은 그들이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순간부터 끊임없이 되풀이됩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임에도 이들은 단순한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묶이질 않죠, 자아와 사회적 관계의 혼란속에서 끊임없이 주변의 삶속에서 부침을 겪으면 성장통을 앓아가죠, 학내에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메리앤을 코넬은 누구보다 잘 알지만 학교에서 그녀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외면합니다.. 또 그러면서 메리앤의 추천으로 그녀와 같은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을 선택하게 되죠, 부침이 심한 고딩시절을 보내고 성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삶이 그들 앞에 다시금 펼쳐지면서 메리앤의 삶과 코넬의 삶은 또다른 시작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예전같지는 않죠, 모든 것이...


    4. 이 작품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닥 가독성이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달달한 로맨스가 펼쳐지지도 않는데 말이죠, 이야기의 흐름도 한 챕터를 넘기면 몇달 내지는 몇일이라는 시간을 건너뛰고 또다른 성장의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남녀의 관계와 그 사랑의 달달함에 대한 감성적 매력을 독자들에게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작가는 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만나고 또 서로를 오판하고 또 의지하고 그럼으로 편안해하고 다시금 불편하게 헤어지고 하면서 이들의 성장을 보여주고자 노력하죠, 어떻게 보면 참 재미없는 아이들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자꾸만 다음을 궁금하게 합니다.. 이 한쌍의 남녀인 코넬과 메리앤은 흔한 아이들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뛰어나고 누구보다 자존감에 대한 상처와 사랑의 치유가 필요한 아이의 상대적 영역에 속하는 인물들이죠, 주변의 시선속에서 이들은 부족함이 없어보이는 객관성을 가졌지만 이 아이들의 영역속에서는 언제나 고통받고 상처받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며 성장하는 사랑이라는 전제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꺠우쳐보려고 발악하는 방황하는 별들인게죠, 이 작품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의 심리와 존재적 성장을 만들어가려는 이들읜 발악하는 젊음의 아픔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이끌어내는 감성은 아주 끈적끈적한 인간의 내면의 혼란과 영혼의 자리매김을 그려내기 때문이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이 남녀의 사랑의 역학적 관계는 마지막까지 그 끈을 놓지 않습니다..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비범한 이 시대의 아이들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답답하고 아프고 갑갑하면서도 행복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평범한 남녀의 사랑이라고 작가는 생각하는 모냥입니다.. 언제나 사랑은 답이 없는게 삶이죠,


    5. 젊기 이전에 우리는 어립니다.. 뭘 하던 서투르기 일쑤죠,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성장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자신보다 먼저 타인에 대한 생각이 자리잡게 되면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면서 상대와의 관계에 대한 소중함을 착각하거나 오판하거나 무지하게 다가서게 되곤 합니다.. 그렇게 확신아닌 서로에 대한 믿음은 어느순간 혼란과 불편함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사랑이라는 감정과 함께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동안 굳건한 사랑의 의미를 되찾게 되기도 합니다.. 자신이 누구보다 먼저 알게된 사랑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감정과 믿음으로 자신이 만난 사람에게서 느끼는 충만과 편안함과 신뢰와 그로 인해 서로에게 있어 가장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찾아내기도 하니까요, 놓아주고 싶다가도 절대 놓치기 싫은 사람이지만 가장 사랑하지만 가장 불편한 존재로서 서로는 성장해나가게 됩니다.. 아무래도 사랑은 인간의 생각보다 더 깊고 넓고 가득한 아량을 지녔으니 충분히 이들의 관계는 좋은 결과가 되길 바라지만 또 모르죠, 세상의 대부분의 사랑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특히 첫사랑이라는 현실 착오적인 순수사랑의 영역속에서는 말입니다.. 코넬과 메리앤은 첫사랑의 운명을 그들의 삶속에서 어떻게 서로에게 맞춰갈 것인 지에 대해 작가는 가장 서투른 시절의 감성과 그리고 성인이 되고서 그들만의 감정을 넘어선 자아의 주체적 형성이 이 사랑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체는 과정속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흔한 사랑의 영속성을 이어나갈지를 고민한 듯 싶습니다.. 참 재미없는 문장이고 내용인데 희안하게 내용과 흐름에 집착하게 되더라구요, 좋은 작가는 뭐가 달라도 다릅디다.. 괜히 맨부커상 후보가 된건 아닌 듯..


    6.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스토리입니다.. 물론 이들의 생각과 갑갑한 서로의 불통적 배려는 참으로 짜증스럽기도 합니다.. 왜 글케 복잡하게 고민하고 서로를 배려한답시고 자신의 입장인냥 합리화시켜 상대방을 오해하게 만들고 또 하고싶은 말도 해야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내고 상처인지도 모르고 어린 생각에 상대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말이죠, 이 모든 것은 단순하고 가장 편안한 서로의 신뢰와 소통만으로도 충분히 해결될텐데, 그렇다면 이 세상에 사랑속에서 아픔을 가지는 관계는 다 문제없을텐데,  근데 왜 인간은,,,, 아시다시피 세상의 인간은 자기와 서로와 주변의 관계속에서 대단히 고민스러운 생각으로 사로잡혀 살아가는 존재이니 항상 이러한 사랑은 깨어지기 쉬운 와인잔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큼달달한 와인 한잔에 서로의 영혼이 녹아내리지만 잠시 한눈팔면 빠사삭하고 깨져버리는 와인잔처럼 말이죠,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언제 상처가 날 지도 모르는 그런 사랑이 가장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속에서 매력적인 와인빛을 내며 유혹하곤 합니다.. 이 작품도 그런 매력이 가득한 작품입니다.. 조금은 서툴고 조금은 혼란스럽고 조금은 자기 위주적인 사랑이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편안함과 변치않는 존재에 대한 사랑이 끊임없이 이들이 살아갈 힘을 만들어주는 그런 평범한 우리 주변, 아니 아일랜드의 서양 남녀의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프지만 즐겁고 슬프지만 행복한 이들의 사랑이야기 한번 경험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언제나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는 거니까요, 나처럼.... 쿨럭...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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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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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상이 어수선하죠, 코로나19라 불리우는 감염성 바이러스가 세계를 마비시켰습니다.. 가장 먼저 발병한 곳으로 알려진 중국의 후베이성의 우한에서부터 몇개월사이에 전세게로 퍼져나가서 수백만명이 감염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디다.. 중국과 가까운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이나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전염이 심각해졌드랬죠, 그렇다보니 뒤늦게 발병과 감염의 추세가 급격하게 발생하는 나라에 비해서 앞선 판단의 경험을 조금 더 가지고 국내적으로나 국외에서도 도움이 많이 되는 모냥이더군요, 근데 어익후, 이런 와중에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입원기간동안 재미진 책과 함께해서 나쁘진 않았지만 아픈 아이나 간호하는 어른이나 힘들긴 마찬가지긴했죠, 더군다나 시국이 시국인만큼 감염이나 질병에 대한 예민함이 극도에 다다른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스트레스였긴 합디다.. 비록 제 아이는 커서 간호나 챙기는 것이 입원이긴 하더라도 그렇게 어렵진 않았지만 어린 영유아들의 경우 대다수가 바이러스성 감염이다보니 부모님들이 신경쓰야되는 부분이 많아서 같은 병실을 쓰더라도  눈치도 보이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마스크없이 지나다니면 피하기 일쑤고 다인실인 경우에는 칸막이 커텐을 꽉 닫고 지내기도 합디다.. 갑갑하고 힘들긴하겠지만 아이의 건강이 우선인 부모들의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겠지요, 밤새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어르고 토닥거려주며 편안하게 잠이 들게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엄마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고 힘들 지는 부모가 되어보지않고서는 알 수 없는 거니까요,


