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체 한 구가 더 있다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2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전염병 피하듯 그 사람을 피해 다닐 거예요.”
경험하지 못한 중세 영국에서 삶과 죽음은, 짐작보다 허무하고 잔인하게 다뤄진다. 종교나 신이 왜 역할을 더 잘하지 못하냐는 원망이 흔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종교라는 신념과 가치의 체계가 다독이고 사회화시킨 점도 클 것이다.
오히려 현대에 와선 더 존중받지 못하는 죽음에 대해, 영혼을 믿었던 시절에는 적어도 매장과 애도의 의식이 더 진지해 보인다. 물론 모든 사건은 문명의 아리어니처럼 보인다. 애초에 학살을 저지르지 않으면 될 일!
어쨌든 이 작품은 바로 그 매장을 위해 캐드펠이 나서면서, 사건의 단초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집단 학살의 현장에 제가 저지른 살인을 감추기 위해 시신을 가져다둔 것은, 인간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인간이 내세우는 가치들에 대해 짙은 그늘을 드리우게 한다.
“내 모든 힘을 다해 니컬러스 페인트리를 살해한 자를 반드시 밝혀내고 말겠어. 내 힘만으로 안 되면 신의 가호를 빌려서라도 말이지.”
한 권이 드라마 시리즈 한편으로 충분할 듯이 섬세하고 치밀하게 창작된 작품은, 2권에서도 장편소설을 읽는 충분한 즐거움을 제공한다. 1권을 읽고 난 뒤라서, 조바심은 사라졌다. 차분히 읽기만 하면, 기다리기만 하면 반드시 제공될 답이 있다는 것이 즐겁다.
세상에는 들키지 않을 거란 확신으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어쩌면 들키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게 영리한 건지는 모를 일이나, 누구에게도 잘 한 일이라고 권할 수는 없는 범죄이다. 종교가 없고 영혼을 믿지 않는 이에게도 삶을 만들어갈 공동체에 그런 범죄를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책을 통해 배우며 살아가기 마련이지!”
어떤 진실은 드러나야 했고, 다른 진실은 은폐되어야했다. 나는 이제 ‘정의’가 무엇인지 선명하게는 모르겠다. 다만 승리한 쪽의 논리와 입장이 모든 가치를 가져가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드러난 현상 외에는 잘 볼 수 없는 인간은 타인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는지 오래 생각한 적이 있다. 굳이 하나의 정답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다 몰라도 결국 엉망이 되더라도, 도움을 청하는 타인을 돕는 것으로 충분하다.
치밀하고 영민한 작가의 사고가 독자인 나의 현실을 아득하게 넘어, 갈 수 없는 먼 곳을 여행하게 한다. 2권과 함께 한 시간도 즐거웠다. 조금 더 익숙해질수록 더 많이 읽히는 탄탄하게 창작된 멋진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