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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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지구공동체를 기본 단위로 하는 작품이 많은데, “한국에서밖에 나올 수 없는 SF”(김보영)라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그래서 더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더구나 이토록 설레는 제목이라니요.

 

의료시스템과 삶이 철저히 자본화된 계급 시스템이라니, 얼마간 현실인 것도 같고 곧 현실이 될 것도 같아서 울울하지만, 그러니 더욱 문학이 전하는 경고의 메시지를 차분히 만나보아야겠지요.

 

옛날 영화들이 몇몇 명작을 빼고는 대부분 잊혔듯, 우리의 기억 역시 선명히 빛나는 새로운 것들만 남고 모두 사라져버릴 것이다. 세계지도가 생겨난 이후로는 아무도 오아시스를 그리워하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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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해서 꾸는 꿈처럼 선입견과 편견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찾아옵니다. 고령화, 장기이식, 의료시스템... 굳이 따지자면 확실한 이유는 없었는데, 저는 왜 작가가 20대라는 것에 놀란 것일까요.

 

작품에 몰입해서 읽어야하는데, 20대가 보는 문명과 사회가 어떤지가 궁금해서, 그런 내용들이 스토리에서 툭 튀어나와 도드라져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설정이 특이하면서 문장 가독성이 뛰어나서 곧 인물들의 매력이 단단해졌습니다.

 

참 많은 설정들이 이미 현실이거나 곧 현실이 되거나 너무 그럴듯해서, 전혀 낯설지가 않아서, 읽기엔 편했지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상업자본주의와 기술의 탄탄한 결합을 깨뜨릴 계기나 동력이 과연 있을까요. 벌써 그렇지만, 건강과 수명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의 구매품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노화란 세금과 기억만으로 존재하는 건지도 몰랐다.”

 

이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것은 암이 아니라 심장 정지와 폐 정지다. 다른 말로 하면, 모자란 통장 잔고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건 아픈 거고, 그중에서도 오래 아프다 죽은 겁니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더 이상 지키지 못한 존재로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를 상상하면 정신이 어둑어둑해집니다.

 

이 작품에서는 건강보험이 아니라 정기구독의 방식으로 한 장기교환 영생이 가능해졌지만(한계는 존재), 여전히 죽어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를 다룹니다. 생명연장은 정말 누구나 바라는 일일까요.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동의서는 어떤 단계까지의 연명과 치료를 거부한다는 의미일까요.

 

버디의 등장으로 우리 시대의 인간은 장기를 하나씩 임플란트로 갈아끼우며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고,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숫자와 계산의 합리성이 가득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가장 영리한 방식, 죽음이 예정된 사람들의 마지막 인간관계를 돈과 교환하는 매매는 딱히 비난하거나 반대할 여지도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진심과 사랑이 뜻밖의 사건이나 부담처럼도 보입니다. 불합리하고 복잡한 감정이니까요.

 

사회 곳곳의 허술하고 모순적인 안전망과 낙관들을 드러내고 꼬집고 무심하게 비판하는, SF 문학이 전하는 경고의 메시지들을 서늘하게 만납니다. 인류가 도착할 세상은 이 작품 세계와 얼마나 닮아있을까요. 정말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을까요.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존재에 이유를 붙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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