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간이 윌슨 창비세계문학 31
마크 트웨인 지음, 김명환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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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가공선><얼간이 윌슨>. 양자택일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바로 얼간이의 어감이었다


얼간이

얼간이

얼간이

얼간이

얼간이

 언어생태계에서 욕이란 소수종이 차지하는 위상은 독특하다. 시대 변화에 흔들림 없이 정통성의 권위를 누리는 욕이 있는가 하면, 시대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변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고, 진화하고, 소멸하는 욕이 있다. 얼간이. 태어난 이래로 나는 몇 번이나 이 단어를 발음해보았을까. 아마 다섯 손가락 선에서 해결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공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발음해볼 기회가 별로 없을 것 같은 두 단어 사이에서 나는 끌리는 쪽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얼간이다운 선택이 되었다.


 창비 책 읽는 당원 2기에 신청하면서 확률을 높이기 위해 신청이유에 눈에 띨 만한 에피소드를 적었다. 최근에 출판된 한국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은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된 글을 모아 단행본으로 묶은 책인데 이 연재를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소개된 책에 얽힌 한국작가의 독서체험과 독후감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쓰면 좋겠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한 줄 백일장의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졸업한 백일장을 참여하는 재미도 쏠쏠했고, 때로 시시한 일상과 도도한 이상 사이에 미미한 문장이나마 보태 기분을 내고 싶었다. ‘정도의 기분. 라라 라라 라라 라라(날 좋아 한다면) 눈을 감으면 산토리니 섬이 펼쳐지고,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여성은... 돈 많고 잘 생긴 남자와 놀고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한 줄이긴 하지만 한 줄만 쓰란 법은 없고 백일장은 백일장이니 당선자에게 소저의 상품이 있었으니! 한국작가가 읽어준 세계문학, 바로 그 책(창비 세계문학 독후감에서 문학동네 세계문학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아 조금 죄송하긴 하지만... 문학의 나라에 국경이 있겠습니까!)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읽어준 작가는 다름 아닌 박민규 작가였다. 박민규 작가의 기운을 받은 나는 백일장에 당선되고 마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거의 3년 만에 찾아본 글이 재밌어서 함께 읽어보고자 한다.

문제

 

내가 죽어 그래, 자넨 어떤 삶을 살았나?” 하고 신이 묻는다면

나는 _________ 라고 답할 것이다. 

[출처] [빈칸 채우기 백일장] 13. 박민규의 <톰 소여의 모험> (::문학동네::) |작성자 문학동네세계문학

 

내가 죽어 당신을 조우하는 걸 보면 꽤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안 그래 신?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천국이 있는지 지옥이 있는지 극락이 있는지 염라대왕을 만나는지

카르마 점수 계산해서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지 아니면 죽으면 ''을 만나게 되는지 모르지만

신을 만난다면 내 삶이 꽤 가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신은 이미 내 인생을 다 알고 있을텐데 물어보는 걸 보면

내 입으로 내 인생사를 직접 말해주길 바라는 거 아닐까요?

신이란 매력적인 독자를 홀린 그 이야기를



 아직 십대 때여서 그런지 나름대로 재기 있는 싱싱한 생각이 잘 건져졌던 때였던 것 같다. 그렇게 받은 <톰 소여의 모험>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남아 있게 신청이유에 박민규 작가와의 에피소드를 적어 <얼간이 윌슨>과 만나게 되었다. 이 자리를 통해 박민규 작가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열심히 기다리고 있으니 좋은 신간으로 만날 수 기대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얼간이 윌슨>을 읽은 전체적인 감상평은 이렇다


마크 트웨인 특유의 재치와 풍자가 살아 있었지만 후반부에 재판과정에서 긴장이 조금 풀어져 아쉬웠다


 인종주의, 정확히 미국사회 내의 흑인차별에 대한 부분은 최근에 읽은 솔로몬 노섭의 <노예12>과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가 워낙 강렬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에 조금 미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솔로몬 노섭과는 픽션과 논픽션의 장르적 차이가, 토니 모리슨의 경우 작가 자신의 인종과 시대적 차이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사실 <얼간이 윌슨의 책력>이었다. 그래서 조금 특별한 감상평이 되길 바라며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글을 써보고자 한다.(최초의 계획은 책력을 모두 옮겨 적은 후, 거기에 대한 코멘트를 달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서<두 장 분량> 몇 개만 추려서 적기로 한다.)


<얼간이 윌슨의 책력>

1.아담은 인간일 뿐이었다-이 점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그는 사과 자체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원한 것이다. 실수는 뱀을 금지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랬다면 아담은 뱀을 먹어치웠을 것이다.

 

이성복 시인의 최근작시집 뒤표지에는 이런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문학, 불가능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 이렇게 살짝 변주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인간, 금지에 대한 금지된 욕망.


2.삶이 어떤 것인지 알 정도로 충분히 오래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가 아담, 즉 우리 인류의 첫 큰 은인에게 얼마나 크게 고마워할 빚을 지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는 이 세상에 죽음이 있게 했던 것이다.

