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는 뇌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단 하나, 상상에 관한 안내서
애덤 지먼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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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으로 사고를 전환하게 되는 계기들이 있다. 내게 그 중 하나는, Intelligence is larger than reality 란 문장이었다. 뇌과학이나 신경과학이 전공은 아니지만, 이후로 내내 인간의 뇌와 기능과 현실이라 부르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수면 중에도 코마 상태로도 펼쳐지는, 혹은 더 광대하게 펼쳐지는 상상하는 뇌가 경험시켜 주는 시공간들... 상상의 기원과 진화 그리고 오류들을 밝히는 이 책은 내가 품은 관련 의문들에 모두 답해 줄 책일 것 같아서 표지만 봐도 심박이 기쁘게 빨라진다.




 

전 세계에서 실시된 유사한 연구들은 우리가 대체로 평소 활동하는 시간 중 4분의 1에서 절반 정도는 몽상에 잠겨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학이 보유한 가장 큰 능력은 설명의 힘이다. 이 책은 다른 대중과학서보다 현저히 더 쉽고 친절하게 쓰였다. 신경과학에 대해 내가 뭘 알고 있었나, 싶게 막힘없이 읽을 수 있어서 어리둥절할 정도로 놀랐다. 읽는 부담이 없어서, 2장 읽고 다시 1장부터 읽을까 싶기도 했다. 덕분에 참 즐거웠다.

 

아주 오랜만에 아주 긴 휴가를 보내면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할 수 없게 되는 와중에, 이렇게 재밌는 주제로 기분 좋게 전달하는 이 책이 아니었다면,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했을 것이다. 상상을 배우고 상상하게 하는 효과까지 있으니 편안한 시간에 채색을 더하는 듯.

 

우리가 본다고 느끼는 결과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수백만 년에 걸침 진화의 산물인 감각 기관, 특정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도록 형성된 문화적 유산(언어와 상징 체계), 그리고 현재를 강하게 지배하는 개인의 경험이 복합적으로 얽혀 만들어낸 것이다.”

 

그 덕분이었을까, 비로소 이해하게 된 상상의 원리와 힘은, 다채로운 꿈을 선물해주었다. 오감 경험뿐만 아니라, 슬픔에서 환희, 배고픔에서 아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정을 상상을 통해 어느 정도 다시 경험할 수 있었다. 답답한 마음이, 어느 밤 한 꿈속에서, 다른 세계, 다른 이웃들과 자유롭게 실현되었다.

 

실체를 실제로 아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대상이 나 자신이든 이 세상이든, 타인이든, 이해의 핵심 도구는 상상이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의 사건과 미래의 가능성이 겹쳐져 울리는 두터운 현재속에 살아간다.” 방황하는 마음이 아닌 상상이 제대로 힘이 되고 진화의 동력이 되려면, ‘행동해야한다.

 

우리 인간은 참신한 상상을 하면서 생계를 꾸러왔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를 혼자가 아니라 함께 했다.”* 마음, 양심, 정신은 모두 뇌에 깃들어 있다. 우리는 체화된 존재. 그러니, 낯설고 혹 어렵더라도 를 배우고 이해해야, 개인, 관계, 사회, 세계의 문제들이 보이고 바꿀 힘을 찾을 수 있다.

 

* ‘의식지식을 함께 나눔을 뜻하는 라틴어 콘시엔티아conscientia에서 유래했다.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고정된 거짓 믿음은 망상이다. 안타깝게도 설득으로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기능 장애나 병리적 현상의 밑바탕에 본질적으로 상상이나 모방에서 비롯된 과정이 있으며, 그 작동 원리, 형성 과정을 연구하고 있으니 해결의 희망은 있다.

 

우리 뇌는 끊임없이 창의적으로 생산적인 활동을 통해 의미를 찾는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니 막막하고 깜깜하고 갑갑하다고 느끼는 현실도, 우리가 함께 인간답게 바꿔나갈 수 있다. 그 가능성은 상상이 멈추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 그 길에 이 책은 참 좋은 안내서다.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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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사랑한 여자들 - 두려움과 편견을 넘어 나만의 길을 가는 용기에 대하여
이예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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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살아가는 이야기로 서로를 위로하는 이름만 들어도 좋은 15인의 여성 인터뷰집. 반갑고 설레고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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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사랑한 여자들 - 두려움과 편견을 넘어 나만의 길을 가는 용기에 대하여
이예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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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상대를 미워하지 않는다. 각자가 살아가는 이야기로 서로를 위로하는 이름만 들어도 좋은 15인의 여성 인터뷰집이다. , 반갑고 설렌다.



