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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지은 집 - 세계 각지의 전통가옥
존 니콜슨 지음, 양상현 옮김 / 현암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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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지은 집』세계 각지의 전통가옥을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 소개한 집은 대부분 수백 년이나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온 것 들이다. 세계 각지의 다양한 전통가옥을 만드는 방법과 건축재료, 기능 따위를 그림과 함께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통 가옥들은 짓는 방법이 어렵지 않아 가족이나 이웃들이 서로 도와 쉽게 질 수 있었다. 재료 또한 생활주변에 쉽게 구할 수 있는 갈대나 풀, 흙, 나무, 돌, 얼음 따위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구조 또한 각 지역의 기후와 자연환경에 따라 생활에 편리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책이다.


30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흙벽에 기와지붕아래 살았다. 간간히 초가지붕을 볼 수 도 있었다. 그 땐 그런 집들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조상들의 지혜를 새삼 무릎을 친다. 옛날 대부분의 집 앞엔 넓은 흙 마당이 곡식이나 나물을 말리기도하고 음식재료를 만들거나 다듬었다. 이런 마당에서 돌계단을 두 개나 올라서야, 댓돌 앞에서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오를 수 있었다. 마당과 집 본체의 높이 그렇게 차이가 나서 항상 ‘왜 이리 구조를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했는데, 이 책을 보니 집 본체가 들어설 자리에 공간을 두고 30cm정도 이상 높게 기단을 쌓는 까닭은 집안으로 빗물이 스며드는 걸 막기 위해서란다. 옛날에 그 사실을 알았다면 불평을 덜 했을 것 같다.


다른 전통가옥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우수해 보인 부분은 역시 구들이다. 우리나라 구들이 우수한 난방기능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다른 나라 전통가옥과 비교하니 더욱 두드러진다. 구들은 다른 난방과 달리 위 보다 아래 공기는 따뜻하게 한다. 그래서 항상 방안 공기를 상쾌하게 할 수 있다. 머리를 시원하게 해야 맑을 정신을 갖을 수 있다고 하니 여간 과학적인 구조가 아니다.


다른 나라 전통가옥 중에 기능적인 면에서 부러웠던 것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동쪽에 있는 퀸즈랜더였다. 퀸즈랜더는 2미터쯤 길이의 육중한 나무기둥을 줄 지워 세우고 그 위에다 집을 짓는다. 이런 구조 덕분에 집 밑으로 바람이 통해서 집 바닥이 시원하고 그 지방의 해로운 흰 개미가 마룻바닥을 갉아먹는 것을 막아주고 위험한 뱀을 피할 수 있게 한다. 습기가 많은 계절에는 빨래를 말릴 수도 있고 아이들이 햇빛과 비를 피해 놀 수 있다고 하니 여간 부럽지 않다.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집은 터키 앙카라 남동쪽으로 250킬로미터쯤 떨어진 아나톨리아 고원 근처에 있는 카파도키아의 동굴집이다. 이 동굴집은 수천 년 전에 화산이 폭발해서 남은 화산재가 굳어서 투파(Tufa)라고 하는 부드러운 돌이 됐다. 시간이 흘러 투파는 비바람에 깎여 점점 뾰족한 모양이 되었다. 투파에 구멍을 내 살기 시작한 것은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초기 기독교인들 이라고 한다. 현재는 투파에 사는 사람은 거의 없고 여행자들을 위해 몇 개 개방해 놓고 있다고 한다. 뾰족한 바위를 파고 살다니, 동화나 판타지 속에나 나오는 집이 실제 한다니 정말 흥미롭다.


