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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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의 야간근무자로 선발되었다. 오래 전 밤샘 근무가 떠올라 무섭... 내가 쓰게 될 야근근무 결과 보고는 어떤 내용일지 기대된다.



 

“잠을 안 자는 사람들이 자기 잠을 팔고, 잠을 자는 사람들이 그 잠을 사고 있었다.”

 

진하고 굵은 펜으로 죽죽 써내려간 듯 선명하게 집중되는 글이다. ‘스마트 물류센터와 고대 가야의 고분군이라는 대조적 배경’은 (자발적 형식을 취하나) 잠을 빼앗긴 21세기 물류 노동자들과 영원한 잠에 든 고대인들의 대조라는 인상적인 설정을 이룬다. 결말 부분에 이 시공간이 어떻게 뒤섞이는 가는 특히 강렬한 풍경이다.

 

잠을 줄이는 이유는 다양하고 많다. 얼핏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는 이유들도 실은 사회 시스템이 강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밤을 밝힐 수 있게 된 인간은 밤을 줄이고 밤을 없애기도 하며, 수면을 통제했다. 종종 ‘꿈과 미래’를 위해서란 달콤한 이유로.

 

“노동자들의 피가 돈이 될 수 있다는 직감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 수면을 박탈당한 혈액에는 정상인의 혈액에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 예외가 되는 사회에서는, 잠을 자는 행위가 심지어 죄책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잠을 자지 않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한 생명체임에도, ‘스스로 내면화한 논리로’ 잠을 줄이고 몸을 착취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이제는 잠을 줄이고도 피로를 느끼지 않고 깨어 있는 동안 얼마나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있는지의 여부가 관심사가 된다. 물류센터의 잠을 자지 않는 노동자들은 ‘뇌가 잠을 요구하지 않으니 일이 즐겁다‘고 느낀다. 고용인은 잠과 꿈을 잃은 이들을 “꿈의 노동력”이라 부른다.

 

“나한테 왜 잠을 자느냐고 물어요. 잠을 안 자면 돈을 더 벌 수 있는데 왜 자느냐고. 바보냐고.”

 

잠을 안 자게 해줄 수 있다는 브로커가 등장하고, 이들의 혈액을 활용한 상품을 강남 부자 고객들에게 팔아 빚도 갚고 성공하고 싶은 전직 의사는 의학적 문제들을 알아차리지만 수익 프로젝트 성공에 집중한다. 이 팍팍하고 피곤한 이야기가 얼마나 더 잔인해질지 기분이 서늘해졌다.

 

“아르고스가 그걸 일부러 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희망이 면역 반응처럼 등장하면서 반전을 맞는다. 같은 조건에서도 잠을 빼앗기지 않은 이가 있다. 그의 의심은 어쨌든 과학적 상황 이해와 분석이 가능한 전직 강남 피부과 의사와의 협력으로 믿을 만한 가설이 된다.

 

물류 센터와 고분군이라는 장소는 극적인 타격과 변화를 맞게 되지만, 이 작품의 힘이자 묵직한 감동은 영화 <테미네이터>와 같은 우리의 승리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소설이지만, 속보로 뜬 현실 르포 같기도 하고, 초근미래 예언서 같기도 해서 무섭다.

 

인간은 실망보다 더디게 성장하고 변화한다. 하나의 경험으로 도덕적 성장이나 선한 존재로 변하는 것은 동화 같은 이야기다. 방법을 알고서도 전혀 행동하지 않는, 한심한 상태에 머무는 선택이 가장 흔하다(다... 제 얘기입니다.). 그러니... 잠을 자야 살 수 있는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끝까지 이기적인 계산으로 올바른 행동에 도달했다. 도덕이 아니라 생존이 나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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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
정희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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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석 반가운 기분이 솟는 정희진 선생님의 신간이다. 이번에도 가차 없이(?) 직시直視부터 시키시겠지만, 늘 그렇듯 다 읽고 나면, 또렷하고 가는 희망이 보일 것이다.



 

“인간은 언어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소통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심정적으로는 여러 해 전 책들만 속 답답할 때마다 거듭 펼쳐 복습한 기분이라, 신간 소식이 심장이 살짝 아프도록 좋았다. 슬쩍 모른 척 하고 살면 혹시 뭔가가 그새 바뀌었을지도 몰라, 하는 헛된 망상 같은 바람은 이번에도 잘근잘근 부서졌다. 그걸 기대하고 아픈 매를 자청하는 것처럼 반기나, 매번 참 아픈 것도 여전하다.

 

개인으로든 학자로든 글을 쓰는 이유, 연구 목적이 언제나 선명하고 솔직하다. 그래서 부끄럽고 동시에 존경한다. 변함없이 (어떤 이유로든 다양한) 약자들이 마주한 문제들, 오해, 생존을 두고, 인간관계와 삶을 다룬다. 이번에는 가장 긴급한 문제, ‘소통’이다.