 

에셔의 판화, 보르헤스의 <알레프>, 조이스의 <율리시즈>, 순환과 무한, 무한과 영원, 영원과 순환. 순환이 영원히 이뤄진다면 순환된다고 할 수 있을까? 죽음이 없다면 삶을 사랑하는 게 가능했을까?


3.아담과 이브는 유리한 점이 많았지만, 그중 으뜸은 그들이 이가 나는 어린 시절을 피했다는 것이다.


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손가락으로 잡고 흔들어서 빼곤 했다. 성급하게 뺀 자리가 유독 시리고 아팠다. 그 아픔이 사람을 느리게, <느리게 배우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4.습관은 습관이다. 그래서 누구도 그것을 단번에 창밖으로 내던질 수 없고, 한번에 한계단씩 아래층으로 유인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의 습관, 인류의 습관, 어쩌면 우주의 습관 앞에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계단, 그 한 계단이 수학적으로 0으로 수렴한다고 해도 문학은 그것을 0으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잠든 사이에 머물다 간 입맞춤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 망각은 누군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까지 지우지 못한다

.

5.우정이라는 고귀한 열정은 아주 다정하고, 변함없고, 충직하고, 오래가는 성격을 지닌 것이어서 돈을 빌려달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평생 지속될 것이다.


만약 반대로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을 한다면? 우리의 우정을 위해 나는 너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겠어,라고 해야 하나...

 

 

6.왜 우리는 아기가 태어날 때는 기뻐하고 장례식에서는 슬퍼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을 희망이 없는 절망으로 몰아붙이는 재앙이 있는 이 세상에서 당사자란 말은 얼마나 당사자의 마음을 몰라주고 배반하고 짓밟는가.

 

 

7.화가 났을 때는 넷까지 세라. 아주 화가 났을 때는 욕을 해라.

 

가만히 있어야 할 때 가만히 있고,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할 때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인내를 권하고 가르칠 때 왜 반항하고 저항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가.

 

 

8.작가를 틀림없이 즐겁게 할 방법이 세가지 있는데, 그 셋은 뒤로 갈수록 높은 단계를 이룬다. 첫째, 작가에게 그의 저서 중 하나를 읽었다고 말하는 것, 둘째, 그의 저서를 모두 읽었다고 말하는 것, 셋째, 그가 곧 출간할 책의 초고를 읽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첫째는 그의 존경을 살 수 있고, 둘째는 경탄을 얻어내며, 셋째는 당신을 그의 마음에 쏙 들게 만든다.

 

프린키피아, 특수상대성이론-일반상대성이론 초고를 처음으로 이해한 사람의 심리변화가 궁금해진다.


9.형용사에 관하여: 아니다 싶을 때는 삭제해버려라.

형용사, 부사는 되도록 적게 쓰고, 명사를 많이 쓰라는 말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다. 사유는 명사를 타고~

 

 

10.용기는 공포에 대한 저항, 공포의 정복이지, 공포의 부재가 결코 아니다. 한 존재가 부분적으로 겁쟁이인 면이 없다면, 용감하다고 이르는 것은 칭찬이 아니며 단어를 느슨하게 잘못 사용한 것일 따름이다. 벼룩을 생각해보라!-공포에 대한 무지가 용기라면, 벼룩은 신의 피조물 중에서 비교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가장 용감한 존재이다. 크기와 힘에서 당신과 벼룩의 관계가 규모가 큰 군대와 젖먹이 아이의 관계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 벼룩은 당신이 잠들었든 깨어 있든 공격해온다. 벼룩은 항상 위험과 즉각적인 죽음의 코앞에서 하루 밤낮을 살고 매일매일을 살지만, 10세기 전에 지진의 위협을 맞은 돗의 거리를 걷는 사람만큼이나 두려움이 없다. 우리가 클라이브, 넬슨, 퍼트넘을 공포가 무엇인지 모르던 사람들이라고 일컬을 때, 항상 벼룩을 추가해야 하고, 그 행렬 맨 앞에 세워야 한다.

 

치킨게임. 목숨을 거는 행위가 곧 용기 있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이의 얼간이같은 치기는 오히려 기형적 용기가 은폐하고 있는 공포를 드러낸다. 어쩌면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이만이 용기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11. 10, 이 달은 주식 투기를 하기에 특별히 위험한 달 중 하나이다. 나머지 달들은 7, 1, 9, 4, 11, 5, 3, 6, 12, 8, 그리고 2월이다.

 

유머. 차이를 횡단하는 힘.

 

12. 당신이 굶주린 개를 구해서 잘 살게 해준다면, 그 개는 당신을 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개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이다.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 한 번씩 돋보기로 개미를 죽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유아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머리가 커져버린 이들이 많은 약자들을 짓밟고 죽였고, 죽이고 있다, 죽일 것이다. 스스로를 대상의 자리에 놓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김수영의 시 <절망>은 이렇게 끝난다.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반성하지 않음, 반성불능은 그 자체로 절망이다.

 

13. 인기도 과해질 수 있다. 로마에 가서 처음에 당신은 미껠란젤로가 죽었다는 사실에 회환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당신은 싫증이 나서 그가 죽는 꼴을 보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회한으로 여기게 된다.