『손수 지은 집』읽으면서 잠깐 우리 생활 속에서 사라진 전통가옥에 대한 향수에 졌었다. 내가 경험한 전통가옥은 정서는 이런 것이다. 소 우리가 있던 마당에선 제삿날이면, 절구질을 해서 인절미를 만들고 두부를 만들었다. 사랑채 아궁이에는 커다란 솥이 걸려 있었고 아침저녁으로 소여물을 쑤었다. 댓돌 옆에는 물기를 빼느라 세워 놓은 깨끗한 고무신. 가을날 바람 부는 날이면 지붕위로 밤 떨어지는 소리 들렸고, 항상 아랫목을 소녀들에게 양보 하시던 할머니는 새벽녘에 일어나 밤을 주어 오셨다. 옛집에서 가장 좋아 했던 곳은 뒤뜰이었다. 이끼 낀 둔덕에 온갖 희한한 풀들이 자랐는데 그 곳은 나만큼 어렸던 사촌 언니와 소꿉놀이하기 좋았다.


현대 건축물의 편리함을 누리고 살면서, 전통가옥이 좋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전통가옥에는 자연과 어울리지는 아름다운 정서가 있었으며, 이것은 오늘날의 건물양식, 생활양식에 시사 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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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우리말을 담는 그릇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5
남경완 지음, 정성화 그림 / 책읽는곰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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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육천 가지가 넘는 말이 있지만 그 말들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자는 고작 이백 가지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한글은 세계인 언어학자들로부터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누구든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이다.


『한글,우리말을 담는 그릇 』이런 한글이 누구에 의해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으며, 글자를 모르던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이와 비슷한 책으로 창비에서 나온 『초정리 편지』라 동화가 있다. 이 책은 한글 창제가 일반인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그린 작품으로 글자를 모르는 서민들의 설움을 잘 표현해 감동을 주었다..


『초정리 편지』가 초등 3학년 이상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글 창제 당시 상황을 느낄 수 있게 했다면,『한글, 우리말을 담는 그릇 』초등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한글 창제 당시 상황은 물론이고 한글이 만들어진 원리, 한글이 만들어진 이후 서민생활의 변화 따위를 조목조목 담고 있다.



저학년 대상으로 만들어진 책이라 글과 그림이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만들었으며, 상황 설명이 간단하고 분명하다. 한글과 관련된 기존의 책들이 세종대왕이라는 인물과 글자체계에 집중하여 만들어졌다면, 『우리말을 담는 그릇 한글』,『초정리 편지』는 한글 창제가 서민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로서 한글 창제 당시 서민들에게 한글이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오늘날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당연 쓰고 있는 한글에 대한 고마움을 깨달을 수 있다. 한글날을 앞두고 의미 있는 어린이 책이 만나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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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그림책 4
다비드 칼리 지음, 세르주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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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동화『적』은 표지부터가 인상적이다. 가슴 가득 훈장을 단 커다란 몸집을 가진 사내의 손은 피로 물들어 있다. 사내의 가슴에 달린 훈장이 다른 사람이의 피로 얻어진 것이라는 의미가 상징적으로 전달된다.

  그림 동화『적』에서 말하는 적은 실제 전쟁에서 서로 싸우는 상대편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적이 정말로 나의 적일까? 라는 의문을 갖는다. 전쟁터에서 나와 싸우는 상대편은 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극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은 나와 같은 인간일 수 없는 짐승 같은 존재여야 한다. 내가 적을 죽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뿐이다.

  전쟁은 길어지고 상대편 참호 속에 갇힌 적 때문에 나 역시 참호 속에 갇힌다. 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참호 밖으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서로를 경계하는 총성만 간간히 울리며 길고 지리한 전쟁만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적을 죽이고 전쟁을 끝내기로 한다. 달이 뜨지 않는 어두운 밤 적의 참호로 쳐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적의 참호에는 적이 없었다. 나처럼 굶주림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적도 내 참호로 쳐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적의 참호에서 발견한 것은 적이 아니었다. 적의 참호 속에는 내 참호 속에 있던 것처럼 말린 고기 몇 점과 막대 비타민 몇 개, 그리고 가족사진이 있었다. 적은 극악무도한 괴물이 아니라, 나처럼 가족이 있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괴물 같은 적은 지휘관이 준 전쟁에 필요한 지침서에만 적혀 있을 뿐이다. 적의 지침서 안에 그려진 괴물은 적의 모습은 바로 내 모습이었다.

