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숑숑 2 : 광개토대왕을 구하라 - 고구려 편 역사 속으로 숑숑 시리즈 2
이문영 지음, 아메바피쉬 그림 / 토토북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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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고조선을 빨려 들어가 무사히 동생 지아를 구출해낸 리아와 책방아저씨는 항아로부터 다음 임무를 떠맡게 된다. 고구려 제 15대 왕(미천왕)이 될 을불을 구하는 것이 그들의 첫 번째 임무다. 을불을 구하는 그들의 활약 속에서 우리는 당시 고구려의 역사적 정황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야기 말미에 미천왕과 관련된 전설, 업적, 그리고 후대의 왕들의 대표적인 업적을 팁으로 확인 할 수 있다.

광개토대왕을 구출하고 고건무 장군을 구하는 장면에서는 현무와 구미호와 같은 상상의 동물들을 등장시켜 흥미를 끌고 있다.

주인공 리아는 과거로의 모험을 통해 역사적 사건들을 이해하는 동시에 자신의 잘못된 점을 고치는 계기를 갖는다.

1편과는 달리 2편에서는 리아에서는 투명인간이 되는 두건과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신발을 항아에게 받아 종횡무지 활동범위를 넓혀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이끌어간다. 동생을 찾기 위해 시작했던 리아의 과거로의 여행은 역사에 대한 흥미와 뒤죽박죽 되어가는 역사를 지키겠다는 의무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2편에서는 아직은 역사를 뒤죽박죽 만드는 악당이 드러나지 않고 그림자처럼 여기저기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3편을 기대하게 된다.

주인공 리아는 과거로의 모험을 통해 역사적 사건들을 이해하는 동시에 자신의 잘못된 점을 고치는 계기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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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숑숑 1 : 고조선으로 빨려들다 - 고조선 편 역사 속으로 숑숑 시리즈 1
이문영 지음, 아메바피쉬 그림 / 토토북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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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숑숑 시리즈 1권 리아와 떠나는 첫 번째 여행지는 고조선.

어느 날 동생 지아가 이상한 할머니에게 끌려간다.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이 항아라는 것과 리아의 힘으로 동생을 찾아야한다는 것 그리고 청동거울을 남겨두고 사라진다. 황당한 일을 당한 리아가 동생을 찾기 위해 책방아저씨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그리고 둘은 청동거울의 힘을 빌려 고조선으로 들어가게 된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현대를 사는 리아라는 소녀가 과거로 잡혀간 동생을 찾으러 간다는 것이고 그 과정 속에서 고조선의 생활상과 역사적 사건들을 보여주고 있다. 고조선 시대에 사용했던 청동거울이 지닌 의미라든지, 곡식저장창고의 형태 등을 알 수 있고 다른 부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어떤 장치가 있었으며 무기가 있었는지 리아의 시선을 따라 가다보면 고조선 당시 생활상과 역사적 사건이 전하는 긴박성이 그려진다.

이 책이 다른 어린이 역사책들에 비해 흥미로운 까닭은 아이들 수준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과 작가 나름의 관점을 지니고 역사적 사건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적 사건과 과거 속을 모험하는 현대 소녀 리아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 이 두 개의 이야기가 동떨어지지 않고 톱이 바퀴가 되어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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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뭐예요?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추천도서 철학하는 어린이 (상수리 What 시리즈) 1
오스카 브르니피에 지음, 양진희 옮김, 카트린느 뫼리쓰 그림 / 상수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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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뭐예요?』는 상수리 출판사에서 펴낸 What 시리즈 중 하나다. 행복이 뭘까? 정말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와 더불어 꼭 행복해야하는지 의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행복했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불행했던 기억은?·······, 너무 많다. 한 달에 20일은 불행하고 10일 정도 그저 그런 날이다. 30일 중에도 행복한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이 정도면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행복이 뭔지 배우야 한다.



이 책은 행복이 뭔지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행복하다는 걸 어떻게 느끼고 가꾸어 갈 수 있는지 아이들 스스로 답을 할 수 있게 유도하는 책이다. 그렇다면 이미 아이들은 행복이란 건 따로 배우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주어진 질문에 따라 답을 하다보면 아이들처럼 나도 이미 행복이 뭔지 알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1. 내가 행복하다는 걸 어떻게 알아?