 

최근에 본 영화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그레이트 뷰티>가 생각난다. 어떤 아름다움은 순간에서 태어나 영원에서 죽는다. 만날 수 없는 존재를 영원히 그리워하는 것, 절대적 아름다움은 우리의 시선을 절대적으로 폭력적으로 만든다.

 

 

14. 41. 이날은 우리가 나머지 364일 동안 어떤 사람인지를 상기시켜주는 날이다.

 

41일 그리고 정치가.

 

15. 1012, 발견.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경이로운 일이었지만,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더욱 경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상실의 윤리. 우리는 상실한 자들이다. 무엇을 상실했는지 모르는 상실을 상실한 자들이다. 인간은 본디 아무 것도 아닌 존재,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존재로 태어나 소유를 욕망한다.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건 이런 것들뿐이리라. 가령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사실. 그 소유마저 죽음이 모두 앗아갈 것이기에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사실은 이런 것뿐이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상실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상실했다는 사실만은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 2014년 우리에게 상실하지 말아야 할, 기필코 지켜내야 할 거대한 상실이 겪었다. 이 상실이 상실되지 않도록 우리는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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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팽 2014-06-16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스리 님, 리뷰 재미나게 적으시네요^^!!! 유머와 성찰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 게 큰 매력입니다^^!! 마크 트웨인을 전 참 좋아라 하는데 창비에서 신간이 나왔다고 했을 때 이 책과 핀천의 책에서 많이 고민했어요.

rendevous 2014-06-16 22:39   좋아요 0 | URL
마크 트웨인 리뷰다 보니 제 안의 잠자고 있던 유머가 깨어난 것 같습니다 ^^ 유머의 가벼움과 성찰의 무거움을 적절히 잘 조화시키고 균형 잡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ㅎㅎ

링크보이 2014-06-2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정말 재밌습니다. 책도 정말 재밌겠네요.

rendevous 2014-06-25 13:37   좋아요 0 | URL
최고의 찬사, 감사합니다 ^ ^ 마크 트웨인의 작품 중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인 것 같은데 저의 경우 <얼간이 윌슨의 책력> 덕분에 나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어요 ^^ 앞으로도 재밌는 리뷰를 위해 노력해야 겠습니다 ㅎㅎ
 
분 BOOn 3호 - 2014년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 편집부 엮음 /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월간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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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간사이 지방으로 통칭되는 오사카나라교토고베를 짧게 여행 다녀왔습니다짧은 일정(3 4)을 감안해 가이드북을 뒤지며 일정을 짜고내일로나 이전의 다른 여행과 달리 정말 계획적으로 준비했습니다결과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습니다일정대로 움직이지 못한 부분이 많았고간사이 쓰롯패스 등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으며유명한 곳에서 사진 찍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느낌 없는’ 관광에 그쳤으며특히 숙소가 있었던 오사카를 오사카답게’ 즐기지 못하고 서울이나 한국에서 해왔던 것과 다를 바 없이 보내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원인은 동행한 일행과의 케미도 그리 좋진 않았지만(개개인의 평소 인성이나 성격과는 별개로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것을 해야 하기에 여행케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죠무엇보다 사전준비의 부족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발걸음이 떨어지는 대로 우연에 몸을 맡겼을 때 예기치 못한 즐거움이 우리를 기다려줄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그리고 특히 이런 대도시 같은 경우 지리도 지리지만 문화를 모르고 여행했을 때 즐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소개팅이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서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취향과 기호 등등을 알아낼 수 있지만 도시와 대화하는 방법은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나 그 사람들이 남긴 기록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통하는 수밖에 없는데 3 4일을 얕잡아 보고 유명한 곳만 들려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생각한 저의 오판이 스스로를 망친 셈이 된 거죠오사카성금각사은각사기요미즈데라나라코엔 등 볼거리가 있는 유명한 곳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 점과 점 사이 공백을 채워줄 디테일의 중요성그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이 경험을 통해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금각사의 경우미시마 유키오의 동명소설 때문에 관심이 가서 방문했지만 큰 감흥을 느낄 수 없었고제가 유홍준 교수님처럼 건축물이나 미술품을 충만하게 감상할 수 있는 미적 감식안을 갖고 있지도 못해 도시 전체가 문화제인 교토에게 큰 애정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출국 하루 전이라고 해봤자 입국 3일째밖에 안 되지만 아무튼 그날 생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던 고베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외국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었는데 좁은 골목골목을 다니는 재미가 있었습니다다른 지역 같은 경우 방학시즌이여서 그런지 한국인들이 너무’ 많아 이곳이 한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정도였는데(요즘 서울의 특정 지역을 가면 중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리는 그런 느낌이랄까요사람도 없고 조용해서 제 입맛에 맞는 여행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을 고베에서 겨우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그 외에 기린 생맥주아사히라멘오므라이스간장라멘(심히 짜긴 했지만등 식도락 기억밖에 없네요(^^).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보기도 했고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편이긴 하지만 일본소설도 읽어보았지만 일본에 큰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습니다위안부 같은 역사적 문제로 일본에 대한 부정적 편견그러니까 반일감정을 가지고 있거나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위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도 않았는데 하루키 표현을 빌려 표현하면 그 동안 일본은 제게색체가 없는’ 나라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오타쿠추리소설초밥, ‘스미마셍’ 정도가 어렸을 때 제가 가지고 있던 일본의 이미지였는데 일본여행 이후 일본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지만 이렇다 할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 이번 서평활동을 특히 행운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읽기도 전에 주변에서 온갖 칭찬과 비판비판을 넘은 비난을 많이 들어 선뜻 손이 가지 않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평소 외국문학을 읽을 때 번역하는 분께서 쓰신 짧은 분량의 해설 정도가 덧붙지 한국문학의 경우처럼 전문적인 평론(번역가의 문학적 역량과 상관없이 해설과 평론의 차이에서 오는)을 읽어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본 적 없지만 그의 글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해 분석한 글들을 보면서 하루키 소설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고분석한 글 자체도 흥미로워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최근 파리리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포함한 여러 유수의 작가들의 인터뷰를 모아놓은 작가란 무엇인가란 책이 화제를 몰았었는데 파리리뷰 같은 외국문학잡지 같은 것을 찾아보고 싶단 생각이 덩달아 들기도 했습니다.

