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의 마당 Dear 그림책
찰스 키핑 지음, 서애경 옮김 / 사계절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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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지프의 마당> 표지에는 한 소년이 우울한 표정을 하고 서있다. 소년의 표정으로 보아 '조지프의 마당'에서는 행복하거나 유쾌한 일이 생길 것 같지 않다. 이런 전조는 조지프의 얼굴표정에서뿐만 아니라 배경그림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혼란과 질서가 공존하는 배경그림에서 틀 속에 갇힌 체 꿈틀대는 생명이 느껴진다. 틀 속에 갇힌 불만이 가득 찬 생명은 조지프의 마음처럼 건조한 콘크리트 바닥이 답답하다. 그래서 그 배경 그림은 조지프의 표정처럼 우울하다.

조지프는 온통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시에 산다. 그래서 생명이 주는 활력과 생동감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런 조지프가 어느 날 마당에 있던 녹슨 바퀴를 나무 한 그루와 바꾼다. 돌바닥을 드러내고 나무를 심는다. 비가 내리고 햇볕이 내쬐고 나무가 자라난다. 꽃이 피는 것을 지켜보던 조지프는 꽃이 너무 예뻐 꺾는다. 그러자 꽃은 금세 시들어 버렸다. 조지프는 나무가 죽은 줄 알고 실망한다. 다시 봄이 오자 나무가 살아나고 꽃을 피우자 조지프도 생기를 찾는다. 이번엔 꽃을 꺾지 않는 대신 꽃에 몰려들기 시작한 벌레, 그 벌레를 잡아먹으려는 새, 새을 잡으려는 고양이에게 꽃과 나무를 지키려고 외투를 나무에 덮는다. 햇볕과 비가 가려지자 꽃이 죽고 만다. 조지프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나무를 가만두고 지켜보기로 한다. 철이 지나고 해가 갈 수록 나무는 다른 생물과 조화를 이루며 무럭무럭 자라난다. 

조지프는 생명이 자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꽃을 꺾으면 시든다는 걸 몰랐다. 또 다른 생물과 공존하며 산다는 사실도 몰랐다. 나무 한 그루를 키우면서 거기에 생명이 있으며 빛과 물에 의지해 다른 생물들과 어울려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지프의 마당>을 쓴 작가는 직접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은 작가가 도시에서 자란 자신의 어린시절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삭막한 도시어린이의 정서와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잘 표현되어 있다. 글보다는 그림이 주는 이미지가 강하고 글은 그림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개되고 있다. 종종 이런 그림책(작가가 그림으로 말하고자 하는)을 만나게 되는데, 작가는 그림을 통해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그림책을 볼 때 꼼꼼히 그림을 보게 된다. 왜, 작가가 이렇게 거칠고 답답해 보이는 선을 선택했으며, 어둡고 칙칙한 색을 썼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이들에게 이런 그림책을 읽어 줄 때는 그림이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변화된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의 느낌은 어떤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는 것이 좋다. 그러려면 그림책을 한번 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림책은 여러 번 보되 매번 다른 방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처음엔, 책표지와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인지 짐작해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림의 선과 색, 주인공의 표정 등에서 주는 느낌을 이야기한다. 두 번짼, 그림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그 변화에 따라 아이들이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 한다. 세 번째 그림을 한장씩 넘기면서 아이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게 한다. 네 번째, 글을 읽고 작가 쓴 내용과 아이가 꾸민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 해 본다.

이처럼 그림책은 한권으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볼 수 있다. 또 그림책은 일반 책이 글을 통해 상상력을 이끌어 내는 것에 비해, 그림을 통해 언어를 표현한다는 매력이 있다. 이것은 언어로 하는 언어교육의 한계를 넘어서 창의적인 언어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언어의 경우, 그 이미지가 이미 언어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는 언어가 주는 영역 안에서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그림의 경우는 형태를 통해 이미지를 보기 때문에 언어가 구속하는 부분이 적다. 상대적으로 아이들이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폭은 넓어진다.

그런 이유로 그림책을 천천히 보면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창의적인 언어표현을 하는 독서활동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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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2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그래서 그림책 참 좋아해요

수양버들 2006-04-27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동안 시쿵둥 했는데 다시 읽기 시작 했습니다.
 
