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중독
비온다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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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언제나 글을 쓴다는 저자 필명도 비온다 의 책이라 비 오는 바깥 풍경은 좋지만 무슨 수를 써봐도 눅진한 실내에서 읽기에 맞춤한 기분이 들었다. 30개로 촘촘히 나눈 소제목들이 연대순으로 저자가 경험한 일련의 사건들을 미리 알려 주는 기분이다자전적일 순 있지만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다.



일단 느긋하게 읽으려던 생각이 왠 말이냐는 듯 단숨에 읽힌다에피소드들이 짧아서가 아니라 기막힌 사건들을 담고 있어서 그러하다이런 세월을 살아남으려면 체력도 심장도 튼튼해야할 듯!

 

모두 다 소개해서 재미를 완전 상실하게 만들 순 없으니……주인공 이력이 파격적이라는 것영화 한 편 너끈히 만들 설정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 이어진다는 점코믹하지만 무척 무서운 주인공이 등장하는 강렬한 작품이라는 것을 언급한다.

 

다 읽고 나서야 전체적인 느낌이 정리되었지만 이 모든 요란하고 소란스러운 장면들에는 대한민국에서 일인 가구로 사는 여성의 현실이 가득하다는 점이다물론 자연스럽고도 미친(?) 듯한 사회 비판은 보너스이다.

 

친구와 이름이 같아 분별없는 애정이 있기도 했지만 부유한 가정의 생각 없이 쇼핑을 유일한 취미로 사는 주인공에 공감하거나 몰입하긴 힘들 거란 생각도 들었다에세이라면 정말 못 읽었을 수도있는 힘껏자신의 본 모습대로 온갖 난리를 치면서 그 와중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흐릿했던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뜻밖의(?) 분투기가 밉지 않았다.

 

오히려 악착같고 잠시 부끄럽더라도 원하는 것에 솔직하고 무엇보다 할 수 없는 일은 거침없이 도와 달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주인공이 부러웠다주인공이 꿈을 이루었는지혹 이뤘다면 그 뒤로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지는 정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나는 여전히 열심인 사람들을 늘 얼마큼은 좋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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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 2022 볼로냐 THE BRAW AMAZING BOOKSHELF 선정 도서 Studioplus
서선정 지음 / 시공주니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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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반드시 종이책으로 만나셔야 합니다손으로 읽으셔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책을 읽기 전에 손도 잘 씻고 구기지 않도록 넘기는 일도 오랜 버릇인데이 책의 표지에 손을 올리고 한참 있었습니다.



어릴 시절 시원한 젖은 모래 속에 손을 넣을 때처럼 기분이 좋아집니다표지에서 느껴지는 촉감도 세 종류나 됩니다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눈을 감으면 더 잘 느껴질 듯합니다.

 

차곡차곡은 한 때 사고방식이기도 했고 행동 방식이기도 했습니다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업무 기록조차 차곡차곡 정리해서 이게 다 역사하며 보관했거든요.

 

그래서 물건이 차곡차곡이라면 이제는 사양합니다매주 조금씩 정리하고 기증하는 일도 힘들어서 건너뛰고 싶거든요참 다행입니다이 책의 차곡차곡은 다른 것들이라,



봄입니다뒷산이 높고 앞개울이 가까운 이런 동네에서 살아 본 적이 없네요여름에 장마에 개울이 넘을 것 같아 염려증이 불쑥 거립니다.

 

모든 색들이 막 선명해지려는 듯 바쁜 계절봄은 작은 생명들이 비틀거리며 성장하는 계절이기도 하지요아직 완연한 봄 날씨가 아닌지 그림 속 동네 주민들 사람물고기고양이 등등 모든 생명체들 이 살짝 숨어 있는 그림이 재밌습니다.

 

2021년은 제게는 3월쯤…… 부터 아주 세차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입니다매일 오늘 일자가 믿어지지 않아 맘속으론 조금 겁이 나기도 합니다그래서인지 이 책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담긴 그림책이 적지 않은 위로가 됩니다뭐 했지싶은 내 시간들 역시 모든 모습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채워졌다 가겠구나…… 생각합니다.

 

책 속의 시간은 흐르는 계절들이 이어가는 장면들입니다봄에 태어난 생명들이 차곡차곡 자라고여름의 떠들썩한 풍경들 속 초록초록한 것들이 차곡차곡 신나고가을의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조용히 책 읽는 시간들이 차곡차곡 채워지고 눈과 바람이 섞여 나리는 퇴근길집으로 가는 길의 밤하늘은 적요함이 차곡차곡 번져 있습니다.

