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
릴리 출리아라키 지음, 성원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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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나 표현하고 저항할 언어가 부족한 문제들을 다룬, 단비만큼 반가운 시의적절한 책이다. 속 시원히 배우고 알릴 기회다. 꼭 필요한 책을 번역 출간해준 출판사에 감사하다. 다 같이 읽자고 청하고 싶은 주제다.

 

한국 사회에서도 동시에 같은 공간인 듯 벌어지는 문제들, “소셜미디어 플랫폼, 극우 포퓰리즘, 인종주의, 여성혐오 등에 관한 분석을 바탕으로 피해자() 개념의 역사와 무기화 현상을 파헤친.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 최고단행본상수상.



 

피해자성이라는 용어에는 유구한 역사가 있다. (...) “억압당한 자”, 상해나 불운에 시달리는 자 또는 단순히 이용당하는 자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차차 변화한 것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였다.”

 

참고문헌이 90쪽이 넘는 장문의 논문 같은 진중한 책이다. 어휘도 내용의 밀도도 문장마다 높아서, 차근차근 읽고 기록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제목을 보고 짐작한 것보다 훨씬 더 방대한 내용이다. 동서고금의 사회학적 사례와 역사를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살핀다.

 

피해자성이란 단어의 역사도 덕분에 처음 배운다. 인간의 인식에 가해피해가 구분되고 인지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고, 법으로 명시되기까지의 느긋한 속도도 충격이다. 생각해보면, 관련 인식도 충분히 저변화되지 못했고, 그로 인한 2차 가해와 파생 문제들도 많으니, 인간의 뇌란 사회학적 진화 속도가 엄청나게 느리다.

 

최종적으로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는 곳은 힘있는 자들의 고통, 그중에서도 대체로 백인 남성의 고통이다. 이런 이유로 피해자성에 관한 소통에서 관건은 취약성이 아니라 특권이 된다.”

 

물론 그 이유에는 특권화하기 위해 개념조차 가로챈 권력층이 존재한다. 계급와 위계가 사라지면, 착취할 수 있는 타자들이 줄어들고 환수할 제 이익이 줄어드니까. 이런 욕망과 축적에의 광분은 또 무엇이며 왜 이런지, 난제들이 참 많다. 그럼에도, 이 방대한 연관을 바라보고 분석하고 이해하자고 연구하고 기록하는 이들이 있어서 덜 속고 살 수 있는 거겠지.

 

사고방식이자 발화방식인 고통의 언어는 (...) 인종화되고 상업화된 맥락에서 피해자성을 수행하여 고난의 구조적 조건을 탈정치화하고 미디어의 이익을 위해 고통을 구경거리로 만든다.”

 

피해자성이란 어휘 자체가 배제의 역사에 기초하므로, 여성들의 고통은 역사적으로도 현재에도 신뢰를 받지 못한다. “감정자본주의가 배제한 타자들의 고난은 도리어 신식민주의 위계 재생산에 기여한다. “고통자체가 객관적이거나 중립적 언어가 아니라, “망각과 삭제, 집단 가스라이팅으로 이루어진 네크로폴리틱스를 가능케 하는 이중적인 소통의 정치로서 작동한다.”

 

공적 담론에서 잔인함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미시파시즘의 행태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는 대단히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교묘하게 작동하는 상징들의 비유들을 알아차리고 저항하고 파헤쳐서, 언어를 정의의 서사로 되찾아 올 수 있을까?” 어떻게 정의의 서사에 다시 힘을 싣고, 이를 이용해 모두의 일반적인 고통이 아니라 고난에 처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고통을 부각하고 그들의 고난을 연대의 요청으로 바꿔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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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밖의 이름들 - 법 테두리 바깥의 정의를 찾아서
서혜진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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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미래가 더 우선시되는 가해자 중심의 프레임이 여전히 견고(...). 억울함을 드러낼 수조차 없는 사람의 편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

 

법조인이 왜 법 테두리 바깥의 정의를 찾을까. 넘쳐나는 성폭력과 젠더폭력의 사례들과 그 이유들을 대면하고 제대로 배울 귀한 기회다. 가해자들은 저도 피해자라고 하고, 피해자들이 가해자로 취급되고 비난 받는 그런 일이 빈번한 K-사회에서, ‘범죄 피해자 전문 변호사란 직업 설명이, 고단하고 어려운 현실 세계의 진짜 영웅을 호명하는 듯하다.

 

““수사가 어렵다.”라는 그 말이 용기를 낸 피해자들에게 건네져야 할까? (...) 범죄 예방과 수사에 적극적이고 선제적일 순 없었나? (...) 왜 피해자가 증거를 찾아야 하는가?”

