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는 돌 돌개바람 16
양연주 지음, 전종문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동화 작가 양연주님이 이상한 책 한권을 펴냈다.

주인공 가족들은 하하하, 호호호, 이히히 웃고 있는데 독자는 울게 만드는 이상한 책이다. 인체해부학 책을 좋아하는 주인공은 몸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이야기 하는데 독자는 심장과 허파가 지닌 정서적 기능, 그러니까 비과학적인 감성, 마음의 소통을 생각하게 하는 정말 이상한 책이다.

이처럼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여덟 살 경학이는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옷 수선 일을 하는 할머니와 함께 산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을 모두 잃은 경학이는 말을 잃고 집안에 틀어 박혀 책만 읽는다. 며느리와 아들을 잃은 할머니는 좋아 하던 커피도 끊고 일만한다. 할머니 집에선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아래채에 벙어리 삼례와 삼례 엄마를 드리고 이제 삼례네와 한 가족이라 한다. 그 날 이후 아무 일도 없었던 할머니 집에 아무 일이나 생겨나기 시작한다. 방에만 틀어 박혀 있던 경학이가 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할머니는 커피를 다시 찾고 일을 멈추고 쉬기도 한다. 이 일은 삼례가 돌을 화분에 심고 자라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였다. 하지만 그 일은 삼례와 경학이가 키우는 돌이 자라듯 생겨났다. 무생물이라고 생각한 돌이 생명처럼 자라나듯, 죽은 가족에 대한 생각으로 슬픔에 잠겨있던 할머니와 경학이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면서 활력을 찾은 것이다.

줄거리는 단순해 보이지만 이야기의 얼게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특히, 인체 장기의 기능은 이 동화의 얼게를 짜는 중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유난히 해부학 책을 좋아하는 경학이는 허파와 심장하는 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경학이가 허파는 웃음과 폐활량과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잘 웃는 분이였고 삼례는 두렵거나 화가 날 때도 웃는 표정이다. 웃음이라는 매개로 삼례와 부모를 엮는 까닭은 두 가지 복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삼례가 아빠의 심장을 이식 받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아빠와 닮은 삼례를 통해 예전처럼 살아갈 힘을 찾는 다는 것이다.

이 처럼 인체 장기의 기능은 사건의 전모를 드러내는 복선으로 교묘하게 중첩되어 이용되고 있다. 그 교묘함이 정교하여 과연 작가의 의도일까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작가가 지닌 천부적 재능인지 노력의 결과인지 알 수 없지만, 동화에선 보기 드믄 구조라 인상 깊다.

작가 특유의 문체는 아이의 시선과 말투로 천연스럽고 가벼운데 반해, 그 내용은 무게가 느껴진다. 예를 들어 ‘귀가 있는 나는 귀가 있어도 누렁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데 벙어리 삼례는 누렁이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라든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던 집에 아무 일이나 이러나고 있다’는 표현이 그렇다. 특히, 한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장면에 한 솥밥이라는 토속적인 가족의미를 상기시켜, 여덟폭 치마가 담아내는 푸근한 도량이 보여주고 있다.

『자라나는 돌』을 읽다 보면 가족의 개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전통적 가치관에서 가족이란 혈연 체의 구성을 말한다. 삼례와 경학이는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삼례가 아버지의 심장을 이식 받으면서 신체 일부가 지니는 DNA의 동질성을 갖게 되었으니 충분하지는 않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관계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할머니와 고모가 가족의 구성원으로 삼례를 받아들인 까닭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삼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죽은 아들, 오빠는 함께 사는 것이고 그 일은 돌이 자라나는 것과 같은 일이다. 하지만 경학이에게 있어 가족은 조금 달라 보인다. 삼례가 아빠의 심장을 이식받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경학이는 삼례에게서 신체적 동질성이 아닌 웃음을 통해 부모와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가족으로 받아드린다. 따라서 경학이가 보여주는 가족의 개념은 혈연관계, DNA의 동질성과 관계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족에 대한 개념도 바뀌고 있다. 핵가족 사회를 지나 이혼가정과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혈연관계로 결성된 전통적인 가족개념을 뛰어 넘어 다양한 양태의 가족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영화 속에도 찾아 볼 수 있는 데 ‘비열한 거리’, ‘오아시스’, ‘가족의 탄생’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아시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피를 나눈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버려지고 짓밟히고 이용당한다. 그런데 ‘가족의 탄생’에서는 오히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 구성원이 되어 정을 나누며 살아간다. 마치 이것저것 섞어 넣은 비빔밥처럼 조화를 이룬 그들에게서 오히려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가족개념의 뛰어넘을 때, 오히려 타인을 수용하는 틈을 마련할 수 있으며, 가족의 의미는 혈연관계로만 개념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혈연관계를 내세워 비혈연관계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는 반증인 샘이다.

『자라나는 돌』은 동화이지만 이런 사회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 양연주는 다른 작품에서도 이 처럼 사회적인 문제의 접근을 시도 하고 있으며, 철학적인 사고를 요하고 부분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해결 방식 매번 유머스럽고 천진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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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0 10: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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