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은 어떻게 시작 되었는가? 라는 질문은 인간이 언제부터 동물들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과 같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양철학은 소크라테스부터 시작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소크라테스 이전에 이미 생성되어 있었던 경이로운 철학사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철학의 탄생』정말 흥미로운 것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 그러니까 철학이 탄생 즉, 시작 당시의 모습이 ‘시작’이라는 말처럼 어설프지 않다는 것에 있다.



철학과 과학이 분리되어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뉴턴 이후이다. 근대이후 철학에서 분리된 과학은 세분화를 걸치면서 발전해 왔다. 이런 세분화의 시작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학풍이고 그 이전의 철학자들은 자연현상을 분류하기 보다는 통합해서 보았다.


‘자연을 분리할 수 없는 통일체로, 하나의 전체로 관찰하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서 조화로운 전체를 이렇게 인위적으로 분할하여 그 한 부분을 격리시키고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비쳤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에게는 이런 일은 부적절한 뿐만 아니라 아마도 오만함을 드러내는 처사이기까지 했을 것이다. 이는 조화로운 우주 현상에 개입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의 생각은 현대에 들어 새롭게 해석되어 조명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장외익 교수가 내 놓은 ‘온 생명’이라는 것이 그러하다. 아무리 작은 단위의 생명이라고 해도 또는 아무리 큰 단위의 생물이라고 해도 혼자서는 살수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장외익의 이론의 근거이다. 지금까지의 과학은 물질 분절해서 관찰하고 연구하는데 집착하였는데 앞으로는 모든 생명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받아 드리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외익 교수는 과학과 철학을 결합해서 생각하는 것이 오늘날의 과학의 과제라고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의 이론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과 많이 닮아 있다. 모든 생명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과학이론은 장외익 뿐만 아니라 차이는 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처럼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의 사유가 근대 이후 또는 현대 과학자들의 이론과 얼마나 닮아 있다. 이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의 철학적 사유는 놀라운 과학적인 직관을 갖고 있었으며, 그것을 명료하게 규명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이 오늘날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 이후의 철학에서 근대 이전의 철학과 과학은 어두운 터널을 헤매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토마스 쿤은 과학적 혁명을 통해 그 시대(또는 여러 시대를 걸쳐)에 통용되는 과학이 형성된다고 하였다. 이를 토마스 쿤은 정상과학이라고 명명한다. 정상과학으로 인정받기까지 수많은 과학자들은 수많은 가설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이중 정상과학으로 인정받는 것은 극히 일부이다. 이『철학의 탄생』에선 정상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한 수많은 가설과 연구 성과에 대한 가치를 설명하므로서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적 사유가 얼마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었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저자는 리처드 파이먼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은 생각을 전하다.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인먼은 추측을 표명하는 적은 비과학적인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추측은 다만 불확실할 뿐이다. 아무런 추측도 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과학적인 일이다. 추측은 표명되어야 한다. 외삽법에 의한 예측만이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가설이란 앞서 나가면서 관찰을 이끄는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대화하면서 이렇게 지적한다. “원칙적인 입장에서 볼 때 오로지 관찰될 수 있는 수치로만 이론을 만들어내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무엇이 관찰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이론입니다.”’


물론 허무맹랑한 이론들만 난무한다면, 그 또한 옳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과학이나 철학은 상상력과 직관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의 철학자들이 직관과 추측이 근대 이후 과학기술로 밝혀졌다는 사실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탈레스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는 모든 생물은 물로부터 시작되었고 인간 역시 물고기들 사이에서 태어나 육지로 올라오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에 알려진 진화론에 대해 당시에 벌써 추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공기라는 개념과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고 태양으로 인해 수증기의 상승으로 비로 내린다는 등의 초보적이긴 하지만 과학적인 추론에 따라 기상학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 처럼 소크라테스의 이전의 철학자들의 사유는 과학기술의 부족으로 실험 결과를 증명하지는 못하고 상상력과 직관에 의존해 사물과 현상을 규명하였지만, 상당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그리스 철학과 타 지역의 철학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정신적 발전들은 시기적으로 서로 일치하며, 사유를 통해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 또한 같았지만, 그 발전들은 각각 상이한 입장에서 시작되어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거대한 중국 제국에서는 정의로운 정치 질서 안에서 인간들이 서로 맺어야 할 올바른 관계를 설정하려는 실천적인 고민이 지배적이었다. 인도에서는 인생의 심오한 의미에 대한 최초의 질문들을 제기하는 종교적 고민이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강력한 중앙국가도, 종교적인 성직자 집단도 없던 그리스에서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인간의 경이감으로부터 철학이 시작되었다.” 자연의 조화 앞에서 그리스인 느꼈던 놀라움과 경이감-이것이 세계의 시초와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이 결정적인 질문은 서양 철학과 과학의 합리적인 기초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고 도시에 유럽과 동양사이의 정신적인 괴리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고착시켰다. 그리고 이 괴리로부터 온갖 다른 결과들이 초래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놀랍도록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사유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경이로움을 표한다. 반면, 『철학의 탄생』의 저자가 보여주는 그리스철학의 위대성에 놀라면서 동양철학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내가 모를 무궁무진한 세계가 동양철학에도 숨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대과학자들에 의해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의 이론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것을 알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들이 참으로 가변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 증명이 만능인 것처럼 떠들어 대는 오늘의 세태가 허망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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