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유니콘
오드리 로드 지음, 송섬별 옮김 / 움직씨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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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로드는 이민자흑인레즈비언엄마암생존자사회주의자페미니스트사서문학과 철학 교수출판인시인흑인과 다양한 인종의 인권운동가로 살았습니다

 

이 페르소나들  중에서 당신이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들은 몇 개입니까.



미국페미니즘양성적인androgynous 퀴어 존재성레즈비언 섹슈얼리티 그리고 시집이라서읽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런데 아주 잘 읽혔다순전히 번역만의 힘은 아닐 것이다.

 

개인의 일상도 체제의 현실도 언제든 거칠고 난폭하고 무자비할 수 있는 삶을 가감 없이 진솔하게 들려주지만 고통에 찬 울음으로만 표현하지 않는다강력한 균열을 내는 강인함을 지녔지만 섬세하게 생명을 주시하고 결국에는 살리기 위한’ 간절한 소망을 구현하려 희망을 놓지 않았다.



마치 즐거운 일에 몰두하는 사람처럼 기쁨과 열정을 표현하기도 한다고정관념에서 비롯된 나의 지레짐작은 대부분 그렇듯 이번에도 완연히 빗나갔다. 3-4장인 [재창조]와 [시스터 아웃사이더]에 이르면 외부에서 가해진 고통을 피할 수 없다고 해도 짓눌리고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는 연대를 통해 자매들이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삶에 대한 노래들이 담겨있다.

 

그가 들려주는 연대는 무엇으로부터라는 조건이 붙은 소극적 의미만이 아니다비록 출발은 그랬을 지라도 그의 소망하는 연대는 자매들과 함께 찾아낸’, ‘만들어낸’, ‘현실화시킨’ 것이자 재창조된 세계이며그순간 위태롭게 딛고 선 경계선은 더 이상 그들를 자빠뜨리고 갈라놓고 가두고 죽일 힘을 잃게 된다.

 

이 두려움을

영영 잃지 않겠어

갚을 수 없는 그 무엇도

빚지지 않겠어

 

철학자의 지성과 시인의 감수성으로 태동한 오드리 로드의 세계에서는 다양한 생명이 차이로 인해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고모두가 최소한 동등하게 존중받을 권리를 누릴 것이고아무도 를 문학을 사치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더없이 부드럽고 다정한 그의 웃음을 바라보며 나는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억압적인 상황 속에서 끝없이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고 자신을 부정당했겠지만그런 경험들로 인해 망가지지 않고 오히려 많은 것들을 정제하며 살았다그리고 그 모든 진실이 그의 시에 담겨 있다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자신도 다른 이들도 다독이며 조금씩 앞으로 함께 걸어 나가자는 말 속에 간절한 위안과 위로와 격려를 위한 따뜻한 눈물이 느껴진다.

 

시집의 제목인 <블랙 유니콘>형상과 개념으로 이해했던 <블랙 유니콘>이 읽어 나가는 내용에 비례해서 오드리 로드와 자매들의 화자로서 재구성된다자유가 박탈당한 채로 부당한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주류 신화와 세력에 휘둘리고 끌려 다닌 존재가 블랙’ 유니콘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침묵하지도 가만있지도 않고 왜곡되고 치워지고 잊힌 죽음의 실체를 폭로하는 존재부정에 맞서는 존재정의를 바로 세우려고 나서는 존재 역시 블랙 유니콘이다.

 

우리는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결코 서로의 굶주림을

어루만지지 못하고

결코

빵 부스러기를 나누지 못했다

두려워서

빵은 적은 되었다

……

이제 네게 외로움이란

성스럽고 쓸모 있는 것

이제

더는 필요 없는 것

네 빛은 환하게 반짝인다

하지만 난

알려 주고 싶어

너의 어둠 역시

그윽하고

두려움을 넘어선다고

 

시스터 아웃사이더

 

자라나 거라

검게 그리고 아름답게

 

앨빈 프로스트를 위한 추도사

 

그의 시들은 크리스마스이브 날에도 과장된 불안과 근거 없는 상상으로 하루 종일 심장이 조였던 나에게 심호흡을 하고 사유하라고 눈을 맞춘다네 불안네 현실네 세상이 어떻든 체념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아야할 이유를 알고 있지 않냐고 눈을 돌리지 않고 묻는다아무 것도 모르고 태어난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거냐고…… 죽기 전까지는 몇 번이고 그 두려움을 뛰어 넘어보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다시 다짐하라 한다.

