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곁에 있기 - 취약함을 끌어안고 다른 삶을 상상하며 만들어낸 돌봄의 세계들
고선규 외 지음 / 동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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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으로 모두 만날 수 있어 내 곁도 뜨거워질 듯한 저자들이다. ‘돌봄이란 두렵고 버겁다는 생각만 오래 한, 게으르고 비겁한 독자의 귀한 배움의 기회가 될 책.

 

셀 수 없이 많은 요소가 돌봄이라는 행위에 대해 하기 힘들고, 귀찮은 일이라는 감정을 먼저 일으키게 만들고 있다.”

 

살면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과 통찰을 통해 어떤 인간의 체계 - 개념, 가치 등등 - 인위적 조작에 다름 아님을 배운다. 출생 후 바로 자립이 불가능한 생물에게 돌봄은 생존의 필수 요소이나, 이를 인지하고 대하는 태도는 무지와 무시에 다름 아니다.

 

따라 읽으면 뾰족한 기분이 녹을 듯한 제목의 이 책 속에는, 이런 인식 환경 속에서 곁에 있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마주하고 감당하고 헤쳐나갔던 곡절이 담겼다. 돌봄이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인 독자라서, 돌봄을 둘러 싼 여러 공부를 하는 기회로 삼아 읽었다.

 

이미 누군가를 돌보고 있다면, 왜 돌보고 있고, 돌봄 과정에서 느끼는 문제와 갈등은 무엇이고, 고통과 만족은 어떤 것이 있는지 (...) 돌돌 수 있는 조건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

 

한숨이 절로 나는 지난 역사 속 선택들보다, “사회화가 필요한 일들을 시장화하는 방향이 더 아프다. 뜨겁게 늘어난 관심이 시장화된 제도로 귀결하는 과정들도 아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장보다 크고 복잡하건만.

 

내 한 몸 돌보기 힘든 세상에서 서로를 돌봄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이 세계의 한 귀퉁이를 돌보고 있다.”

 

배움이 느리고 배운 걸 잘 잊어서, 이 나이에도 스스로를 잊고 잃고 아프게 만들며 살고 있다. 어느 저녁 버스 정류장에서, 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호흡이 돌아온 사람처럼 깊고 시원한 숨을 쉬었다. 문득 깨달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지금이 오늘 처음인 휴식 시간이구나.

 

거리를 채우는 색색의 불빛들처럼 내 기분에도 불이 들어왔다. 기다리는 몇 분이 홀가분하고 편안해서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너무 빠르고 너무 바쁘게 산다. 이 속도로는 남은 물론 자신도 돌볼 수가 없다.

 

연약함은 시간을 붙드는 힘이 있다.”

 

타인들의 삶이고 관계고 경험지만, 나누는 글들은 나의힘이 된다. 책이 가진 마법 같은 능력에 기대어 산다. 내게 있는(있다면, 있겠지?) 인간다움과 인간답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힘의 팔 할(이상)은 더 나은 인간 세상을 바라는 이들이 써서 전해준 책()에서 받았다.

 

자기돌봄이야말로 더 나은 모든 것의 시작일지 모른다. 그러니 무언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다면, 우리는 자신부터 돌봐야 한다. 내가 돌봄의 시간 속에서 익힌 가장 투명한 진실이다.”





 

누군가의 곁에 있으며, 혹은 있기 위해, 무겁게 짓누르는 힘든 생각이 많은 분들이 잘 발견하기를 바라는 책이다. 다양한 돌봄들로만 살아갈 수 있는 모두가 만나면 좋을 책이다. 내가 아는 돌봄과 모르는 돌봄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들이 더 많아지길, 그렇게 돌봄이 사회적으로 확장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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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의 온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4
정다연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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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차고 몸은 춥고 시국은 서늘한 계절이다. 서점에서 눈에 띄면 덥석 집고 싶은 제목이다. 그저 다정하고 따뜻하자는 얘기만 담으신 건 아닐 테지. 내 짐작보다 훨씬 더 단단한 이야기를 전해 주실 거다.

 

삶은 유리컵을 엎지르고 싶지 않아도 엎지르게 되는 일처럼 통제할 수 없으니.”



 

새삼스럽기도 하지만 책(기록)이 가진 힘은 대단하다. 예를 들어 전혀 모르는 이의 이야기를 몇 시간씩 듣기란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책은 초면인 작가의 촘촘한 풍경을 들여다보고 목소리에 집중하게 돕는다.

 

낯가림의 짧은 시간이 지나고나니, 내가 당면한 현실로 쪼개지는 두통을 지그시 누르는 시간이 찾아왔다. 미루기와 외면이 해결해주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다그침에서 잠시 놓여나 호흡에 산소 농도를 높이는 듯.

 

슬픔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는 무관하게 한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을 수 있으며 그건 (...)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라고.”