오타쿠의 생태학 코너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에서 다뤘던 LGBT의 소재가 공통적으로 다뤄져서 그 점이 좋았습니다퀴어 축제나 등등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대부분 서양의 일이고동양에서 어떤 식으로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지 궁금했었거든요.오타쿠란 단어의 어원이 어디서 왔는지시대적 상황에 따라 단어의 용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적하는 작업도 인상적이었지만 이 코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은 소토코모리일본 바깥을 떠도는 사람들이었습니다일본도 한국 못지않게 입시나 취업경쟁이 심한 걸로 아는데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을 모아 외국에서 가난하지만 편안한 생활을 한다아르바이트 임금이 한국에 비해 높은 일본이기에 가능한 전략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한국의 경우도 정책이자 전체적인 사회적 지향점이 바뀌지 않는 한 비슷한 미래를 경험하게 될 거란 예감이 들었습니다이민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나라국가 수뇌부와 고질적으로 변하지 않고 고착된 사회정치풍토에 환멸을 느낀 사람 중 경제적 여건만 된다면 조국을 미련 없이 떠날 사람이 생기지 말란 법이 없을 것 같은 국가정세이니까요.

마지막으로 그해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인상적인 책 중에 하나였던 모래의 여자의 작가 아베 고보를 다룬 꼭지가 좋았습니다. ‘시인의 영혼으로 응시하고 과학적 이성으로’ 글을 써낸 일본 아방가르드 문학의 대표주자미시마 유키오의 영원한 라이벌일본의 카프카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아베 고보최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불타버린 지도>를 꼭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고미시마 유키오나 마루야마 겐지히라노 게이치로다자이 오사무나쓰메 소세키다니자키 준이치로오에 겐자부로 같은 작가의 이름을 발견되면 BOON도 또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p.s 아직은 내게 가깝고도 먼(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나라이지만 현재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쿠사마 야요이 같은 미술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기적’, ‘공기인형’ 등으로 만나보았던 일본영화의 젊은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늑대아이로 자신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잇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기수라는 사실을 증명했던 호소다 마모루 같은 영화감독 등 일본문화예술과 더 친해지고 싶다특히 일본의 불교미술과 오즈 야스지로 같은 일본의 고전영화하이쿠 등으로 영역을 확장시키고 싶다문예지나 씨네21 등 잡지 읽는 재미에 맛을 들이고 있는데 BOON은 간식이나 별미가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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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레이먼드 카버 - 대성당


미국 단편소설의 대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나본 적 있는 레이먼드 카버. 이동진, 김중혁 작가가 진행하는 빨간책방에서 카버의 이름을 처음으로 듣고, 카버-헤밍웨이 등 미국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손보미 작가를 통해 한 번 더 만나고, 가장 최근 빨간책방에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전문낭독을 통해 대성당이 왜 카버의 대표작이라 불리는지 알게 된 지금 이 책이 아닌 다른 책을 첫 손에 꼽지 않을 수 없다. 



1. 

한강 - 소년이 온다


 순서를 잘못 정한 것 같다. 대성당도 좋지만 이 소설이 먼저 와야 한다.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 - 신형철의 평론가의 평도 평이지만 문학동네와 창비 팟캐스트에서 육성으로 들을 수 있었던 집필과정. 치열하고 고통스러웠고 도망치고 싶었으나 끝내 도망칠 수 없었던 작가의 인내와 용기, 진실함에... 모국어로 작가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소년이 온다를 강력추천한다. 







3 필립 로스 - 미국의 목가


 미국의 비평가 해럴드 블룸이 지정한 4대 미국 작가 중 한 명인 필립 로스. 얘기는 정말 많이 들었는데 아직 접해보지 못했다. 빨간책방을 통해 '에브리맨'을 간접적으로 접해볼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 사람... 대가인 듯하다! 알라딘 신간평가단 덕분에 토마스 핀천의 소설세계에 입문하게 됐는데, 이런 식으로 토마스 핀천 - 필립 로스 - 돈 드릴로 - 코맥 매카시(코맥 매카시는 로드로 만나본 적 있지만)와의 기분 좋은 만남을 꿈꿔본다.  