    2. 아이들은 바이러스 감염이 잘 일어나죠, 어른도 다르진 않지만 나름 자가 케어가 가능하다보니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참 힘들죠, 제 아이는 세균성 장염이었는데 일주일이 넘게 힘들어했습니다.. 보통은 고열과 설사나 몸살을 동반하는 바이러스 감염은 항상 가장 많은 질병의 이유이기도 해서 이런 경우에는 감염이나 치료 목적으로 많은 항생제나 해열제를 사용하곤 합니다..집에서 하면 좀체 떨어지지 않는 고열도 병원에서는 잘 관리가 되다보니 빨리 낫는 경우도 있구요, 무엇보다 감염이 타인에게 옮을 가능성을 최소확시킴으로서 저의 가족에게는 가능하면 아이가 아프면 입원이 우선시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보니 십수년동안 아이와 함께 아파하고 낫고 또 아파하고 살아오면서 느낀 점은 세상의 부모들의 헌신은 단순한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런 생명과도 같은 아이들인데, 혹여라도 세상이 무심하여 아이를 잃거나 이별하게 된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앞선 독후감에서도 끄적거린 내용이기도 하지만 한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이별을 당한 수백명의 부모들의 입장은 6년이 아니라 수십년, 아니 자신이 죽는 그순간까지 아이를 그리워하고 그 아픔을 놓지못하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러한 아픔을 겪는 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려낸 스릴러 소설을 한편 아이의 배를 쓰다듬어가며 즐겁게 읽었습니다.. 딘 쿤츠 할배의 "어둠의 눈"이라는 작품입니다..


    3. 이 작품은 80년대 초반에 집필된 작품입니다.. 오래됐죠, 그리고 이 작품이 요즘 무척 화제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작품속에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전제하에 '우한'이라는 도시의 이름이 명명된 바이러스명이 등장하는거죠, 그것도 40여년전에 집필된 작품속에서 말입니다.. 홍보이자 광고의 목적이 적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도시와 나라와 지역중에서 '우한'을 꼭 집어서 바이러스명을 정한 딘 쿤츠 할배(그때는 아저씨였겠지만)의 상상적 예측은 제법 소름이 돋게 합니다.. 어떤 이야기인 지 함 살펴 봅시다.. 라스베가스의 무대 기획자 크리스티나 에번스는 1년전 자신의 아이 대니를 교통사고로 잃습니다.. 아이를 잃은 고통과 슬픔속에서도 자신을 잃지않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죠, 티나의 재능인 무대기획과 제작은 이제 빛을 발할 때입니다.. 한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나면 그녀의 인생은 많이 달라집겝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전 사고로 잃은 대니는 그녀를 여전히 힘들게 합니다.. 밤마다 악몽속에서 대니를 구하지 못하는 티나에게 대니는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나는 조금씩 상처가 나을 방법을 찾죠, 자신이 일이 우선이고 자신의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집니다.. 그리곤 대니의 방을 정리하려합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대니의 방 보드에 메시지를 적어놓습니다...'죽지 않았어' 공포에 휩싸인 티나는 글씨를 지워버리지만 이튿날 다시 그 메시지는 보드에 적혀 있습니다.. 아이를 잃은 타나에게 누가 이런 잔인한 일을 벌이는 것일까요, 티나는 지금은 이혼한 전남편 마이클을 의심합니다.. 하지만 대니의 방에서 벌어지는 일이 티나에게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죠, 티나의 집을 청소하는 비비안에게도 청소를 하는 동안 대니의 방이 지진이 난 듯 혼란에 휩싸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종의 폴터가이스터현상처럼 말이죠, 조금씩 티나에게 이러한 현상의 전조가 닥쳐오기 시작하고 공포에 휩싸인 티나는 대니의 죽음과 관련하여 또다른 진실이 있지 않을까 고민합니다.. 그리고 엘리엇을 만나죠, 자신의 고민을 엘리엇에게 알린 순간,,,,,,,,


    4. 대단히 속도감 넘치는 작품입니다.. 하나의 사건, 말그대로 대니라는 아이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찾아나가는 이야기입죠, 자신의 아이의 죽음이 어떠한 상황에서 발생하고 벌어진 것인 지, 그리고 이 사건이 담고 있는 음모는 무엇인 지를 알아나가는 스릴러소설입니다.. 말그대로 초창기의 딘 쿤츠 특유의 초자연적이면서 공상과학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사회음모론적 스릴러소설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단권이고 아주 깔끔하게 서사를 이어나가면서 한달음에 끝을 맺는 가독성과 흡입력이 뛰어난 작품이라꼬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군더더기가 없이 주인공과 이를 추적하고 파괴하려드는 적과의 상황을 매우 흥미로운 긴장감으로 그려내고 있죠, 흔한 음모론이 가득한 아메리칸스타일의 스릴러영화 한편 즐기신다는 기분으로 작품을 대하시면 실망스럽진 않을겝니다.. 게다가 40여년전 작품임에도 전혀 거부감이나 꼰대같은 촌시러움이 없는 작품이올시다.. 앞서 말씀드린 '우한'도 등장하고 말이죠, 흔한 미국적으로다가 훅훅 넘기는 듯한 단순함과 함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영역에서는 딘 쿤츠의 단행본만한 작품들이 드물죠, 사실 이 작품은 인물이나 캐릭터에 대한 꼼꼼함은 찾기 힘듭니다.. 상횡과 인물들이 만들어가고 찾아가는 진실찾기에 대한 상황적 쫀득함이 가득하죠, 입체적인 캐릭터나 인물적 구도는 이 작품에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전형적인 스릴러구도의 우선순위인 아이를 둔 부모의 심리와 그 긴박성을 중심으로 진실을 찾는 감성만으로도 충분히 스릴감을 즐기기에 만족스럽습니다.. 이런 점이 킹쌤과 쿤츠 할배의 큰 차이중에 하나라꼬 전 봅니다.. 둘 다 대중적이긴 한데 인물에 집착하는 면이 강한 킹쌤에 비해 쿤츠 할배는 상황이나 설정에 큰 힘을 주는 듯 싶더군요.. 아님 말고,