 

오늘도 사법기관의 몰이해, 처벌 미약, 예방 실패로 피해자들이 죽임 당한 기사를 두 개나 보았다. 읽지는 못하고 제목만 보았지만, 너무 익숙한 반복적인 비극이라서 과정을 내가 진술할 수도 있을 듯하다.

 

성평등 교육 실패, 차별, 혐오 정치세력화, 예산과 인력과 인식 부족인 범죄 예방의 결과로 살해와 비극이 속출하는 현실에서, 서혜진 변호사는 단지 조금 민감했고, 주어진 일을 성실히 했고, 하루하루 버티듯 피해자를 변호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 점을 깊이 존경한다. 외면하지 않고 함께 버텨주는 이들이 얼마나 귀한가.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 연대인가.

 

어떤 통계는 10시간마다 한 명씩 살해당한다고도 하니, 서혜진 변호사 한 사람이 1년에 피해자 수백 명을 만나는 것도 당연하다. 다 알 수 없고 짐작보다 어렵고 힘든 버팀 와중에, 그 분투를 우리의 이야기로 기록해주어 깊이 감사한다. 60쪽 남짓을 매 쪽 줄을 긋고 또 그으며 읽고 기록했다. 이름 없는 고통들은 더 고통스럽고, 말해지지 못한 상처는 더 아프다. 문장 마지막의 모든 마침표가 숨표 같아서, 길게 내쉬고 들이마셨다.

 

버텨낸 언니들의 이야기는 조용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내가 가장 오래 품는 이야기이다.”

 

버틴 덕분에 변화가 시작되고, 달라지니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되고, 근절을 결심한 이들 덕분에 여성들은 일터에서 인간으로 존중받게 된다. 그 버틴 시절은 한두 해가 아니다. 수십 년이 지나 겨우 묵묵히 견딘 무게가 작은 것부터 바꾸어 나가는 힘이 된다. 다행이지만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겨우 시작된 변화를 막거나 멈추려는 이들도 없지 않다. 그러니 더 오래 버티고 견딜 결심이 또 필요하다.

 

습관적 폭력이 시간이라는 지속성을 만나 극단적 폭력이 되었다. (...) 망치로 머리를 찍었는데, 이게 살인미수가 아니면 뭔가요?”

 

권력의 편에 오래 선 관행은 무지한 폭력이다. “친밀한 관계에서 고의가 없다고 보는 경향은 친밀한 관계의 남성이 최다 가해자라는 통계를 부정한다(혹은 데이터보다 관행을 따르는 무지한 게으름, 혹은 의도적 무시). 그 덕분에(?) 가정폭력 피해자의 상황은 이렇다. 2023년 발생한 가정폭력 2380건 중 - 매일 632- 실제 구속 비율 0.19퍼센트 ~ 0.25퍼센트.

 

물론 통계에 포함조카 못한 피해자들이 상당수 있고, 이렇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에 더해 고통받는 피해자들은 매일 더 증가한다. “폭력이 발생한 순간부터 가정은 더 이상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인지가 왜 어려운가. 제대로 가해자를 처벌해야 피해자가 회복하거나 살 수 있다.

 

가해자의 죽음. 이보다 더 완벽한 가해는 없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의 현행 사법 체계의 변화가 시급하다. 피의자가 사망해도 사건이 종결되지 않고 실체 진실을 밝힐 수 있는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그래야 가해자를 고발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비난하고 낙인찍은 사회의 인식과 구조도 바뀐다. 그래야 세상에 자신의 피해를 영원히 입증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형벌이 사라진다.

 

아프고 괴롭지만 다정한 시선과 존재로 함께 연대한 기록이다. 더 많은 기록을 담은 출간본을 아주 많은 이들이 일독하길 바란다. 내란 종식은 끝이 아니다. 이번에야말로 묻히는 목소리가 없도록, 실체적 변화를 위한 연대와 행동이 필요하다. 이 책은 선명한 데이터이자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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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는 남성성 - 폭력과 가해, 격분과 괴롭힘, 임계점을 넘은 해로운 남성성들의 등장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 권김현영 외 지음 / 동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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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혁명이라 명명된 광장 민주주의의 경험에서 쏟아진 대변혁을 향한 이슈들과 의견들이 충분히 빠르게 다량으로 정책화되는 것 같지는 않다. 문제 많은 남성성의 현현인 권력 시스템에 온전한 기대를 품지는 않으니 실망이 크지는 않다. 내란 종식 하나만이라도 끝까지 해내길!

 

8인의 공저자와 만든 이 책은 더 멀리 더 오래 가야할 길과 더 새롭게 만들어낼 사회를 향한 이야기일 것이다. 차별과 혐오가 쪼그라들고 평등이 확대된, 그러기위해 낱낱이 드러낸 면면들.




