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북경에 가다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천지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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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버트런드 러셀은 북경에 1년간 생활을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쓰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 중국이란 거대 문명을 인정하고 서양인이 중국의 미덕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는 것이다. 1920년이면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로 서양의 제국주의가 팽팽해있던 시기이다. 이 시기 서양인은 동양을 하나의 문명으로 보기 보다는 미개한 인종으로 약탈과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그런 서구적 시각에서 벗어나 수천 년간 공자의 도와 덕을 숭상해온 중국의 문명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서구는 스스로를 우월한 문화를 전파하는 설교사로 여기는 태도는 물론이고, ‘열등한’ 중국인을 착취하고 억압하고 등골을 우려낼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오만한 태도를 벗어던져야 한다.‘ ( 본문 22 쪽 )
하지만 러셀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너무 미화시킨 경향이 있다. 더욱이 우리처럼 중국 옆에 붙어 있는 약소국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러셀의 표현에 결코 동의 할 수 없다.
어떤 사회를 판단할 때는 내부적으로 선이나 악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선이나 악을 증대시키는 데 그 사회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그 사회가 누리고 있는 선은 다른 사회에 존재하는 악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중략-
중국인들은 다른 나라에 해를 끼칠 만큼 강하지 않으며, 그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그들 자신의 힘과 노력에만 의지해서 확보되는 것이다. -중략-
중국인은 서구가 개입하기 전까지는 진보와 능률에 무관심한 덕분에 평화로운 삶과 인생의 기쁨을 누렸다. ( 본문 24~25쪽)
러셀은 이처럼 중국에 대해선 호의적인 반면에 일본에 대해선 반대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내 보기엔 러셀이 중국에 보다 일본의 실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현대의 일본은 서구가 만들어낸 작품임에 틀림없다. 일본이 중국에게 하고 있는 행동들은 따지고 보면 일본을 가르친 백인 교사들에게 책임이 있다. 그렇지만 일본은 유럽이나 미국과는 크게 다르고, 일본이 중국에 대해 품고 있는 야심은 유럽이나 미국의 야심과는 전혀 다르다. 따라서 우리는 세 가지 가능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중국이 하나 혹은 두 개의 백인 국가에 종속된. 둘째 중국이 일본에 종속된다. 셋째, 중국이 자유를 되찾고 그 상태를 유지한다. 일시적으로 보면 네 번째 가능성, 즉 일본과 서구 강대국들의 연합체가 중국을 관리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일본은 궁극적으로 영국.미국과 협조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본은 궁극적으로 영국.미국과 협조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본은 극동을 지배하거나 아니면 패망할 것이다. 만일 일본인이 지금과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예상을 빗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인은 야심의 속성 대문에 배타적이고 비우호적이다. 나는 중일 관계를 다룰 때 이런 관점을 근거로 삼을 것이다. (본문 25~26쪽)
러셀의 중국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이계라는 사람이 쓴 표의문자인 한자에 대한 칭송을 소개하는데 이른다.   

중국어는 표음문자 어족에 속하지 않는다. 중국어에는 표음문자 언어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점이 없다. 그러나 중국어는 간결하면서도 최종적인 진리를 구현학고 있기 때문에, 폭풍과 스트레스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중국어는 4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중국 문명을 보호해왔다. 중국어는 그 문자가 대표하는 정신만큼이나 정연하고 확고하며 훌륭하다. 정신이 언어를 만들어 낸 것인지, 언어가 정신을 강화시킨 것인지 확실치 않다.( 본문 52쪽 )  