  ‘적’이라는 글자는 다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이나 학교, 스포츠 경기에서 나와 경쟁상대에 있는 사람을 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쟁에서의 적은처럼 극명하게 대립해 있지는 않다. 전쟁에서의 적은 생명을 담보로 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에서의 적만큼 허구적이고 ‘나’라는 개인과 무관한 존재도 없다. 전쟁에 참여하여 총칼을 들고 싸우는 이들은 애국이라는 명분 아래 상대에게 총칼을 겨누지만, 개인적인 명분을 따져보면 그를 내 적이라 할 수 없다. 그는 국가라는 집단을 내세워 만들어낸 위정자들 적일뿐이다.

  그림동화『적』은 전쟁에서의 ‘적’의 본질을 단순한 언어와 그림으로 극명하게 보여 주는 수작이다. 그림동화라는 간결성 때문에 보는 이의 연령에 따라 느낄 수 있는 정도는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지휘자들이 준 ‘지침서’의 의미를 어른들은 이데올로기의 주입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전쟁에서의 ‘적’이라할지라도 잔인한 괴물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인식하기엔 충분하다. 이 처럼 단순한 구조 속에 연령에 따라 다양한 범위 해석할 수 있는 책, 그러면서도 모두에게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잘 만들어진 그림책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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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숫자가 마법에 걸렸어요 - 생각이 넓어지는 그림책 4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글, 채운정 옮김 / 산하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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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글자 안 되는 글자로 꾸며진 난해한 그림책, 내겐 너무나 어려운 책이다. 이 그림책에 대한 소개 글과 서평을 보면서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에 들어선 것 같은 낯선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 책은 괴테가 쓴 <파우스트>를 보고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로 유명한 그림동화 작가 에를부르흐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든 책이다.

  

‘괴테는 이 책에 실은 ‘마법의 구구법’으로 시(詩)의 어떠한 논리로도 풀어낼 수 없는 비이성적인 면을 발전, 향상시키려했다. 1827년 괴테는 그의 친구 에커만에게 보내는 글귀에 여기 ‘파우스트’에 소개되는 구구법이야말로 “사상이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결코 명확할 수 없는 표현들이 뱅뱅 원을 그리듯 돌 뿐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빅토아 랑거에 의하면 그 어떤 숫자의 배경을 설명하려고 애쓰거나 혹은 상징적 해석 등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괴테의 시 창작의 의도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책’으로 국제 상을 수상했으며, 독일에서는 이 책이 나왔을 때 여러 신문과 잡지들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이 책과 소개 글을 읽으면서 갑자기 벌거숭이 임금님이 생각났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책’으로 국제 상을 받은 책이라는데 아무런 감흥을 받을 수 없었기에 벌거숭이 임금을 구경나온 아이가 된 심정이다.

  하지만 난 아이처럼 순진하지 못하다. 나 자신이 의심스럽다. 나의 얕은 지식과 공유할 수 없는 문화적 차이일 거라 추측하고 입을 다물고 만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마 내가 보지 못한 뭔가를 발견하고 해설할지도 모르다. 조금 큰아이라면 ‘무슨 책이 이래’ 할지도 모르겠다.


  괴테의 ‘파우스트’ 다시 읽고 본다면 뭔가 힌트를 얻지 않을까, 나도 이 책에 대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래저래 이 책은 나를 공경에 몰아넣었다. 아이처럼 솔직할 수도 없고 지적인 어른이 아니라,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든 책이다. 결국, 벌거벗은 임금님을 구경하러 나온 어른인 셈이다. 자신을 의심하면서 벌거벗은 임금의 멋진 옷을 발견하려 애쓰는 어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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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의 마당 Dear 그림책
찰스 키핑 지음, 서애경 옮김 / 사계절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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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지프의 마당> 표지에는 한 소년이 우울한 표정을 하고 서있다. 소년의 표정으로 보아 '조지프의 마당'에서는 행복하거나 유쾌한 일이 생길 것 같지 않다. 이런 전조는 조지프의 얼굴표정에서뿐만 아니라 배경그림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혼란과 질서가 공존하는 배경그림에서 틀 속에 갇힌 체 꿈틀대는 생명이 느껴진다. 틀 속에 갇힌 불만이 가득 찬 생명은 조지프의 마음처럼 건조한 콘크리트 바닥이 답답하다. 그래서 그 배경 그림은 조지프의 표정처럼 우울하다.