 

“사실 많은 사회문제들이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고 대안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끝내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조그마한 현실도 꾸며서 위무하는 법이 없다. 진실과 거짓의 구분에 관심이 없어지고, 악의와 범죄와 저열함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시대, 그 기세가 커질수록 공동체는 허약해져간다. 그렇기에 평화학자가 전하는 이 치열하고 불편한 긴장감이 ‘진정한 평화’라고 나는 느낀다.

 

“문제는 진실이 있어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회, 사실보다 내 편의 말이 더 중요한 사회라는 데 있습니다.”

 

고단한 학습과 주장이 없이도, 누군가 명명하기만 하면, ‘~주의자’가 되어 부당한 오물을 덮어쓰기도 하는 시대, 책임 없는 비방이 난무하는데도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울부짖는 소음이 요란하다.

 

인류는 사피엔스 한 종이지만, 동시에 “모든 인간은 젠더, 계급, 지역, 성정체성, 인종, 장애, 연령 등이 다양한 사회적 모순과 결합되어 있는 복합적 존재”라서 ‘소통’은 본질적으로도 현상적으로 불가능하게만 보인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내 말을 안 들어주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 이 사회는 그리고 우리는 대체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걸까요?”

 

각자도생, 능력주의, 수익구조가 주문처럼 울려 퍼져도, ‘소통’하려면 우리에게는 어떤 공부가 - 학문이 - 필요한 걸까. 이해관계와 권력의 복잡한 그물망은 어떻게 직시할 수 있을까, 지배 이데올로기 하에서도, 우리의 상상력과 용기는 재발견과 재해석을 기어이 해낼 수 있을까, 질문은 걱정과 두려움만큼 많다.

 

그래도 한 페이지마다 배우고 기억할 것들이 가득한 든든한 이 책을 의지 삼아 며칠을 살았다. 수많은 유사 대화들이 소통은커녕 오히려 “불평등과 억압, 불편한 상황을 강화하는” 장면들을 목도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회가 제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담지 못할 쪼그라든 그릇이 되는 건가 두려워하면서.

 

희망이 있다면, 삶이란 매순간 새로 경험하는 시간이므로 인간은 항상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소통을 위한 언어 행위도 “지속적이고 상반되는 자기변신”일 수 있다. 부디 그렇게 함께 만드는 “소통의 지도”가 표현의 책임을 질 줄 아는 이들의 영역을 다 담아줄 수 있기를, 더 나은 소통을 바라는 이들이 끝내 지지 않기를 바란다.

 

“평화는 갈등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극심한 갈등 상황을 견디는 힘입니다. 새로운 말의 가능성을 믿으면서, 새로운 인간성의 출현을 희망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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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 - 오디세우스의 방랑과 모험 ㅣ 아우구스테 레히너의 서양 고전 시리즈
아우구스테 레히너 지음, 김은애 옮김, 호메로스 원작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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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간의 증오와 잔인함, 탐욕이 초래한 끔찍한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십 대에 처음 읽었을 때는 서양 전래 동화처럼 읽었고 관심사가 아니었던 스토리라 딱히 큰 재미가 없었다. 20대에 재독을 시도했는데, 내 탓인지 번역 탓인지 잘 읽히지가 않았다. 영화로 만들어졌대서 편하게(?) 서양 고전을 다시 만나보자 싶었고, 내 기억보다 훨씬 단순해진 주인공 캐릭터에 살짝 지루하고 재미가 덜했다.

 

전공자가 아니라 훼손 없는 원작 그대로를 고집할 이유는 없어서, 독일에서 교과서로도 사용된다는, 사건들이 순차적으로 재구성된 이 번역서가 끌렸다. 결과는... 원작 완역서보다 영화보다 더 재밌었다. 번역에 대한 저항 없이 엄청 재밌게 읽었다. ‘아우구스테 레히너’와 ‘김은해’ 조합으로 출간된 시리즈를 다 읽어보고 싶다. #강추

 

