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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의 문제란 결국 '에너지'와 '지구환경'의 문제라는 점을 빠르게는 1970년대부터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학자들과 시민들이 얘기해 오고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1990년에도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한데 쓰레기 치우는 문제로 떠든다!,라는 비난이 주를 이루었다는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2019년, 순전히 운이 좋아 아직은 수도꼭지만 틀면 마실 수도 있는 소독된 안전한 물이 끊임없이 나오고, 심지어 그 맑은 물로 대소변을 씻어 내리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이것은 이제 곧 당연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두 달여간 비정상적 열기에 휩싸인 대한민국은 '조국사태' 이외에는 어떤 이슈도 중요하지 않은 사회로 언론에서 편집되고 있지만, 지난 21일 약 5,000명이 모여 서울 대학로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돌입했다. 참가했거나 사진을 본 이들은 알겠지만, 종교인들이 앞줄에 앉고 청소년들이 그 뒷자리에 앉았다.
무대 정면에는 '지금이 아니면 내일은 없다. 기후위기 지금 말하고 당장 행동하라'고 적혀 있었다. 과장된 것처럼 들린다면, 이는 이미 전 세계 10여개 국가와 1000여개 도시가 비상선포를 실시했다는 소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다른 것도 아닌 '생존'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고, 수립하고 실행 가능한 모든 계획과 대응과 정책을 서두른다고 해도, 미래세대에게 미안하지만 공멸할 확률이 더 높다. 지난 100년간 기후는 한 번도 방향을 바꾸지 않고 상승 곡선을 타고 올랐다. 이미 지구 기온은 2012년 기준으로 0.85도 높아졌다. 이제 남은 시간은 10여년이다.
참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9272018015&code=990100
이런 시기에 제목부터 목이 타들어가는 소설 [드라이]를 읽었다. 이미 현실이 절망적인데 만약 소설 또한 묵시론 적이라면 나는 단지 더 우울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멍청이가 될 거란 생각이 미리 들었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10대들이 그토록 일 년 내내 질문을 하는데, 아직 제대로 된 답을 내어 놓지 못한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기성세대가 아이들을 구하는 메시아 주인공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주인공이 되어 살아남는 이야기란 정보에 읽고 그 희망을 보고 싶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e_-LR8PpLk
아주 오래전부터 누구나 알고 있는 건조한 얘기이긴 하지만, 나 자신의 기억을 환기시키기 위해 한 번 더 정리해 본다. 인간 몸에 포함된 수분은 체중의 60%, 체내 수분의 12%를 잃으면 인간은 갈증으로 사망한다. 평균적으로 공기 없이 3분, 물 없이 3일, 음식 없이 3주 이상을 버틸 수 없다. 이 법칙에 충실하게 [드라이]이 인물들은 마실 물이 사라지고 3일 만에 워터 좀비로 변하고 만다.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인간성을 포기하고 가능한 가장 잔인한 만행을 저지른다. 재앙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폭력도 가능하다는, 인간이 이룬 문명사회라는 것이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단번에 무너지고 사라지는 구축물이라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드라이]는 가장 현실적인 재난 중 하나를 다루고 있다.
6월 4일 오후 1시 32분.
사람들은 수도꼭지가 말라 버린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될지도 몰라.
대통령이 암살된 순간을 기억하듯이. 15
예전에는 물이 어디서 오는지 알지도 못하고 신경도 안 썼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16
폭풍 해일도 없고,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잔해도 없다.
단수는 암처럼 조용히 덮쳤을 뿐이다.
확연히 드러나는 증세가 없으니 뉴스에서도 하찮게 취급하는 것이다. 35
아마도 계엄령일지 모른다.
아마도 재난 관리청이 급수차를 몰고 올 것이다.
아마도 내일이면 모든 게 나아질 것이다.
당최 확실한 게 하나도 없는 이 사태에 신물이 났다. 80
그 속에 아이들이 순진하게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사실 이 내용이 정말 마음이 아프고 불편했다. 아이들이 한 명이라도 죽을까봐 끝까지 마음을 졸이게 된다.
뼛속까지 오싹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눈들이 양의 것인지 늑대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118
내 동생을 살리기 위해 누가 죽어야 한다면, 얼마든지 물을 빼앗고 죽게 내버려 둘테다. 헨리가 맞았다.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돼야 할 때도 있다. 지금 나는 괴물이다. 406
생각보다 환경 조건에 무력할 만큼 허약하고 인내심도 없는 인간 군상들을 보여주면서, 그 광기 속의 약자들인 아이들이 생존하는 이야기가 누구 하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재난이라는 점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감성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고, 거기에 아이들을 둘러싼 인물들에 대한 현실감 있는 묘사 – 일부 인간들은 더할 나위 없이 역겹다 - 와 상황에 대한 긴장감 있는 표현력이 얇지만은 않은 책을 단편처럼 단숨에 독파하게 한다.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일이 이 소설의 큰 재미이자 흡인력이다. 그 궁금증에 괴로운 장면들이 줄 지어 나와도 끝까지 읽어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다만 소설 속 식수재난은 지역이기주의로 인해 촉발된 것이지만, 실제로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와 자원위기가 일부지역에서는 이미 현실화되어 있고, 곧 더 확산되리라는 암울한 미래 전망 속에서 이야기의 결말과 별개로 두려움과 절망이 사그라지지는 않는다.
‘부엌 수도꼭지에서 기묘한 소리가 난다.’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자꾸만 이제는 아무 것도 보장해주지 않는 수도꼭지를 힐끔거리게 된다.
살고자 하는 의지를 잃었을 때조차 서로를 구할 힘은 기어이 우러나오는 것이다. 421
정녕 우리네 삶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