5


좋아하는 작가들과 관심 가는 작가들이 많아 읽어보고 싶다. 특히 박솔뫼 소설가! 최진영 - 박솔뫼 -한유주 - 김사과, 젊은 작가 특집으로 몰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4.


의식 - 세스 노터봄


필립과 다른 사람들로 만나본 적 있는 세스 노터봄. 사실 이 네덜란드 작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아마 2010년 여름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 당시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에서 주관한 낭독공감이란 행사에서 헤르타 뮐러를 국내외 작가 통틀어 처음 만나고 작가를 직접 만나는 데 눈을 뜨게 됐는데 마침 필립과 다른 사람들로 알게 된 작가였기 때문에 이때다 싶어 야자를 빼먹고 서울로 가는 광역버스에 몸을 실었다. 결과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 저번에 행사가 진행됐던 교보생명 빌딩이 아닌 신사동 가로수길? 신사동인가 어쨌든 강남 쪽 동네였던 것 같은데 결국 장소를 찾지 못해 열심히 길만 헤매다 돌아왔다. 길도 못 찾으면서 쓸데없이 낙관적이여서 당담자 측 전화번호도 저장해놓지 않았고, 2G 폰으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거기까지 간 게 아까워서 어떤 머리띠 파는 가게에 들어가서 거의 가장 싼 머리띠를 샀다. 2년 뒤 그 머리띠는 주인을 찾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난 지금머리띠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세스 노터봄은 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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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6-0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분야는 그래도 서평단이 비슷한 결과를 선택하네요.
인문 쪽은 책이 방대해서 다 중구난방입니다..ㅎㅎ

rendevous 2014-06-03 13:54   좋아요 0 | URL
인문/예술/과학 따로따로 나누고, 시도 만들고, 영화도 만들고, 소설도 한국소설/외국소설 나누고... 작금의 출판계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불온한 상상을 해봅니다 ㅋㅋㅋ ㅜㅜ 소년이 온다와 미국의 목가가 될 것 같아요 ^^(그랬으면 !)

뒤팽 2014-06-1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필립 로스 책과 레이먼드 카버 책에서 또 고민을 했었요...같은 출판사의 책을 담지 않으려고 부던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꼭 되었으면 좋겠어요>_< 한강 작가님의 시각을 꼭 보고 싶어요.

rendevous 2014-06-16 22:50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은 사실 돈 주고 사서 읽어야 하는데... 최근에 민음사 창고세일에서 탈탈 털려버려서요 ㅜ 대신 책 선정되면 정말 열심히 읽고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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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중요한 20세기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는 철학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제자들에게 의사나 기술자의 길을 권했다. 자신의 충고를 거부하고 교수가 되려하는 제자 노먼 말콤에게는 다음과 같이 경계하기도 했다. "만약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얻는 효용이 그저 어떤 심오한 논리학의 문제들 등에 관해서 어느 정도 그럴 듯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만약 그것이 일상생활의 중요한 문제들에 관한 너의 생각을 개선시키지 않는다면, 만약 그것이 너를,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서 위험한 말들을 사용하는 여느 기자들보다 더 양심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철학을 공부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확실성, 확률, 지각 등에 관해서 잘 생각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너의 인생과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해서 진정으로 정직하게 생각하는 것, 또는 생각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가능하긴 하지만 훨씬 더 어렵다.“

 철학의 길이 얼마나 배타적인지, 자칫 범인(凡人)이 잘못 발을 들여놓으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헛소리로 철학적 탐구가 끝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고독한 천재로, 세속의 성자로 철학을 한다기보다 철학을 살아낸 그였기에 그의 충고에서 허세나 소명의식이 아닌 진심을읽어낼 수 있었다. 천재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소설의 화자인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삼촌보다 더 뛰어난 천재라고 치켜세운다. 루드비히가 교향곡을 통쨰로 휘파람으로 불었다고 하는데 파울 역시 오페라공연의 성공여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오페라 광이었다. 루드비히가 어렸을 때 집안에 브람스, 클라라 슈만,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유명음악가들이 초대되기도 하고, 그의 형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걸 보면 비트겐슈타인 가문의 음악적 기질은 유전자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역시 피는 못 속이는군!

 

 천재적 철학자는 칸트가 천재라 부른 이들은 예술가였다. 자신을 끊임없이 뛰어넘는 초인사상을 전개했던 니체가 어린이를 찬양한 것도 예술가와 어린이의 근친성에 기인한 것일 것이다. 요즘 자주 사용되는 뇌가 섹시한파울 비트겐슈타인은 토마스의 시선에서 매우 아름답게 그려진다. 과거 축구황제라 불렸던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무릎부상 등으로 기량이 하락한 것을 두고 어떤 네티즌은 이렇게 논평했다. 인간의 육체가 신적 재능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어쩌면 파울의 정신병도 인간의 육체가 감당해낼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한 재능의 악마성의 영향이 있었던 건 아닐까? 물론 그가 작가의 진술처럼 정말 삼촌만큼의 명석한 두뇌를 자랑했는지(‘나는 그와 같이 예리한 관찰력과 비상한 사고력을 갖춘 사람을 예전에는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 p34) 확인할 방도는 없지만 사실진위 여부가 그다지 중요해보이진 않는다. 적어도 광기에 있어서는 파울이 천재적이었다는 것을, 그가 광기의 천재였음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토마스는 이를 특유의 냉소적 모놀로그로 읊조린다.