“병사들은 (...) 제발 계속 항해나 하자고, 이제 더 이상 괴물의 화를 돋우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나이 덕분인지 호기심에 호승심에 자만심까지 가득한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이 이번엔 잘 보였다. 친구가 되고 싶진 않지만, 이런 성향인들이 세상을 덜 지루하게 만든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그 대가가 주변인들의 엄청난 피해와 희생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나는 현재의 상황이 그런 성격 - 성향 -을 거의 자제하고나 저항하지 못한 인류의 선택이라고 파악한다. 어떤 아이디어의 위험성을 아무리 누군가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고 해도, 대개 ‘인간’은 듣지 않는다. 혹은 듣지 못한다. 오래 전, 유전공학 학회에서 연구자들이 하나같이... 어떤 파국이 있더라고 일단 실험을 해보고 싶다고 하는 발언들을 들으며 모골이 송연해지던 기억이 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 중 불사의 여신과의 결혼을 통해, 자신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마다할 자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작품에서 오디세우스는 “인간 중 가장 현명한 자”로 불린다. 그에 걸맞게 오디세우스는 반성도 결심도 할 줄 안다. 문제는 새로운 상황에서 또 잊고 또 유혹당하고 또 결과가 좋지 못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답다. 내 모습과도 내가 경험한 다른 인간의 모습과도 흡사해서 허탈하게 웃다보면 정감이 가기도 한다.

 

아주 오래 전부터 다 알고 있던 사실들을 다시 짚어가며, 인간이란 생명체의 ‘디자인’은 정말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 싶다. 그때도 지금도 인간이 중요한 것들을 망각하게 하고 하고자 하는 걸 멈추게 만드는 것은, 고통이나 불행보다 쾌락과 편안이다. 고난이 심할수록 오디세우스는 재빨리 상황을 탈출한다. 귀가 시간이 이토록 늦어진 대부분의 이유는 고통을 동반하는 악재 때문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다면, 영원한 생명과 젊음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겐 각자의 ‘이타카’가 간절할 지도 모른다. 모든 시기 누구에게나 ‘목적’과 ‘목표’가 반드시 선명하게 존재해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한번뿐인 삶에 있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로 향하고 마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 끈질긴 질문과 지향은 ‘인간’만의 특징이기도 하니까.

 

간결하고 아름다운 번역 문장들 위로 삶과 죽음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친절과 환대와 폭력과 피가 구분할 수 없이 섞인다. 신의 말씀에 복종하고자 하지만, 인간 자신의 광기에 사로잡히면 감각도 판단도 리셋 되고 만다. 이런 것이 삶... 무시무시하다. 그러니 우리는 이 짧은 삶을 사는 동안 한 번 더 애써서 서로에게 친절해야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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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우습게 봤겠지만
베라 쿠리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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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두부처럼 익을 것 같아 두려운 매년 여름... 서늘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읽지 않은 스릴러... 표지만 봐도 설렌다.



 

“사람들이 심리학을 사랑하는 건 자기애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이코패스로서 나는 유달리 자기애가 강했다.”

 

사이코패스 진단 받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스릴러인데, 재밌고 사랑스럽다. 누구보다 더 애써서 ‘정상’으로 보이고 살아가고자 애쓰는 인물이 애처로울 정도이고, 사이코패스 진단이 무색하게 철저히 약자와 피해자로 살아온 인물이 또 잘못될까 마지막까지 걱정하며 읽었다.

 

전형적인 악인으로 가해자로 사이코패스 진단자를 소비하는 않는다는 것이 반가운 문학이다. 비난할 대상을 하나 만들어 세상만사를 그 탓으로 돌리는 게으른 악의를 현실에서도 지겹도록 무수히 목격하고 산다. ‘인간’이란 대채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역시 문학을 만나는 체험 시간이다.

 

“복수란 차갑게 냈을 때 가장 맛있는 요리라는 건 알고 있다. (...) 복수가 완벽하기를 바랐다. 기다려야 한다.”

 

유행이니 트렌드니 가볍고 경쾌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마치 다수가 정답을 제시하고 그 시류나 무리를 따르지 않으며 곧 조롱과 차별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폭력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다. 신뢰성이 없는 테스트를 근거로, 'T' 성향을 욕설과 멸칭으로 소비하는 유행도 바로 얼마 전 일이다.

 

끝없이 닥치는 크고 작은 문제들 앞에서, 현실 수습을 위한 합리적 판단과 냉정하고 담담한 태도, 동요하지 않기,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먼저 하기, 그리고 내 감정/감수성은 혼자 감당하기와 같은 성격적 특성은 나도 좋아하고 편안해하는 것들이라서, 소위 ‘공감’보다 냉랭한 판단이 자연스러운 작품 속 인물들을 응원하고픈 기분이다.

 

“해가 뜨는 대로 내가 늘 해왔던 일을 할 작정이었다 - 적응하고, 재정비하고, 다음 수를 두는 것.”

 

인간은 모두 제각각이고 그래서 누구도 함부로 배제시키면 안 된다. 현실은 그랬던 적이 없고, 지성과 성찰보다는 선동과 악의에 늘 격렬한 반응을 보이지만, 적어도 이렇게 멋진 작품 속에서, 부당한 이미지와 편견을 오랜 연구로 차분히 반박하려는 어른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제껏 인류가 만들어낸 시스템이 완벽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가치를 실현하거나 지켜내는 데에도 부족해서, 온갖 형태의 사적 정의 구현이 더 많이 표현되고 유통되는 듯하다. 원칙을 거론하는 것 외에는 딱히 논리적으로도 결과적으로도 반박할 수 없어서 서글프고 두렵다.