 

성폭력의 사회적 이유를 외면한 공동체의 민낯을, (...) ‘젠더 갈등의 덫을 넘어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이들에게 강력히 권한다.” (오찬호 사회학자, 작가)

 

분노 유발 범죄도 대응도 어이가 없어서, 더 진한 분노에 잠기는 순간들은 너무나 많았다. “성관계가 하고 싶었기 때문에,” (피해 여성의) 머리가 짧은 걸 보니 페미니스트라서자행한 범죄들, “장기간 극심한 폭력을 행사하다 피해자를 살해한 가해자에게 살인의 고의가 없다거나 그런 폭력에 시달리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가해자를 죽임에 이르게 한 피해자에게 살인죄를 적용하거나. 사법 기관의 몰이해는 끝이 없다. 그러니 이런 폭력은 피해자의 죽음으로만 종결되곤 한다.

 

문제는 개별 사건 처벌을 넘어 오래된 사회 범죄, 현상, 의미화, 조직, 제도의 결과로서 해석의 언어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폭력, 차별, 혐오의 폭주에 대한 지형도를 그리는것이다. 이 책은 통계 데이터가 부족한 현실에도, 구체적 사례들을 활용하여 분석의 토대를 제공하는 귀한 책이다.

 

남성성들에 주목하면,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정상성을 구축하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남성성들은 주변화된 남성성이 유발한 폭력과 범죄만이 아니라, 기업 운영, 제도 정치의 과정에서 횡령이나 뇌물 공여부터 내란, 전쟁과 같은 폭력 행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범죄의 뒤편에 존재해왔다는 것을 보게 된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드러난 통계는 명백하게 고발한다. “여성들은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게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로 살해된다는 것을. 즉 여성들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는 친밀한 남성 파트너. “2023년 성폭력 범죄 피해자 약 80퍼센트가 여성이고, “성폭력 범죄자 약 94퍼센트가 남성이다. “딥페이트 성착취물을 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텔레그램 방에 소속되어 있던 인원22만 명이었다. “딥페이트 성폭력 피의자 98퍼센트가 남성이고, “성착취물 피해자 99퍼센트가 여성이다.

 

한국 사회는 남성 대상 성평등 교육에 실패했다.” “주변의 여성을 제물 삼아 남성되기를 수행하는 이들은 경쟁 구조를 바꾸거나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여성과의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노력하지 않는다. 여성을 일방적으로 탓하는 것이 더 손쉽기 때문에.

 

한국의 20대 남성의 극우화는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고, 이들의 남성연대는 젠더폭력의 역사 그 자체다. 이에 비해, “광장에서 만들어진 여성이라는 집단 정체성성별 위계와 차별을 둘러싼 억압에 저항하는 집단으로 재규정된다. 이 괴리를 둘러싼 문제와 갈등과 범죄를 하루빨리 제대로 분석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더욱 극심한 사회적 재앙이 될 것이다.

 

“‘폭주하는 남성성의 시대는 역할도 의미도 끝났다. 그 동력과 잔재까지 기어코 제대로 끝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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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혜린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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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샘 위에 떨어진 돌멩이였으며 그 샘은 내 어린 영혼이었다.”

 

이 작품을 어떻게 10대에 읽었지, 싶은 생각이 드는 재독이다. 당시엔 줄거리를 알고 있으면 작품을 안다고 생각한 시절이었고, 이후 30여 년간 너무 자주 너무 많은 이들이 언급해서 지겹기도 했다. 그런데 전혜린 번역 복원본이라는 소식에 모든 핑계가 말끔히 사라지고 다시 펼치고 싶었다.

 

읽다보니 줄거리만 아는 모르는 문장들이 한 가득이다. 새로 읽는 것인데 처음 읽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원작에 몰입하기보다 역자를 계속 의식하며 문장에서 그를 느끼려하는 기분이 유일한(?) 독서의 걸림돌이자 즐거움이랄까. 안개 짙은 겨울 냄새로 기억되는 그리움 같은 전혜린.

 

나의 생애에 있어서 그 당시처럼 그렇게 깊게 경험하고 괴로워한 적도 없었다.”

 

60년이란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 문장들이 편하게 읽힌다. 그 편함이 기억도 가물가물한 나의 십대도 얼핏 설핏 기억나게 만든다. 삶도 세상도 많이 몰라서, 많은 것들이 예감과 가능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들락거리던 시절. 이 재독이 크느라 한참 힘든 중2 꼬맹이를 가만히 지켜볼 힘을 키워준다.