이 글을 읽으면서 표의문자인 한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갖게 되었다. 한자 문화권에 살면서 이제야 비로소 표의문자인 한자에 대한 긍정적인 근거를 찾아낸 것이다.
다음 글에서 러셀은 중국은 애국보다 효를 강조하는 나라라고 소개하면서 중국의 효 사상에 관해서는 서구의 애국주의와 견주어 우호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서구의 애국주의에 비하면 중국의 효는 그다지 해로운 것이 아니다. 물론 효와 애국심은 모두 인류의 일부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 전체를 배제하라는 의무를 가르친다는 점에서 잘못이 있다. 그러나 애국심은 인간의 충성심을 전투 부대로 향하게 하지만 효는 (아주 원시적인 사회의 경우를 제외하면)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애국심은 아주 쉽게 군국주의, 제국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자기 나라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살인이다. 자기 가족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부패와 음모다. 따라서 가족의식은 애국심에 견주면 덜 해로운 것이다. 중국의 역사와 현 상황을 유럽에 견주어 보면 이런 생각이 나올 수밖에 없다. ( 본문 56~57쪽 )
이글을 보면서 러셀이 애국주의와 가족주의를 모두 비판하고 있다는 것에서 놀라웠다. 그런 그의 탁견이 있었기에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일본인의 속성을 읽어낼 수 있었고 그들이 제국주의 야심을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레셀은 당시 일본인들의 태도에 대해서 세세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일본인들의 비열하고 잔인하며 교활한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인식이 무엇을 근거로 하는지 역추적이 가능하다는 거다.
외국인이게 속을 내주지 않고 실익만 챙기는 외교전술 (본문 159~160쪽) 상징적인 인물인 천황을 내세워 국민에겐 애국주의 강조하면서 막후 실세를 휘두르는 고도의 정치술(본문 136~137쪽), 오래전부터 집요하게 이루어진 역사외곡의 실체(본문 133~134쪽)까지 흥미롭게 기술되어있다.
이 책은 1926년에 발표된 글이기에 그 후 중국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당시 청나라의 붕괴와 외세의 침략으로 무정부상태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에 대한 우려로 러셀은 중국이 군사 국가가 되거나 외국 강국이 사회주의화되지 않는 이상, 중국은 외국의 경제적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했다. ( 본문 85쪽 ) 하지만 중국은 스스로 사회주의를 선택했다. 당시 러셀의 강연을 경청하던 모택동 학생은 다음과 같이 비판하면서 자신들만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유산계급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교육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그 방법을
사용하면 자유를 제한하거나 전쟁과 유혈 혁명에 의존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셀의 의견에 대한 나의 반박은 몇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교육을 하려면 돈, 사람, 수단이 필요하다, 현대 세계에서 돈이란 돈은 모두 자본가들이나
자본가의 노예들이 장악하고 있다. 현대 세계에서 중요한 두 가지 교육 수단인 학교와 신문 역시 자본가들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현대 세계의 교육은 곧 자본주의 교육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자본주의를 가르친다면, 이 아이들은 자라서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다시 자본주의를 가르칠 것이다. 결국 교육은 자본가의 수중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본문 9~10쪽)
모택동의 반론은 공산주의체제가 유지되는 동안은 러셀의 견해에 비해 올바른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을 생각한다면 모택동은 중국이 지닌 힘을 너무 과소평가 했다. 생각을 할 것이다.
<러셀 북경을 가다>는 내가 감당하기엔 좀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일본과 엉킨 당시 국제정세 부분이 그렇다. 이 부분은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큰 감동을 줄 것 같다.
끝으로 90년 전에 가졌던 러셀의 해안과 진보적인 사고에 놀랐고 그이 해박한 지식과 치밀한 기술 방식에 놀랐다. 아쉬운 것은 나의 역량부족으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읽었을 땐 이런 아쉬움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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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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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시작 되었는가? 라는 질문은 인간이 언제부터 동물들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과 같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양철학은 소크라테스부터 시작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소크라테스 이전에 이미 생성되어 있었던 경이로운 철학사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철학의 탄생』정말 흥미로운 것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 그러니까 철학이 탄생 즉, 시작 당시의 모습이 ‘시작’이라는 말처럼 어설프지 않다는 것에 있다.