    5. 그래서 딘 쿤츠의 소설은 매우 속도감이 넘칩니다.. 어떤 작품을 읽어도 속도감 하나는 어느 스릴러소설에 비해서 뒤지지를 않습니다.. 게다가 가독성이 뛰어나죠, 전형적이고 흔한 설정과 소재를 다룬 초자연적 스타일의 서스펜스스릴러라고 명한 쿤츠표 작품들이 너무 많아서 작가 스스로 아류작을 생산하는 듯한 느낌도 들 정도입니다.. 이 작품이 저 작품같고 말이죠, 쿤츠 할배가 엄청 다작하시거덩요, 엄청납니다.. 한해에 네댓 작품을 출시하시던 분이시라(게이고슨생보다 더 대단한 듯),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단행본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단행본은 급격하게 흘러가는 속도감에 비해 후반부의 허탈한 끝맺음이 많기도 하구요, 게다가 상황이나 서사에 대중적 재미를 두기 때문에 인물과 묘사의 섬세함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듭디다.. 그렇기에 독후감으로서의 머리속 남음이 적죠, 금새 잊어먹기 일쑤입니다.. 이번 작품도 사실 다르지않습니다.. 매우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시작점부터 중간의 상황적 쫀득함이 독자들의 눈을 놓아주지 않지만 후반부의 마지막에 이를때까지 설마 이렇게 끝나면 너무 아쉬운데라는 불안감을 가지게 되죠, 깔끔하긴 한 마무리지만 독자로서 그토록 쫀득한 긴장감을 한순간에 툭하니 갈무리하고 마는 작가의 의도에 짜증이 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작품에 이어지는 연작이 있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독자로서 이 작품만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 너무 쫓고 쫓기는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졌기 때문에 한순간의 해결적 모드는 힘빠지는 결말이기도 하죠, 1권으로 끝내야된다는 그런 강박관념이 있었나, 왜 그랬어요, 할배


    6. 이 작품은 서서히 달아오르는 그런 미스터리스릴러소설과는 좀 다르게 시작점부터 달려나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그 속도감은 늦추질 않죠, 그리곤 순식간에 끝을 맺습니다.. 뭔가 청룡열차(옛날 사람 티남)타고 훅하니 한순간에 이거머지,하고 끝나는 느낌과 그렇게 다르지않은 감상이라고 봐도 좋을듯 합니다.. 그래서 아쉬움과 더더더더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질주하는 순간이 느무 짧게 느껴지니까요, 그러니 재미있고 흥미롭고 즐거운 대중소설이라는 점은 말그대로 팩트입니다.. 중간중간 더 요구하고싶은 요구사항과 인물에 대한 꼼꼼시러움을 원할지도 모르지만 그냥 이런 상황에서 뭘 더 기대하고 원해, 그냥 차 뚜껑 열고 달려가는 바람날리는 속도감에 만족해...주변 정경이나 경치는 찬찬히 가는 버스나 기차타고 만끽하면 충분하니까라는 생각으로다가 즐기시면 되시지 않을까 싶네요, 딘 쿤츠의 "어둠의 눈"은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이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고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딘 쿤츠가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추구한 가족애와 인간애와 주체적 여성과 인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지지리도 못나고 비겁한 남성적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아쉽지만 즐겁고 허무하지만 매력적인 스릴러소설입니다.. 아직은 밖이 만만치않은 시간입니다.. 이럴때 집에서 즐기는 스릴러소설로서 이만한 작품도 없지 않을까싶은데.. 싫음 말라고 해따이,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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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로드 - 사라진 소녀들
스티나 약손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음서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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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른들이 그럽디다.. 정말 징하게도 우려먹는다고(사골도 아니고 뭘 우려먹는다는건지), 벌써 6년이나 지났는데 허구헌 날 지나간 일을 부여잡고 허송세월만 보내고 나라 탓만 하고 있다고 말이죠, 이게 다 지금 정권에서 만들어놓은 프레임이고 언론 통제로 쟤네들이 정신 못차리고 끊임없이 이 시기만되면 니네 잘못으로 아이들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으니 책임지라는둥, 잘못한 자들을 처벌하라는 둥 이제는 좀 놓아주고 넘어가도 될 법한데 너무 징하게 우려먹고 있다는 것이죠, 심지어는 이런 이야기를 이번 선거 전후로 도대체 몇번을 들었는 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정말 징할 정도로 끊임없이 잘못된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왜 제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을 드리느냐, 제가 전에도 몇번 말씀을 드린 적이 있겠지만 이 분들에게는 저들에게 닥친 지옥같은 고통과 이별의 아픔이 좀체 공감되지 않는 것이죠, 단순하게 멀리서 대중적인 관심만으로 그들이 당한 상황에 대한 사회적 공감만 있을 뿐이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내면과 가슴깊은 공감까지는 그들에게는 사치였을겝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더라도 1년, 2년이라는 시간들이 흘러가면서 자신과 무관한 고통은 망각하기 마련이고 망각은 언제나 인간의 제1순위의 자기보호의 본능입죠, 누구나에게 그렇습니다.. 탓할 수는 없는 일이죠, 허나 그렇다손 치더라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세상의 누군가의 아픔을 이제는 잊었다치더라도 그들을 향해, 그분들의 아픔을 바라보며 시간이 흘렀는데, 세월이 지났는데,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세상과 사회와 나라를 탓하고 책임을 지라고 억지부리는 일을 하지말아야된다는 그따우 빌어먹을 망발은 하지말아야죠, 절대로,