 

컬러링을 하는 분들의 작품을 보면 아주 섬세하고 판타지라 해도 어딘가 실재한다고 믿어지는 표현들이 있습니다저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일시급한 일꼭 해야 하는 일잊지 말아야할 일 등등 이런 순위로 매일을 해치우며 살고 있습니다그러니 주변도 작고 귀한 것들도 한참 바라볼 여유가 없어 거의 다 지나칩니다운이 좋아 기억이 나면 하늘 한 번 올려다보기그러니 굵직한 몇 가지를 빼곤 텅 빈 일상은 기억할 것이 많지 않아 빠르게 빠르게 지나가기만 합니다.



색감이 혼자 햇빛을 독차지 한 것처럼 선명하고 확실한데 어지러운 곳 없이 간결하고 담백하고 싱그러운 풀 향기가 나는 듯합니다에라모르겠다하고 도화지에 그림을 한 가득 그리고 싶은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 기억하는 한 세 번째.



차곡차곡 떠올려 보는 일은 참 좋습니다기억 속 봄 햇살 한 모퉁이차가운 수박의 시원한 향기높고 파랗고 쨍한 가을볕에 바짝 달궈진 나무 향기가득 쌓인 낙엽들이 바삭바삭거리는 배가 막 고파지는 향기슬프지 않아도 코가 찡하게 상쾌한 겨울 아침 공기아주 아주 오래 전 화로 속 알밤 구워지던 향기모두 다 차곡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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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임종 연구소 소설Q
박문영 지음 / 창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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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평할 만한 초점과 고찰이 부족한 지라 대신 이 파트에서 다룬 작품에 대해 감상문에 가까운 리뷰글을 쓰기로 한다마침 좋아하는 장르이고 다루는 소재와 주제 모두가 흥미로운 작품이었다작년에 출간 소식을 듣고 관심을 가졌으나늘 비슷한 이유로 읽기가 유예되거나 최초의 관심을 망각한 작품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안락사나 존엄사’ 형태의 죽음이 법적으로 허용된 세계가 배경이다현실에서도 국가 별로 시행되기도 하고 딱히 미래의 세계 모습이라고 할 바가 있나 싶지만이 소설의 인물들은 시공간을 넘어 원하는 장면에서 원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이 책의 제목인 <주마등임종 연구소>이다.

 

주마등走馬燈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류의 표현을 통해 비유적 뜻은 알고 있는데아무리 애써도 나는 등불로서의 주마등을 본 적이 없다기억도 없다찾아봐도 형태를 잘 모르겠다안 다고 착각한 것들이 끝이 없다실재라고 믿는 허상이 수없이 많다.

 

주마등이란 명칭은 남았지만 실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놀랐다나만 본 본게 아니라 아무도 못 봤다?! 그림도 없고 등잔박물관에도 없고 양주의 조명박물관에 개념도를 기초로 재현해 놓은 작품이 하나 있다충격적이다명칭이 남았다고 해서 유물도 그림도 없는 등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믿어도 되는 걸까.

 

덕분에 소설의 본 주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한참 겉돌았다어쨌든 주마등이란 실물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삶과 죽음 모두와 연계된 참으로 적절한 소재이고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자신의 죽음을 지원하는 이들은 그 이유로 무언가를 잃은 이들이다자연스런 노화와 질병도 있고극심한 우울과 가난도 해당된다이들은 지원을 통해 연구소에 들어오면서 품격 있는 숙식과 간병 서비스를 받고시신 수습과 장례에 대한 일체의 책임과 비용도 부담하지 않는다일견 무조건 무료 서비스처럼 보이지만 대신 지원자들은 자신의 행복한 기억을 보여주어야 하며그 기억을 토대로 만든 가상현실 속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다멈추고 싶은 곳에서 암호를 말하고 임종을 맞는다.

 

완벽하기만 하다면 모두가 만족스런 죽음을 맞고 행복할 것이지만피하지 못한 부작용오류가 발생하며 소설적 갈등이 펼쳐진다.

 

행복한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가상 세계에서 맞는 죽음은 아름답고 화려하기만 할까.

 

다른 곳에서라면 달아났겠지만 여기라면 상관없지 않나노력하지 않기 위해 온 곳이니 극복할 것도 없다될 대로 되겠지.”

 

의식을 열어 가상현실에 들어간다근데 거기서 누굴 만날 것 같아그냥 또 자기 자신이야. (...) 죽을 때까지 자기한테 파묻히고 싶어?”