 

하나씩 빼먹는 게 아까운 과자상자처럼 그 맛에 정신없이 홀리면서도 줄어든 만큼이 아쉬워 울적해하며 읽었다. 조금 알았는데 많이 알게 된 기분이 드는 이도 있고, 전혀 몰랐는데 아는 것처럼 착각한 이도 있다. 흥미롭게 읽었지만 여전히 낯선 이도 있고, 좋아했는데 열광하게 된 이도 있다.

 

요즘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이 다 여자예요. 변화하고 있고 실제로 변화된 세상의 시작이죠. 미래는 이미 도착해 있는 거예요.” (정서경)

 

저는 소녀들이 저 사람처럼 나도 내 일을 저렇게 오래하고 싶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저 사람이 되고 싶어요.”(김윤아)

 

저는, 그냥 저를 믿어요. 현장에서 믿는 구석은 늘 저 자신이었어요. 항상 그래왔고 (...) 이건 선택이 아니에요. 저에 대한 믿음은 저 자신의 일부니까요.”(전도연)

 

눈을 감고 편하게 사는 것보다, 늘 긴장감을 지니고 세상을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하는지 계속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은희)

 

옆에서 보고만 있으면 정말 괴로워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요. 그냥 제가 고개를 처박고 오체투지를 하는 게 낫지, 남들이 하는 걸 지켜만 보는 건 더 괴로워요.” (정보라)

 

행복하게 끝없이 할 수 있을 것처럼 필사를 많이 하고, 최종 기록을 남길 문장들을 고르면서, 남은 문장들을 애도하는 심정을 맛보았다. 영민하고 예민하고 섬세한 지성들이 전하는 결기 같은 이야기들인데, 어떤 내용에서는 불쑥 눈물이 나기도 했다. 같이 기억하는 문장들이면 좋겠다 싶어서. 간절해서.

 

공감과 연대는 여성의 피해만을 봐 달라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성도 규정됨으로써 모든 다양성을 배제한다. 수십 년 전 여자도 인간이다라는 구호를 처음 보고 웃었던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인간으로 살지 못하는 여성들의 현실에 자주 소름이 돋는다.

 

여성은 이미지도 무균실의 보호 대상도 아니고 다른 그 무엇도 아니고, 언제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복잡성과 교차성을 지닌 인간이다. 상처를 입히고 유해하고 가해를 가하기도 하는 인간이다. 그저 덜 유해하고 더 다정해질 방법을 누군가들이, 누군가들과 함께 고민할 뿐이다.

 

제가 봤던 다정한 사람들은 오히려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이었어요. 자신이 그러하니, 역지사지로 다른 사람들 또한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요.”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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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말 장례식 문학동네 동시집 96
김성은 지음, 박세은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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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집, 정말 오랜만입니다. 문득 뾰족해지고 불쑥 튀어나오려는 제 안의 못된 말들을 동시의 힘을 빌려 또(?) 보내드려야겠어요.



 

동시는 어린이를 안고 어린이와 어른의 세계로 나아가고자/들어서고자 한다.”

 

동시를 적게 읽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선입견과 왜곡된 잔상만 남았던 건지, 동시 최초로 읽는 독자처럼 놀라고 낯설어서, 흥미와 긴장과 반성을 반복하며, 멋진 그림들에 감탄하며 천천히 읽었습니다.

 

노력은 해본다고 했는데, ‘어린이라는 축출된 개념이 여전히 제 안에 공고하다는 통감도 합니다. 밀도 높은 시어들이 반성의 시간을 농밀하고 강렬한 경험으로 체험하게 돕습니다. 문학... 시의 역량을 절감하는 시간입니다.



 

[말 꼬치]란 시처럼, 시어처럼, 가만히 읽다보면 생각이 간결해집니다. 첨언 부연하던 어지러운 내 말들을 나도 빼 먹고 말해 볼 결심을 해봅니다. 솔직한 표현의 힘에 의지해서, 미사와 포장을 빼 먹어 볼까 하는 용기가 납니다.

 

[바람이 보았다] 덕분에, 안전한 공간에서 시를 읽는 내 시간에, 높고 위태롭고 어렵고 어둡고 힘겨운 곳에서 목숨을 맡기고 일하는 이들을 떠올립니다. 동료 시민들이 못 보는 동안, 바람이 이들의 안전한 귀가를 지켜보는 그런 풍경.