    2. 나라고 정권이고 나발이고 뭔 상관입니까, 내아이, 내가족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 판에 당연히 책임을 져야될 필요가 있는 사람을 죄값을 받고 그에 상응하는 벌이 주어져야하지만 누가 제대로 이 상황에 대한 처벌이나 탓에 대한 어떠한 책임이라도 진 사람이 있습니까, 대통령이요, 그 사람이 지금 이 문제로 처벌을 받았나요, 어느 누가 우리의 아이들 수백명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는 그에 준하는 처벌을 받았나요, 세상은 죽음보다 더한 이별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 못한 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부모와 가족에게 그 처벌과 상처와 고통의 무게를 덧씌운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는 1일이든, 10년이든, 삶이 남은 모든 매순간의 시간들이 지옥이고 고통이고 아픔이고 눈물이지 않을까요, 그들에게 시간은 의미조차 없는 것이겠죠, 징하게 우려먹는 것이 아니라 징하게 못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색이 사회의 지도자로서,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으로서, 무엇보다 국민을 대변하는 공감받은 대리인들로서 그들이 끄집어내는 말 하나에도 의미를 두어야할 것이며 이 세상의 모든 자기 만족과 자기 위주와 보수와 기득권의 표상인 사회의 주변인들의 삶에서도 그따우 말같잖은 소리로 우려먹는다는 둥,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냐는둥의 토로는 하지말아야하는 거죠, 생각이야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그게 말로 튀어나오면 누군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기 마련이니까요, 시쳇말로 자기 새끼, 자기 가족이 아니니 함부로 말할 수도 있을거라는 누군가의 한섞인 분노가 어지간히도 공분되는 며칠간의 시간동안 하필이면 읽은 작품이 또 아이를 잃은 부모의 절절한 심리를 그려낸 북유럽 스웨덴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작품이군요, 스티나 약손의 "실버로드" 부제가 사라진 소녀들입니다..


    3. 렐레의 딸 리나는 3년전 아침 자신이 직접 내려준 버스 정류장에서 단 몇분만에 실종됩니다.. 그리곤 현재까지 찾지 못한 체 미결로 남겨진 체 여전히 리나의 생사를 확인하고 그녀를 찾기 위해 렐레는 변함없이 매일 실버로드의 길을 나섭니다.. 그동안 렐레는 자신의 삶과 모든 것을 리나를 찾기위해 바치죠, 아내는 끝까지 리나를 지키지 못한 렐레를 탓하고 경찰들은 오히려 마지막 리나를 내려준 렐레를 의심하고 주변은 모든 사람들은 리나의 실종에 단서를 제공하지 못하죠, 끝없은 자괴감과 죄책감과 책임감에 고통받으며 죽음보다 더한 삶의 나락속에서 렐레는 하루하루 죽어가는 자신의 삶의 애착을 리나의 수색에 쏟아붓고 있는 거죠, 그렇게 렐레는 축축한 북스웨덴의 노를랜드의 실버로드의 숲과 습지속의 폐가와 어두움속에서 자신의 딸의 흔적을 찾아나섭니다.. 그리고 메야가 등장합니다.. 메야는 스톡홀름의 남쪽지방에서 북으로 올라온 어머니와 함께 실버로드의 축축한 습지에서 살아가는 한 남성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미혼모인 자신의 엄마의 정신적 문제를 관리하는 메야는 아직 열일곱살의 어린 소녀이죠, 음침한 남자 토르비요른과 살게 된 메야는 얼른 성인이 되어 그곳을 떠나고 싶어하죠, 그러던 어느날 숲속에서 자신 또래의 한 무리의 남자 아이들을 만납니다.. 칼 요한을 비롯한 남자 형제들은 메야를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죠, 이들은 예란이라는 맏형과 페르라는 둘쨰, 그리고 칼 요한의 삼형제로서 숲의 외진 곳에서 현대 문물을 거부하고 자기들끼리만 살아가는 가족 공동체였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관심을 가진 메야는 칼 요한에게 빠져들고 그들과 가까워 집니다.. 이렇게 렐레와 메야는 동일한 시간속에서 실버로드의 삶속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결국 이들에게는,,,,,,


    4. 실종된 딸의 생사를 찾아 나서는 한 아버지의 처절한 슬픔과 분노와 고통을 절절히 그려낸 심리스릴러라고 보셔도 무방하겠군요, 3년동안 어떠한 목격자도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홀로 딸을 찾기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아버지의 모습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심지어 아내조차도) 그의 행동과 삶을 동정하고 이제는,,, 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하지만 리나의 생사조차 알 지 못하는 렐레에게 있어서 삶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 조차 모른거죠, 그는 자신의 삶과 리나의 삶을 동일시하는 듯 합니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바라본 리나의 모습이 그대로 그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그녀의 숨소리를 찾기 위해 끝없이 실버로드를 달려가죠, 하지만 그의 주변과 사람들은 리나가 아닌 그를 바라봅니다.. 그들의 눈과 생각속에서 어느듯 리나는 망각이라는 본능적 치유속에서 차츰 스며들게 되는거지요, 그래야지만 그들이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렐레는 그렇게 살아갈 이유가 없어보입니다.. 리나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하지만 소설은 렐레의 고통을 놓아줄 생각이 없나봐요, 끊임없이 렐레를 몰아부치고 사건을 끌여들여서 혼란에 이르게 합니다.. 새로운 실종사건이 발생하고 3년전의 리나와 비슷한 실종으로 한나라는 아이가 사라집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북스웨덴의 노를랜드의 실버로드라는 공간속에서 펼쳐지는 축축한 습지와 진흙과 모기때와 함께 여름의 백야와 끊임없이 내리는 빗줄기속에서 내뿜는 고통의 입김이 느껴지는 감성이 매우 감각적입니다.. 렐레의 심리를 통해 보여지는 감성적 심리가 이러한 공간적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거죠,


