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마등 임종 연구소 소설Q
박문영 지음 / 창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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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평할 만한 초점과 고찰이 부족한 지라 대신 이 파트에서 다룬 작품에 대해 감상문에 가까운 리뷰글을 쓰기로 한다마침 좋아하는 장르이고 다루는 소재와 주제 모두가 흥미로운 작품이었다작년에 출간 소식을 듣고 관심을 가졌으나늘 비슷한 이유로 읽기가 유예되거나 최초의 관심을 망각한 작품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안락사나 존엄사’ 형태의 죽음이 법적으로 허용된 세계가 배경이다현실에서도 국가 별로 시행되기도 하고 딱히 미래의 세계 모습이라고 할 바가 있나 싶지만이 소설의 인물들은 시공간을 넘어 원하는 장면에서 원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이 책의 제목인 <주마등임종 연구소>이다.

 

주마등走馬燈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류의 표현을 통해 비유적 뜻은 알고 있는데아무리 애써도 나는 등불로서의 주마등을 본 적이 없다기억도 없다찾아봐도 형태를 잘 모르겠다안 다고 착각한 것들이 끝이 없다실재라고 믿는 허상이 수없이 많다.

 

주마등이란 명칭은 남았지만 실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놀랐다나만 본 본게 아니라 아무도 못 봤다?! 그림도 없고 등잔박물관에도 없고 양주의 조명박물관에 개념도를 기초로 재현해 놓은 작품이 하나 있다충격적이다명칭이 남았다고 해서 유물도 그림도 없는 등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믿어도 되는 걸까.

 

덕분에 소설의 본 주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한참 겉돌았다어쨌든 주마등이란 실물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삶과 죽음 모두와 연계된 참으로 적절한 소재이고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자신의 죽음을 지원하는 이들은 그 이유로 무언가를 잃은 이들이다자연스런 노화와 질병도 있고극심한 우울과 가난도 해당된다이들은 지원을 통해 연구소에 들어오면서 품격 있는 숙식과 간병 서비스를 받고시신 수습과 장례에 대한 일체의 책임과 비용도 부담하지 않는다일견 무조건 무료 서비스처럼 보이지만 대신 지원자들은 자신의 행복한 기억을 보여주어야 하며그 기억을 토대로 만든 가상현실 속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다멈추고 싶은 곳에서 암호를 말하고 임종을 맞는다.

 

완벽하기만 하다면 모두가 만족스런 죽음을 맞고 행복할 것이지만피하지 못한 부작용오류가 발생하며 소설적 갈등이 펼쳐진다.

 

행복한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가상 세계에서 맞는 죽음은 아름답고 화려하기만 할까.

 

다른 곳에서라면 달아났겠지만 여기라면 상관없지 않나노력하지 않기 위해 온 곳이니 극복할 것도 없다될 대로 되겠지.”

 

의식을 열어 가상현실에 들어간다근데 거기서 누굴 만날 것 같아그냥 또 자기 자신이야. (...) 죽을 때까지 자기한테 파묻히고 싶어?”

 

모르는 것까지 상상할 순 없잖아요그것까지 슬퍼하면 감당이 안 되니까요.”

 

선택하라니까 되게 대접받는 것 같고? (...) 이게 열심히 기도하면 천국 간다는 말이랑 뭐가 달라?”

 

SF미스터리가 아닐까 했던 짐작은 빗나갔다죽음을 주제로 두고 철학적으로 의심하고 고찰하고 의미를 재구성해보자는 그런 메시지가 읽혔다상대적으로 젊은 지원자들은 죽음을 선택하는 대신 가상의 현실에서 보고 싶었던 모습대로 살아 보자는 삶을 선택했다장편에 익숙해져서 친해질 시간이 부족했는지젊은이들의 분위기가 어색한 나이가 된 탓인지주요 캐릭터들이 살짝 거칠고 입체감이 덜하고 친밀감이 차곡하게 쌓이진 않았다.

 

이야기 속에서 연구소는 이런저런 이유로 비난을 받고 폐쇄되었지만 나는 완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질병에 시달리는 이들노화로 더 이상 육체적 기능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의료서비스가 미래에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층 더 바라게 되었다. ‘선택을 할 수 없는 뇌질환을 앓는 이들다른 이유로 지원을 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세심한 서비스가 보충되어야하겠지만.

 

나는 장기기증과 연명치료에 관한 입장을 밝혀 두었다언제나 뭔가 준비가 덜 된 기분이어서일까시기 자체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섣부른 감상일까.

 

허이경이 문제 삼은 것은 안락사 자체의 윤리성이 아닌안락사를 위한 기억 편집술의 허구성과 허위성이에요즉 우리가 삶에서 행복한 장면들만 편집한다고 할 때그 행복이 얼마나 보편성과 일반화라는 틀에 갇힌 것인지 파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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