 

단지 파울은, 그의 재산을 그랬듯이 사고력마저도 끊임없이 창밖으로 집어던져 버리곤 했다. 그러나 창밖으로 던져진 재산이 아주 빠른 속도로 바닥나버린 것에 반해 그의 사고력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다. 그는 사고력을 쉴 새 없이 창밖으로 내던졌다. 그러면 사고력은 (동시에) 쉴 새 없이 증폭되었다. 그가 사고력을 (머리속의) 창밖으로 던지면 던질수록, 사고력은 더더욱 증가했다. 자꾸만 쉴 새 없이 정신적 능력을 (그들 머릿속의) 창밖으로 던져 버리는 동싱, 머릿속에서는 (그들 머릿소의) 창밖으로 정신적 능력을 던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의 속도로 정신적 능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처음에는 미쳤다가 나중에는 광증환자로 발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들이 점점 더 많은 정신적 능력을 (그들 머릿속의) 창밖으로 집어던지는 동시에 그것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점점 더 늘어나고, 따라서 당연히 점점 더 위협적이 되고, 종구에 가면 그들이 정신적 능력을 (그들의 머리에서) 밖으로 집어던지는 속도가 머릿속 정신적 능력의 증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게 되어,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증가하는 정신적 능력이 꾸역꾸역 쌓이다 못해 마침내 머리가 터져 버리게 된다. 그렇게 해서 파울의 머리도 터져 버린 것이다. 정신적 능력을 (그의 머리에서) 밖으로 집어던지는 속도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니체의 머리도 터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광적인 철학자의 머리가 마침내는 터져 버린 것이다.(p34~35)

 

 이 작품이 자전소설로 알려졌는데 작품을 다 읽고 나니 토마스는 왜 굳이 파울과의 관계에 대한 기억을 소설의 소재로 삼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분명 파울은 루드비히와의 혈연적 관계를 차치하고서라도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그를 소설의 무대에 올린데 이견이 없지만 그와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전소설이라 해서 특별한 독법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과거에 읽었던 외젠 이오네스코의 외로운 남자나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에 비해 입구를 찾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아마도 자전소설이지만 주인공의 내면보다 파울에 집중하는 관찰자 시점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 대목을 옮기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그는 인간을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그만큼 냉혹하게 증오했다. 그는 부자의 입장에서 부자를 보았으며 가난한 자의 입장에서 가난한 자를 보았다. 건강한 자의 입장에서 건강한 자를, 병자의 입자에서 병자를 보았다. 그리고 미치광이의 입장에서 미치광이를 보았으며 정신착란자의 입장에서 정신착란자를 보았다. 그는 죽기 얼마 전에 다시 한 번 더, 이미 수십 년 전에 자신과 친구들이 만들어 낸 화려한 전설의 주인공 역할을 했다. 장전된 리볼버 총을 손에 들고 잔뜩 흥분한 상태로 노이에 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쾨세르트 보석상으로 들어간 것이다. (...)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문턱에 서서 진열대 뒤편에 서 있는 보석상 주인이자 자신의 사촌인 고트프리트에게, 어떤 특정한 진주를 내놓지 않으면 당장 총을 쏘아 죽이겠다고 위협을 했다는 것이다.(...)그러자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 왕관에 박혀 있는 진주 말이다! 그가 장난을 쳤던 것이다. 그것은 파울의 마지막 장난이었다.(...)내가 땅에 묻히는 날 이백 명의 친구들이 모일 거야. 그날 자네가 내 무덤에서 연설을 해 주었으면 해, 하고 파울은 나에게 말했었다. 하지만 내가 듣기로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합해서 여덟 명 혹은 아홉 명이 저부였다고 한다. 그때 나는 크레타에 머물면서 희곡을 쓰고 있었다. 그곳에서 썼던 희곡은 완성된 다음에 찢어 버렸다. 나중에 나는 사람들에게서 들었다. 그는 사촌의 보석상을 습격한 지 며칠 뒤, 내 짐작과는 달리 그가 매번 실려 갔던 곳이고 그 자신도 사실상의 고향이라고 불렀던 그 슈타인호프가 아니라, 린츠의 한 병원에서 죽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빈의 중앙묘지에서, 흔히 하는 표현대로하면, 안식을 취하고 있다. 나는 그의 무덤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p139~141)

 

