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혀 - 황교익의 본격 정치 시식기
황교익 지음 / 시공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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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역사관은 음식 공부를 하면서 (...) ‘왜 우리는 궁중 음식을 조선 시대 대표 음식으로 여길까하는 의문을 가진 것이 시발점입니다.”

 

식사도 아니고 라는 제목에 내용이 더 궁금했다. 각 대통령의 입맛에 관한 에피소드가 짧은 에세이처럼 기록되었을 거란 짐작은 상당히 어긋났다. 회자된 음식을 소재로 한 가벼운 정치사랄까. 덕분에 상세히 몰랐던 이야기들을 재밌고 편하게 들을 수 있어 즐겁다.

 

청소년기에 제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사일구 때 이기붕이네 집에서 수박이 나왔다 아이가였습니다. 이승만 권력은 4월에 수박을 먹을 만큼 부패했다는 뜻으로 회자되었던 말입니다.”

 

탐관오리를 꾸짖을 때 탐욕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치스럽고 과도하게 먹어치우는 일화가 전파력이 강한 것은 동서고금 비슷하다. 직관적으로 가장 선명하게 와 닿는 것은 물론, ‘나눠 먹지 않는것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공감과 동의에 이견이 없기도 하다.

 

박정희는 5.16 군사쿠데타가 진행될 때도 술에 취해 있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대통령으로 재임할 때는 안가에서 매일 저녁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역사라고 생각한 계엄을 목격하고 겪으며 사는 공화국의 시민이라서, 성공한 군사쿠데타의 주범이 술에 취해 살았다는 이야기가 옛날이야기 같지 않다. 낮에 카메라가 있을 때는 막걸리를, 밤에 내밀한 장소에선 위스키를 마신다는 대비도 시사하는 바가 새롭다.

 

칼국수는 조선에서는 반가의 격조 있는 음식이었지만 이 무렵부터는 서민 음식의 대표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 품격을 갖추고 서민을 대표할 정치인의 음식으로 이만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얇고 보드라운 건진국수 방식의 칼국수가 그립지만, 막상 찾아 먹게 되지 않은 지라, 칼국수가 한 때 행정수반의 가장 정치적 음식이었던 일화를 20대의 추억과 함께 반갑게 읽었다. 친한 선배가 당시 민주당 담당 정치부 신문 기자로서 들려준 야사도 몇 십 년 만에 조금 기억났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1972년 이전의 음식은 배고파서 먹는 것이고, 1987년 이후의 음식은 즐기기 위해 먹는 것입니다. (...) 1987년은 대통령 선거에 정치인 먹방이 등장할 만한 여러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볼 수 있겠고 (...).”

 

특히 언제부터 정치인들이 선거철이 되면 시장에 가서 먹방을 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시원했다. 왜 저러고 다니나 한심하기도 했는데, ‘친해지기위해서, 혹은 그런 느낌을 주기 위해서 그에 대적할 다른 기획은 없는 듯도 하다. 먹방 만큼 정책에도 진심이길 기대할 수밖에.

 

우리가 음식을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것은 음식에 스토리가 담겨 있음을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살고 살리기 위해 번거로움을 감당하고 준비하는 음식들이 더 자주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담고 활용되면 좋겠다. 한숨이 끊이지 않은 여러 해를 살다보니, 한 때 냉면이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희망과 기대를 품은 채로, 많은 이들이 즐기던 시간이 있었다는 것도 다 잊고 살았다.

 

무더운 여름이다. 우리 미래는 낯선 기후를 감당하며 운 좋게 살아남거나... 그렇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의 매일은, 귀한 식재료들이 낭비되는 일이 없이, 필요한 이들에게 고루 전달되는 그런 정책들이 이번 대통령의 혀로 시행되고 구상되는 시간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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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 선물 가게 꿀잠 선물 가게
박초은 지음, 모차 그림 / 토닥스토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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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협찬

 

꿀잠을 잔 게 언제였지... 아는 이들 중에 꿀잠 자고 사는 사람이 귀하네... 읽는 것만으로 꿀잠이 올 선물 같은 소설일까, 몹시 기대!




 

그 시간이 아주 길지는 않게, 그저 버티고 견디는 게 아니라 점점 회복하는 과정이 될 수 있게 노력해보겠습니다.”

 

수면부족은 생존에 치명적으로 유해하다는 점에서, 잠을 잘 못 잘 정도로 걱정과 아픔과 상처가 있다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다. 꿀잠을 자게 돕는 이들과 아이템을 파는 가게가 있으니, 다양한 이들이 가게를 찾아오거나 출장을 가기도 하는 구조다.

 

각자의 에피소드가 깊고 오래된 원인을 가지고 있어서, 사회적 페르소나를 내려놓는 잠든 상태일 때에만 그 원인을 찾아 꿈속을 살펴볼 수 있다. 오슬로와 자자가 타주는 꿀 차의 맛이 엄청 궁금하지만, 타인의 고단한 삶을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이 내 기분도 차분하게 한다.