- 불행하다고 느낄 때의 기분은 어떨까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다.

- 아주 배가 많이 고픈 상태에서도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 타인을 위해 빵 조각을 나누어주는 모습을 본다면, 세상이 아름답다는 말을 할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된다면 내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 기분이 좋지도 않은데 행복함을 느끼려고 모든 것을 아름답게 봐야 할까요? 그렇지 않다. 행복이라는 것을 꼭 느끼려고 해야 하는 건지 의문이다. 더욱이 억지로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고 할 필요는 없다.

-얼굴은 웃지도 않으면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다. 웃고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웃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데, 항상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 우리는 기분이 좋지 않은데도 웃을 수 있을까요? 기분이 좋지 않아도 웃어야 할 때가 가끔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위해서 웃어야 할 때가 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 그 사람들에게 물건이나 용역의 대가에는 웃음 값도 포함 되어 있다.

-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비웃을 수 있나요? 가끔 나도 모르게 그럴 때가 있다. 어떤 일이 잘 안 풀리면 주로 실패한 일을 떠올리며 ‘내가 그렇지 뭐’하고, 스스로를 비웃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생각인데, 될 수 있는 한 작은 것이라도 성공하고 완성하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다.

-행복함은 우리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걸까요? 그런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식량부족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이나 노예노동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행복은 기분에 따라 좌우된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특별히 부족한 것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우울해하고 남과 비교해 불행하다고 한다면 이럴 땐 기분에 따라 행복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아무 걱정이 없는데도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들을 할까요? 이건 정말 나도 이해가 안 간다. 보통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미래의 삶을 위해 현재를 포기하고 사는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 평생을 더 나은 삶을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면, 현재를 온전히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현재를 위해 사는 일에 더 충실할 필요가 있다.

- 걱정거리가 전혀 없다면 행복 할까요? 행복할 것 같다. 걱정거리가 없으면 불행할 이유가 없으니까.

- 우리는 언제나 슬프지 않고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다. 세상을 살다보며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진다. 특히 인간은 생물이기 때문에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다. 누군가 이런 일을 당하면 당연히 슬프다. 또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만나 생활하다보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때문에 슬퍼진다. 그렇다고 혼자 있으면 외로워서 또 슬퍼진다. 그러니 언제나 슬프지 않고 행복할 수 없다.


1장에 대한 답을 끝냈지만 아직 행복이 뭔지 감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행복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고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방송매체에서 전달하는 행복에 관한 이미지를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 아니가 싶다. 좋은 아파트에서 신형 전자제품을 들여 놓고 골프나 여행을 즐기는 삶이 행복의 척도 인 것처럼 떠들어 대는 광고 매체에 나도 모르게 세뇌되어 그에 미치지 못하는 내 생활을 보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뭔지 정말 궁금하다. 아이들 역시 TV에서 보여준 대로 부모와 함께 놀이공원에 간다든지, 멋진 장난감을 선물 받는다든지 하는 곳에서 행복을 느끼는 건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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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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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프랑스 라코스 동굴벽화이다. 1만 5천년에서 1만 7천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벽화는 붉고 노란 황토와 동물의 기름 섞은 재료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중권의 서양미술사에서는 라코스 동굴벽화를 찾아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들어가기에 잘 설명되어 있다.


‘2000년이 넘는 미술사를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해서 주요한 양식만 한정적으로 선택하였으며, 선택된 양식들은 각각에 대해서 구체적인 조형의 원리 및 그 바탕에 깔린 예술의 의지까지 드러내는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 깊이를 확보하기 위해서 먼저 미술사학에서 널리 알려진 논문이나 저서를 선택하여, 그것을 선형적으로 배치하는 형식으로 미술사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런 연유로 이 책은 미술의 근본 요소인 형태와 색채로 출발하여 투시법, 형식과 내용, 미술 비평, 반복되는 고전주의 예술에서 모더니즘까지 시간과 선형적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덕분에 미술사를 처음 접하는 이도, 깊이 있는 미술지식을 흥미를 갖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


