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유니콘
오드리 로드 지음, 송섬별 옮김 / 움직씨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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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로드는 이민자흑인레즈비언엄마암생존자사회주의자페미니스트사서문학과 철학 교수출판인시인흑인과 다양한 인종의 인권운동가로 살았습니다

 

이 페르소나들  중에서 당신이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들은 몇 개입니까.



미국페미니즘양성적인androgynous 퀴어 존재성레즈비언 섹슈얼리티 그리고 시집이라서읽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런데 아주 잘 읽혔다순전히 번역만의 힘은 아닐 것이다.

 

개인의 일상도 체제의 현실도 언제든 거칠고 난폭하고 무자비할 수 있는 삶을 가감 없이 진솔하게 들려주지만 고통에 찬 울음으로만 표현하지 않는다강력한 균열을 내는 강인함을 지녔지만 섬세하게 생명을 주시하고 결국에는 살리기 위한’ 간절한 소망을 구현하려 희망을 놓지 않았다.



마치 즐거운 일에 몰두하는 사람처럼 기쁨과 열정을 표현하기도 한다고정관념에서 비롯된 나의 지레짐작은 대부분 그렇듯 이번에도 완연히 빗나갔다. 3-4장인 [재창조]와 [시스터 아웃사이더]에 이르면 외부에서 가해진 고통을 피할 수 없다고 해도 짓눌리고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는 연대를 통해 자매들이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삶에 대한 노래들이 담겨있다.

 

그가 들려주는 연대는 무엇으로부터라는 조건이 붙은 소극적 의미만이 아니다비록 출발은 그랬을 지라도 그의 소망하는 연대는 자매들과 함께 찾아낸’, ‘만들어낸’, ‘현실화시킨’ 것이자 재창조된 세계이며그순간 위태롭게 딛고 선 경계선은 더 이상 그들를 자빠뜨리고 갈라놓고 가두고 죽일 힘을 잃게 된다.

 

이 두려움을

영영 잃지 않겠어

갚을 수 없는 그 무엇도

빚지지 않겠어

 

철학자의 지성과 시인의 감수성으로 태동한 오드리 로드의 세계에서는 다양한 생명이 차이로 인해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고모두가 최소한 동등하게 존중받을 권리를 누릴 것이고아무도 를 문학을 사치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더없이 부드럽고 다정한 그의 웃음을 바라보며 나는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억압적인 상황 속에서 끝없이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고 자신을 부정당했겠지만그런 경험들로 인해 망가지지 않고 오히려 많은 것들을 정제하며 살았다그리고 그 모든 진실이 그의 시에 담겨 있다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자신도 다른 이들도 다독이며 조금씩 앞으로 함께 걸어 나가자는 말 속에 간절한 위안과 위로와 격려를 위한 따뜻한 눈물이 느껴진다.

 

시집의 제목인 <블랙 유니콘>형상과 개념으로 이해했던 <블랙 유니콘>이 읽어 나가는 내용에 비례해서 오드리 로드와 자매들의 화자로서 재구성된다자유가 박탈당한 채로 부당한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주류 신화와 세력에 휘둘리고 끌려 다닌 존재가 블랙’ 유니콘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침묵하지도 가만있지도 않고 왜곡되고 치워지고 잊힌 죽음의 실체를 폭로하는 존재부정에 맞서는 존재정의를 바로 세우려고 나서는 존재 역시 블랙 유니콘이다.

 

우리는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결코 서로의 굶주림을

어루만지지 못하고

결코

빵 부스러기를 나누지 못했다

두려워서

빵은 적은 되었다

……

이제 네게 외로움이란

성스럽고 쓸모 있는 것

이제

더는 필요 없는 것

네 빛은 환하게 반짝인다

하지만 난

알려 주고 싶어

너의 어둠 역시

그윽하고

두려움을 넘어선다고

 

시스터 아웃사이더

 

자라나 거라

검게 그리고 아름답게

 

앨빈 프로스트를 위한 추도사

 

그의 시들은 크리스마스이브 날에도 과장된 불안과 근거 없는 상상으로 하루 종일 심장이 조였던 나에게 심호흡을 하고 사유하라고 눈을 맞춘다네 불안네 현실네 세상이 어떻든 체념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아야할 이유를 알고 있지 않냐고 눈을 돌리지 않고 묻는다아무 것도 모르고 태어난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거냐고…… 죽기 전까지는 몇 번이고 그 두려움을 뛰어 넘어보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다시 다짐하라 한다.

 

해리엇언제나 누군가는 우리를 미쳤다고

못됐다고 우쭐거린다고 악하다고 흑인이라고

아니면 흑인이라고 불렀지

……

서로의 입 속에 가득한 고통을

말하려 애쓰며

말하려 애쓰며

말하려 애쓰며

말하려 애쓰며

그러다 우린 배웠지

채찍 끝에서

혀에서

서로의 배신이란 가장자리에서

존중이라는 것은 길에서

길에서 마주친 서로의 얼굴로부터

그 아름다운 검은 입으로부터

낯익은 신중한 눈으로부터

조용히

눈을 돌리고

홀로 스쳐 가는 것이라고

……

 

해리엇

 

감정적으로정치적으로 솔직하면서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열성을 다해 사는 일전 세계 모든 나라의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적어도 미국과 한국에서 그렇게 산다는 건 아직아주위험한 일이다타인의 이익과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것도 아닌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많은 이들이 너무나 두려워서 - 자기 자신으로살지 못할 것이다.

 

해가 뜨면 우리는 두려워한다

해가 계속되지 않을까 봐

해가 지면 우리는 두려워한다

아침에 다시 뜨지 않을까봐

……

사랑받을 때 두려워한다

사랑이 사라질까 봐

홀로 있을 때 두려워한다

사랑이 돌아오지 않을까 봐

 

그리고 말로 할 때 두려워한다

우리의 말이 들리지 않을까 봐

환대받지 않을까 봐

 

하지만 우리가 침묵한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두렵다

그러니 말하는 게 낫다

우리는 애초에 살아남을 운명이 아니었음을

기억하면서

 

살아남기 위한 기도

 

자신을 온전히 아는 것도 그렇게 사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고서로를 아는 것도 함께 살아가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서로를 필요로 하고특히나 경계나 가장자리에서 살아간다고 각자의 바운더리를 절감하는 누구나 서로를 지지하고 소통해야 생존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강하고 참을성 있고 부드러운 사랑이 있고 열망이 있어서억압적인 상황이나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참 좋겠다그런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자주 꿈꾸듯 설레듯 많이 했다하지만 현실에서는 늘 스스로의 깜냥에 좌절하고 도대체 이 한계는 왜 변함이 없나 절망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정의하지 않으면,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환상에 산 채로 잡아먹히게 될 거란 걸 알게 됐다.

 

자신의 정체성이 모두 존중받는 온전한 자아를 찾고자 평생 싸워온 오드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받은 아프리카 이름은 감바 아디사GAMBA ADISA, 자신의 의미를 분명히 보여 준 여자였다.

 

나는 여성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드넓은 미래를 품은 위험한 존재

나는

여성이고

백인이 아니다

 

여성이 말한다 


https://youtu.be/_nS8_5Dm-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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