 

꿀에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힘이 있답니다. 조금 후에 스르륵 잠드실 수 있을 거예요.”

 

잠을 잘 못자는 건 남부럽지 않게 겪으며 살아왔다. 온갖 의학 정보와 일상 관리 팁을 접했고, 수면유도제도 복용해보았다. 어릴 적엔 일상과 전혀 다른 모험 같은 꿈이 좋아서 잠자는 시간이 행복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간신히 잠든 밤에도 반가운 꿈은 없었다(기억하지 못했다).

 



어둡고 무거운 사람은 꿈의 풍경도 그러하다. 부엉이 자자의 시선으로 본 인간의 꿈속은 말하지 못한 개인사가 기록된 비밀 일기장 같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이가 만든 꿀잠 아이템은 하나같이 탐나는 것들이라서, 작품 속 캐릭터가 부러워질 지경. 특히 새털구름 양말과 기억의 팔찌!



 

마침 오늘은 보름달을 볼 수 있는 밤이다. 달을 찾아보고 나도 꿀잠을 자도록 애써봐야겠다. 신비로운 달빛의 힘으로 아기 부엉이 자자가 살아서, 인간들이 꿀잠을 자도록 돕는 조수가 되었다. 오슬로와 자자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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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는 간소하게 화가 노석미 사계절 음식 에세이
노석미 지음 / 사계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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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도 일러스트도 단아하고 멋져서, 일상의 약속과 책임을 다 팽개치고 어서 읽고 싶은 기분. 간소한 먹이가 더욱 간절한 여름이 시작되었다. 식사의 모든 과정이 경건한 지옥 같아.

 

고민이 끝나지 않는 식사는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고역이다. 제목도 목차도 간소한먹이들인 책에서 배울 수 있는 메뉴를 얼른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펼쳤다. 그런데... 먹이를 먹을 수 있기까지의 과정이 정성스럽고 자연스럽고아름답고, 삶의 방식 자체가 부럽다.

 

“‘음식이나 요리가 아닌 먹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은 소박하다거나 간소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이 먹고 사는 일이 동물의 그것에 비해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저자가 시골 마을에 간지 15년이 넘었고, 정원과 밭에 기르는 작물들과 과실수들이 다양하다. 언제부터인지 확정은 못하지만, 나도 무척 오래 바랐던 - 행동은 전혀 못하고 있는 - 삶이라서 부러움이 한숨과 함께 새어나온다.

 

내 삶의 반경에서 쉽게 구매할 수 없거나 먹는 법을 전혀 모르는 식재료들은 행동하지 않은 대가로 부재한 삶의 증거 같고, 나도 좋아하는 먹이들은 그래도 간소한 삶으로 향하는 미비한 노력의 보답 같다.



 

두부에 대한 애정과 에피소드에 크게 웃었다. 아픈 이웃에게 다짜고짜 생두부와 무장아찌를 사가서 먹어보라는 문병과 격려! 그리고 정제밀가루가 아닌 밀의 향긋함과 갓 구운 빵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한동안 그만둔 베이킹을 다시 시작하고픈 생각을 일렁이게 한다.



 

저자는 자신이 심고 수확하는 먹이 재료에 대해 매번 겸손하지만, 귀촌 생각만 가득하고 텃밭도 본격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대여섯 평 땅에서 빵 열 개 분량의 향긋한 밀가루가 나온다는 것만 해도 경이로울 따름이다.

 

덕분에 상상 속 나의 귀촌 생활은 더 다채로워진다. 많이 좋아해서 꼭 심어야지 했던 밭작물과 과실수에 더해, 나도 따라 해봐야지 싶은 목록이 길어진다. 보리수 잼이라니! 겨울까지 먹을 수 있는 토마토 수확이라니!

 

어떤 미래를 살게 될지 모르지만, 덕분에 풍경화 같은 꿈의 지도를 얻었다. 부디, 어쩌면 나도 심게 될 사과나무 묘목에서도 5년 정도가 지나면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주기를. 자연스럽게 벌레와도 새와도 누구와도 나눠 먹으며 사는 풍경이 내 삶이기를 간절하게 바라본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단호박의 껍질이 단단해지면서 우둘투둘한 점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수확 철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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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조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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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에서 번역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확장된 표현형>을 읽었다. 2018년과 2022년이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어느새 2025, <불멸의 유전자>로 다시 만나는, 그가 본 생명과학의 세계가 몹시 기대된다.

 

이 책의 주제는 동물 자체, 동물의 몸과 행동, 표현형phenotype’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다.”

 

조금은 두려운 기분으로 펼친 책은 뜻밖에(?) 사례들과 그림들이 가이드하는 안도가 되는 방식이었다. 언제 도킨스 식의 강력한 주장을 만날지 몰라 조마조마했지만, 새 책에 익숙해질 때까지 부담 없이 따라 읽을 수 없는 사례들이 반갑고 재미있다.