 

모르는 것까지 상상할 순 없잖아요그것까지 슬퍼하면 감당이 안 되니까요.”

 

선택하라니까 되게 대접받는 것 같고? (...) 이게 열심히 기도하면 천국 간다는 말이랑 뭐가 달라?”

 

SF미스터리가 아닐까 했던 짐작은 빗나갔다죽음을 주제로 두고 철학적으로 의심하고 고찰하고 의미를 재구성해보자는 그런 메시지가 읽혔다상대적으로 젊은 지원자들은 죽음을 선택하는 대신 가상의 현실에서 보고 싶었던 모습대로 살아 보자는 삶을 선택했다장편에 익숙해져서 친해질 시간이 부족했는지젊은이들의 분위기가 어색한 나이가 된 탓인지주요 캐릭터들이 살짝 거칠고 입체감이 덜하고 친밀감이 차곡하게 쌓이진 않았다.

 

이야기 속에서 연구소는 이런저런 이유로 비난을 받고 폐쇄되었지만 나는 완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질병에 시달리는 이들노화로 더 이상 육체적 기능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의료서비스가 미래에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층 더 바라게 되었다. ‘선택을 할 수 없는 뇌질환을 앓는 이들다른 이유로 지원을 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세심한 서비스가 보충되어야하겠지만.

 

나는 장기기증과 연명치료에 관한 입장을 밝혀 두었다언제나 뭔가 준비가 덜 된 기분이어서일까시기 자체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섣부른 감상일까.

 

허이경이 문제 삼은 것은 안락사 자체의 윤리성이 아닌안락사를 위한 기억 편집술의 허구성과 허위성이에요즉 우리가 삶에서 행복한 장면들만 편집한다고 할 때그 행복이 얼마나 보편성과 일반화라는 틀에 갇힌 것인지 파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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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시간 여행자를 위한 종횡무진 역사 가이드
카트린 파시히.알렉스 숄츠 지음, 장윤경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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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할 사항이 하나 있다만약 당신이 책을 끝까지 읽는 경우가 극히 드문 사람 축에 속한다면지금 이 여행 가이드를 손에서 내려놓기 전에 미래로 가는 짧은 시간 여행을 하며 최소한 맨 뒤에 실린 후기’ 정도는 둘러보기를 바란다정말 놓치기 아까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독일 출신 천문학자와 저널리스트인 두 저자의 공저이다. <타임머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계보를 이을 재미난 책이라는 평을 들었다첫 페이지부터 웃기 시작해서…… 계속 웃었다정말이다심지어 물리학 이야기를 하는 내용에서도 웃길 수 있는 대단한 저자들이다.

 

현대물리학의 혼란스러움와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어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시간여행을 안내하는 이런 책이 있다. 현재 현실의 나는 시간여행에 관한 거의 모든 진지한 가능성을 포기했지만 상상 속에서 만이라도 이만큼 흥미롭고 위험하고 설레는 일도 없을 것이다.

 

목차를 보니 도저히 살아남을 자신이 없는 빅뱅의 순간이나 공룡 시대는 무섭지만저자가 장담하는 대로 안전한 여행이 보장된다면 또 모를 일이다우주의 시작을 엄청 보고 싶기는 하니까모든 것의 시작점!

 

다른 인간이 없고 어디에서도 음식을 사 먹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에 휴가 기간 동안 먹을 식량은 집에서 직접 가져와야 한다마실 물도 여기 에 해당 된다만일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여행용 비축 식량이 없어져 버린다면 돌아올 때까지 금식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도저히 굶을 수 없다면 되도록 잘 알려진 종을 잡아먹도록 하자낚시를 할 수 있다면 철갑상어처럼 보이는 어류를 잡아 보자아마 먹어도 괜찮을 것이다.”

 

시간여행을 간다는 설정에 몰입하니 늘 하던 버릇대로 여타의 걱정거리들이 줄 지어 떠오른다각 시대별로 장소 별로 가장 완벽한 복장도 제공해 주려나그게 가능한 과학기술의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이런 미래의 일들을 생각을 하는 여유로운 순간에는 무척 오래 살고도 싶다.

 

과거와 미래를 여행하는 법이 얌전히(?) 체험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도 있다고 하는 저자의 호탕함이 멋지다이야기 속에서 과학적이고 정밀한 한계에 신경 써봐야 소심해 지기만 한다된다고 하자영웅이 되어 보자!