    5. 이 작품은 렐레와 메야라는 캐릭터를 교차시키며 진행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렐레는 딸의 행방을 찾고 아버지가 없는 메야는 자신의 삶을 고민하죠, 그리고 이들은 결국 그들의 길에서 마주칩니다.. 좋은 구성입니다.. 렐레는 끊임없이 슬퍼하고 고통받고 아픔속에서 리나의 생사를 찾기위해 자신을 몰아가죠, 메야는 끊임없이 자신의 주변의 삶속에서 자신을 찾기위해 자신을 몰아가죠, 그렇게 이들은 각자의 삶에 대한 목적으로 삶을 몰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그들의 삶의 끝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느끼게 해줄 가족의 위안과 평화와 안락이라는 것이죠, 렐레는 리나를 찾음으로서, 메야는 자신이 받지못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신이 삶의 주체로서 살아감으로서 기나긴 고난의 아픔이 사라질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시작점에서 마지막점까지 이러한 두 인물의 심리와 혼란을 고심하면서 놓질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소설은 두 인물의 이야기를 한데 뭉쳐가는데에 대한 곤란함을 느끼게 되죠, 사실 메야의 스토리는 소설의 전반적인 흐름속에서 겉도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서사의 중심인 사라진 소녀들에 대한 사건의 영역과 미스터리조차 이들의 심리적 불안함과 의되속에서 묻혀버리기 십상입니다.. 2부에 들어서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서긴 하지만 그조차도 크게 반전의 방식이나 의도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이 작품의 미스터리적 측면은 조금 많이 아쉽습니다.. 게다가 이야기를 진행함에 있어서 독자로서 설마하고 그렇게 진행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방식의 해결점이 그대로 그려지는 측면과 함께 마무리의 허전함은 전반적인 이 작품의 감성적 분노에 대한 답으로서의 부족함이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물론 제가 렐레라는 인물을 통해 느꼈던 절절함과는 별개로 말이죠,


    6.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한 미스터리한 스릴러의 감성과 인물의 심리적 내면을 그려내는 끈끈함을 아주 매력적입니다.. 자신의 아이를 잃은 한 아버지의 절절한 심리적 극단성을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공감의 형태로 받아들였습니다.. 누군가는 쉽게 포기하고 치유하게 될 지는 몰라도 가장 아픈 당사자로서 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그려낸 작품인 듯 싶어서요, 드러내지않고 보여지진 않지만 자신의 아이를 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 렐레의 행동과 마음과 모든 아픔과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자신의 어린시절의 렐레의 삶과 자신이 받은 기적같은 하늘의 선물인 아이를 대하는 그의 삶의 이유를 알게됩니다.. 유일한 삶의 목적이라고 단정킨 어렵겠지만 렐레에게는 자신과 다름아닌 아이의 생명인 것이지요, 아이의 실종이 생과 사의 답을 주지 않으니 그로서는 자신이 살아갈 목적이 리나라는 아이의 행방을 찾아서 살려내는 것인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살아갈 명분과 이유가 없을테니까요, 세상의 부모들이 모두 그러하진 않겠지만 대다수의 부모는 그렇게 자식을 죽는 그순간까지 놓질 않습니다.. 행동하지 않을 뿐이지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잊어야하니, 그만 울궈먹어라니, 이제는 놓아주라느니, 더이상은 끄집어내지말라느니, 자식 목숨값으로 산 생명이라도 좀 편안하길 바란다느니, 이런 개쓰레기같은 망발은 그만 좀 하면 어때,  여하튼 자신의 아이를 찾는 부모의 절절한 심리와 내면을 이렇게 멋드러지게 그려내는 작품, 나쁘지 않습니다.. 미스터리의 흐름이 조금 빨랐으면 더 좋았겠고 교차된 이야기가 서로 호기심을 조금 더 이끌어내었으면 더더 좋았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재미난 제법 좋았던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절절한 공감도 마찬가지고..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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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남
슈노 마사유키 지음, 정경진 옮김 / 스핑크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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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이런거는 일반 대중이 아무렇지않게 누군가나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을 가지는 것들이죠, 옳든 그르든 자신이 생각하는 그 무엇에 대한 확신에 대한 판단일겝니다.. 만약 그 생각의 확신이 옳다면 그것은 위의 말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자 바른 견해라고 봐야겠죠, 우린 어떠한 생각의 확신이 잘못된 것이라는 전제 하에 편견과 선입견등을 논하곤 합니다.. 그동안 알고 있던 어떤 사실에 대한 확신이 틀리거나 무너지는 경우에 이러한 편견과 선입견과 고정관념은 깨어지는 것이죠, 일반적으로는 어떠한 대상에 대한 개인적 판단의 문제가 발생하곤 합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투표 결과를 보면서 나름 생각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보여지는 외면상의 모습만으로 그 인물의 됨됨이나 어떠한 행동적 방식을 판단했던 저로서 그 인물이 정감가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아, 이런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되는거죠, 막상 알지도 못하고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던 대상의 외면상의 모습만으로 그런 인물이겠거니라고 나름의 잣대로 확신하고 판단해버린 제 스스로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한 잘못을 드러내지않고 스스로에게 꾸짖었습니다.. 물론 제 잘못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자신에게 탓하는 잘못만큼 부끄러운것도 없는 것이죠, 누구나 그렇습니다.. 우린 아니 전 어떤 대상이나 존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 체 판단을 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열린 생각과 판단의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대상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과 제대로된 관심이 꼭 필요할 터,


    2. 생각이 생각을 잡아먹고 잠식하고 결국은 고민스러운 생각의 고민을 끝없이 되풀이하면서 밤새 잠 못들고 자신과 타인과 세상과 상황을 탓하고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 되내이고 또 되내이면서 이 생각의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고 풀어낼 것인가하고 혼자 머리속을 헤집어놓는 그런 일들 누구나 한번씩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막상 또 그 고민의 생각의 결과물을 어떠했나 돌이켜보면 사실 별거 아닌 경우가 허다하죠, 결국 생각만큼 고통스러운 고민거리가 되진 않았던 그런 경우 말입니다.. 없으면 할 수 없구요, 있는데 실제 더 힘들어진 경우라고 해도 할 수 없구요, 여하튼 인간은 그런 존재입니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털어놓고 함께하면 해결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지요, 또는 인간은 이런 힘든 생각이나 고민을 하는게 힘든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떠한 기준과 주제와 설정과 암시와 복선을 내비치면 그대로 믿어버리는 오류를 자주 범하는 어설픈 존재이기도 하죠, 그리고 그 오류의 해결 역시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주어진 상황에 따라 돌려놓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없는거죠, 밤새 혼자 고민하고 매몰된 생각의 오류에서 아침에 핼쑥한 얼굴을 들이밀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고민이 한순간에 해결되면 그것으로 또 자신의 오류에 대한 답을 찾아 즐거워하곤 하죠, 호모 사피엔스가 왜 나왔겠습니까.. 소크라테스나 데카르트가 생각하고 존재함을 떠든 이유도 우리의 존재성과 별반 다르지 않을겝니다.. 우린 책을 읽습니다.. 생각하죠, 추리소설을 읽고 상황을 고민하고 스릴러를 읽고 감정을 끌어내고 자계서를 읽고 자신을 바꾸고 인문서를 읽고 삶을 깨우치고 교과서를 읽고 잠이 들곤 합니다..


