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千년의 우리소설 14
김시습 지음, 박희병.정길수 옮김 / 돌베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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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후 아버지가 이유 없이(?) 사주신 책이다. 과학을 전공하는 자식에게 왜...? 의문을 품고 받은 기억. 읽긴 했지만 기억을 뒤져봐도 남은 것, 배운 것이 초라하다.

 

30년이 더 지나, 아버지 돌아가신 후, 다른 표지로 이렇게 재회하니 눈물이 쑥 날 것 같았는데, “천년의 우리 소설시리즈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기쁘다. 가슬가슬해서 좋은, 아름답고 따스한 종이표지... 아버지 손을 잡은 것 같다.



 


번역이 다르기도 하지만, 처음 읽는 것처럼 신기해하며 재밌게 읽었다. 인문학도 그렇지만 문학은, (대단하지 않게 살아왔어도) 나이 먹은 것이 이해의 폭을 조금이라도 넓혀준다.

 

평화와 사랑을 거부하는 종교가 없고, 짧은 단 한 번의 삶을 위무하지 않는 종교가 없으니, 믿음이란 유약한 우리에게 전하는 스스로 다짐하는 결심과 격려, 혹은 간절한 기도에 다름 아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선업을 중요시하고, 윤회를 통해서라도 실수와 잘못을 바로 잡으며, 그에 따른 대가나 책임을 지는 것이 윤리적이다. 물론 더 이상 따라하거나 동의할 수 없는 방식의 관계 규정도 있지만, 기억하고 싶은 건 세세한 다름이 아니니까.

 

무릇 나라는 백성의 것이요, 명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오. 천명이 임금에게서 떠나고 민심이 임금에게서 떠나간다면 비록 몸을 보전하고자 한들 어찌 보존할 수 있겠소?”

 



무엇보다 친절한 각주들 덕분에, 아는 바가 적은 시대와 종교와 어휘들에 대해 정독하며 배우는 게 즐거웠다. 아주 오랜만에 최초의 한문소설을 공부하던 고등학생이 된 기분도 들었는데, 그마저도 반가운 시간이었다.

 

유불선과 성리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적어서 오히려 오독을 덜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깊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시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즐거웠다. 다른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소설집임이 분명하다.

 



시험문제를 풀던 시절로부터 벗어나 드디어, 문학으로서의 금오신화와, 저항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지켜나간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도 만나보았다.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시간이 더 지나 또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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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달
이지은 지음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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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누군가 널 지켜 냈으니 여기 있겠지…….”

 

표지를 보는 순간, 달은 울지 않는다는데 내가 울고 싶었다. 어린 아이와 늑대가 위험을 피해 숨은 앞자리를 가능하면 내가 막아주고 싶었다. 첫인상은 때론 정확해서 읽는 내내 자주 울고 싶었다.



 

생명을 지키고 살리고 키운다는 것은 간절한 일이다. 두려운 것이 많아지지만 한걸음도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한 일이다. 잠들어도 존재의 일부를 깨워두는 일이며, 아파서 혼미해도 몸을 일으키는 일이다. 상처 입은 늑대와 지구에 떨어진 달이 인간 아이를 키우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겨우 가능한 일이었다.



 

겁쟁이에 후회가 많은 어른 독자인 나는 이 책이 전하는 서늘하고 뜨거운 분위기에 불안감이 찰랑대는 것을 견디며 읽었다. 불안한 짐작대로 전개가 될까봐 용기를 내어 계속 읽었다. 아픈 결말일까 더 용기를 내어 끝까지 읽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척 궁금하다. 입장이 다르니, 내가 양육자들의 기분에 밀착해 있은 것과는 다를 것이다. 청소년 독자들이 느끼는 것이 지극한 사랑이면 좋겠다.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부끄럽거나 약점이 되는 게 아니라, 용기가 필요한 멋진 일이라는 것을 눈여겨 봐줬으면 좋겠다. 미처 몰랐던 삶의 수많은 크고 작은 것들 모두가 누군가가 애쓰고 도운 덕분이라는 것도 알아봐주면 좋겠다.



 

때로는 세상이 별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고 다정하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포기해도 되지만, 그 대신 크고 작은 손해와 희생을 감수한 분들이 남긴 큰 사랑 덕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달을 더 자주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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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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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써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일기장을 숨기지 못할 테니까.”

 

전혀 모르던 작가의 작품을 첫 대면하는 순간은 떨리고 설렌다. 더구나 금지된 일기장이란 제목이 주는 숨 막히는 어떤느낌 혹은 써야만 살 수 있는 여성의 형편에 대한 짐작이 긴장감을 더 높인다.