 

그래도 젊은 화가였던 히틀러를 찾아가서 태연히 작품을 살 수는 없을 듯하다더구나 미소를 지으라니히틀러가 화가로서의 자신감을 잃지 않고 계속해 나가는 삶은 바람직하나아직 행하지 않은 일로 누군가를 미워해서는 안 되지만, 가능하면 안 만나고 싶다다른 분이 해주시길최소 육백만 명그 이상의 목숨을 살리는 일인데 나는 역시 비겁하고 이기적이다.

 

자꾸만 현실의 과거와 미래에서 갈피를 못 잡고 상상들 사이를 오가며 읽는다간절히 바라는 종류의 세상을 만나 흥분한 탓일까어쨌든 책 속 시간 여행지를 보고 현실의 경험이 떠오르며 괜한 걱정이 더해진다.

 

예를 들면 오래 전 영국에 머물며 아프리카와 인도 지역을 가려니 미리 맞아야 할 백신 종류가 많았고돌아와서도 할 수 없는 제약들도 꽤 있었다백신 부작용으로 고생할 듯도 싶어 계획 자체를 취소 하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에 비할 바가 아닌 시간여행은 더 준비가 철저해야 할 듯가령 페니실린도 없는 시대라면 파상풍으로 죽을 수도무섭다여행 전에 일단 예방 접종을!

 

그러고 보니 언어 문제는..... 시간여행이 기차여행처럼 안전하게 가능한 시대라면 그 쯤이야하고 믿어 본다.

 

시간 여행에 관한 아홉 가지 신화의 내용은 일부 익숙하고 일부 헷갈리고 일부 재미있다.

 

(...)

2. 과거로 여행 가면 어려진다.

3. 과거로 가는 길은 단 하나우리가 지나온 바로 그 길 뿐.

4. 과거로 여행하면 텅 빈 공간에 내려앉는다지구의 위치가 지금과 다르기 때문이다.

5. 과거로 떠나면 현재 존재는 연기구름으로 변해 사라진다.

(...)

9. 시간 여행자들은 세상을 구할 의무가 있다.


물리학 이야기로 시작하는 내용이 신나서 시간여행에 대해 쭉 쓰고는 있지만 목차를 확인하시면 역사이야기를 더 좋아할 흥미로운 종횡무진한 방문기이기도 하다그야말로 다채로운 장면들이 있지만 특히 매력적인 곳은 만국박람회장이었다. 1853~1854년 뉴욕이라면 겁보인 나라도 도전해볼 만하다드레스 코드만 소화할 수 있다면.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곳으로는 - 14세기 중반이라는 시대가 막막하진 하지만 살면서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없는 여행지인 그라나타 토후국이 있다무척 흥미롭게 들리는 문명이다모두 다 사라진 것만 같던 이성과 상식이 보존된 곳처럼도 보인다.

 

당시 유렵은 흑사병이 신의 형벌이라 여겼는데아니 믿었는데그라나타의 사람들은 그런 믿음이 잘못된 것이라 여겼고하수 시설도 갖춰져 있었으며여성들이 기독교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많은 권리를 누렸다.

 

중심과 주류에서 벗어나 보자 애는 쓰지만변방가장자리사라진 문명에 대한 여전한 무지를 절감하였다흥미로운 여행지일 뿐만 아니라 귀한 배움의 장소이기도 할 듯!

 

다시 우주여행으로 돌아와 보자면이런저런 의심과 불안과 두려움을 일단 잊고 원하는 시공간으로의 시간여행이 정말 가능하다면, 45~46억 년의 어느 한 때 우주에서 지구가 생겨나는 그 순간으로 가보고 싶다창백하지도 푸르지도 않을펑펑 터지고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로 존재하겠지만 알아볼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지구의 탄생 순간을 보고 싶다.

 

성운의 한 지점에서 어떤 이유에서건 서로에게 끌린 입자들이 만나 연쇄적인 결합을 하며 지구라는 행성을 태양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 곳에 만들어 가는 장면은 얼마나 신비롭고 놀라울까직접 본다고 해서 왜어째서란 지금의 질문들이 다 답을 찾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과학과 역사가 버무려진 내용인데역사는 과학사가 아니다이런 구성은 또 처음이다장르는 분명 SF이다저자들은 자신들의 책이 하나의 범주로 구분되지 말라고 종횡무진한 작품을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시간여행이 불가능한 시대의 고정 관념들은 시간여행이 가능한 시대에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작금의 주류와 현실에 경고를 가하는 지도 모른다.