 

예민하게 판단하려는 이 시절의 감수성, 불안, 두려움, 그리고 자책. 어떤 감정은 신생아처럼 연약해서 이 시절의 인간은 아프기도 하고 앓아눕기도 하고 실수를 크게 저지르기도 하고 엉망진창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의지하고 의논한 도움을 줄만한 사람이 없으면, 엉뚱하거나 유해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운명과 감정이란 같은 개념의 다른 명칭이다.’ 그 말을 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당기면 당기는 대로 끌려가는 탄성 존재처럼, 방종과 신성 사이를 오고가며 고민하는 우리의 주인공, 나이가 들어서 더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기대보다 적었다. 오히려 그 나이대의 사고방식과 언어가 내게서 사라져버린 탓에, 공감의 폭이 줄어들었다. 아쉽고 씁쓸하지만 도리가 없다. 언어화되지 못한 공감과 이해는 애초에 짐작 이상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니까.

 

데미안에게도 헤세에게도 예전만큼은 매혹 당하지 못하는 독자가 되었지만, 애초에 나는 전혜린에게 끌려 이 책을 펼쳤고, 해설에 전혜린의 글이 실려 있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선물을 마지막에 발견한 아이처럼 기뻤다. 영향력은 다르지만, 전혜린은 어리고 젊은 내게 데미안적 존재였을 수도 있다. 기존의 것들 중 틀린 것이 있다고 알려주는 많은 선지자들 중 한 명.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해석은 각자가 각자에 관해서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30년 후에도 종이책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삶을 마쳤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재독을 하고나니, 이번 생에 한번은 더 읽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일 그 독서에서 나는 무엇을 새롭게 이해하고 발견하고 느끼게 될지, 조금 궁금하고 많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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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 - 우리가 법을 믿지 못할 때 필요한 시민 수업
신디 L. 스캐치 지음, 김내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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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라는 허약한 토대, 법기술자들과 법꾸라지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법을 조롱하고 오용하고 무시하면서 살 수 있는지를 울화와 분노로 지켜보았다. 한국적인 상황만이 아니라고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드러난 약점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닐 수 있다. “법이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는 헌법학자의 이야기를 찬찬히 따라가 보려 한다. 멀쩡한 시민으로 살기가... 너무 자주 숨이 차는 극한 직업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원칙은 미국 전역에서 자취를 감춘 듯했다. (...)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규정하는 법률은 (...) 나르시시스트 선동가나 다름없는 자를 선거에서 뽑곤 한다.”

 

신디스 캐치의 <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에서는 짐작보다 더 숙의적이고 총체적이고 다각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사상이 전개된다. 20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력적이던 사상과 존경하던 저자들이 반갑다.

 

저자는 신자유주의도 무정부주의도 아니라고 거리를 두지만, 내가 아는 이상주의는 인간이 자율적인 존재가 될 수 있고, 그러한 개인들이 자유로운 연대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은 ‘~주의로 개념화하지 않아도, 저자가 희망하는 시민성을 키우고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일에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법과 규칙, 위계질서에 기반한 리더십이라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작동하게 할 때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시민을 한 명, 한 명씩 바꿔보자는 거다.”

 

수평적이고 상호적인 시민들의 공동체는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는 능동적으로 책임과 의무를 지고 모든 생물체의 권리를 존중하는 시민이 되는 방법을 상기시키려 한다. 선한 질서를 보장하기 위한 권위에 의한 강제로서의 현행 규칙과 법률을 초월하는 상상력, 두렵지만 궁금하다.

 

이 목표를 위해, 책 전반에서 법률과 민주주의와 사회와 정치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선례와 연구를 통해 설명한다. 목표와 지향과 달리 어떤 실패와 전락과 부작용을 초래했는지 제시한다. 인류가 생명과 자유, 행복추구권, 모두의 존엄성 보호를 헌법적 권리로 성취했는지 솔직하게 묻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규칙과 법원에 맡겨버린다면, 자율적인 지역사회의 헌신과 협력은 발전하거나 번성할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선거로 선출된 행정권력이 내란을 일으켜 여전히 종식시켜가는 중인 한국사회의 시민으로서, 거의 모든 내용이 미국의 상황으로 읽히지 않았다. 권한 위임은 무관심과 방조와 달라야한다. 특히 광장에 모인 이들 각자의 발언에서, 미디어에서 선별하는 목소리들이 얼마나 편향된 것인지, 얼마나 많은 다른 목소리들이 묻혔는지 실감했다.

 

그러니 질문은 스스로에게 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알고 반복적으로 교류하는 관계, 시민권 집단의 기반이 될 수 있는가. 공유된 지식을 나누는 실재적인 공론장, 공동체적 삶associated life”이 존재하는 민주주의가 가능한가.

 

그래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인 민주시민을 교육하는 일은 대학부터가 아니다. 사회학습의 초기단계가 제대로 작동해야 실질적 교육 효과가 있다. 아동교육, 초등교육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정책 지원을 해야 한다. 관행대로 교수 중에서 장관을 인선하려는 이번 정부에서 가능할까…….

 

우리는 시민을 양성하고 공동체를 건설합니다. 그저 부모들이 출근할 때 아이들을 맡겨두는 곳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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