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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
정희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평점 :
덥석 반가운 기분이 솟는 정희진 선생님의 신간이다. 이번에도 가차 없이(?) 직시直視부터 시키시겠지만, 늘 그렇듯 다 읽고 나면, 또렷하고 가는 희망이 보일 것이다.

“인간은 언어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소통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심정적으로는 여러 해 전 책들만 속 답답할 때마다 거듭 펼쳐 복습한 기분이라, 신간 소식이 심장이 살짝 아프도록 좋았다. 슬쩍 모른 척 하고 살면 혹시 뭔가가 그새 바뀌었을지도 몰라, 하는 헛된 망상 같은 바람은 이번에도 잘근잘근 부서졌다. 그걸 기대하고 아픈 매를 자청하는 것처럼 반기나, 매번 참 아픈 것도 여전하다.
개인으로든 학자로든 글을 쓰는 이유, 연구 목적이 언제나 선명하고 솔직하다. 그래서 부끄럽고 동시에 존경한다. 변함없이 (어떤 이유로든 다양한) 약자들이 마주한 문제들, 오해, 생존을 두고, 인간관계와 삶을 다룬다. 이번에는 가장 긴급한 문제, ‘소통’이다.
“사실 많은 사회문제들이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고 대안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끝내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조그마한 현실도 꾸며서 위무하는 법이 없다. 진실과 거짓의 구분에 관심이 없어지고, 악의와 범죄와 저열함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시대, 그 기세가 커질수록 공동체는 허약해져간다. 그렇기에 평화학자가 전하는 이 치열하고 불편한 긴장감이 ‘진정한 평화’라고 나는 느낀다.
“문제는 진실이 있어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회, 사실보다 내 편의 말이 더 중요한 사회라는 데 있습니다.”
고단한 학습과 주장이 없이도, 누군가 명명하기만 하면, ‘~주의자’가 되어 부당한 오물을 덮어쓰기도 하는 시대, 책임 없는 비방이 난무하는데도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울부짖는 소음이 요란하다.
인류는 사피엔스 한 종이지만, 동시에 “모든 인간은 젠더, 계급, 지역, 성정체성, 인종, 장애, 연령 등이 다양한 사회적 모순과 결합되어 있는 복합적 존재”라서 ‘소통’은 본질적으로도 현상적으로 불가능하게만 보인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내 말을 안 들어주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 이 사회는 그리고 우리는 대체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걸까요?”
각자도생, 능력주의, 수익구조가 주문처럼 울려 퍼져도, ‘소통’하려면 우리에게는 어떤 공부가 - 학문이 - 필요한 걸까. 이해관계와 권력의 복잡한 그물망은 어떻게 직시할 수 있을까, 지배 이데올로기 하에서도, 우리의 상상력과 용기는 재발견과 재해석을 기어이 해낼 수 있을까, 질문은 걱정과 두려움만큼 많다.
그래도 한 페이지마다 배우고 기억할 것들이 가득한 든든한 이 책을 의지 삼아 며칠을 살았다. 수많은 유사 대화들이 소통은커녕 오히려 “불평등과 억압, 불편한 상황을 강화하는” 장면들을 목도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회가 제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담지 못할 쪼그라든 그릇이 되는 건가 두려워하면서.
희망이 있다면, 삶이란 매순간 새로 경험하는 시간이므로 인간은 항상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소통을 위한 언어 행위도 “지속적이고 상반되는 자기변신”일 수 있다. 부디 그렇게 함께 만드는 “소통의 지도”가 표현의 책임을 질 줄 아는 이들의 영역을 다 담아줄 수 있기를, 더 나은 소통을 바라는 이들이 끝내 지지 않기를 바란다.
“평화는 갈등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극심한 갈등 상황을 견디는 힘입니다. 새로운 말의 가능성을 믿으면서, 새로운 인간성의 출현을 희망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