삐삐는 언제나 마음대로야 - 세계 아동극 선집 1 쑥쑥문고 65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라합 옮김, 김무연 그림 / 우리교육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70년대에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든 말괄량이 삐삐를 기억할 것이다. 양옆으로 딴 머리는 위로 뻗혀있고, 주근깨 가득한 얼굴은 입 꼬리가 광대뼈까지 닿아 있는 삐삐. 외모부터가 충격이었다. 그런 삐삐는 생김만큼이나 자유분방한 언행으로 정제된 사고에 갇혀있던 우리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충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알았던 시절, 삐삐는 제도권의 틀을 거부하고 고정된 사고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 삐삐의 언행에 우리는 경악했지만, 사실은 우리 안에 꿈틀대는 욕구를 펼쳐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삐삐가 TV에 방영되던 시절을 생각해 보자. 당시 학교생활로 기억에 남는 것 중하나가 웅변대회였다. 웅변대회의 주된 주제는 ‘반공’에 관한 것으로 이승복 어린이가 간첩에게 저항하다 죽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웅변하는 아이는 마지막 휘나래로 ‘이 연사 강력히 주장 합니다.’하며 불끈 쥔 두 손을 쳐든다. 이 쯤 되면 웅변하는 아이나 청중으로 앉아있던 아이들은 모두 공산당에 대한 분노로 치를 떨며 눈물바다를 이룬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우스운 광경인가,

선생님들의 권위적인 태도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5학년 때 우리 반 여자 아이들 중 손끝 야무진 아이들은 한 학기 내내 집단 노동에 동원되었다. 담임선생님이 집에 걸어 놓을 초대형 스킬장식을 만드는 일을 시켰던 것이다. 그것도 교실에서 책상을 이어 붙여 커다란 스킬 판을 올려놓고 거리낌 없이 행해졌다. 지금에야 아동학대고 노동력 착취지, 당시에 나는 그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체제에 순응하고 권위를 선망하는 어리고 순진한 아이들이었다.    

착하고 순진하기만 했던 우리들에게 삐삐의 말과 행동은 충격적이었다.

'아니카 : 우리 선생은 참 좋은 분이셔, 너도 틀림없이 우리 선생님을 좋아하게 될 거야.
토마스 : 학교에 그렇게 오래 있는 것도 아니야 열두 시 반까지만 있으면 돼.
아니카 : 그리고 크리스마스 휴가랑 부활절 휴가랑 여름 방학도 있어.
삐삐   : (조금 생각하고 나서) 그건 불공평하다.
토마스 : 뭐가?
삐삐   : 아주 아주 불공평해 !
아니카 : 뭐가?
삐삐   : 너희만 크리스마스 휴가랑 부활절 휴가랑 여름 방학 있는 거. 난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토마스 : 넌 학교에 안 다니니까 그렇지.
삐삐   : 겨우 그까짓 크리스마스 휴가 하나 얻으려고 학교를 다녀야 돼?
아니카 : 응, 안 그러면 안 돼.
삐삐   : 그럼 나도 학교에 다닐래. 나도 크리스마스 휴가를 얻고 싶으니까. 그래야 공평하잖아.
아니카 : (환호성을 지른다.) 야호, 신난다! 어서 가자 !
삐삐   : 에이, 그렇게 서두를 거 없어. 갈 때가 되면 알아서 갈게. 크리스마스 휴가를 주기 전에만 가면 되잖아. 안녕!'
 
삐삐는 다른 아이들처럼 크리스마스 휴가를 얻기 위해서 학교에 가기로 했다. 그래야 공평해지니까 말이다. 이 말을 잘 풀어 보면, 아이들은 결국 공평해지기 위해서 자유를 희생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학교에 간 삐삐는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자.