 ‘오직 떠나 온 장소와 도착할 장소 사이에 있을 때만이 행복한 인간에 속하는 토마스는 이렇게 친구를 보냈다. ‘머리를 최대한 사용하면서 살아야 하는’ ‘대도시가 자신에게 아둔한 맹목에 빠진 채 자연을 감상적으로 칭송하면서 그 안에서 퇴화해가게 하는 시골보다 백배나 더 나은 장소라고 말하는 토마스는 이렇게 친구를 보냈다. ‘상이란 한 사람에게 똥물을 뿌리는 행위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토마스는 이렇게 친구를 보냈다. 물론 그는 크레타 섬과 장례식장 사이의 물리적 거리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그만의 애도 방식이 아닐까 희미한 의심을 가져 본다. 슬픔의 해소를 거부함으로써, 슬픔을 생의 끝까지 유예시킴으로써 슬픔과 결부한 한 인간의 기억을 짐처럼 짊어지고 살아가겠다는 삐뚤어진 사랑이 그의 부재를 꽉 채우고 있는 지도 모른다고, 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그의 마음을 내 맘대로 해석하기로 한다. 불온하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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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4-06-16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에 질문하신 부분 답글 달아놓았는데(질문이 좀 어렵더군요 ㅎㅎㅎ) 윤스리님이 안읽으셨는줄 알고, 댓글이 좀 엉뚱해진 것 같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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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저자이름을 눈으로 훑어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공동묘지잖아. 실로 그랬다. 책장을 채우고 있는 이름들은 적게는 수십 년 전, 많게는 수 천 년 전 죽은 이들의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나무-숲 관계의 반대버전이었다. 나무 한 그루, 작가 개개인의 개별적인 작품과 약력을 봤을 때 이들은 그저 비범한 재능과 비상한 성실성으로 대단한 성취를 거둔, ‘성공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지만 그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있는 풍경을 보니 이들을 한데 묶는 어떤 근원적인 에네르기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몇 천 년 전부터 내려져온 신화에서부터 가장 전위적인 언어로 쓰인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색깔(인종), 모양(외모), 장르도 제각각이었지만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물질적 근친성 때문인지 텍스트라는 기표적 통일성 때문인지 그들이 한 가족처럼 느껴졌다. 이들을 함께 흐르게 하는 뿌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문학의 신같은 낭만적, 추상적 표현보다 좀 더 실재적, 구체적인 표현을 찾고 싶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책의 등뼈를 응시해본다..세상의 모든 것을 향해 줄기를 뻗으며 곧게 서 있는 뿌리의 뿌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지금의 나로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고독


고독은 내면 깊은 곳에서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하고(릴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스스로를 갱신하며(고독의 발명-폴 오스터), 그렇게 실존적 고독을 통해 고독의 실존자가 된 이들은 고독이란 근본감정 속에서 연대한다(고독의 연대-은희경). 모든 문학이 고독을 다루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문학이 고독의 자궁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만난 책들 중에 가장 섹시한 뒤태의 소유자였던 김중혁 작가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이동진 영화평론가와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빨간책방을 통해 간간이 들을 수 있었던 그 소설이 소설’, 정확히 말하면 이런소설이란 걸 알게 되고 약간의 고충에 시달리게 되었다. 어떻게 리뷰를 쓸 것인가. 그의 스텝은 경쾌하다. 경쾌한 상상력과 유머로 무장해 좀 더 느슨한 세상”(빨간책방에서 언급)을 지향하는 그의 소설은 신형철 평론가의 느낌의 공동체에서 적었듯 37.5도의 미지근한 열정이 느껴진다. 독자를 주눅 들게 하면서 동시에 작가를 경탄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문장력이나 인간과 세상에 대한 대가적 통찰은 그의 소설의 무기가 아니다. 김천 출신 문인 3인방 김연수, 김중혁, 문태준을 놓고 각각 도서관형, 박물관형, 마을회관형이라 표현한 것처럼 김중혁의 세계는 박물관, 세상에 잡다한 존재들이 한데 모여 그들만의 독특한 온도와 분위기, 질감을 만들어내는데 그 느낌이 꼭 밴드음악과 닮았다. 보컬과 기타, 베이스, 드럼 혹은 트럼펫, 키보드 같은 악기들이 처음엔 좀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더니 투덕거리며 시간을 함께 견뎌가면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내게 볼매. 뇌쇄적이고 치명적인 매력으로 어필하기보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천천히 마음에 스미는 정든 친구 같은.

 

 실제로 '모든 게 음악' 음악에세이를 낸 작가이기에 밴드 이야기를 조금 꺼내봤다. 그의 부드러운 칼날은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가. 멀어져가는 휘파람 소리처럼 은은하게 유혹해오는 책의 뒤태를 살펴보자.

 

제 귀는 아주 깊은 우물입니다

당신의 비밀을 말해주세요

 

나를 둘러싼, 내가 모르는 세계로 향하는 비밀의 문

여기가 구동치 사무실이 맞습니까?”

 

당신은 그토록 무미건조한 월요일에 나를 찾아왔군요.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아는 사람이여,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넙니다. 우리의 사랑만이 덧없는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월요일처럼 길어요.

