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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말 장례식 ㅣ 문학동네 동시집 96
김성은 지음, 박세은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8월
평점 :
동시집, 정말 오랜만입니다. 문득 뾰족해지고 불쑥 튀어나오려는 제 안의 못된 말들을 동시의 힘을 빌려 또(?) 보내드려야겠어요.

“동시는 어린이를 안고 어린이와 어른의 세계로 나아가고자/들어서고자 한다.”
동시를 적게 읽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선입견과 왜곡된 잔상만 남았던 건지, 동시 최초로 읽는 독자처럼 놀라고 낯설어서, 흥미와 긴장과 반성을 반복하며, 멋진 그림들에 감탄하며 천천히 읽었습니다.
노력은 해본다고 했는데, ‘어린이’라는 축출된 개념이 여전히 제 안에 공고하다는 통감도 합니다. 밀도 높은 시어들이 반성의 시간을 농밀하고 강렬한 경험으로 체험하게 돕습니다. 문학... 시의 역량을 절감하는 시간입니다.

[말 꼬치]란 시처럼, 시어처럼, 가만히 읽다보면 생각이 간결해집니다. 첨언 부연하던 어지러운 내 말들을 나도 빼 먹고 말해 볼 결심을 해봅니다. 솔직한 표현의 힘에 의지해서, 미사와 포장을 빼 먹어 볼까 하는 용기가 납니다.
[바람이 보았다] 덕분에, 안전한 공간에서 시를 읽는 내 시간에, 높고 위태롭고 어렵고 어둡고 힘겨운 곳에서 목숨을 맡기고 일하는 이들을 떠올립니다. 동료 시민들이 못 보는 동안, 바람이 이들의 안전한 귀가를 지켜보는 그런 풍경.

[시간이 멈춘 집]에서 살고 계신 내 할머니도 만나봅니다. 꿈에서 만나는 일조차 드문 분을 시 안에서 왈칵 만나는 일이 뜨겁고 아픕니다. 여전히 기억이 생생해서 다행이고, 체취도 온기도 사라진 유품이 아쉽습니다.

오래 입원 중인 고모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럼 괜찮고말고” 하며 웃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매번 집에 도착하면 당연한 듯 대신 주차 해주시던, 고모 오빠, 내 아버지도 기어이 울면서 만나봅니다.
사람이 늙으면 심장 근육이 줄어들고 약해져서 죽는 게 아니라, 커지고 커지는 그리움에 심장이 천천히 녹아 사라져서 죽는 게 아닐까, 동시를 읽으며 실컷 눈물을 흘리며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린이가 아닌 독자가 읽은 동시의 시간은 울음 범벅이네요. 우리 집 십대들은 어떤 시를 찬찬히 읽고, 어떤 체험과 체득을 하게 될까요. 아무튼, 동시를 읽으면 ‘못된 말’은 힘을 못 쓰고 쏙 빠지거나 녹아 사라지는 게 맞나봅니다.
“‘어린이’는 연령상의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이 지나온 어린이의 시간과 장소를 포함하면서 세상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살아가는 모든 소수자의 이름을 통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