‘삐삐   :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제가 코 파기에 딱 맞춰서 온 거죠?
선생님 : 그래, 하지만 조금 더 조용하게 왔으면 좋을 것 그랬구나. 아무튼 학교에 온 걸 환영한다. 삐삐야.
삐삐   : 고맙습니다.
선생님 : 우리 학교가 네 마음에 들면 좋겠다.
삐삐   : (줄곧 아주 상냥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선생님이랑 아이들이 행동을 늘 바르게 하면 마음에 들 거예요.‘

삐삐의 태도는 얼마나 당당한가, 학교라고는 처음 와본 고아 아이가 선생님께 행동을 바르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삐삐가 등장하기 이전엔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당당한 어린이 모습이다. 우리는 경악과 동시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뿐인가,

‘오늘 셈 하기는 그만 끝내는 게 좋겠다!’ 는 말에 선생님 뺨을 쓰다듬으며

‘선생님이 여태까지 하신 말씀 가운데 가장 똑 소리 나는 말씀이었어요. 선생님은 참 친절하고 상냥하세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이 정말 좋아요. 하지만 선생님이 사람을 조금 피곤하게 만들기는 해요. 그건 선생님도 인정하시죠?’ 

삐삐의 이런 행동은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삐삐는 어른들이 어린들에게 행한 억압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었으며, 그것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했다. 이것은 말괄량이 삐삐가 1945년 처음 발표되면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세계의 많은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 린드그렌은 삐삐를 통해 규율과 제도권 교육의 문제점, 어른과 아이들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특유의 유머를 담아 풀어 놓고 있다.
 
아이들이 비판적 의식을 갖지 못한 것을 탓할 수 없다. 어리고 순진한 아이들에게 반공교육을 쇠뇌 시킨 권력자나 권위적인 선생님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 아이들에게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만약 그때 우리에게 삐삐와 같은 괴력의 힘이 있었다면, 금화가 잔득 든 가방이 있었다면, 그 누구도 나를 구속하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삐삐처럼 학교에 가지 않았을 거다. 어른들에게 아이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 달라고 요구 했을 것이다.

삐삐가 지금까지도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아직도 어린이들이 억압된  규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때와는 다르지만, 요즘 어린이들도 경쟁체제로 인해 어린이가 누려야할 자유와 인권을 희생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어른들에 비해 신체적으로 약하고 경제적으로 무능한 존재이다. 그러니 삐삐는 여전히 대리 만족을 주고 부러운 대상일 수밖에 없다.

<삐삐는 언제나 마음대로야>는 린드그렌이 말괄량이 삐삐이야기를 동극으로 꾸민 것이다. 그래서 전체내용이 동극 극본이고 뒤편에 이 작품을 어떻게 동극으로 올릴 것인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릴 적에 보았던 삐삐를 추억하였다. 나는 이제 삐삐를 처음 보았을 때 내 나이의 아이를 둔 부모다. 지금 내가 보는 삐삐의 모습은 단순히 통쾌하고 우스운 재미만 주지 않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 구조적으로 분석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어릴 적 나처럼 단순히 보고 즐겼으면 한다. 왜냐하면 재미있게 읽어야 할 동화책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라고 요구한다면, 어린들에게 동화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는 것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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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
최은희 지음 / 우리교육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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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일이다. 평소 어린이 책을 좋아하던 나는 독서지도 교육을 받고 이웃 엄마들과 의논해 교환수업을 시작했다. 미술학원 운영하는 엄마는 미술을 맡았고, 영어에 능숙한 엄마는 영어를, 나는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기로 했다. 그런데 교환수업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전보다 더욱 바빠졌다. 돈 안 드리고 영어, 미술, 독서논술까지 해보겠다는 엄마들 욕심이 아이들을 괴롭힌 꼴이 된 것이다. 결국, 1년 쯤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지난 일년간의 경험이 떠오르면서 참 많이 부끄러웠다. 왜 그때 최 선생님처럼 아이들 마음을 읽어주지 못했을까? 왜 여유를 갖지 못했을까?

가장 큰 잘 못은 아이들에게 수업 결과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정말 잘하고 싶었던 탓에 나름대로 열심히 교안을 만들었다. 그 일은 내겐 정말 재미있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은 괴로운 눈치였다. 장난기가 온 몸에서 꿈틀거리는 아이들이 두 시간 내내 수업을 들어야 하니 그럴 만도 했다.