 

해리엇언제나 누군가는 우리를 미쳤다고

못됐다고 우쭐거린다고 악하다고 흑인이라고

아니면 흑인이라고 불렀지

……

서로의 입 속에 가득한 고통을

말하려 애쓰며

말하려 애쓰며

말하려 애쓰며

말하려 애쓰며

그러다 우린 배웠지

채찍 끝에서

혀에서

서로의 배신이란 가장자리에서

존중이라는 것은 길에서

길에서 마주친 서로의 얼굴로부터

그 아름다운 검은 입으로부터

낯익은 신중한 눈으로부터

조용히

눈을 돌리고

홀로 스쳐 가는 것이라고

……

 

해리엇

 

감정적으로정치적으로 솔직하면서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열성을 다해 사는 일전 세계 모든 나라의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적어도 미국과 한국에서 그렇게 산다는 건 아직아주위험한 일이다타인의 이익과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것도 아닌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많은 이들이 너무나 두려워서 - 자기 자신으로살지 못할 것이다.

 

해가 뜨면 우리는 두려워한다

해가 계속되지 않을까 봐

해가 지면 우리는 두려워한다

아침에 다시 뜨지 않을까봐

……

사랑받을 때 두려워한다

사랑이 사라질까 봐

홀로 있을 때 두려워한다

사랑이 돌아오지 않을까 봐

 

그리고 말로 할 때 두려워한다

우리의 말이 들리지 않을까 봐

환대받지 않을까 봐

 

하지만 우리가 침묵한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두렵다

그러니 말하는 게 낫다

우리는 애초에 살아남을 운명이 아니었음을

기억하면서

 

살아남기 위한 기도

 

자신을 온전히 아는 것도 그렇게 사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고서로를 아는 것도 함께 살아가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서로를 필요로 하고특히나 경계나 가장자리에서 살아간다고 각자의 바운더리를 절감하는 누구나 서로를 지지하고 소통해야 생존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강하고 참을성 있고 부드러운 사랑이 있고 열망이 있어서억압적인 상황이나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참 좋겠다그런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자주 꿈꾸듯 설레듯 많이 했다하지만 현실에서는 늘 스스로의 깜냥에 좌절하고 도대체 이 한계는 왜 변함이 없나 절망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정의하지 않으면,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환상에 산 채로 잡아먹히게 될 거란 걸 알게 됐다.

 

자신의 정체성이 모두 존중받는 온전한 자아를 찾고자 평생 싸워온 오드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받은 아프리카 이름은 감바 아디사GAMBA ADISA, 자신의 의미를 분명히 보여 준 여자였다.

 

나는 여성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드넓은 미래를 품은 위험한 존재

나는

여성이고

백인이 아니다

 

여성이 말한다 


https://youtu.be/_nS8_5Dm-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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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도시 SG컬렉션 1
정명섭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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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긴 사고가 나면 안 되는 동네야.

제가 있던 군대도 사고가 나면 절대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아무튼여긴 사고가 나서는 절대로 안 되는 곳이야.

여긴 대한민국이나 북한이 아닌 제3의 공간아니 제3의 도시라고.





추리문학계간지를 읽고 처음으로 읽는 한국추리소설작품이다저자는 이토록 많은 활동을 하셨고 명성이 높은 분인데…… 역시 한국추리소설작가가 한 분도 기억이 안 난건 그저 온전히 내 탓이다가보지 못한 곳일지라도 낯설지 않은 개성’, 현실에서도 남과 북 모두의 사연이 많이 버려지고 남겨진 개성공단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 추리의 소재인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 소설이다로맨스도 막장도 없다.