 

눈치가 없고 우둔한 편인데 나이를 먹으니 좀 더 이해하는 면면이 내게도 있다. 남들은 이미 알고 나는 이제야 하나씩 알아가는 수많은 것들 중에는, 사람들이 아주 비슷한 질문을 하며 각자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는 것.

 

어떻게 살고 싶은데?”

 

버릇처럼 조바심이 일기 시작하는 순간마다, 저자의 문장들이 시간을 다 잡아 주었다. 호흡의 속도보다 빠르게 사느라 늘 숨이 찼다고 가르쳐주는 것처럼. 느리지 못해서 집요할 수도 없었다고. 보지 못한 것들이 아주 많았다고.

 

내가 나를 지나치게 앞질러 가지 않도록 돌보며 건너가야지.”

 

시인들은 닮은 목소리를 가진 걸까. 한강 작가님의 포근하고 바삭거리는 한지 같은 음성을, 기뻐하며 축하하지만은 못하는 시절을 슬퍼하며 반복해서 들었다. 이 책이 지닌 목소리도 그렇다. 다정하고 보드라운 사랑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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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 흔들리는 오십을 위한 철학의 지도
바르바라 블라이슈 지음, 박제헌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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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는 이곳의 아름다움을 몇 번이나 더 누릴 수 있을까?”

 

흔들리는 오십……. 흔들리기만 할까. 갑자기 툭... ... 살면서 만들어둔 것들 중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가끔 내 자신의 일부가 바스스 손 쓸 도리 없이 헤지기도 한다. 몸도 다른 것도 거의 매일 아프다. 과장이 아니다.

 

삶의 반환점은 몇 해 전에 이미 돌았다고 생각했다. 다시 읽게 되지 않을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새로 읽는 책들도 대개는 첫 만남이 마지막이었다. 빠르게 닫히는 시간의 문 앞에서 무엇이든 반복은 사치가 되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모든 걸 뒤집어버리기엔 우리 인생에 너무 깊이 매여 있음을 깨닫게 된다. (...) 평온함은 이내 고통스러운 마비 상태로 변한다.”

 

그런 약화(?)를 알아차리면 무분별하게 사용한 자신을 돌보거나, 잘 모르는 자기 자신에 집중하거나, 살라는 대로 살아온 삶 말고 다른 삶을 찾거나 만들고 싶어진다. 하지만 현실은 시도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고령의 부모와 아직 미성년인 자녀들이 있는 경우, 아프든 괴롭든 의무와 책임은 막강한 과제처럼 버티고 있다. 그 괴리가 중년을 더 아프게 한다. 그 결과로 드러나는 거의 모든 비명을 갱년기 증상이라 부를 지도 모르겠다.

 

내가 전혀 바꿀 수 없는 나의 생물학적 운명, 유전자는 봐주지 않고 일회용인 몸을 노화시키고, 내가 바꿀 수도 있지만 무책임한 선택이 되거나 사랑하는 이들을 엄청나게 힘들게 할 사회적 운명, 역할은 변화를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

 

이 모든 걸 받아들이고 살다보면 앞으로 남은 삶에 남은 마지막 이벤트는 장례밖에 없다. 행동이 어려우니 중년에게는 제목처럼 철학이 유일하고 간절한 존재 방식이 될 지도 모르겠다. 뭐든 각자가 이해 가능한 정리가 필요하니까.

 

우주의 추정 나이가 약 137억 년이란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의 생은 찰나에 불과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사실을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차분하게 사색을 이끌어주고 함께 산책을 나선 듯 다정한 책을 읽는 동안, 시시한 성과물도, 막연한 미래도 불안해하지 않고 잊을 수 있었다. 중년에 느끼는 감정들을 쓸데없다고 혼내지도 않고, 감동을 주거나 낙담시키지도 않는다.

 

중년이라서 가질 수 있는 작은 반짝임 같은 통찰을 과장 없이 얘기하며, 그렇지 않냐고 조용히 묻는다. 읽다 보면 저자의 고백을 내가 듣는 것인지 내가 고백을 털어놓는 것인지 분간이 흐려진다. 공허함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다.

 

무언가를 돌보고 배려하는 자세는 무엇보다 삶의 허무함에 대항하는 방식이다. (...) 이런 식으로 우리는 (...) 우리 안의 무언가가 계속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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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공부 - 똑바로 볼수록 더 환해지는 삶에 대하여
박광우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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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단지 나를 기억하는 사람만이 남을 뿐입니다. (...) 어떠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셨으면 합니다.”

 

참 다정한 책이다. 부친의 사망진단서를 건네주며, 아주 많은 죽음을 보았기 때문에 고인이 고통 없이 편안히 가신 것을 볼 수 있다고, 위안의 말을 건네던 고마운 의사선생님이 다시 생각났다.

 

탈상이 무용해 보이는 상주의 심정으로 힘들고 복잡한 감정을 껴안고 사는 중이라서 공부가 하고 싶지만 책에서라도 죽음을 만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용기를 내길 잘했다. 부친의 사망과 상례를 겪으며 경험한 과정들에 합치되는 내용들이 많아서 덕분에 다시 이해하고 일부 정리가 된다.

