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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을 걷다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1
김솔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4월
평점 :
행간, 틈새... 책을 처음 펼친 날은 비 오는 날이었는데 산책이 가고 싶었다. 공간 사이를, 시간의 틈을, 혼몽하게 오래, 고요하게 깊게.
“뇌졸증이 찾아온 그 밤을 도살장의 한낮처럼 환하게 기억한다. (...) 네발짐승처럼 기어서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둠이 집의 창자를 절반 이상 파먹은 뒤였다.”
‘뇌졸증’은 두려운 질환이지만, 뇌졸중으로 주인공처럼 뇌가 두 쪽이 나지 않아도, 분리와 단절과 파편화는 매일 진행 중이다. 내가 경험한 과거의 나를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현재의 나는 얼마를 영원히 잃고 사는 낯선 존재인지. 얼마나 짧은 순간, ‘존재’라고 믿는 결합체는 분해되고 마는 것인지.
내게 시공간은 물리학이 정의한 세계였다. 시간의 일방향성부터 배웠고, 이해하지 못한 해밀토니안Hamiltonian 방식의 우주는 시제 없음의 시제와 수축과 확장만이 존재하는 막막 공간이었다.
사회 속에서 나이 먹어가며 살다보니, 현실 사회 여기저기 뚫린 시공간의 여백들이 점점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 여백을 떠도는 말들이 소란스러웠다. 누군가는 그 여백을 채워야한다는 강박으로 살았고, 누군가는 ‘비어있는’ 상태를 죄나 적처럼 무찔러야 한다고 믿었다.
“한꺼번에 죽이지 않고 조금씩 죽이고 있는 이유는 죽음의 신만이 알고 있을 것인데, 그걸 굳이 알고 싶진 않다.”
작가를 모르고 읽은 첫 작품에 나는 얕은 감탄사를 계속 내뱉었다. 이렇게 우울감의 타격이 심한 날에도, 깜빡이며 녹아 흐르는 촛불처럼 가슴 한가운데 기쁨이 명멸하곤 했다. 어둡고 건조하고 무거운 범죄 같은 분위기가 다 그만 두고 싶은 어두운 내 기분에 쿵쿵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불가능한 미션을, 신탁을 받은 것이라 믿는 이들은, ‘뛰어넘을 수 없는 것들을 뛰어넘으라고’. 불가능은 오직 노력 부족, 용기 부족, 실천 부족이라는 가스라이팅을 믿고 퍼트렸다.
“지금보다 더 끔찍한 인생을 살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능력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몸을 잔뜩 웅크리고 혀를 깊게 삼켰으며 숨을 오래 참았다. 하지만 짓누를수록 침묵은 더욱 유려해졌다.”
자연의 시공간과 같아야하지만, 다른 인간 사회의 수많은 간격과 단절은 인간을 집어 삼키기도 했다. 뇌를 가른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인간적인 것들과, 하천과 그 주변에 응축되고 굳어진 역사와 모순들은, 때론 이야기로 흐르다 넘치기도 하고 한 자리에 고여 썩기도 했다.
“내게서 가장 먼저 사라진 부위가 사랑을 주관했고,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것들은 증오의 찌꺼기라고 굳게 믿겠다. (...) 마음이 이미 도달해 있는 곳에 몸이 미처 닿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고통스럽다.”
행간이라는 시공간을 걷는 일은, 한 개인의 내면과 삶에 죽죽 그어진, 소통을 그만 둔 조각난 파편들을 주워 모으는 일 같기도 했다. 어리석고 미숙한 실수들로 이어지고 채워진 삶의 궤적, 현재를 만들었기에 제거 불가능한 과거에 결국 잡히고만 여생. 후회가 된다면 변화가 있을까.
“괴로운 밥벌이에 몰입하느라 너와 나는 육체의 영혼 어느 쪽도 단련하지 못한 채 늙었다. (...) 순차적으로 전개되지 않는 인생에서 기억과 망상을 거의 구분할 수 없었다.”
삶은 정말 이야기일까, 완결 없이 중단되는 결말이 더 많을 지라도. 들키느니 파괴해버리자는 그 금고 속에, 내가 담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뿐히 건너뛸 수 있으며 싫증이 날 때쯤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에 몇 개나 있었나, 있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