 

제가 조사한 공장들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일정하게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지속해서 원재료나 완성품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내에서 회사를 운영 중인 친척의 부탁으로 위장취업(?)을 해서 회사물품 도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용된 강민규가 주인공이다실제 이럴까 싶게 현장 묘사가 현실감이 있다. BBQ, 피자마루헬스클럽당구장우리은행출장소, CU편의점까지 있지만책과 인터넷이 없는 곳이고 오직 달러만 사용가능하다그러니 잔돈은쿠폰으로 적립해 준다한참 이런 디테일에 빠져 개성공단 안내문을 발견한 것처럼 열심히 읽었다정서적물리적으로 가까워서인지 도중에 자연스럽게 지도에서 검색할 뻔했다.

 

개성 공단은 북한 땅에 있고대한민국의 자본으로 세워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유통되는 돈은 원화나 북한 돈이 아닌 미국 달러였다.

 

개성 공단에 들어가려면 특별한 곳에서 국정원 직원에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통일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영상을 보는 것으로 사전 교육은 끝이었다반세기 넘게 대치 중인 북한으로 가는 사전 준비가 고작 그 정도라는 사실에 강민규는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입출경 절차를 밟는 것까지 포함해서 한 시간 반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꼈다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목적지를 향해 걷는 사람들에게 이곳이 얼마나 그곳과 가까운지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서울에서 한 시간밖에 안 걸리는 곳이지만, CCTV도 유전자 검사도 할 수 없는 곳이다이런 곳에서 도난만이 아니라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면어떻게 범인을 찾고 잡고 처리해야하는가아니 할 수 있을까특수한 공간현재 진행형인 역사공조가 불가피한 상황현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가는 장치들만 해도 긴장과 몰입이 잘 되는데작가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쉴 새 없이 독자들에게 트릭들을 던져 주며 반전에 반전을 연주한다.

 

거짓말은 항상 크고 작은 균열들을 가지고 있다.

그걸 찾아내면 진술한 사람의 거짓말의 깊이를 깨달을 수 있고결국 진실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용의자가 진술할 때 일단 믿는 척하면서 경청하는 게 추리의 시작 단계다

물론 한 가지 목적이 더 있었지만 그건 오재민 소좌에게도 말하지 않고 숨겼다.


급수가 그리 맞아 보이진 않지만북한호위총국의 오재민 소좌와 위장취업자 강재민이 탐정처럼 사건을 추적한다허가된 시간은 단 3모든 사람이 다 범인인가싶은 순간을 지나 추리 소설의 절정 반전이라 할 수 있는 플롯으로 범인이 밝혀진다나는 범인 찾기에 실패했다.ㅠㅠ 이 범인이 깜찍한 점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그 파장을 감추는 데에 남과 북 모두 관심이 있을 거라는 것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아주 교묘하게 그 틈에 숨어 있다참으로 시사적이다.

 

의욕이 넘치는 건 좋은데 여긴 개성 공단이라는 걸 명심하게.

 

개성 공단은 남북한 사이에 놓인 외줄입니다.

재미있게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떨어지기를 바라는 쪽도 많죠.

이럴 때 사소한 실수라도 하게 되면 큰일로 번집니다.

 

모든 가능성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그래도 남는 것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진실이다.”

셜록 홈즈가 한 얘기군!”

귀에 익은 목소리에 깜짝 놀란 강민규가 눈을 뜨자반쯤 열린 문 너머로 오재민 소좌의 모습이 보였다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온 오재민 소좌가 씩 웃었다.

놀라긴공화국에서도 셜록 홈즈 책이 나온 적이 있다고 했잖아.”