 

[시간이 멈춘 집]에서 살고 계신 내 할머니도 만나봅니다. 꿈에서 만나는 일조차 드문 분을 시 안에서 왈칵 만나는 일이 뜨겁고 아픕니다. 여전히 기억이 생생해서 다행이고, 체취도 온기도 사라진 유품이 아쉽습니다.

 


오래 입원 중인 고모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럼 괜찮고말고하며 웃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매번 집에 도착하면 당연한 듯 대신 주차 해주시던, 고모 오빠, 내 아버지도 기어이 울면서 만나봅니다.


사람이 늙으면 심장 근육이 줄어들고 약해져서 죽는 게 아니라, 커지고 커지는 그리움에 심장이 천천히 녹아 사라져서 죽는 게 아닐까, 동시를 읽으며 실컷 눈물을 흘리며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린이가 아닌 독자가 읽은 동시의 시간은 울음 범벅이네요. 우리 집 십대들은 어떤 시를 찬찬히 읽고, 어떤 체험과 체득을 하게 될까요. 아무튼, 동시를 읽으면 못된 말은 힘을 못 쓰고 쏙 빠지거나 녹아 사라지는 게 맞나봅니다.

 

“‘어린이는 연령상의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이 지나온 어린이의 시간과 장소를 포함하면서 세상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살아가는 모든 소수자의 이름을 통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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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창비청소년문학 140
단요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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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 허가를 받았다지만 한국인 대접은 받지 못하는 사람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이 간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아는 이가 없어도 민망하다. 단요 작가님 작품인데, 청소년 문학이라고 또 느긋하게 펼쳤다가 혼쭐이 제대로 났다.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전체 출생아의 6%를 이미 넘었다는데, 친한 이웃으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무지하고 막연했다.

 

경험과 사유와 고민이 부족한 채로, 관련 문제는 또 적지 않게 알고 있다는 자만과 자기 오해가 더해진 상태로 살았으니, 사람 사는 일은 숫자나 이미지와는 이렇게 다르다고 포장 없이 보여주는 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부끄러운 자각에 호흡을 고르며 읽은 문장이 무수하다.



 

그런 말이 차별이고 혐오 발언이라는 건 모두가 알지만 세상일은 배운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기껏, “한국인 다 됐네등의 무신경한 발언 정도 안 하고 살면서, 온라인에 익명으로 조롱하지 않는 정도로 살면서, 너무 안도하며 살았다. 다문화 교육의 상세 내용에 어떻게 상세하게 상처를 입히는 효과적인 장치가 되는지 아냐고 묻는 대화에 짐작과 현실의 괴리가 한없이 멀어졌다.

 

중립 기어란 없다.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것조차 일종의 선택이다.”

 

2년 전,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이란 작품을 판타지 문학처럼 재밌고 신기해하며 읽는 순간만 봐도, 나는 타인의 사정을 참작하고 공감할 능력이 있다고 나는 상상했을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얼마나 노력해야 자기 문제가 아닌 것들도 자기 문제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어려운 일일지, 불가능한 일일지.

 

캐리커처란 제목에 내가 떠올린 것은 유쾌한 풍경이다. 그런데 작가가 차용한 의미는 가면이다. 심리학에서, 어느새 일상의 여러 분야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페르소나혹은 마스크.” 원하지 않아도 생존하기 위해 사회 속에서 갈아 써야 하는 슬프고 아프고 불편한 탈들.’

 

이 나라 사람들은 소속감 없는 상태에 소속된 사람들 같다. 돈만 잘 벌면 되는 나라라는 건 그런 의미 같다.”

 

위계가 공고하고 돈 되는 일이면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법도 아랑곳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역할로 포장된 계급과 계층은 아주 촘촘하게 배격적이다. 한국 만큼 법의 제재와 보장 없이 각종 차별이 난무하는 잘 사는 - 돈 많은 - 사회도 드물다. 그래서 친구, 호의, 위안, 고마움, 다짐... 같은 온기 있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온전히 반갑지 못하고 서글프다.

 

이렇게 또 혼이 나고 정신이 반짝 차려지는 작품을 만난 시간이 고맙다. 또 잊고 또 방만해질지라도, 한동안은 결코 타인의 심판하려 들지 말아야지, 가능한 많은 질문을 생각해내야지, 나 자신도 이 세계도 더 차분히 바라봐야지... 덕분에 그런 결심을 새롭게 한다.

 

당사자들을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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