 

죽음이라는 숙제는 오로지 나만이 풀 수 있다. 하지만 옆에 누군가가 있고 없고는 삶의 엔딩을 또 다른 쪽으로 쓰게 한다.”

 

나는 비교적 젊은 20대에 유서쓰기, 장기기증 등에 관심이 있었고, 미리 등록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찾아 해두었다. 이 책에도 사례와 함께 잘 소개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까지. 그래도 늘 준비가 부족한 기분이라 불안하다.

 

자신의 의지대로 남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환자들을 마주하다 보면 치료의 자기 결정권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둘러봐도 현재 더 준비할 것이 없다 싶으면, 종교도 없으면서 기도하는 심정이 된다. 부디 필요한 말, 해야 하는 말, 하고 싶은 말을 더 열심히 전할 수 있기를. 부디 존엄성을 지닌 채 죽음을 맞을 수 있기를.

 

한국에서 죽을 권리는 없다. 여기서 죽을 권리는 적극적 안락사를 말한다.”

 

책을 읽은 덕분에 논쟁적인 사안들에 대해서도 정확한 사례와 주장과 고심들을 배울 수 있었다. 당위가 아니라 현실의 형편을 섬세하게 살펴서, 인간의 죽음이 비로소 인간다울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늘어나기를 희망한다.

 

연결된 사람 관계처럼 죽음도 끝이 아니다. (...) 당신의 아름다운 작별 인사는 무엇인가.”

 

두려움과는 달리 행복한 공부를 했다. 이토록 다정하게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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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 예찬
앙리 라보리 지음, 서희정 옮김 / 황소걸음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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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라는 문화적 환경에서 태어난 글, 사상의 자유를 빨리 보장받은 사회공동체에서 사회화된 이들에 대한 부러움과 동시에, 자기검열에 익숙한 한국사회의 움츠러듦이 생각나니, 자유롭고 재기발랄한 발화에 조금 속상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읽는 재미는 확실하다. 화가 치미는 시절에, 이 책은 내게 책 속으로의 즐거운 도피 시간을 제공해주었다. 더불어 쿠데타 상황에서 영리하게 도피하고 용감하게 맞선, 그래서 비극적 희생이 없는 상황이 새삼 안도가 된다.

 

물론 외과 의사이자 신경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저자가 예찬하는 도피는 물리적 도망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이 투장과 억제와 도피이며, 사회가 물리적 투쟁을 금지하는 동시에 도피를 반사회적인 것으로 억제시키는 행태에 대해 지적하니 현 상황에도 시의적절 했다.

 

자기를 정상이라고 간주하는 사람 상당수가 개인과 집단, 계급, 국가, 국가연합 등을 막론하고 지배 구조를 구축하려고 궁리하면서도 정상을 유지하려고 헛되이 노력하는 한, 도피는 자기 자신에 비춰 정상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다.”






 

영민하고 통쾌한 문장들이 많아서 일일이 다 소개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블랙코미디나 시니컬하게 반짝이는 과학 지성을 좋아하는 분들은 자주 웃으며 즐길 수 있다. 과학과 철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저자를 따라가는 게 조금 버거워질 수도 있으나, 최대한 즐기시길. 독서란 시험에 들게 하는 함정이 아니다.

 

중추신경계 기능은 우리가 하는 모든 판단과 행동의 근간이 되기에 (...) 중추신경계에 대한 지식을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습득하지 않는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읽는 시간에는 현실을 잊고 웃었다. 저급한 인간이 저지른 최하질의 국가적 범죄 처벌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못한 시간에, 아주 다른 시선과 태도로 세상의 여러 당연한 것들을 뒤집어 보는 책과의 안전한 시간이 큰 위안이 되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아무 메아리도 없는 절망적인 비명에 불과할 뿐이라고 깨달았다.”

 

저자가 선택한 주제어들 중에도, 우리 인간이 저항과 도피라는 수단을 아예 사용하지 못할 상황들도 있고, 그런 면에서 우리의 운명은 생물학적일 뿐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생은 영원히 매혹적일 테지만, 더 유용한 것은, “살아있는 동안 어떤 내용으로 살 것인가이다.

 

아주 작은 시도라도 해야 한다. 우주는 자연법칙에 따라 예외 없이 작동하고 있지만, 인간 사회는 아무리 강고해도 지배 시스템에 틈이 있고 틈이 생긴다. 그 틈을 벌려 구조물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도 가능하다. 계기가 무엇일지는 사건event 발생 전에는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완전히 절망하고 포기할 이유가 없다.

 

이 책은 개별 존재인 우리 자신을 생물학적으로 사회적 존재로 그리고 철학적 주체로 생각해보는 유쾌한 공부를 돕는다. 그리하여 온갖 모순과 갈등과 경쟁과 비극 속에서도 살아남고 살아가는 인간 존재를 좀 더 이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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