철학과 과학이 분리되어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뉴턴 이후이다. 근대이후 철학에서 분리된 과학은 세분화를 걸치면서 발전해 왔다. 이런 세분화의 시작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학풍이고 그 이전의 철학자들은 자연현상을 분류하기 보다는 통합해서 보았다.


‘자연을 분리할 수 없는 통일체로, 하나의 전체로 관찰하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서 조화로운 전체를 이렇게 인위적으로 분할하여 그 한 부분을 격리시키고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비쳤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에게는 이런 일은 부적절한 뿐만 아니라 아마도 오만함을 드러내는 처사이기까지 했을 것이다. 이는 조화로운 우주 현상에 개입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의 생각은 현대에 들어 새롭게 해석되어 조명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장외익 교수가 내 놓은 ‘온 생명’이라는 것이 그러하다. 아무리 작은 단위의 생명이라고 해도 또는 아무리 큰 단위의 생물이라고 해도 혼자서는 살수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장외익의 이론의 근거이다. 지금까지의 과학은 물질 분절해서 관찰하고 연구하는데 집착하였는데 앞으로는 모든 생명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받아 드리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외익 교수는 과학과 철학을 결합해서 생각하는 것이 오늘날의 과학의 과제라고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의 이론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과 많이 닮아 있다. 모든 생명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과학이론은 장외익 뿐만 아니라 차이는 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처럼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의 사유가 근대 이후 또는 현대 과학자들의 이론과 얼마나 닮아 있다. 이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의 철학적 사유는 놀라운 과학적인 직관을 갖고 있었으며, 그것을 명료하게 규명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이 오늘날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 이후의 철학에서 근대 이전의 철학과 과학은 어두운 터널을 헤매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토마스 쿤은 과학적 혁명을 통해 그 시대(또는 여러 시대를 걸쳐)에 통용되는 과학이 형성된다고 하였다. 이를 토마스 쿤은 정상과학이라고 명명한다. 정상과학으로 인정받기까지 수많은 과학자들은 수많은 가설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이중 정상과학으로 인정받는 것은 극히 일부이다. 이『철학의 탄생』에선 정상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한 수많은 가설과 연구 성과에 대한 가치를 설명하므로서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적 사유가 얼마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었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저자는 리처드 파이먼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은 생각을 전하다.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인먼은 추측을 표명하는 적은 비과학적인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추측은 다만 불확실할 뿐이다. 아무런 추측도 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과학적인 일이다. 추측은 표명되어야 한다. 외삽법에 의한 예측만이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가설이란 앞서 나가면서 관찰을 이끄는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대화하면서 이렇게 지적한다. “원칙적인 입장에서 볼 때 오로지 관찰될 수 있는 수치로만 이론을 만들어내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무엇이 관찰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이론입니다.”’