    3. 물론 어떤 책이든 펼치면 잠이 먼저 생각을 잡아먹는 경우도 많죠, 그럴 경우에는 일단 재미지고 즐거운 이야기를 다룬 내용으로 책과 가까워지면 좋지 않을까 싶어 아이들에게 유도를 하는데, 활자가 영상을 이기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이번에 당선되신 국회의원 여러분들이 도서정가제 좀 조정해주시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책 좀 편하게 사서 읽을 수 있게 만들어주시면,,, 그러면 이렇게 재미진 "가위남"같은 슈도 마사유키의 작품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텐데 말이죠, 이 작품은 과거 한번 출시된 적이 있는 일본미스터리소설입니다.. 말 그대로 가위남이라는 연쇄살인마에 대한 범죄를 다룬 작품입죠, 소설의 시작과 함께 우린 '가위남'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대단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회적 위치속에서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은 체 자신이 목표로한 살인의 대상을 파악하고 있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가위남'은 여고생을 대상으로 이미 두번의 살인을 저지르고 3번째 대상으로 유키코라는 한 여학생을 살해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죠, 여고생의 행동반경과 생활들을 꼼꼼히 관찰하며 살인을 저지르기 위한 준비를 하며 가위를 준비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이 저질려야할 살인을 다른 누군가가 그의 살인방식을 모방해서 살인을 행한 현장을 목격하죠, 자신의 목표 대상이었던 유키코를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자신처럼 살인을 저지른겁니다.. 자신이 관찰중이던 여고생이 살해된 사건의 현장을 가장 먼저 발견한 '가위남'은 현장에서 확인된 상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이 또다른 현장 발견자가 나타나고 자신의 백에 든 가위를 현장 주변에 버리고 자신은 현장 발견자로서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경찰의 수사방식은 가위남의 연쇄살인이라는 전제하에 사건의 단서를 찾기 시작하죠, 사건의 진실은 '가위남'과 독자들만 압니다.. 이전에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과는 별개로 이 경우에는 자신을 모방한 또다른 살인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하지만 경찰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4. 소설은 '가위남'이라는 인물이 드러내는 시선과 '가위남'이 저지르거나 모방한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의 시점을 교차하면서 진행합니다.. 이러한 교차방식은 독자로서 무척이나 매력적인 긴장감을 보여주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특히나 살인을 행하는 주체로서의 '가위남'의 입장에서 자신이 행한 것 처럼 보이는 살인사건에 대한 진실을 그 역시 찾아내야하는 설정은 무척이나 독특하면서도 신선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소설에서 보여준 살인사건의 살인마는 아니지만 이전에 이루어진 두건의 살인사건의 연쇄살인은 그의 범죄라는 사실을 그 스스로 자술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심리적 토로의 방식은 아주 대단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게 됩니다.. 사실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의 방식이나 단서를 찾아나가는 의도는 독자로서 조금 답답함이 생기게 되죠, 독자들은 경찰이 모르는 진실의 답을 반정도는 이미 알고 그들을 내려다보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그렇다보니 소설의 초반을 넘기게되면 독자나 경찰이나 가위남이나 이 소설의 관계자 모두 누가 '가위남'의 살인을 모방한 유키코의 살인을 저질렀는가에 집중하게 됩니다.. 여전히 경찰은 가위남의 세번째 범행이라는 전제 하에 사건의 단서를 찾아나서고 가위남은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도대체 왜, 어떻게 이 사건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사건의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독자는 이 모든 진실찾기의 목격자로서 경찰의 행동과 가위남의 모습속에서 그들의 외줄타기를 보면서 가만히 줄이 흔들리길 기대하며 바람아 불어라하고 조마조마하게 작품의 내용에 빠져들게 되는거죠, 그러다가 후반부에 갑작스레 드러나는 반전의 충격은 아휴, 말해 뭐해,,,,, 처음에는 이해가 안되더라니까요, 이거 뭐지,,,,,,,,,, 내가 뭘 보고 읽은거야... 뭐 이랬습니다... 나만 그런게 아닐껄, 너도 그럴꺼야 아마