 

설정도 재밌고 기발하고 전개도 탄탄하고 배경과 스토리 스케일 역시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다전혀 예상 밖으로 범인 추적 과정에서 과단성과 유머가 뿜뿜이다북한 군부 절대 권력자가 남한 흥신소 직원이랑 함께 수사하는데 반발도 농담도 막 한다빨간 늑대 얼굴에 뿔도 나고 무기도 소지한 악마의 화신을 반공포스터로 그려본 세대라서 조마조마 불안불안 두근두근한 부분들이 없지 않았다그런데 다 읽고 나니 범인을 못 찾아 분해서인지 뭔가 아쉽단 생각이 든다이마저 작가의 의도인지 이 둘은 다른 모습으로 해후한다다음 편 출간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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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드레스메이커 비룡소 그래픽노블
젠 왕 지음, 김지은 옮김 / 비룡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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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이란 장르를 언제 처음 접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어느새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지긴 했다이 책은……어떻게 소개해야 잘 소개할 수 있나 고민이 될 정도로 마음이 기우는 책이다내용을 살피는 게 목적이라면 금방 읽을 수도 있겠지만천천히 읽으면서도 어느 새 12장이 끝나가니 진심 속상한 그런 작품이었다.

 

사람을 홀리는 매력적인 책이다시작은 내가 과도한 애정을 보였으나점차 아이들이 더 오래 이야기하고 더 빨리 다음 장을 보고 싶어 했다작가는 어떻게 이런 자연스러운 이야기 장치를 마련했을까드레스를 사랑하고 입기를 즐기는 세바스찬과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가 입을 드레스를 만드는 디자이너*프랜시스(*원작에선 seamstress, 번역본에선 dressmaker) 


 

이런 구성이 얼마나 많은 비극과 폭력과 저항을 경험하고 등장한 플롯이라는 걸 안다고 생각하는 나만 어색하게 감동 받고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다아이들은 프랜시스처럼 세바스찬이 드레스를 입는다는 사실을 그냥 받아 들였다그리고…… 그런 모습이 라떼는’ 세대인 나에게는 살아 온 보람이고 감동이다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빌어먹을 사장님 밑에서 일하던 걸 그만두고 왕자님의 드레스를 만들기 위해 여기 왔어요제가 왜 다시 돌아가겠어요?

이상하지도 않아?

무슨 차이가 있어요이건 제가 꿈꾸던 일인 걸요우리는 서로 도울 수 있어요.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모습도 벅찬 장면이었다그래픽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원체 남의 일에 시큰둥한 성격 탓도 있지만유학 시절 크로스드레서(crossdresser)를 보아도 별다른 거부감이나 판단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그게 뭐 별스런 일인가 싶기도 했다별나기로 따진다면야 피부나 털이 부실해서 온갖 가지 옷을 차려입는 인간이 지구상에 유일하게 별난 종족일 것이다.

 

어쨌든지금도 성별에 따른 드레스코드는 고루할 만큼 경직되어 있으니, 드레스 취향의 왕자보다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한 재봉사 프랜시스가 별난 인물일 지도 모른다.

 

여기서 문제는 왕자 세바스찬은 자신이 왜 여자 옷을 좋아하는지 모를뿐더러 단지 좋아하는 마음이 들 뿐이다그냥 좋으니까 좋은 것이다.’ 이야기는 군데군데 까딱 잘못하면 뻔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었는데그런 대목마다 예상외의 내용이 펼쳐진다.

 

예를 들면, ‘왕자’ 세바스찬은 자신을 부정하지도 않고 억누르려 하지도 않고단지 자신의 지위와 조화할 수 없다는 것만 갈등한다독자로서 나는 이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다.




외부 세계와의 갈등은 현상으로 존재하지만나는 나 스스로를 인정한다세바스찬의 내면은 흔들리지 않는다그리고 묘하게 이런 점은 부자가 닮아 있다.

 

시대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새 시대 왕의 힘이 약해지고 근대가 시작되는 무렵의 파리 에 왕정이 맞닥뜨릴 위기감을 체감하는 왕이자 아버지로서의 안목이 왕자의 선택에 대한 그의 태도와 입장을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천편일률적이거나 비슷비슷한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이야기가 아니다그보다 훨씬 더 무게중심이 기우는 쪽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이다.

 

가끔은 가능성과 기회가 벅찰 만큼 가득하고 혼란스러운 젊음이 아쉽고 부럽기도 하다가그래도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던 힘겹던 시절에서 여유로운 이 나이가 편안하다이제 더 이상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로 눈물이 쏟아지지도 가슴이 찌그러지지도 않는다.