 

 뒤표지의 그림이나 전체적인 느낌의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과 제법 닮았다. 비밀의 은유로 그림자가 자주 쓰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빛을 받으면 내 안에 숨어 있던 어둠이 내장처럼 길게 늘어진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비밀을 품고 있는 존재다. 인간에 내재한 어둠 속에 고이는 비밀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성(빛의 언어)으로 정복할 수 없게 만든다. 근원적 한계이자 일종의 안전장치라 볼 수 있다. 존재 내 이질성, 내가 아닌 나, 내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나, ‘라는 확고한 주체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는 작은 나()와의 끊임없는 불화를 통해 페소아나 이상 같은 시인들은 헤테로의 언어를 발명해냈다. 비밀이 그 자체로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문학은 비밀의 비밀을 꿰뚫고 있다. 비밀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형식 중 하나이다. 인식론의 문제나 물 자체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뭔가를 아는 존재라기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존재에 가깝다. 광활한 우주에서 코딱지보다 한참 작은 지구에 살지만 우리는 당장 옆집에 사는 이의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 정보의 영역은 물론이요, 진위를 가려내기 어려운 진실의 영역이 천 길 물속보다 알기 힘들다는 사람들 마음속에, 그러니까 70억 이상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대부분을 이루는 것이 단지 중력의 존재로 말미암아 추측할 수 있는 암흑물질이라고 하니 그런 점에서 볼 때 어쨌든 우리는 우주의 섭리에 잘 따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비슷한 문장을 다른 탐정 이야기에서 들은 적이 있다. 명탐정 코난 극장판 10기 탐정들의 진혼가에서 한 남자는 비밀은 남녀의 사랑을 돈독하게 해준다고 했다. 자신의 일부지만 그 일부로 인해 전부인 자신이 파괴될 수 있는 비밀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는 뜻이 될 것이다. 관계는 상대방과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많아지면서 깊어지기도 한다. 재밌는 것은 어느 한계선을 넘어가면 비밀과 관계의 역학 그래프가 변곡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공범이 아닌 이상 상대방의 살인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의 신뢰가 굳건히 유지되리라 생각하기 힘들다. 비밀에 의한 신뢰도 형성에도 브레이크 포인트, ‘알면 다치는판도라의 상자가 있는 것이다.

 

 구동치는 사람들의 비밀,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는 자신의 모든 기록들을 딜리팅하는 직업을 가진 전직 경찰 겸 사립탐정 겸 딜리터(deleter)이다. 줄거리를 자세하게 적어 독자들의 서사를 따라가는 재미를 빼앗고 싶지 않다(고 핑계를 댄다). 비밀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들의 각축전을 작가는 노련한 솜씨로 능수능란하게 그려낸다. 그의 소설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섹스묘사도 비록 영화 속 장면이긴 하지만 있다(그것도 떼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타는 남녀 주인공의 밀당이나 조금은 엉뚱한 매력을 어필하는 조연 캐릭터의 존재가 그의 전작 장편 좀비들을 연상시켰다. 당신의 그림자의 월요일의 후배탐정과 좀비들의 뚱보가 오버랩됐다. 어떤 매너리즘에 대해 지적하려는 게 아니라 김중혁 세계의 고유성, 그만의 느낌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다. 김중혁 월드의 입구에는 그림자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딱 귀여운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 정도의 수상한 포즈로.

 

 나의 기억은 나만의 것이 아닐 수 있다. 정소윤이 그랬듯 나의 기억은 우리의 기억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숙명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 하는 기억, 우물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자세에서(이영광 우물) 윤리를 논할 수 있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지식은 체계화된 기억이다. 90%이상 소멸되는 죽음의 늪을 지나 살아남은 기억이 장기기억이 되고, 그 기억이 말로, 글로, 음악으로, 영상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져 인간은 현생에서 수많은 영혼이 농축된 오래된 현재를 살고 있다.

 하지만 망각의 문제 역시 논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선을 침해하지도, ‘일리아드‘let it be’처럼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망각될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작가는 자신의 기록을 지워 저승에서까지 이생에서 좋은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망을 이기적이라 지적했지만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반영구적으로 보존돼 자연스럽게 망각, 정신적 차원에서의 죽음을 맞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기억에 대한 문제의식을 피력한 바 있다. 이는 마지막 딜리팅의 대상인 사진을 피오르드 바다에 던짐으로써 망각의 세계를 지배하려는 인간에게 우의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기록하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기억은 하드디스크에 파일이 저장되듯 기계적으로 이뤄지는 작업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의 정보의 감각과 감성의 영역이 뒤섞인 총체적 감각에 의해 이뤄진다. 단순암기라 생각되는 작업의 경우에도 우리는 텍스트를 읽어 청각적 자료로 변환하거나 머릿속에 시각적 이미지를 떠올리는 등 감각과 감성을 이용한다. 또한 기억할 수 있는 양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개인의 지향성에 의해 선택된기억만이 생을 이어갈 수 있다. 물론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또 달라지지만 인간이 기억과 망각의 세계를 오가며 자신의 빛과 그림자를 재단하는 존재라는 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구만 지키지 말고 그림자도 지켜야 할 것이다. 이승에 버려진 그림자가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물에서 허우적대는 이처럼 길을 잃지 않도록 기억(망각)의 책임이 있는 자들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생사를 결정하는 천계의 심판관처럼 무엇을 기억하고(잊고) 살 것인지, 무엇으로 기억되고(잊히고) 죽을 것인지.

 

p.s 이제야 읽는 김애란 작가의 <달려라, 아비> 중 종이물고기에서 공동묘지에 대한 비슷한 생각을 발견했다. 기억이여, 당신은 언제나 태어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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