    5.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작품의 이야기의 흐름은 시작점부터 전지적 관점이 우선시 됩니다... 경찰의 행동에 대해서 그들이 모르는 진실을 독자는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보니 초반 가위남의 시선과 관점에서 벗어나 경찰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상황에서는 좀 지리하고 바보같고 어설픈 느낌이 다분히 듭니다.. 쟤들 뭐하는거임, 답답하네하면서 말이죠, 가위남 역시 뭔가 자신의 범죄를 모방한 누군가를 찾기보다는 살해된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지배적으로 많이 이루어집니다.. 독자로서 저는 경찰은 원래 멍청하니 그러려니하고 내버려두고 '가위남'의 행동과 의도에 집중하게 되는데 말이죠, 이게 그렇게 재미가 없더라구요, 얘가 지금 하는 행동이나 궁금증이 살인자를 찾는거에 비해 뭐가 그렇게 중요하지,하는 의구심이 생기게 되고 또 서사의 집중도가 떨어지게 만드는 방식이더라는거죠, 유키코가 살해되고 그 살인자에 대한 궁금증이 중요한 상황에서 피해자의 주변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고 또 느긋하고 뚱하게 느릿느릿 진실을 알아나가는 이 전개 도대체 뭐임, 뭐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경찰의 수사방식과 사건의 단서찾기의 답답함이 가위남의 행동과 맞물려 더 갑갑하게 보여졌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게다가 아니 우연일리가 없는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가위남의 모방살인사건이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연유로 그에게 보여졌는 지에 대한 개연성을 독자로서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어져야하는데 말이죠, 하필이면 '가위남'이 살인을 저지를려고 고른 대상이 누군가가 현재 요즘 가장 핫한 연쇄살인마 '가위남'을 모방한 것이라는 필연처럼 보이는 우연의 상황이 연출되니 좀 아쉬움이 없는 것은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6. 말그대로 대단히 뻥찌는 충격적 반전입니다.. 말 그대로 생각지도 못한 독자적 고정관념으로 만들어진 어쩔 수 없는 대단한 반전입니다.. 저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니 반전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 뭔가 혼란스럽고 이해를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상황을 되짚어 나가보는거죠,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한거임하고 말이죠, 근데 작가의 의도와 서사의 진행에 있어 작가가 독자들에게 이 작품을 집어드는 순간부터 하나의 미스디렉션을 각인시켜놓고 시작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이죠, 그리고 서서히 사건의 내막과 진실의 방향성을 판단하고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뒤늦게 합류한 경찰의 또다른 행동에 실소를 금치 못하는 것이죠, 이렇게 금치 못하는 것이 두번이나 있으니 참 매력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지않아 있다는 생각을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설의 진행과정에서 교차된 살인마와 경찰과 독자들의 시선의 진실찾기 매듭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확인하게 되는 허탈한 미스터리적 매력이 다분한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전혀 감안하고 고민하지 못한 진실의 영역이기에 이 작품에 대해 칭찬을 함이 마땅한 줄 아뢰오라고 하고 싶으나 가위남이라는 존재에 대한 입체적 이미지가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못한 방식에 대한 아쉬움은 남구요, 분명 이 아쉬움은 후반부의 충격적 반전때문이라고 읍소하고 싶습니다.. 반전과 연쇄살인을 다룬 일본미스터리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시라면 즐거워하실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작가님께서 아쉽게 일찍 타계를 하시어 더이상 슈도 마사유키의 작품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20년 전 작가의 대표작인 '가윗남'을 통해 만끽해보시면 좋으실 듯 합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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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단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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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득 운전중에 아침에 들고 나온 귤이 보입니다.. 한개 까먹습니다.. 맛나네요, 하나 더 까먹습니다.. 그리곤 정체된 앞에 음주운전 단속중인가봅니다.. 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음주측정기같은 검은 사각의 기계를 들이밉니다.. 후욱 불어보라는 말에 붑니다.. 더더더더더라고하니 끝없이 불어댑니다... 그리곤 차를 한쪽 옆으로 대라고 말합니다... 귤 때문인가 봅니다..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차를 그들의 요구에 맞춰 한쪽으로 가서 댑니다.. 하차를 요구한 경찰이 문 손잡이를 잡고 엽니다.. 따라 내리죠, 그러면서 귤 까먹은 이야기를 합니다.. 껍질도 보여줍니다.. 허나 들은 척 만척 단속경찰은 비웃듯이 한마디 합니다..."네,네, 알겠습니다.. 다 그러세요... 자자 이쪽으로 오세요" 어아해하는 저의 등을 떠밀며 한쪽에 주차된 승합차로 향합니다.. 안에는 몇명의 나이가 많아보이는 노령의 경찰들이 앉아서 저를 노려봅니다.. 이제부터는 기억나는 그들이 저에게 던진 말들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자, 올라오세요, 밖에서 보면 선생님한테 좋은 모양새가 아닙니다.. 타세요, 술 많이 드셨나봐요, 어떻게, 지금 다시 불어보시겠어요, 아님 물 한잔 마시고 부시겠어요, 얼굴도 그렇고 냄새도 많이 나는데 굳이 안불어도 확인 가능할 것 같은데,,,,," 그렇죠, 황당합니다.. 웃으며 그들을 노려봅니다.. 그리곤 한마디합니다.. 만약 당신들 말대로 내가 불어서 알콜 수치 0이면 어떻게 하겠냐고, 그리고 이렇게 내 차에서 이유없이 끌어내려서 승합차에 태우는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한 적도 없을 뿐더러 당사자의 말 한마디 제대로 듣지도 않고 이유없이 당신들 판단으로 죄를 지은 범죄자 취급하는거 후회안할 자신 있냐고, 그리고 아차하는 눈치가 엿보이더니 금새 표정을 바꾸고 강압적으로 나옵니다..


    2. 자신들은 지금 필요한 절차에 따라서 요청을 하고 있으며 이에 불응할 경우에는 고지와 함께 연행까지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불응, 내가, 언제, 그렇게 단답형으로 답을 하니 그제사 그들이 부드럽게 협상을 합니다.. "술을 안드셨어면 그냥 부시고 확인하시고 집에 가시면 됩니다.. 까칠하게 저희들에게 대들게 아니고 문제가 없으면 그냥 확인만 하시고 가세요," 그리곤 승합차 밖으로 내보냅니다.. 보내드리라면서, 불지도 않고 확인도 않고 해명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짜증섞인 말투와 표정으로 다시 내몰고 보내드리라고 하면서 승합차 문을 쾅 닫습니다.. 저를 데리고 온 단속순경도 머슥한 지, 집에 가셔도 된다고 하면서 일체의 사과의 말이나 상황에 대한 해명이나 설명을 하지 않고 단지 자신들에게 필요한 부분에서 문제가 되지 않으니 이젠 놓아주겠다는 의도가 내비칩니다.. 뭐죠, 다퉈봐야 좋을 일 없다는 생각은 저만 그런 것은 아니겠죠, 살아오면서 그들이 보여준 억압적 권력과 강압적 합리화에 충분히 당해봤으니까요, 일개 서민이자 별볼일 없는 사회적 약자인 저로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들만의 합리적 억압에서 이길 수가 없더군요, 그들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치안과 범죄의 세상에서 서민을 보호하는 조직이라하더라도 말이죠, 늘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섭리처럼 조직은 그렇습니다.. 마이클 코넬리도 그의 모든 작품에서 이러한 사회적 문제와 범죄적 세상속의 우리의 삶을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작가이죠, 경찰을 다루는 해리 보슈시리즈와는 달리 미키 할러 시리즈는 법이라는 테두리속에서 회색의 공간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의 삶과 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번에도 사회적 어둠속에서 살아가지만 억울한 누명으로 진실을 찾길 바라는 한 피고인에 대한 이야기속에서 숨겨진 과거의 연결고리와 음모가 드러나죠,