 

이들이 어떤 어른들이 되었을까 궁금한가요아닌가요?

 

지금까지 내 인생은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만 가능했어.

그들이 다 결정했지.

무엇을 입으면 우스꽝스러운지는 이제 내가 결정하고 싶어.

 


그렇지만 나에게 일어났던 좋은 일들은 모두 바느질 덕분이었어요.

그래서 난 가끔 내가 바느질을 그만두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까봐 두려워요.

 


내가 처음으로 진실을 알게 됐을 때나는 세바스찬의 인생이 다 망가진 줄 알았다.

그런데 프랜시스너를 본 순간 모든 게 괜찮다는 걸 깨달았지.

왜냐하면 누군가는 여전히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거든.



그냥 막 좋았던 장면. 맥락 없이 넣었습니다.

 

이 작품 말고 다른 그래픽노블 작품을 먼저 읽었다무시무시할 만큼 무겁고 복잡하고 아픈 이야기였는데이 작품처럼 그림체 자체는 순둥순둥하고 선들이 부드러웠다마냥 인형처럼 예쁘지는 않지만 성격과 생각이 표정에 그대로 표현되는 듯한 그림들이었다방심하게 만들었다 스토리로 쾅쾅 때려주는스포일러가 될 것이 분명해서 뻔하지 않은멋진 결말은 언급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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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0 가을.겨울호 - 68호
계간 미스터리 편집부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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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가하면 누가 떠오르나요?

 

아무리 시간을 더 줘도 저는 영국미국일본 작가들만 떠올랐습니다.

한국 추리 작가를 한 명도 기억해낼 수 없다니…….

요즘 기억력이 급격하게 상하는 징조들이 보이니 그 탓이라 할 수도 있지만…….

한국추리소설가 누가 떠오르시나요?

 

이런 자각과 함께 한국에도 추리소설 계간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알았는데 이번호 테마는 벌써 한국 추리문학의 세대교체로군요…….

 


재미난 인터뷰가 1/3 정도 되고신인상 당선작도 두 편중편초단편들도 있어 순서 없이 후르륵후르륵 넘기며 즐길 수 있는 구성입니다정말 다양한 내용들입니다한국작가들의 진지함사회에 대한 놓치지 않는 관심들이 아주 치밀하게 추리소설 속에 구성된 작품도 있습니다엽기부족님의 리뷰도 있군요읽은 것 같은데 기억이…….

 

어떤 작품은 두세 번 읽어도 그야말로 미스터리하고 어리둥절한 기분인 게 아주 재미있습니다멋진 추리의 세계에서 버무려지는 시간장소인물들의 면면이 흥미롭습니다겨우 행복한 일이 생겼는데읽는 독자는 더 불안해지는 것도 미스터리의 힘과 매력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미스터리다!”라는 말에 귀가 얇디얇은 저는 벌써 세뇌가 되었나 봅니다

 

언제나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재, ‘살인’, 사람이 사람을 왜 죽이는가는 정말 인류 공통의 질문일 지도 모르겠습니다계획 살인보다 우발적인 충동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은 몰랐습니다그리고 평범한 사람들도 언제든지 살인자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현실은 가장 슬픈 비극입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찬반이 격렬한 주제라는 점은 알고 있지만의학적으로도 남은 시간은 오로지 고통에 시달리는 것밖에 남지 않았을 때의 생의 연장은 어떤 의미가 남은 것일지 복잡한 생각이 듭니다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삶과 죽음에 관한 온전한 선택이 있다면…… 작품 속이지만 자신을 살해해 달라 부탁하고 살해당하는 방법 말고도 더 편안하고 존중 받으며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저는 그렇습니다.

 

읽는 중간엄청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 다 식은 커피를 마시는 일도 재미있습니다충분히 시사적이고 현실적이고 마음을 들었다 놨다하는 작품들다른 생각 없이 읽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언제나 멋진 미스터리 작품의 건승을 응원하렵니다.