처음 독서지도를 하는 이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과도한 의욕 탓인데도 노력에 비해 아이들이 따라 오지 못하는 것 같아 맥빠지는 경험을 말이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 교안을 간단히 하여 그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혹은 배울 수 있는 것 하나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에서 최 선생님은 아이들 마음을 읽은 데, 온 정성을 쏟고 있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의 오류는 아이들 마음을 읽으려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뭔가 가르쳐야 한다는 것에 있었다는 것을. 내가 미처 해보지 못한 것을 하고 있는 최 선생님이 마냥 부러웠다. 

아이들은 글을 쓸 때 할 말이 많은 내용에 대해선 길게 쓰면서도 참 잘 쓴다. 반면에 생각해 보지 않은 내용에 대해선 형식적인 감상을 짧게 나열하고 끝내버린다. 그래서 독서지도에 있어서 책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는 사전작업이 중요하다. 그래야 아이들은 책을 건성으로 보지 않고 깊게 보고 생각하며 본다.
 

내가 저지를 두 번째 실수는 이런 사전작업을 소홀히 했다는 거다. 그래서 아이들은 건성으로 책을 읽고 내게 와서 내가 느낀 감성을 배워갔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바보짓인가, 내가 느낀 감성이 아무리 좋다 한들 그게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말이다. 중요한 건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표현해야 하는 것인데도 나는 아이들에게 그럴 기회를 마련주지 못했다.

가끔은 학원에 쫓겨 피곤해 하는 아이를 보면서 적어도 나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편안하게 속내를 털어 놓는 시간이 되었으면, 다른 학원에서는 참아야 했던 말들을 실컷 떠들다 갔으면 했다. 하지만 그건 속마음이었고 아이들에게 겉으로 보이는 수업 결과물을 요구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인정받기 보다는 엄마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잘 못을 고백하자면 우리 아이에게 그림책 읽기를 빨리 끊은 것이다. 마치 젖먹이 아이에게 초유를 먹이고 더 이상 영양가가 없다는 이유로 끊듯이 학년이 높아졌다는 이유로 학습에 도움이 되는 책, 글자가 많은 책을 아이가 읽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이는 자기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로 만화 책을 보기 시작했다.

이제 비로소 아이가 하는 독서에 수준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 하는 데로 따라 가는 것다. 그래서 아이가 매일 매일 숙제로 내주는 ‘하루에 한 책읽기’ 하기 위해 짧은 글 책만 골라 읽어도 더 이상 군말을 하지 않았다. 밤이면 살아남기 시리즈나 딱 좋아 시리즈를 꺼내 키득거려도 간섭하지 않는다. 오히려 잠들기 직전에 아이가 들려주는 책 내용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책을 고르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밤마다 우스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다음날 친구들에게 같은 내용을 들려주기 위해 엄마반응을 먼저 보는 거였다. 친구들이 자신이 한 이야기를 듣고 까르르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다. 그렇게 친구들을 웃겨 시선을 받고 싶은 것이, 어릴 적 내 모습인데도 짐직 모른 체 했었다. 이런 아이의 사소한 즐거움을 빼앗고 심각한 주제나 지식을 전하는 책을 강요해서야 쓰겠는가, 내가 아이게 해주어야 할 것은 아이가 원하는 책을 사주고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웃어주면 되는 거였다.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을 읽고 아이에게 그림책을 다시 읽어 주고 싶어졌다. 5학년이나 된 아이에게 이제 와서 다시 그림책을 읽어 주다니, 순서가 뒤바뀐 것 같지만 아이가 더 크기 전에 꼭 다시 한번씩 읽어 주고 싶다. 건성으로 글자만 읽었던 그림책을 옛 앨범을 보듯 그렇게 그렇게 천천히 다시 읽어 나가고 싶다.

이 책을 읽기전 책 목록만 보았을 땐 그리 탐탁치 않았다. 누가 어린이 책에 관해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썼으려니, 그런데 첫 장 (너와 나, 존재의 소중함 - 강아지 똥)을 읽고는 손을 땔 수가 없었다. 내가 놀란 것은 학생과 선생이 한결같이 몰입하여 책을 읽는다는 거였다. 선생님이 아이들 하나하나에 주의 깊게 관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때에 칭찬하고 경려를 할 수 있었다. 최 선생님을 보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진실하고 충실할 때 행복이 찾아온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흐뭇했다. 흔들림 없이 꿋꿋이 자신을 지키고 아이들을 지키는 최 선생님의 모습은 정말로 크고도 아늑한 나무그늘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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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22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엄마들이 직접 나서서 교환수업을 하시는거 참 좋을 것같은데요
 