 

일기장의 새하얀 백지는 나를 매혹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혼자 거리를 거닐 때처럼 말이다.”

 

명료한 문장들인데 어찌나 선동적인지, 남의 일기장을 읽으며 나는, 끊임없이 숨기고 발각을 두려워하고 욕망을 포기하고 현실에 거듭 순응하는 주인공 대신 깊은 한숨을 병이 날 것처럼 거듭 쉬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는 나만을 위한 서랍이나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었다.”

 

원작의 필력과 번역의 힘은, 국내 첫 소개된다는 이 작품을 불온하고 고혹적으로 만들었다. 작가의 시선은 두려울 만큼 깊은 통찰력을 가져서, 스스로도 부정하는 욕망은 가릴 것을 찾지 못한 채 낱낱이 드러난다.

 

원래의 나로 돌아가려면 되도록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해야한다

 

유학시절에, 성소수자이며 베네치아인venetian인 동료는, 자신의 결혼이 행복한 감옥이었다고 했다. 일견 평온해 보이는, 폭력적이지 않은 배우자와의 결혼 역시, 혼인 계약 내용들에 맞춰 거세당하지 않은 여성이 지닌 다른 욕망을 어떻게 질식시킬 수 있는지, 제도란 얼마나 촘촘한 사회적 억압일 수 있는지가 평범한 일기 문장들 속에 어두운 핏자국처럼 기록되어있다.

 

“8월에 일주일 쉬었다고 10월까지 피곤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언어가 곧 사유라는 점에서, 쓰는 여성이 생각 하지 않고, 생각을 더 확장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꿈쩍도 하지 않는 현실에 갇힌 채, 사유함으로써 다른 욕망과 세상을 상상하게 된 존재는 어떤 생지옥에 갇히게 될까.

 

언제나 현실과 관련된 일을 생각하는 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괴로웠다. (...) 깊은 사유 없이 어떻게 올바른 기준에 맞게 행동할 수 있겠는가.”

 

안전망을 뛰쳐나가는 것으로 고통의 상쇄가 시작된대도, 바깥에서 기다리는 것이 어떤 위험이고 괴로움일지는 모를 일이다. 혹은 20세기에 작가가 투옥되었듯이, 다른 이들 역시 저항의 대가로 다른 감옥에 갇히게 될 지도.

 

소설처럼 긴박하게 재밌고 일기처럼 내밀하고 솔직한 이 작품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다. 이 이야기가 어디로 누구에게로 향했는지 찾아가보고 싶다.

 

일기장을 펼칠 때마다 가장 먼저 첫 페이지에 적힌 내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출간을 열렬히 반깁니다. 다른 작품이 있다면 더 소개해주시길 바랍니다.




 


📸 Photos of Alba de Céspedes, Credited by Mondadori Portfo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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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별은 어떻게 내가 되었을까 - 지구, 인간, 문명을 탄생시킨 경이로운 운석의 세계
그레그 브레네카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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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석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물체로, 지구와 우리의 문화를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아무리 시도해도 단한권도 끝까지 읽지 못하는 새해 새날들을 보냈다. 그래서 이 책이 구원 같다. 불안을 달래주는 문장들이 고마웠다. 현재와 현상이 힘겹고 답답할 때, 나의 근원과 우리의 근원과 세계의 시작으로 가보는 시공간여행은 특효약이었다.

 

아주 오래 아이디로 사용한 재활용된 별먼지는 더 오래 전 책*에서 배운 것이다. 우주와 지구와 나의 구성성분에 대해 처음 배우고 동질성에 놀라고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시간 단위로 상상하는 방법과 힘도 배웠다. 동요와 신화와 종교의 많은 이야기들이 천문학으로 번역되었다. * <코스모스> 칼 세이건

 

운석에는 태양보다 오래된 다이아몬드와 오래전에 폭발한 행성계의 잔해가 포함돼 있고, 심지어 일부 운석에는 놀랍게도 생명의 기본 요소인 아미노산과 상당량의 물도 들어 있다.”

 

오래된 돌들은 좋아하지만, 천체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운석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깊지 못했다. 운석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책에 설렜다. 운석이 화석이고 데이터이고 대답이 되는 과학의 발견과 이야기가 경이로웠다. 운석 연구가 왜 우주 법의학인지 배우게 되어 즐거웠다.

 

나중에 도착한 이 운석들은 (...) 생명의 발달을 촉발한 유기 물질과, 심지어 현재 지구에 있는 물도 공급했을 가능성이 있다.”

 

알던 내용이지만 달의 탄생과 지구의 변화 내용은 언제 다시 읽어도 두근거린다. 내가 아는(?)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다. 그 사건 덕분에 지구는 다양한 생명체들과 인류가 생존 가능한 환경이 되었다. 어릴 적엔 그저 무서웠던 운석이 이 책을 통해 구체적인 형태와 정보를 가진, 중요한 존재가 된다.