 

이 책의 주요 논지는 모든 동물이 조상 세계의 기술 문서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자연선택이 가장 세세한 부분들까지 깊이 유전자 풀을 조각하는 엄청나게 강력한 힘이라는 숨겨진 가정에 도태를 둔다.”

 

본질과 이데아와 이념 대신, ‘생명이라는 협력체의 현상으로 존재하는 찰나의 삶을 받아들이고 나면, “유전자 관점gene's eye view”의 생명관이 전하는 냉정한(?) 내용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개체로서의 나의 고유성, 실존, 자아 등의 개념을 내려두고, “유전자가 임시 탈것으로, 미래세대로 옮겨가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생물()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필멸하는 나를 슬퍼하기보다 불멸하는 유전자를 더 알고 싶어진다.

 

유전자는 어떻게 불멸성을 획득할까? 사본의 형태로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도록. 그럼으로써 다음 세대로 더 나아가 먼 미래까지 성공한 유전자가 전달되도록 몸들의 기나긴 연쇄에 영향을 미침으로써다.”

 

시험공부 하듯 일주일을 꼬박 읽었다. 결론은 내가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살아남은 세균 무리의 협력체라는, “우글거리는 공생성 수직바이러스의 군집을 유전자 풀로 가지는 표현형이라는 것이다. 수십 년 전이라면 울고도 싶었겠지만, 지금은 평화로울 만치 괜찮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한 종의 유전자 풀은 저마다 미래로 여행하려고 굳게 결심한 바이러스들의 거대한 군집이다. 그들은 몸을 만드는 사업에 서로 협력한다. (...) 당신은 득실거리고 뒤섞이면서 시간 여행을 하는 바이러스들이 빚어낸 위대한 협력의 화신이다.”

 

몹시 불안하고 어지럽던 수개월이 지나 편안했던 긴 주말 동안, ‘나는, 인간이란, 생명이란,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왜 이런저런 행위를 하는지를 가만히 곱씹으며 배워볼 수 있었던 반가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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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안녕
유월 지음 / 서사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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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이든 조언이든, 그건 하는 사람의 것이지요, 그 사람이 던진 말을 받을지 말지는 김 선생이 선택하는 것일 테고.”

 

왜 이토록 몰입되는지 문득 의아해하며 빠져든 작품이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마주 앉았지만 튼튼한 창살 너머로 듣는 듯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그 점이 감정에 체하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를 읽게 돕는다.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남의 직장(?) 풍경도 그곳이 법원이라서 더 기막히고, 너나없이 경험하는, 이 사회에 만연한 촘촘한 차별과 불합리와 불의를 소설 속 에피소드마다 환기하고 절감하니 한숨이 푹푹 나온다.

 

해진 마음을 끌어안으며 다짐했다. 누군가의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다고, 일로 만난 사람에게 마음 따위 주지 않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어떤 것도 맡기지 않겠다고, 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참지 않겠다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지키겠다고.”

 

열심히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착하게 내 몫 이상을 해내며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보상과 감사와 인정 대신 결과로 자리한 아픔과 상처에 심장이 저릿하다. “마침내라고 편한 숨을 내쉴 수 있는 순간은 왜 이리 야박한 건지. “안녕을 고하며 패턴을 끊고 바꾸고 다르게 살아보는 일은 왜 이리 드문 건지.

 

타인들의 아픔과 상처를 들어 온 시간이 도연의 힘이 된 걸까. 나라면 외면하거나 포기했을 고비에도 도연은 연대를 놓지 않는다. 우정을 버리지 않는다. 그럴 수 있는 결정에는 자신의 경계를 살짝이라도 허무는 용기가 필수다.

 

작고 사소한 사랑이 얼마나 자신의 곁을 스쳐 갔을지 도연은 알 수 없었다.”

 

뒷목이 뻐근할 정도로 긴장해야하는 상황이 적지 않지만, 역시 이런 희망이 파릇한 이야기가 좋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지 않아도 끊어지지 않는 이웃과 동료의 태도로 타인을 지켜보는 이가 좋다. 재빠른 계산과 이익을 위해서는 못 할 게 없다는 태도보다 윤리적 고민과 성찰이 있는 삶이 더 아름답다.

 

여름이라도 이런 따뜻한 이야기는 환영이다. 지난겨울의 광장에서처럼, 괜찮지 않은 것들. (...) 징징대고 싶은 것, 힘든 것, 견딜 수 없는 것, 더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누구나 계속 이야기하며 살 수 있기를.

 

좋은 방향으로 키를 맞춰두지 않으며 더 쉽고 편안한 나쁜 방향으로 이끌려갔다. 매일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곁에 어떤 사람을 두는지에 따라 삶의 모양도 조금씩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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