물론 허무맹랑한 이론들만 난무한다면, 그 또한 옳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과학이나 철학은 상상력과 직관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의 철학자들이 직관과 추측이 근대 이후 과학기술로 밝혀졌다는 사실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탈레스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는 모든 생물은 물로부터 시작되었고 인간 역시 물고기들 사이에서 태어나 육지로 올라오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에 알려진 진화론에 대해 당시에 벌써 추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공기라는 개념과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고 태양으로 인해 수증기의 상승으로 비로 내린다는 등의 초보적이긴 하지만 과학적인 추론에 따라 기상학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 처럼 소크라테스의 이전의 철학자들의 사유는 과학기술의 부족으로 실험 결과를 증명하지는 못하고 상상력과 직관에 의존해 사물과 현상을 규명하였지만, 상당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그리스 철학과 타 지역의 철학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정신적 발전들은 시기적으로 서로 일치하며, 사유를 통해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 또한 같았지만, 그 발전들은 각각 상이한 입장에서 시작되어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거대한 중국 제국에서는 정의로운 정치 질서 안에서 인간들이 서로 맺어야 할 올바른 관계를 설정하려는 실천적인 고민이 지배적이었다. 인도에서는 인생의 심오한 의미에 대한 최초의 질문들을 제기하는 종교적 고민이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강력한 중앙국가도, 종교적인 성직자 집단도 없던 그리스에서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인간의 경이감으로부터 철학이 시작되었다.” 자연의 조화 앞에서 그리스인 느꼈던 놀라움과 경이감-이것이 세계의 시초와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이 결정적인 질문은 서양 철학과 과학의 합리적인 기초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고 도시에 유럽과 동양사이의 정신적인 괴리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고착시켰다. 그리고 이 괴리로부터 온갖 다른 결과들이 초래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놀랍도록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사유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경이로움을 표한다. 반면, 『철학의 탄생』의 저자가 보여주는 그리스철학의 위대성에 놀라면서 동양철학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내가 모를 무궁무진한 세계가 동양철학에도 숨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대과학자들에 의해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의 이론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것을 알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들이 참으로 가변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 증명이 만능인 것처럼 떠들어 대는 오늘의 세태가 허망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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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 이슬람은 전쟁과 불관용의 종교인가 고정관념 Q 9
폴 발타 지음, 정혜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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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막에 둘러싸인 건조한 땅에서 오아시스를 의지하면 사라가는 중동사람들을 살아가게 한 힘은 종교의 힘과 동서양을 잇는 교역일 것이다.

척박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연환경을 원망하기 보다는 신의 뜻으로 받아 드릴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그들의 다신을 숭상했던 고대 종교와 달리 일찌감치 유일신을 강조했으며, 그 어떤 종교보다 강력한 규율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이 종교적 권위에 억눌려 암흑기를 맞이하는 동안 이슬람 문화에선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여 문명의 꽃을 피운다. 그러나 유럽이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근대라는 새로운 물결을 거쳐 동안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 동안, 이슬람권 국가들에선 정교분리를 이루지 못하여 대부분의 나라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국제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원유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국가적으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저자가 제기한 이슬람문명의 현주소이다.

이런 저자의 관점은 진화론적 역사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 사회학자들에 의해 진화론적 역사관이 비판을 받고 있으며 근대 또는 근대성에 대해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진화론적 입장이 아닌 새로운 입장에서 정교분리를 이루지 못한 이슬람 문화권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또한 근대성에 영향을 더 물든 이슬람문명은 현대 문명 국가 보다 올바른 지향점을 갖고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필자는 갖고 있지 않다. 또한 독서량에 부족하여 관련된 의견을 접하지 못했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접하는 이슬람인들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쉠 아그하잘 같은 사람은 “종교는 단순히 이민의 아편일뿐만 아니라 권력의 아편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이 책에선 이슬람을 근대화해야 하는가, 아니면 근대성을 이슬람화해야 하는가? 이 두 방향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하는데 필자가 궁금한 것은 ‘이슬람이 근대화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에 있다. 이슬람이 근대화를 이루와 정교가 분리되고 중세이후 후퇴해온 과학문명을 발전시킨다면 그들은 어떤 미래를 만들 나갈까? 근대성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보안하여 새로운 문명을 창출할 것인가, 아니면 서방세계에서 저지른 오류를 답습할 것인가? 의문이 아닐 수 있다.

이번에 『이슬람』과 함께 같은 출판사 시리즈물인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을 읽어 중동지역을 문제점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기르는 계기를 가졌다.

『유대인』발견한 아이러니는 현대 자본가를 만들어낸 것이 유대인이라는 사실과 이런 자본주의에 가장 강력하게 대항하는 공산주의 이론을 만든 마르크스나 볼세비키 혁명가들 역시 유대인이라는 사실이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유대인에 대한 세계인의 동정과 비난의 근원이 민족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떠돌이 생활을 하며 핍박받아 오던 유대인은 2차 세계대전 나치에 의해 대량학살이 자행된다. 너무나 참혹한 경험을 하게 된 유대인들은 유대민족을 지키기 위해 시온주의를 만들어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만들게 된다. 그로 인해 팔레스타인들이 자신들이 살던 고향을 버리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으니, 유대인은 민족주의로 인해 받은 피해를 민족주의로 극복하는 동시에 애매한 팔레스타인에게 앙갚음을 한 것이다.

