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수사학 - 반전 스피치
허만섭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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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저자는 아주 최근에 법조 기자 카르텔 관련 기사에서 자주 거론되는 분이라 기억하게 되었다언론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처럼 시사적이고 복잡한 연구팀에 참여하는 동시에언론과 공중정치인 간의 의사소통에 관한 연구도 진행하는 분이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책 '레토릭(rhetoric)'부터 2020년 발간된 국내외 논문까지 '정치수사학(political rhetoric)'과 관련된 230여 편의 문헌을 검토했다고 한다이는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치인들의 메시지 표현 전략을 설명하는 동시에, '정치수사학'의 원리로 통찰력 있게 설명하여 정치적 소통에 관한 실질적 교훈을 얻는 것이 집필 의도라 밝힌다분명 전문적이고 진지하고 복잡할 내용이지만, 222쪽이라는 부담스럽지만은 않은 분량이라 읽기를 도전해 보았다.



한국 정치와 미디어 환경에서 생산되는 말들이 어떤 분위기인지 모를 이들은 없을 것이다막말궤변위선식언저자에 따르면 값싸고 부정직한 반수사적인 말들이다. ‘수사rhetoric라는 것이 본래 고귀한 성품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말을 지향한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지는 현실이다.



물론 이상적으로 정치인들이 늘 진의로 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고상황에 따라 정치적 수사가 극도로 복잡한 셈법으로 작동하는 상황에서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정치적 행위들로 보이는 이면에 경제적 이익들이 더욱 복잡하고 강력하게 작동하는 현실에서는 로비나 부탁으로 이루어지는 수사들도 가득하다특히 국제관계를 생각해보면 외교에서 수사는 생존기술에 다름 아니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수사들이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잘 골라 알아들으면 문제가 없을 터인데더 큰 문제는 한 귀로 흘려야할 수사로비정치의 수사를 듣고 되풀이하는 언론행태일 것이다저널리스트들이라면 당연히 사실과 정보 해석 능력이 있어야 할텐데반복해서 다른 나라들이 자국 사정에 따라 플레이하는 정치적 수사 게임들에 휘둘리는 - 휘둘리는 건지 동조하는 건지 모양들은 민망한 경우가 자주 있다.

 

시청자들이 그냥 듣기에도 전후맥락 하나 없고 되풀이할 가치는 더 없는 이야기들을, ‘그들의 발화 그대로 베껴서 옮길 이유가 어디 있나 싶다일부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유일하게 관심 있는 것은 오직 이해이익관계인 타국의 정치인들이 그런 시각을 숨기지도 않고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데 왜 그 말을 자진 유통시키는 것일까정치적 입장이고 뭐고 최소한의 판단력과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도의 애국심은 무리인걸까.

 

취임서와 연두교서를 분석한 결과미국 대통령들의 문제틑 현대에 들어 더 반지성적이고더 추상적이고더 단정적이고더 구어체적으로 변해 있었다. 45

 

아리스토텔레스는 레토릭에서 인간은 말을 통해 자신을 변호할 줄 알아야 한다게다가 인간이 자신의 육체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한다면인간이 말을 통해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합리할 것이다말의 사용은 인간에게 육체의 사용보다도 고유한 것이다”(이종오, 2008 재인용)라고 수사학의 유용성 및 필요성에 대해 적고 있다.

 

미디어와 여론이 중시되는 시대에 대통령의 권력은 명백하게 설득력에서 발생한다현대 대통령들의 지도력은 말로써 의회의 협력과 여론의 지지를 끌어내는 수사적 지도력(rhetoric leadership)’을 동반해야 한다민주주의라는 섬세한 통치’ 시스템에서 대통령의 언어는 권력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권력의 맹점이 되기도 한다. 24

 

여론을 실제로 지배하는 존재는 대통령이 아니라 엘리트 담화로도 알려진다엘리트 담화는 대통령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리를 세운다또 대통령의 말이 이 원리에 부합하기를 희망하는 공중의 기대를 만든다대통령이 이 기대와 무관한 말을 하면대통령이 공중의 지지를 얻는 것을 방해한다. 186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법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변증법이 실제적인 삼단논법과 표면상의 삼단논법을 발견하는 데 이용되는 것처럼수사학이 실제적인 설득과 표면적인 설득을 발견하는 데에도 이용된다는 것은 명백하다왜냐하면 궤변술을 행한다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의도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차이점이 있다웅변가를 예로 들자면과학적 지식에 의거한 웅변가와 의도에 의한 웅변가가 있다다른 한편 소피스트의 경우의도에 따르게 되면 소피스트가 되고의도가 아닌 자신의 능력에 따르게 되면 변증법론자가 되는 것이다(이종오, 2008 재인용)”라고 대비해서 설명하고 있다.

 

공중은 정치인들의 화려한 수사 속에 기만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한다이젠 대통령의 아우라는 대통령다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함에서 나오는지 모른다. 201

 

아리스토텔레스의 레토릭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사실임직함(eikos)’이다사실임직함이란 대중의 수준으로 내려온 논리학의 핵심을 지적하는 말이다즉 아무리 진실이라도 대중이 그럴듯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다따라서 그럴듯하지 못한 가능성보다는 불가능한 사실임직함이 (설득에는더 낫다는 뜻을 담고 있다대중이 공유하는 전재를 이해하는 것이 스피치의 설득적 구조에 필수적이며대중의 상식 위에서 삼단논법이나 생략삼단논법 등의 논리도 펼 수 있다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레토릭, 2016.09.01., 박성희)

 

기교 없는 기교는 기술 대신 덕을 지향한다평범한 말 안에 깃든 건전한 판단으로서의 양식, ‘이해관계가 아닌 양심에 따르는 성품으로서의 도덕성, ‘남을 위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서의 선의가 청취자를 설득한다. 204

 

예상하대로 페이지수보다 더 많은 내용들을 어쩔 수 없이 보이는 것만 읽으며 통독했다다만한 가지 정치적이든 아니든 우리가 수사학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수사학이 통용되는 환경들 내에서의 바람직한 - 지성적이고 구체적이고 진실한 결과들을 보려면두말할 필요 없이 교육과 훈련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확실해졌다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수능 체제와는 동떨어진 목표일 것이다.

 

코로나 판데믹이 세상을 다 뒤덮은 듯 보이는 매일이지만일본은 2020년부터 국제 바칼로레아를 도입했다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생각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글쓰고 나누고 공감하자는 의미이다더구나 학생과 교사가 교과서를 함께 만들고 학습하고 교육하는 과정을 제시한다고 한다대한민국의 교육 문법도 이것만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바뀔 가능성이 있을까.

 

정치적 수사rhetoric’에 대해 아는 바가 적어 친구들에게 물어 봤더니정치적 수사investigation’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들려준다지금 대한민국의 정치권과 언론이 가장 많이 생산하고 유권자들이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정치적 수사rhetoric’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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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누구인가

   - 나는 어떤 장소와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 만물은 어떻게 기능하고 있고 세계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 나는 어떻게 스스로를 조직하고 사회를 체계화할 수 있는가

   - 내가 지구에서 다른 생물들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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