계간지 한 권 읽고 과분할 만큼 한국추리소설가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현혹(?)하는 장치 없이 다양한 분들의 풍성한 글로만 승부하는 멋진 잡지란 생각도 듭니다.

 

마지막 장의 미스터리를 쓰는 법이란 글은 정말 매력적인데추리문학을 정말 좋아하지만 내가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서 재미있으면서도 쓸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독서글쓰기시사정보역사적 사실을 주의 깊게 보고 대화를 많이 하는 건할 수 있을 듯한데……아무리 그래도 문학작품을 쓸 수는……괜한 고민까지 해보았습니다.

 


세대교체가 치열하고 흥미진진하길한국추리문학계에도 오래된 추리작가님들이 존재할 수 있기를한국추리문학작가들을 기억하는 세계 독서인들이 많아질 시절을 행복하게 상상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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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수사학 - 반전 스피치
허만섭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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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저자는 아주 최근에 법조 기자 카르텔 관련 기사에서 자주 거론되는 분이라 기억하게 되었다언론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처럼 시사적이고 복잡한 연구팀에 참여하는 동시에언론과 공중정치인 간의 의사소통에 관한 연구도 진행하는 분이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책 '레토릭(rhetoric)'부터 2020년 발간된 국내외 논문까지 '정치수사학(political rhetoric)'과 관련된 230여 편의 문헌을 검토했다고 한다이는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치인들의 메시지 표현 전략을 설명하는 동시에, '정치수사학'의 원리로 통찰력 있게 설명하여 정치적 소통에 관한 실질적 교훈을 얻는 것이 집필 의도라 밝힌다분명 전문적이고 진지하고 복잡할 내용이지만, 222쪽이라는 부담스럽지만은 않은 분량이라 읽기를 도전해 보았다.



한국 정치와 미디어 환경에서 생산되는 말들이 어떤 분위기인지 모를 이들은 없을 것이다막말궤변위선식언저자에 따르면 값싸고 부정직한 반수사적인 말들이다. ‘수사rhetoric라는 것이 본래 고귀한 성품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말을 지향한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지는 현실이다.



물론 이상적으로 정치인들이 늘 진의로 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고상황에 따라 정치적 수사가 극도로 복잡한 셈법으로 작동하는 상황에서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정치적 행위들로 보이는 이면에 경제적 이익들이 더욱 복잡하고 강력하게 작동하는 현실에서는 로비나 부탁으로 이루어지는 수사들도 가득하다특히 국제관계를 생각해보면 외교에서 수사는 생존기술에 다름 아니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수사들이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잘 골라 알아들으면 문제가 없을 터인데더 큰 문제는 한 귀로 흘려야할 수사로비정치의 수사를 듣고 되풀이하는 언론행태일 것이다저널리스트들이라면 당연히 사실과 정보 해석 능력이 있어야 할텐데반복해서 다른 나라들이 자국 사정에 따라 플레이하는 정치적 수사 게임들에 휘둘리는 - 휘둘리는 건지 동조하는 건지 모양들은 민망한 경우가 자주 있다.

 

시청자들이 그냥 듣기에도 전후맥락 하나 없고 되풀이할 가치는 더 없는 이야기들을, ‘그들의 발화 그대로 베껴서 옮길 이유가 어디 있나 싶다일부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유일하게 관심 있는 것은 오직 이해이익관계인 타국의 정치인들이 그런 시각을 숨기지도 않고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데 왜 그 말을 자진 유통시키는 것일까정치적 입장이고 뭐고 최소한의 판단력과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도의 애국심은 무리인걸까.

 

취임서와 연두교서를 분석한 결과미국 대통령들의 문제틑 현대에 들어 더 반지성적이고더 추상적이고더 단정적이고더 구어체적으로 변해 있었다. 45

 

아리스토텔레스는 레토릭에서 인간은 말을 통해 자신을 변호할 줄 알아야 한다게다가 인간이 자신의 육체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한다면인간이 말을 통해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합리할 것이다말의 사용은 인간에게 육체의 사용보다도 고유한 것이다”(이종오, 2008 재인용)라고 수사학의 유용성 및 필요성에 대해 적고 있다.