 

과문해서 몰랐던 그라나다처럼세계 최초로 의회민주주의를 만들고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허용한 아이슬란드 여행을 열심히 권하는 모습이 그러하다여성 독자인 나로서는 여성의 권리와 자유로운 활동과 안전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시대로의 여행은 전혀 내키지도 않고 시도하지도 않을 것이다저자는 사려 깊고도 재기발랄하게 경고를 잊지 않는다.

 

여성이나 성소수자 시간 여행이라면 수녀나 고위층과 결혼한 여성으로 가장하는 게 그나마 활동하기 편리하고재산을 소유상속할 수 없고범죄에 연루됐을 때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엄벌을 받을 수 있으며이성애자가 아니라는 게 드러나면 사형을 선고 받을 수 있다.”

 

즐겁게 읽느라 분석력은 떨어지는 글이지만독일인 저자가 특별히 인용한 영국 역사학자 이언 모티머의 말로 미루어 두 가지는 짐작할 듯하다.

 

아예 다른 방향에서 역사를 바라볼 것.”

 

과거를 (일어난 일이 아니라무언가가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상상하는 즉시역사를 완전히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무척 신비로운 책이다영어 제목으로는 아무리 찾아봐도 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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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 아킬레스건 완파 이후 4,300㎞의 PCT 횡단기
정성호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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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아킬레스완파 후에도 기어이 떠나게 한 초기 동기가 되어 주었던 영화 <와일드>를 본 적이 없어 자료만 찾아보았다.



 영화의 장면에도 있듯이 PCT라고 불리는 4,300km 횡단 코스가 나온다미국 3대 장거리 트레킹 코스로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National Scenic Trail: PCT)로 불린다종주를 하려면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 3개 주의 고산지대 능선을 따라 걸어야 한다.

 

언젠가 미국으로 장기 여행을 간다면 국립공원들을 꼭 가봐야지 했던 어린 날이 떠오른다. PCT코스에는 국립공원 7국유림 25곳이 포함되어 있다경관이 유려할수록 안전사고 가능성은 높아진다.

 

공원과 국유림이라고 하지만 푸른 숲길과 초원만도 아니고샌디에이고 사막을 건너고 3000m 고지대 능선을 걸어야하는 시에라네바다 산맥도 포함된다오리건 주와 워싱턴 주까지 가려면 호수와 눈으로 덮인 산도 통과해야 한다산악 지대는 가장 평범하게 표현해 보자면 험준하다.

 

거의 직전에 완파된 아킬레스 건으로 이런 종주 코스를 걷는 저자가 담은 이야기들은 여행가이드가 아니었다분명 논픽션인데 드라마 대본처럼 읽히는 내용들도 있고자연 속에 머물고 걸어서 땅을 밀어내며 새 풍경을 맞이하는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듯한 문학적 감성들도 보인다덕분에 장점과 단점과 풍경 사진들만 가득한 책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다스토리텔링이 가진 매력과 힘은 역시 크다.

 

이상주의자보다 경험주의자가 되어라라는 말을 참 좋아해사람은 말이야 (...) 자신에게는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 더 많더라고.”

 

물론 여정은 고난에 다름 아니다고군분투기로 읽어도 사실 무방하다여느 여행기처럼혹은 내가 여행에서 경험한 것처럼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역시 가장 빛나고 귀중한 경험이다치장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이 맨 몸으로 걸어나가는 이의 이야기는 자연 솔직하고 담백하다.

 

예상 가능한 육체적 고통도예상을 뛰어 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당연하지만 늘 힘겨운 생각지 못했던 위기와 갈등그냥 여행에서도 충분히 겪을 일들을 저자는 극한의 도보 여행에서 경험한다여행은 특히 장기 여행은 함께 하는 시간의 길이 만큼 어떤 식의 갈등을 늘 양상하는가 보다오래 전 지리산 종주에서 마치면 동행한 친구들과 절교할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던 시간이 잠시 생각났다절교하는 일은 없었습니다만.

 

따라하고 싶어도 올바른 훈련과 준비가 없이는 불가능한 도보 여행이지만도전하면 또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기대도 생기는 묘한 접근성을 가지고 있다. ‘도보라서 그런 듯하다판데믹 시절엔 걷기로 하고 걷지 않은 모든 길들이 자주 떠올랐다내겐 별 의미가 없던 산티아고 순례길 조차 지금 이후의 미래엔 갈 수 있을 듯하다.

 

저자에겐 등산이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는 일이었다고 한다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한 삶이 소개글에 고스란히 자랑스럽게 담겨 있다멋지고 부러운 일이다다시 맘편히 몸 건강히 하고 싶은 여행 잘 다니시는 그런 시절을 함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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