 

다만, 자신의 단점들을 잘 알고 있는 주인공이 혹시 후속편에 다시 등장해서, 한층 더 많은 고민을 거친 상상력 -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 - 으로 새로운 함께 살기의 방식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재밌고 안타깝고 유익한(?) 소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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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에 진심인데 왜 지구는 뜨거워질까? - 친환경 생활의 역설
마이클 마니아티스 지음, 김지혜 옮김 / 황소걸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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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생활을 지속한다는 것은 기후 위기 대응에 대한 서로 간의 문제의식이 공명하고 사회 구조적 해법을 요구하는 파장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분리배출, 수거, 재활용... 단계가 진행될수록 목표보다 실행율은 낮아진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이 완벽해진다고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속상한 것은, 뭐라도 해야 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이들이 겪는 일상의 좌절이다.

 

이 책은 조금은 조심스럽게 차분히 읽어야 한다. 빠른 읽기와 긴 오해가 팬데믹처럼 온라인을 휘몰아치는 요즘은 더 그렇다. 저자의 입장과 주안점은 확실하다. ‘기후 위기는 구조의 문제이고 따라서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친환경 생활양식”이 완전한 실수거나 무의미하다거나 오히려 해악이라는 것도 아니다.

 

“느리지만 꾸준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행동해보자. 나에게만 수렴하는 실천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에 발산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다만, ‘개인적 실천’만이 유일하다거나 중요하다고 미화하고 선전하는 유행의 태생을 정확히 파악하고, 결국 소비를 증가시키고 판매 수익을 올리기 위한 기업의 계책과 이를 문제 삼지 않고 환경 문체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도 없는 정부관료들을 똑바로 파악해야한다.

 

어떤 멋진 ‘친환경 제품’이라도 소비가 줄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환경에 유해하다.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어떤 노력도 개별적으로는 당면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 위기 상황을 바꿀 진짜 해결책은 이런 생활양식을 시민 행동으로 가는 진입로로 삼을 때 나타나고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인간이 실천을 지속하지 못하는 건 인간 본성의 결함 때문이 아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마저 나가떨어지게 하는 소비 사회의 강력한 힘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환경 문제는 인간이 마주친 문제들 중 그 스케일이 가장 크다. 따라서 ‘사소한’ 노력으로는 해결기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실천들’이 나를 구성하고 규정하기 때문에 계속한다. 그리고 이런 실천은 소중하다. 나는 어떤 사상이든 일상의 실천이 없는 거대 담론가의 말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일단 시작하고 꾸준히 하고, 그 과정에서 더 깊고 넓은 학습이 필요하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한계를 돌파하고 변화를 이끌 방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는 실천과 능력에 달려 있다. 변화는 학습과 행동에서만 태어난다.

 

“사람들이 넋이 나가 있을 때도, 환경을 향한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자동으로 환경보호를 실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의 장점은 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료 시민, 이웃, 친구, 가족을 사소한 ‘비실천’만으로 비난하거나 배제하거나 적대시하지 말자는 내용이다. 중요한 지적이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친환경적으로 바꾸기 보다는, 일상의 구조가 자연스럽도록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빠르고 중요하다. 삶은 정치적 결정들로 재구성된다.

 

“감시와 비난의 대상은 힘이 있으면서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기업, 정부 관리자였다.”

 

사회적 변화를 꿈꾸는 상상력은 빈약해지고, 일상의 피로감은 커지고, 이익추구집단의 세력은 더 공고해지는 듯하지만, 그래도 빈틈은 어디에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빈틈을 알아볼 수 있는지와 실천으로 변화에 필요한 크기로 틈을 넓힐 수 있는가이다.

 

부연 같지만, 환경 위기는 어떤 일부를 해결한다고 전환되지 않는다. 개인적이고 고립된 실천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학습으로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유쾌하고 끈질기게 노력해야만 한다.

 

“공공 정책은 마트에서 파는 물건이 아니다. 수백만 명이 친환경 소비를 열심히 실천하면서 정치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면, 친환경 소비자 증가는 오히려 절망적인 일이 될 수 있다.”

 

절망과 죄책감과 불안에 시달리는 중에 이 책을 만나 좋았다. 이렇게 서로 힘을 나누는 모든 기회가 다음 순간을 더 버티게 돕는 중요한 힘이 되어 준다. 나의 태도와 희망에 어떤 균형점을 다시 조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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