 

미디어와 여론이 중시되는 시대에 대통령의 권력은 명백하게 설득력에서 발생한다현대 대통령들의 지도력은 말로써 의회의 협력과 여론의 지지를 끌어내는 수사적 지도력(rhetoric leadership)’을 동반해야 한다민주주의라는 섬세한 통치’ 시스템에서 대통령의 언어는 권력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권력의 맹점이 되기도 한다. 24

 

여론을 실제로 지배하는 존재는 대통령이 아니라 엘리트 담화로도 알려진다엘리트 담화는 대통령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리를 세운다또 대통령의 말이 이 원리에 부합하기를 희망하는 공중의 기대를 만든다대통령이 이 기대와 무관한 말을 하면대통령이 공중의 지지를 얻는 것을 방해한다. 186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법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변증법이 실제적인 삼단논법과 표면상의 삼단논법을 발견하는 데 이용되는 것처럼수사학이 실제적인 설득과 표면적인 설득을 발견하는 데에도 이용된다는 것은 명백하다왜냐하면 궤변술을 행한다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의도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차이점이 있다웅변가를 예로 들자면과학적 지식에 의거한 웅변가와 의도에 의한 웅변가가 있다다른 한편 소피스트의 경우의도에 따르게 되면 소피스트가 되고의도가 아닌 자신의 능력에 따르게 되면 변증법론자가 되는 것이다(이종오, 2008 재인용)”라고 대비해서 설명하고 있다.

 

공중은 정치인들의 화려한 수사 속에 기만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한다이젠 대통령의 아우라는 대통령다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함에서 나오는지 모른다. 201

 

아리스토텔레스의 레토릭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사실임직함(eikos)’이다사실임직함이란 대중의 수준으로 내려온 논리학의 핵심을 지적하는 말이다즉 아무리 진실이라도 대중이 그럴듯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다따라서 그럴듯하지 못한 가능성보다는 불가능한 사실임직함이 (설득에는더 낫다는 뜻을 담고 있다대중이 공유하는 전재를 이해하는 것이 스피치의 설득적 구조에 필수적이며대중의 상식 위에서 삼단논법이나 생략삼단논법 등의 논리도 펼 수 있다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레토릭, 2016.09.01., 박성희)

 

기교 없는 기교는 기술 대신 덕을 지향한다평범한 말 안에 깃든 건전한 판단으로서의 양식, ‘이해관계가 아닌 양심에 따르는 성품으로서의 도덕성, ‘남을 위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서의 선의가 청취자를 설득한다. 204

 

예상하대로 페이지수보다 더 많은 내용들을 어쩔 수 없이 보이는 것만 읽으며 통독했다다만한 가지 정치적이든 아니든 우리가 수사학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수사학이 통용되는 환경들 내에서의 바람직한 - 지성적이고 구체적이고 진실한 결과들을 보려면두말할 필요 없이 교육과 훈련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확실해졌다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수능 체제와는 동떨어진 목표일 것이다.

 

코로나 판데믹이 세상을 다 뒤덮은 듯 보이는 매일이지만일본은 2020년부터 국제 바칼로레아를 도입했다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생각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글쓰고 나누고 공감하자는 의미이다더구나 학생과 교사가 교과서를 함께 만들고 학습하고 교육하는 과정을 제시한다고 한다대한민국의 교육 문법도 이것만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바뀔 가능성이 있을까.

 

정치적 수사rhetoric’에 대해 아는 바가 적어 친구들에게 물어 봤더니정치적 수사investigation’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들려준다지금 대한민국의 정치권과 언론이 가장 많이 생산하고 유권자들이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정치적 수사rhetoric’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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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누구인가

   - 나는 어떤 장소와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 만물은 어떻게 기능하고 있고 세계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 나는 어떻게 스스로를 조직하고 사회를 체계화할 수 있는가

   - 내가 지구에서 다른 생물들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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