1장 ‘아름다운 비례를 찾아서’에서 알려준 흥미로운 사실들은 미술사로 빠져 들기에 충분히 유혹적이었다. 이집트의 장인들은 조상의 제작에 ‘카논(Kanon)'을 사용했다. 그래서 실제 모델을 사용하지 않아도 조상의 비례는 표준에 따라 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체의 길이는 자세와 각도, 그리고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나, 이런 미세한 변화량까지 카논으로 일일이 정해놓을 수 없었다.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미의식에 따라 신체의 길이와 보폭의 길이 따위를 표준화하여 똑같이 그려냈다.



이집트인들이 이런 미의식을 갖는 이유는 현세가 아니라 내세를 그렸기 때문이다. 가변적이고 우연적이며 다양한 현실 세계를 초월해 불변적이고 필연적이며 획일적인 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더욱이 당시 이집트는 전제군주의 나라라 개인의 자유는 물론이고 창작의 자유마저 규제하고 있었다. 그 동안 무심코 보아왔던 이집트 벽화 속 인물의 얼굴과 하체는 측면, 상체는 정면을 향하고 있는 것도 다 까닭이 있었다. 신체의 단축을 피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고대 이집트엔 장인은 있으되 예술가는 없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이집트 그림들이 새롭게 다가왔고 그리스 미술과의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이집트에 비해 그리스 예술은 자유롭다. 그리스시대도 ‘카논’에 의해 정해진 비례에 따라 조상이 만들었지만, 세부적인 부분은 예술가 개개인의 재량에 맡겼다. 그리스 장인들은 순간을 포착하여 형상화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역동적이다. 민주주의를 구현했던 그리스 사회는 성원들 개개인을 존중해주는 풍토가 예술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집트와 그리스의 그림들은 국가의 정치와 종교가 미술에 어떻게 미치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는 좋은 예였다. 이런 그림들, 일률적으로 정형화된 그림과 그리스의 역동적인 그림을 보면서 난 단 한 번도 왜 다를까? 라는 의심해 보지 않았다. 핑계를 대자면, 이것은 이집트 미술작품이야 이것은 그리스의 미술 작품이야, 라는 식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  우리식 교육이지, 왜 둘이 다르지 라고는 의문을 던지는 것은 우리식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속된 국가의 정치나 종교, 교육, 풍습 따위가 예술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고체계까지 얼마나 교묘하게 지배하고 억압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진중권의『서양미술사』를 읽다보면 비례의 예와 같이 색과 빛, 원근법, 자연과 종교, 인간의 모방한 예술에 대해서도 새롭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상반되거나 변화 된 그림들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이해하기 쉬었지만, 색채 부분에서는 책에 실린 그림의 색이 명확하지 않아 작가의 설명을 확인할 없는 것도 있었다. 또 앞부분에서는 친절히 설명되었던 전문용어들이 뒤로 갈수로 초보자들은 알 수 없는 전문적인 용어들이 설명 없이 진행되어 어렵게 느껴져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동안 미술작품을 너무 겉으로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술 작품의 외형미와  의미를 읽을 수 있을 수 계기가 될 수 책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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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나는 돌 돌개바람 16
양연주 지음, 전종문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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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작가 양연주님이 이상한 책 한권을 펴냈다.

주인공 가족들은 하하하, 호호호, 이히히 웃고 있는데 독자는 울게 만드는 이상한 책이다. 인체해부학 책을 좋아하는 주인공은 몸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이야기 하는데 독자는 심장과 허파가 지닌 정서적 기능, 그러니까 비과학적인 감성, 마음의 소통을 생각하게 하는 정말 이상한 책이다.