조지프는 온통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시에 산다. 그래서 생명이 주는 활력과 생동감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런 조지프가 어느 날 마당에 있던 녹슨 바퀴를 나무 한 그루와 바꾼다. 돌바닥을 드러내고 나무를 심는다. 비가 내리고 햇볕이 내쬐고 나무가 자라난다. 꽃이 피는 것을 지켜보던 조지프는 꽃이 너무 예뻐 꺾는다. 그러자 꽃은 금세 시들어 버렸다. 조지프는 나무가 죽은 줄 알고 실망한다. 다시 봄이 오자 나무가 살아나고 꽃을 피우자 조지프도 생기를 찾는다. 이번엔 꽃을 꺾지 않는 대신 꽃에 몰려들기 시작한 벌레, 그 벌레를 잡아먹으려는 새, 새을 잡으려는 고양이에게 꽃과 나무를 지키려고 외투를 나무에 덮는다. 햇볕과 비가 가려지자 꽃이 죽고 만다. 조지프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나무를 가만두고 지켜보기로 한다. 철이 지나고 해가 갈 수록 나무는 다른 생물과 조화를 이루며 무럭무럭 자라난다. 

조지프는 생명이 자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꽃을 꺾으면 시든다는 걸 몰랐다. 또 다른 생물과 공존하며 산다는 사실도 몰랐다. 나무 한 그루를 키우면서 거기에 생명이 있으며 빛과 물에 의지해 다른 생물들과 어울려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지프의 마당>을 쓴 작가는 직접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은 작가가 도시에서 자란 자신의 어린시절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삭막한 도시어린이의 정서와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잘 표현되어 있다. 글보다는 그림이 주는 이미지가 강하고 글은 그림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개되고 있다. 종종 이런 그림책(작가가 그림으로 말하고자 하는)을 만나게 되는데, 작가는 그림을 통해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그림책을 볼 때 꼼꼼히 그림을 보게 된다. 왜, 작가가 이렇게 거칠고 답답해 보이는 선을 선택했으며, 어둡고 칙칙한 색을 썼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이들에게 이런 그림책을 읽어 줄 때는 그림이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변화된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의 느낌은 어떤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는 것이 좋다. 그러려면 그림책을 한번 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림책은 여러 번 보되 매번 다른 방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처음엔, 책표지와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인지 짐작해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림의 선과 색, 주인공의 표정 등에서 주는 느낌을 이야기한다. 두 번짼, 그림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그 변화에 따라 아이들이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 한다. 세 번째 그림을 한장씩 넘기면서 아이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게 한다. 네 번째, 글을 읽고 작가 쓴 내용과 아이가 꾸민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 해 본다.

이처럼 그림책은 한권으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볼 수 있다. 또 그림책은 일반 책이 글을 통해 상상력을 이끌어 내는 것에 비해, 그림을 통해 언어를 표현한다는 매력이 있다. 이것은 언어로 하는 언어교육의 한계를 넘어서 창의적인 언어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언어의 경우, 그 이미지가 이미 언어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는 언어가 주는 영역 안에서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그림의 경우는 형태를 통해 이미지를 보기 때문에 언어가 구속하는 부분이 적다. 상대적으로 아이들이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폭은 넓어진다.

그런 이유로 그림책을 천천히 보면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창의적인 언어표현을 하는 독서활동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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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2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그래서 그림책 참 좋아해요

수양버들 2006-04-27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동안 시쿵둥 했는데 다시 읽기 시작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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