지구마을 길잡이 지리 재미있게 제대로 시리즈 2
제인 글릭스먼 지음, 유정화 옮김, 김휘승 그림 / 길벗어린이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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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지리책은 역사나 과학책만큼이나 흥미롭다. 지리책은 단순한 위치 확인 이외에 많은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 인류문명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일단 지리적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지리적 위치만 확인하는 것으로도 그 지역의 문화적 특징 몇 가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적도지방에 위치한 나라를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의 의식주가 어떨 것이라 예상된다. 반대로 극지방에 위치한 사람들의 의상이나 주거형태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는 평면적인 지도를 통해 입체적인 구상을 해나갈 수 있다. 이런 입체적 구상이 더욱 흥미로운 까닭은 지도가 주는 정보가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에 있다. 

지도는 우리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전해 준다. 예를 들어보면 행정지도는 나라와 지방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고, 지정학적 지도는 행정지도와 비슷한 것으로 바다와 호수, 산 같은 지리적 특성까지 보여준다. 지형도는 지구의 자연적, 인공적 특색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고 기후도는 어떤 지역에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평균적인 날씨를 보여주는 지도이다. 그 외에도 모형지도, 분포도, 도로지도, 지하철이나 버스 노선도, 지구본, 해도, 해저지형도 따위가 우리 생활에 필요한 직·간접적인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다양한 지도들이 ‘나’의 위치를 알려 준다는 것이다. 타인이 어떤 위치에 있다는 정보만큼 ‘나’의 지리적 위치를 본다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객관화한다는 것은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또 문화나 문명을 무형적인 것으로 느끼는 것보다, 타인과 나의 지리적 위치를 확인 하는 것으로 문화와 문명을 짐작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를 인정할 수 있는 논리적인 설득력을 지닌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지리책을 좋아하고 아이에게도 다양한 지도책을 접하게 한다.

<지구마을 길잡이 지리>의 처음은 지도의 축적에 담긴 의미에서 출발한다. 다양한 지도의 쓰임새를 설명하고 우리가 있는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게 하였다.
둘째, 단원에서는 세상을 발견한 탐험가들이 지도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부분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기원전 3세기, 지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이고 수학 천재였던 에라토스테네스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지구 둘레를 측정했다. 그의 측정은 실제 지구 둘레인 약 4만 km와 비슷한 약 46,250km 였다. 그런데 그 이후 프톨레마이오스가 부정확한 계산법으로 지구를 실제 크기의 4/1로 줄여놓았다. 그로인해 천년이상 사람들은 지구둘레를 잘못 알게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계산법은 콜럼버스를 비롯한 많은 항해가들이 원정탐험을 마음먹게도 했지만 골탕 먹인 원인이기도 하였다.

셋째, 단원에서는 지도의 역사에 대하여 다루고 있고, 넷째, 단원에서는 지구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지구가 한 덩어리였다는 사실을 대륙 이동설이 입증하고 있으며, 우리가 딛고 지각판이 멀어지면서 갈라지기도 하고 충돌하면서 솟아오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 지구의 움직임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세계지도는 변해 왔으면 지금도 변하고 있다.  다섯째, 단원에서는 지역별 기후의 특성과 지형, 동식물의 분포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지리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 그 중에 지도를 보는 방법을 설명한 부분은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구형 지구를 평면으로 만드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귤껍질을 벗겨 펴 놓는다든지, 직접 만든 자를 통해 북극성을 보고 내가 있는 곳의 위도를 알아보는 방법이 그 예이다.

