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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나는 거의 의도치 않게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방랑자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베리 로페즈Barry Lopez 책을 읽을 때면 늘 같은 생각을 한다. ‘끝나지 않고 영원히 읽고 싶다.’ 이번 책은 그 소원을 감안한 듯(?) 이전 책들보다 두껍다. 파란색 벽돌의 두께만큼 더 설레고 기쁘고 반갑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 일흔여 개 나라, 어떤 곳은 여러 번 방문 - 여행경험을 하고 많은 지식을 배우고 그 모든 것을 엮어서, 시적인 아름다운 문장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경이로운 기적이다. 협소한 경험과 얄팍한 지식과 부족한 문해력을 가진 독자가 일독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은 일부만이다.
그래서 행복하지만 각주까지 꼼꼼히 읽고 천천히 곱씹었다. 들어서는 글 - 91쪽 -을 읽고도 휴식이 필요했다. 한참을 걸으면서 입 속에 든 사탕처럼 문장과 생각을 굴려보았고, 짬이 날 때마다 저자의 당부와 메시지를 떠올렸다.
“서로 협력하라,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이니.” 📝
그런 날들이 지나고 본문을 펼치니 오히려 안도가 된다. 편안한 기분으로 풍경과 지식이 춤을 추는 문장들을 따라다닌다. 이렇게 잘 읽히면 금방 다 읽는 건가 싶어 미리 아쉬운 기분을 도리질로 떨쳐버리면서.
“모든 장소는 그 깊은 본성상 투명하지 않고 불명료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여행한 장소들을 여행한 독자가 읽는다고 해도, ‘그 장소’는 같은 장소가 아닐 것이다. 모든 면에서 다를 것이다. 우주 만물이 한시도 정지하고 불면하지 않듯이. 창작이 아닌 문학에 몰입하는 것은 그래서 때로 더 어렵다.
나도 지구 반 바퀴는 여행했다고 말하곤 했지만, 내가 사는 동네도 매일, 시간별로 전혀 다른 공기와 분위기가 된다. 게다가 내 존재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펼치기 전의 나와 읽는 나는 그만큼은 달라진 존재이다.
그래서 신뢰하고 존경하는 여행가이드이자 대학자의 안내를 받는 것처럼 순순히(?) 따라 읽었다. 누가 보고 기록하고 해석하는 가에 따라 풍경을 완전히 달리하는 인류와 자연의 많은 것들에 경탄하느라 바쁘고 즐겁기만 했다.
“우리의 문화적 운명에 관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기다리는 생물학적 운명에 관해 (...).”
이왕 지구에 태어났으니 가능한 지구를 많이 여행하다 길에서 죽으면 좋겠다고 한 때 소원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원거리 여행은 중단했고, 그래서 아쉬운 점도 그래서 비로소 배우게 된 점도 많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에서만 배울 수 있다고 하지만, 지구에 살아도 지구에 대해 배우는 것들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여행도 역사도 과학도 윤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베레 로페즈의 학문과 책은 이런 부족과 부재와 갈증을 가진 이들에게 알맞게 내리는 반가운 비와 같다.
“세상 모든 모퉁이에는 (...) 낙담과 패배를 뚫고 계속 밀고 나아가며, 자신의 상처를 동여매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보살피는 많은 사람이 있다.”
조바심에 후륵후륵 전체를 일독했지만, 백분의 일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어서 오히려 기쁘다. 이 기념비적인 책의 어느 챕터를 언제 펼쳐 읽어도 늘 좋을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야말로 꼭 소장하고 싶은, 여러 번 다시 읽고 싶을 아름다운 지성의 기념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