이 일은 남의 일이라고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20세기에 힘으로 다른 나라의 땅을 점령하여 국가를 세웠다는 것, 그런 사실을 강대국인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묵인하고 승인하며 경우에 따라선 지원하고 있다는 엄청난 사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라는 대국이 수정자본주의로 선회하면서 중화사상을 버리지 않고 서남공정에 이어 동북공정을 전략화하고 있는 상황이고 일본이 미국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군사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이 고대에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다른 나라를 침략해 국가를 세우는 것을 정당화하고 국제적으로 용인한다면 중국이나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할 수 있는 근거의 선례로 악용될 수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문제는 물론이고 요즘 국제사회에 이슈가 되고 있는 티베트 독립문제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지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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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 - 천 가지 성공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
조지 레너드 지음, 강유원 옮김 / 여름언덕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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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공간을 넓히면 현실공간이 넓어지고 현실공간이 넓어지면 기대지평이 넓어진다.”

10월 13일 오후 2시 강남 교보타워로 『달인』(여름언덕)의 역자 강유원을 만나러 갔다. 강유원이란 이름만보고 강의에 참석하기로 결정할 때만해도 『달인』의 역자가 그인 줄 몰랐다. 필자가 인지하고 있던 강유원은 자기계발서 따위의 책을 번역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 제목과는 다른 뭔가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어째든 시간이 촉박하여 『달인』을 구입도 못한 채, 전에 읽었던 그의 저서 『책과 세계』를 들고 강연장으로 향했다.

30여명이 모여 있는 강연장에 유독 눈에 띠는 사내가 있었다. 검정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사내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그가 강유원인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책 속에서 지적 갈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던, 마음속으로 기대했던 그이가 아니었다. 곱상한 외모는 아닐지라도 뭔가 지적인 면이 묻어 나야하는데, 그에게선 야성적인 면만 강하게 느껴졌다.