이처럼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여덟 살 경학이는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옷 수선 일을 하는 할머니와 함께 산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을 모두 잃은 경학이는 말을 잃고 집안에 틀어 박혀 책만 읽는다. 며느리와 아들을 잃은 할머니는 좋아 하던 커피도 끊고 일만한다. 할머니 집에선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아래채에 벙어리 삼례와 삼례 엄마를 드리고 이제 삼례네와 한 가족이라 한다. 그 날 이후 아무 일도 없었던 할머니 집에 아무 일이나 생겨나기 시작한다. 방에만 틀어 박혀 있던 경학이가 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할머니는 커피를 다시 찾고 일을 멈추고 쉬기도 한다. 이 일은 삼례가 돌을 화분에 심고 자라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였다. 하지만 그 일은 삼례와 경학이가 키우는 돌이 자라듯 생겨났다. 무생물이라고 생각한 돌이 생명처럼 자라나듯, 죽은 가족에 대한 생각으로 슬픔에 잠겨있던 할머니와 경학이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면서 활력을 찾은 것이다.

줄거리는 단순해 보이지만 이야기의 얼게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특히, 인체 장기의 기능은 이 동화의 얼게를 짜는 중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유난히 해부학 책을 좋아하는 경학이는 허파와 심장하는 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경학이가 허파는 웃음과 폐활량과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잘 웃는 분이였고 삼례는 두렵거나 화가 날 때도 웃는 표정이다. 웃음이라는 매개로 삼례와 부모를 엮는 까닭은 두 가지 복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삼례가 아빠의 심장을 이식 받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아빠와 닮은 삼례를 통해 예전처럼 살아갈 힘을 찾는 다는 것이다.

이 처럼 인체 장기의 기능은 사건의 전모를 드러내는 복선으로 교묘하게 중첩되어 이용되고 있다. 그 교묘함이 정교하여 과연 작가의 의도일까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작가가 지닌 천부적 재능인지 노력의 결과인지 알 수 없지만, 동화에선 보기 드믄 구조라 인상 깊다.

작가 특유의 문체는 아이의 시선과 말투로 천연스럽고 가벼운데 반해, 그 내용은 무게가 느껴진다. 예를 들어 ‘귀가 있는 나는 귀가 있어도 누렁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데 벙어리 삼례는 누렁이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라든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던 집에 아무 일이나 이러나고 있다’는 표현이 그렇다. 특히, 한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장면에 한 솥밥이라는 토속적인 가족의미를 상기시켜, 여덟폭 치마가 담아내는 푸근한 도량이 보여주고 있다.

『자라나는 돌』을 읽다 보면 가족의 개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전통적 가치관에서 가족이란 혈연 체의 구성을 말한다. 삼례와 경학이는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삼례가 아버지의 심장을 이식 받으면서 신체 일부가 지니는 DNA의 동질성을 갖게 되었으니 충분하지는 않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관계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할머니와 고모가 가족의 구성원으로 삼례를 받아들인 까닭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삼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죽은 아들, 오빠는 함께 사는 것이고 그 일은 돌이 자라나는 것과 같은 일이다. 하지만 경학이에게 있어 가족은 조금 달라 보인다. 삼례가 아빠의 심장을 이식받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경학이는 삼례에게서 신체적 동질성이 아닌 웃음을 통해 부모와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가족으로 받아드린다. 따라서 경학이가 보여주는 가족의 개념은 혈연관계, DNA의 동질성과 관계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족에 대한 개념도 바뀌고 있다. 핵가족 사회를 지나 이혼가정과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혈연관계로 결성된 전통적인 가족개념을 뛰어 넘어 다양한 양태의 가족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영화 속에도 찾아 볼 수 있는 데 ‘비열한 거리’, ‘오아시스’, ‘가족의 탄생’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아시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피를 나눈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버려지고 짓밟히고 이용당한다. 그런데 ‘가족의 탄생’에서는 오히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 구성원이 되어 정을 나누며 살아간다. 마치 이것저것 섞어 넣은 비빔밥처럼 조화를 이룬 그들에게서 오히려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가족개념의 뛰어넘을 때, 오히려 타인을 수용하는 틈을 마련할 수 있으며, 가족의 의미는 혈연관계로만 개념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혈연관계를 내세워 비혈연관계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는 반증인 샘이다.

『자라나는 돌』은 동화이지만 이런 사회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 양연주는 다른 작품에서도 이 처럼 사회적인 문제의 접근을 시도 하고 있으며, 철학적인 사고를 요하고 부분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해결 방식 매번 유머스럽고 천진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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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0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