초등학생을 둔 부모라면 짐작하겠지만, 이 책은 사회교과학습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내용들을 실고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읽기에는 그리 많은 분량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을 때 나누어 읽기를 권한다. 다양한 정보를 주는 책의 경우, 감성적 교류를 하기 어렵다. 아이들은 책이 주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렴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지루에 한다. 그래서 정보를 많이 담은 책일수록 단락별로 나누어 읽는 게 효과적이다. 또 교과내용에 맞추어 해당부분만 읽게 하고 나머지부분은  아이 스스로 읽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제는 책이 없어서 못 읽는 시대는 지났다. 그보단 지도를 보듯, 효용성을 따져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전략적 책읽기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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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6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1 - 모음 편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 1
최승호 시, 윤정주 그림 / 비룡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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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어린이들은 산과 들로 뛰어 다니며, 놀이 삼아 말을 배우고 익혔다. 이처럼 친구들과 자연 속에서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웠던 언어는 오늘날 어린이들에겐 보기 어렵다. 놀이 공간이 제한된 어린이들에겐 학교나 학원이 학습의 장인 동시에 놀이터이다. 그런데 이런 학교나 학원에서는 정형화된 학습방법으로 언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에 대한 문제점을 보안하기 위해, 근래에는 어린이들의 생각을 끌어내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수업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을 보고 놀이를 자유롭게 만들어 내던 옛 어린들의 학습과 비교한다면, 요즘 학습방법은 창의력을 키우는 면이나 자유의지 갖게 하는 면에서 많이 부족해 보인다.
  
<말놀이 동시집>은 우리의 전통 말놀이 민요처럼 시를 지어 묶었다. 우리말 중 동음이의어라든지, 첫 글자나 끝 글자가 같은 단어들을 이용해 지은 시들이다. 이 동시들을 읽다보며 경쾌한 어감에서 말이 갖고 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어린이들은 곧 보이지 않는 유쾌한 놀이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            

나무는 나무       
나비는 나비               
나는 나예요               
                          
달은 달                 
새는 새                  
나는 나예요              
                         
나는 딸꾹                 
뻐꾸기는 뻐꾹

 
     수염 

옥수수 밭에는 수염이 많네
얀 수염 옥수수
노란 수염 옥수수
빨간 수염 옥수수
   
수염 까만 염소야
하얀 수염 먹을래
노란 수염 먹을래
빨간 수염 먹을래


 귀뚜라미                             
  
라미 라미                 
맨드라미                        
라미 라미                    
쓰르라미                  
                          
맨드라미 지고             
귀뚜라미 우네              
                          
가을이라고                
가을이 왔다고 우네         

라미 라미
동그라미

동그란
보름달


   우 산            
  
우르릉 쿵쿵 천둥 치네 
우람한 나무 아래서     
우리는 비를 피하네  
우산 없는 새랑
우산 없는 나비랑 같이
비를 피하네
         
펄쩍펄쩍 개구리가 뛰어가네
개구리야
너 지금 소나기에 묵은 때 씻냐?

<말놀이 동시집>에는 이렇게 별 뜻 없는 말놀이 동시가 84편 실려 있다. 이 시들을 통해 우리말과 글을 익힐 수 있게 꾸며졌다. 순서도 14개 자음에 5개 모음을 합쳐 순서가 정해 졌다. 이제 막 말을 익히기 시작한 유아들은 새 낱말을 읽히고 서로 다른 뜻을 지닌 같은 소리의 낱말들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유치원생들은 반복되는 단어를 찾으면서 한글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된다. 동음이의어로 말장난을 즐기기 시작한 1,2학년들에겐 새로운 말놀이를 발견하는데 아이디어를 제공 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율동감 없다는 거다. 어린이들이 놀면서 재미로 만들어 낸 동시가 아니어서, 현장감이 떨어지고 율동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재미난 우리 전통 말놀이 따서, 어린이들에게 말과 글을 익히게 하겠다는 시인의 생각은 참신하고도 의미가 깊다. 그 외에 동시가 특별한 의미 없이 단순하면서도 유머를 담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린이들이 단순한 놀이에 아무생각 없이 몰입하듯, 말놀이에 몰입하며 즐기는 모습이 기대된다.   

인간의 언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학습과 놀이의 수단이었다. 오늘날도 언어가 이런  기능을 갖는다. 그러나 오늘날의 언어 학습과 놀이에는 개인의 자발적인 의도를 배제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언어놀이를 답습하거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사용한다. 그러다보니 어린이들이 쓰는 언어놀이는 질이 낮고 거칠어 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어린이들이 사는 환경이 그만큼 삭막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에게 고운 말놀이를 찾아주는 것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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