그는 강의의 서두를 두 가지로 시작하였다. 하나는『달인』을 번역한 계기이고, 둘은 달인의 주제인 연속적인 훈련을 통한 숙련을 6월 항쟁과 결부시켜 해석해 보자는 것이었다.
『달인』을 번역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을 때, 처음엔 자기계발서로 생각해 자신의 이미지를 훼상이 될까 싶어, 거절했다고 한다. 막상 책을 읽어보니 그 내용이 그동안 자신이 공부해온 방법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책이 단순히 사회적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달인이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번역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가 예로든 연습과 반복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는 일반적인 지식 습득이나 기술 습득과는 차원이 달랐다. 먼저 그는 책을 크게 네 가지 등급으로 분류해서 본다고 하였다. 세상의 본질적인 진리를 다룬 고전을 A급으로 보고, 이런 고전을 연구한 논문을 B급으로 볼 수 있으며, 이를 다시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쓴 글을 C급의 책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일반 정보를 묶은 책은 D급에 해당한다. 진리가 담겨있는 고전은 읽기가 쉽지는 않은데, 이런 어려운 고전을 읽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반복과 숙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숙련을 설명하기 위해 경험공간과 기대지평의 연관하여 ‘프랑스 혁명’과 ‘6월 항쟁’을 예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 사고할 수 없다. 아이는 아이의 경험영역에서 사고하듯, 어른들도 자신의 경험영역에서 사고한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경험은 일회성으로 끝난다면, 현실공간으로 끌어들이거나 현실공간을 넓힐 수 없다. 경험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현실공간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그 예로 칸트의 말을 빌렸다.
“프랑스혁명을 잦은 경험을 통해 일상화해야 한다.”
프랑스혁명처럼 엄청난 사건을 일상화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다소 낯선 이야기로 들리지만, 만약 프랑스혁명이 단순한 반란으로 끝났다면, 시민의 권리라는 것을 세계인이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혁명은 미국의 독립으로 반복되었고, 러시아에서는 ‘10월’혁명으로 반복되었다. 이처럼 경험공간의 확대와 반복적인 경험이 현실 속에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으며, 그에 따라 기대치가 넓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프랑스 혁명과 비견하여 '6월 항쟁‘을 끌어냈다.
“그렇다면 ‘6월 항쟁’ 20년을 맞는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 속에 ‘6월 항쟁’의 정신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가?”
“6월 항쟁의 주역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권력의 시녀가 되어 권력 앞에 굴복하고 있지 않은가?”
라는 물음은 우리 사회에 안이함으로 반복적인 경험을 단절시키고 있으며, 경제 논리에 물들어 스스로 퇴보고 하고 있지 않은가 반성을 요구한다.
앞의 예에서 보듯이 경험의 반복과 숙련은 단순이 지식이나 기능에만 있지 않다. 역사적, 사회적인 경험과 반복에도 찾아 볼 수 있으며, 이런 경험과 숙련은 우리의 삶의 질을 한 차원 높여주게 된다. 이런 사고의 경험은 고전에서 본질적인 것을 찾을 수 있으며, 대부분 그 고전에서 파생되는 것이므로 고전 읽기에 단련해야 한다고 반복하여 주장하였다.
뒤이어, 자신이 5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홈피를 관리하는 이유도 일반인들에게 고전 읽기를 독려하고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마지막으로 이런 경험과 단련 과정에는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신의 스승과의 관계를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책과 세계』(살림)를 통해 분명 고전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했지만, 반복적인 연습을 게을리 하였다. 오늘 강의는 이런 필자를 책망하듯 『달인』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다. 지금까지 강의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필자의 의견을 첨가하였다. 혹 강유원님의 의도와는 다른 의사전달이나 해석이 있을까, 염염하면서 글을 마치기로 한다.



사자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오늘날의 사람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책을 읽은 이는 전체 숫자에 비해서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하고 있다 하여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압도적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소수의 책 읽는 이들이 벌이는 일종의 음모임에 틀림없다. 『책과 세계』 4쪽






저자 강유원의 저서들





저자 약력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러 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쓴 책으로 『책』, 『책과 세계』, 『몸으로 하는 공부』, 『장미의 이름 읽기』, 『서양문명의 기반』, 『삶은 늘 우리를 배반한다』(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로크』, 『헤겔 근대 철학사 강의』(공역), 『낭만주의의 뿌리』(공역)가 있다. 그 밖에「문화일보」, 「씨네21」 등의 매체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웹사이트는 http://www.armariu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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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도서팀 2007-11-05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편집팀 윤성화입니다.

여름언덕 <달인> 외 리뷰 이벤트에 당첨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http://www.alad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071001_summer

상품은 <만화 서양미술사 5권 세트> 입니다.
rain@aladdin.co.kr 주소로 책을 받으실 분의 성함,주소,연락처를 적어 보내주시면 책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상품 발송은 출판사에서 담당하며, 11월 20일 전후에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수양버들 2007-11-05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만화 서양미술사> 갖고 싶은 책이였는데 고맙습니다.
 
권력의 기원을 찾는다 로크의 정부론 Easy 고전 15
김성우 지음, 김학수 그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삼성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존 로크의 <정부론>은 대입논술에 제시문으로 자주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정부론>이 대입논술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17세기 당시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존 로크가 내 놓은 ‘자유주의’에 대한 논란이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트의 정부론>은 당시 요크 공작, 즉 제임스 2세의 왕위 계승을 철학적으로 반박한 책으로, 제임스 2세의 절대 왕정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체계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로크가 살던 시대는 가톨릭과 개신교, 심지어 개신교와 개신교 사이의 종교 대립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던 때이다. 국왕과 시민 토리당과 휘그당, 왕과 의회 사이의 정치 갈등도 깊었다. 종교 대립과 정치 갈등이 뒤죽박죽된 아픈 시대였던 것이다. 이런 시대의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 로크는 ‘경험론’과 ‘자유주의’라는 처방전을 내놓았다.