    3. 다섯 번째 미키 할러 시리즈인 "배심원단"은 자존감과 자신감이 떨어질때로 떨어져 그냥저냥 변호사로의 생활속에서 활기를 잃고, 딸의 사랑과 신뢰도 잃고 살아가는 할러의 생활을 먼저 보여줍니다.. 전작에서 검찰청장 선거에서 떨어지고 자신이 변호한 음주운전을 한 의뢰인이 다시 음주운전으로 자신의 딸과도 가까운 지인인 모녀를 살해한 후 우울과 죄책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미키 할러, 그럼에도 변호사로서 자신의 삶을 놓지는 않죠, 그런 와중에 살인사건에 대한 의뢰가 들어오고 그 사건의 피의자인 안드레 라 코세가 자신을 지명한 것이죠, 그를 만나러 간 자리에서 코세는 자신이 누명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살해된 성매매여성인 지젤 댈링거가 미키를 소개해주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살해된 여성이 누군질 몰랐던 미키는 코세가 그녀의 인터넷 성매매사이트를 관리해주는 디지털 포주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를 파악하게됩니다.. 그리고 살해된 지젤이라는 여성이 과거 그가 변호했던 사건의 의뢰인이자 그가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글로리아 데이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리고 그녀의 죽음이 있던 시간의 상황속에서 또다른 음모가 존재함을 확인하고 안드레 라 코세의 의뢰를 받아들입니다.. 과거 자신이 알던 글로리아의 죽음에 대한 진실 역시 그에게는 중요한 것이었죠, 그녀가 미키에게 자신의 삶과 근황을 숨기고 멀어졌던 이유와 또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안드레에게 미키가 도와줄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한 의도를 꺠달은 미키 할러는 이 사건의 이면과 과거의 진실사이에서 충격적인 현실을 알게되고 그 진실의 파괴력을 이끌어내어야만 안드레 라 코세의 억울한 누명과 법적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거죠, 그 진실의 잣대와 판결은 재판정에서 단죄를 내리는 신을 어떻게 설득하고 합리적인 진실을 보여주느냐에 달린겁니다....

 

    4. 해리 보슈는 미키 할러의 이복형입니다.. 해리는 변호사가 싫어하는 형사이고 미키는 형사가 싫어하는 변호사죠, 해리는 대단히 정의로운 독특한 캐릭터의 독불장군같은 인물입니다.. 한마리의 외로운 코요테처럼 버려지고 숨겨지고 찢어진체 감춰진 사회적 정의를 찾아 헤매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미키 할러는 부유한 가정에서 속물적인 사회적 관심과 욕심이 가득한 자기 만족형의 여우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보슈의 동생은 맞나봅니다.. 그 역시 사회적 불의와 협잡과 음모와 배신은 용납을 못하는 성격입죠, 독자로서, 대중으로서는 오히려 보슈라는 캐릭터보다 더 현실적으로 공감이 가는 인물은 미키 할러입니다.. 미국의 흔한 변호사의 모습과 이야기죠, 돈이 궁하고 돈을 위해서 무엇보다 기본적인 삶을 위해서 현실적인 변호를 하는 인물입니다.. 물론 그 변호를 하는 인물들이 대중이 원하고 사회가 원하는 사회적 공익과 정의에 부합되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걸림돌이기도 하고 소설속에서도 미키 할러는 이로 인해 주변의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변호사이기 때문에 항상 좌절하고 우울하고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누군가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변호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설속에서 그의 멘토이기도 한 아버지의 파트너였던 리걸 시걸의 이야기속에서도 우린 충분히 미키에게 당면한 상황적 딜레마를 공감하고 이해할 수있습니다.. 마이클 코넬리의 스릴러는 대단히 미국스럽습니다.. 서양식 사고방식과 서양식 사회의 시스템으로 드러난 미국의 문제를 아주 현실적이고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스릴러작가이죠, 언듯 동양적 사고방식과 동양식 사회의 인간적 내면과 관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배경과 상황들이지만 마이클 코넬리의 섬세하고 꼼꼼한 심리적 공감은 동서양과는 별개의 인간적 공통성이라는 주제에 침착된 매력이 다분합니다..

 

    5. 어떻게보면 캐릭터의 입체감은 해리 보슈에 비해서 서너배 더 매력적이라고 봐도 될 듯 싶습니다.. 보슈만큼의 페이소스가 가득한 감정적 공허감보다는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잘 표현해낸 뛰어난 인물의 구성이라고 봐야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미키 할러라는 인물을 애초부터 하나의 설정으로 굳혀진 인물이 아니라 시간과 상황의 흐름에 맞춰 자신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성장형 캐릭터라는 생각도 들구요,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조금씩 사회속에서의 자신의 목적과 의도를 알아나가는 인물로서 작가가 성장시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조금은 밉쌍스러운 현실성을 담보로 그만이 이끌어낼 수 있는 사회적 정의를 가슴으로 느껴나가는 미키를 볼수록 그의 매력과 상황속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죠, 사실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에서 단점이나 불편한 점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제 스스로가 마이클 코넬리라는 작가에 대한 주체못할 애정도 있거니와 읽어보신 분들이시라면 느끼시겠지만 그의 작품에서 소설적 재미의 모든 방향성을 느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단지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들을 독후감으로 내놓던 초반기에 항상 하던 말들중 동양적 사회의 인간내음에 적응되신 분들에게는 조금은 낯선 서양의 감성이라 지겨움을 느끼시고 작가이기 이전에 기자로서의 르포적 서사와 그 흐름의 딱딱함을 불편해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더이상 할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전형적이고 영혼없는 멘트같은 이야기지만 사실 마이클 코넬리를 한번도 안 읽으신 분들이나 한번만 읽으신 분들은 계실지 몰라도 두번 읽으신 분들중에 모든 작품에 관심을 안가지신 분들은 없으실겝니다..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까지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은 해리 보슈 시리즈가 국내에 16권인가 나왔고, 잭 매커보이 시리즈도 두세권 나왔고 이 작품 미키 할러 시리즈는 5편이 나왔습니다.. 게다가 단행본도 서너권 나왔죠, 산수를 해보면 약26권 정도 나왔을겝니다.. 국내 번역작중 이정도면 가장 많은 시리즈의 출간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겝니다.. 그만큼 국내의 인지도가 적지않다는 것이겠지요, 만고 제생각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는 스릴러소설을 즐기신다하시면 다른건 몰라도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 정도는 읽어주시는게 가장 행복한 독서의 기본이 아닐까하는 최애작가에 대한 나름의 애정입니다.. 마이클 코넬리의 정주행 나쁘지 않아요, 책값이 걱정이시면 중고서적도 제법 쌉디다, 잘 찾아보면.. 좋은 작품 읽으려면 그정도 노력은 해야지, 싫음 말고,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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