 

어릴 적부터 하늘 올려다보기를 좋아했고, 천자문 시작이 하늘이 검다여서 좋아하는 독자에게, 기록과 증거가 남은 인류의 가장 먼 역사부터, 인류가 천체 현상과 운석에 어떤 영향을 받고, 상상하고, 대응하며 변화해왔는지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내용은 더없이 흥미롭다.

 

어떤 종류의 운석들은 45억 년 전에 생성된 이래 한 번도 녹은 적이 없으며, 따라서 태양계 탄생의 단서를 담고 있는 훌륭한 타임캡슐이다.”

 

생명이 어떻게그리고 나타났느냐는 질문에 관심 있는 이들이 반길 책이다. 더구나 매혹적인 과학적 사실들을 수식이 아닌 이야기로 만날 수 있다는 것과, 과학서를 반기지 않는 독자들도 역사서를 읽듯 재밌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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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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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의 의도치 않게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방랑자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베리 로페즈Barry Lopez 책을 읽을 때면 늘 같은 생각을 한다. ‘끝나지 않고 영원히 읽고 싶다.’ 이번 책은 그 소원을 감안한 듯(?) 이전 책들보다 두껍다. 파란색 벽돌의 두께만큼 더 설레고 기쁘고 반갑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 일흔여 개 나라, 어떤 곳은 여러 번 방문 - 여행경험을 하고 많은 지식을 배우고 그 모든 것을 엮어서, 시적인 아름다운 문장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경이로운 기적이다. 협소한 경험과 얄팍한 지식과 부족한 문해력을 가진 독자가 일독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은 일부만이다.

 

그래서 행복하지만 각주까지 꼼꼼히 읽고 천천히 곱씹었다. 들어서는 글 - 91-을 읽고도 휴식이 필요했다. 한참을 걸으면서 입 속에 든 사탕처럼 문장과 생각을 굴려보았고, 짬이 날 때마다 저자의 당부와 메시지를 떠올렸다.

 

서로 협력하라,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이니.” 📝

 

그런 날들이 지나고 본문을 펼치니 오히려 안도가 된다. 편안한 기분으로 풍경과 지식이 춤을 추는 문장들을 따라다닌다. 이렇게 잘 읽히면 금방 다 읽는 건가 싶어 미리 아쉬운 기분을 도리질로 떨쳐버리면서.

 

모든 장소는 그 깊은 본성상 투명하지 않고 불명료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여행한 장소들을 여행한 독자가 읽는다고 해도, ‘그 장소는 같은 장소가 아닐 것이다. 모든 면에서 다를 것이다. 우주 만물이 한시도 정지하고 불면하지 않듯이. 창작이 아닌 문학에 몰입하는 것은 그래서 때로 더 어렵다.

 

나도 지구 반 바퀴는 여행했다고 말하곤 했지만, 내가 사는 동네도 매일, 시간별로 전혀 다른 공기와 분위기가 된다. 게다가 내 존재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펼치기 전의 나와 읽는 나는 그만큼은 달라진 존재이다.

 

그래서 신뢰하고 존경하는 여행가이드이자 대학자의 안내를 받는 것처럼 순순히(?) 따라 읽었다. 누가 보고 기록하고 해석하는 가에 따라 풍경을 완전히 달리하는 인류와 자연의 많은 것들에 경탄하느라 바쁘고 즐겁기만 했다.

 

우리의 문화적 운명에 관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기다리는 생물학적 운명에 관해 (...).”

 

이왕 지구에 태어났으니 가능한 지구를 많이 여행하다 길에서 죽으면 좋겠다고 한 때 소원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원거리 여행은 중단했고, 그래서 아쉬운 점도 그래서 비로소 배우게 된 점도 많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에서만 배울 수 있다고 하지만, 지구에 살아도 지구에 대해 배우는 것들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여행도 역사도 과학도 윤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베레 로페즈의 학문과 책은 이런 부족과 부재와 갈증을 가진 이들에게 알맞게 내리는 반가운 비와 같다.

 

세상 모든 모퉁이에는 (...) 낙담과 패배를 뚫고 계속 밀고 나아가며, 자신의 상처를 동여매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보살피는 많은 사람이 있다.”

 

조바심에 후륵후륵 전체를 일독했지만, 백분의 일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어서 오히려 기쁘다. 이 기념비적인 책의 어느 챕터를 언제 펼쳐 읽어도 늘 좋을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야말로 꼭 소장하고 싶은, 여러 번 다시 읽고 싶을 아름다운 지성의 기념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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