로크의 자유주의 사상을 발전시켜 나타난 것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라 할 수 있고, 로크의 자유주의 사상과 반대되는 사상으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를 들 수 있다. 아담 스미스는 로크 보다 한 세기 뒤에 인물로 로크의 자유주의를 발전시켜 시장의 자유경쟁체제를 주장했다. 마키아벨리는 로크보다 한 세기 전의 사람으로 국가통치자로써 군주가 할 수 밖에 없는 행위, 즉 도덕성이나 종교적인 반하는 행위를 정당화 하였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국민의 자유보다는 군주의 통치권을 강조한다.

로크의 <정부론>은 당시로써는 극히 혁명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종교로부터 정치를 독립시켰다면, 로크는 <정부론>를 통해 정부라는 개념을 창출하여 새로운 국가관을 만들었다. 일인 왕권으로부터 권력을 분리시키고 일반인들에게 일정한 권리를 이양하고자 했다. 왕의 권력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가 아니라, 권력을 분산시켜 의견을 형성하고 운영하는 체계라는 ‘정부’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것이다.

지금은 정부라는 단어를 흔히 쓰고 있지만, 로크 살았던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이런 로크의 사상은 현대에 이르러 권력분립, 대의제 정부, 관용과 언론과 양심의 자유, 법치주의, 부를 추구할 권리 등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이념의 근간이 된다. 이처럼 철학자의 사상이 시대를 넘어 폭 넓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없는 개념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로크의 자유주의는 완성이 아니라 출발에 불과하다. 로크는 정치적 권리의 평등하게 하면서 부의 불평등을 합법했다는 문제점을 낳았다. 국가 운영을 위해 다수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하여 소수의 정당성은 간과하였다. 현대에도 로크의 자유주의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신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개념에서의 자유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케인즈가 주장한 복지국가 개념에 다시금 로크의 자유주의로 돌아가자는 복고 운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당면 과제를 생각해 볼 때, 비효율성으로 인해 발생된 복지국가 혹은 수정 자유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이 책에서도 다음과 같이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세계화와 구조조정이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문제점인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양극화 문제를 세계화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연 발생적 질서에 의해 생겨난 불평등을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양극화를 과연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인정하기에 지금의 양극화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참을 수 없는 ’세계화의 덫‘일 뿐입니다. 이양극화의 지나침 때문에 온건한 자유주의 이론가들도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비판합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가 아닌, 인간의 얼굴을 한 자유주의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로크는 자유주의적 이론 체계를 만들면서도 정치적 민주주의, 다시 말해 독재에 대한 저항, 평등, 자유, 독립이라는 인간의 권리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인류 사상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의 민주주의 사상도 부의 불평등 문제에 눈감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의 사상이 이러한 불평등을 더욱 강화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면에서 로크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위한 일종의 치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로크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현대의 가장 큰 모순의 기원이 되기 때문에 오늘날 정치, 경제사상에 치열한 논쟁의 중심에 있다. 이런 현상이 우리에게도 예외일 수 없고 어쩌면,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욱 치열한 논의 되어야 할 시기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시급한 당면 과제로 한미 FTA만 보더라도 자유주의에 대한 논의가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로크의 <정부론>을 소개하고 그로 인해 생겨난 현상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로크의 사상을 알기는 해야겠는데 <정부론>를 읽기는 부담스러운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다. 현대에 문제와 연관시키기고 해석했다는 점과 부록에 관련 논술을 문제를 실었기 때문에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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