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치고 잘 뛰네 - 남자들의 세상 속 여자들의 달리기
로런 플레시먼 지음, 이윤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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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나기전 우연히 이런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다. ‘바클리 마라톤’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첫 여성’ 완주자란 제목 때문에 기사를 읽어 보았다. 160km라니, 세상엔 대단한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133609.html




한국어 번역된 제목이 익숙하면서도 도발적이다. 여전한 현실이기도 하니, “미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경력의 장거리 달리기 선수”라는 저자의 경험과 어떤 접점이 있는지 찾아보며 흥미롭게 읽었다.


세상 모든 것의 표준과 규격과 기준이 여성이 아니라는 현실을 모두가 알지 못하거나 잊고 산다. 스포츠 시스템이야 말할 것도 없다. 처음부터 자신들을 제외시켜버린 조건 속에서 달린 여성들의 이야기는 고난의 서사기다.


“(여학생이) 경쟁 스포츠를 떠나는 근본적인 요인 중 하나인 사춘기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 학문적 관심은 거의 없었다. 사춘기는 현실이다.”


달리는 일로 시작해서, 편향된 차별적 방식의 조건화 - 인프라 - 에 맞선 이야기는 달리기처럼 뜨거운 성장기이도 하다. 운동선수라는 이유로 엄연히 여성의 몸을 부정해야했던 역사와 이슈들을 가시화시키는 것도 후련하다.


“운동생리학을 수강하지 전까지 운동 능력과 성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처음에는 희망을 품었다. 누가 이기느냐는 생물학적 성별이 아니라 신념, 즉 명백한 성 불평등의 시대에 남겨진 인간의 상상력 부족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식이 부족한 생리학이나 스포츠심리학에 대한 내용은 운동선수만이 아니라 몸을 가진 여성과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공부다. 특히 미처 상상하지 못한, ‘여성 정체성’을 가진 운동선수들에 대한 사유는 큰 배움이었다.


“사춘기는 여자애들이 회복할 수 없는 부상이에요.”


스포츠계의 속사정과 민낯을 보게 될 거란 짐작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몸을 사용해서 한발씩 달려 나가는 정직할 수밖에 없는 달리기선수의 시선과 통찰은 꼭 그렇게 솔직하고 열정적이다.


“남자들에게 매력적인 여자 선수들만이 가치가 있어요. 역겹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벽에 붙은 내 나체 포스터는 그 아래 문안이 아무리 기발하다 해도 남성에게 성적 매력을 인정받는 대상에 불과했고 악순환에 기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상’으로 분류된 모든 ‘표준화’를 바꾸는 데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당사자가 속한 분야만 변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인류가 이룬 것은 인류가 생각하는 방식이라는 근본적 사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기와 스포츠 이야기를 하지만, 사회와 문화와 문명을 바꾸는 큰 질문을 제기한다.


달리는 방식처럼 성실하고 탄탄하고 목표에 도착하고야마는 경기의 대미처럼, 저자가 평생 애쓴 노력이, 경험과 관련 통계와 연구 자료를 근거로 진지하게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길 힘껏 응원한다. 


“핵심이 무엇인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엘리트 스포츠 육성에 사회 자본을 독점적으로 배분하는 현실에 반대하는 내게도, 이 책이 기록한 풍경은 어떤 역전 스포츠 드라마보다 더 강렬한 감동을 주는 뜨거운 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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