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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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세계 여기저기에서 하루하루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의 작은 조각이라도 제시하여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 그 자체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그것이 나의 끝나지 않는 인문 기행의 한 페이지다.”

 

18년간 계속 된 연재가 작년 7월에 끝났다. 해외에서도 프린트해서 거듭 읽던 칼럼이라서 아주 중요한 삶의 루틴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리고 12월에 서경식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갑갑하고 참담한 시절이 더 암담해지는 기분이다.

 

습설이 무겁게 떨어지는 주말, 온기처럼 용기처럼 작고 붉은 유작이 도착했다. 올바르고 아름답고 슬프고 귀한 글들이 가득할 것이다. 다만 독일과 불란서 인문 기행을 만나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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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弔事를 접할 때마다 나이를 절감한다. 어느 시기가 지나자 경사慶事보다 조사가 더 많아졌다. 큰 질환이 없더라도 매일 약해지시는 양친과 친척들을 뵐 때마다 반드시 오게 될, 피할 도리가 없는 이별이 내 앞에 남았다는 생각을 한다.

 

존경하는 스승들과 어른들이 근 10년간 많이 떠나셨다. 매번 슬픔과 함께 상실과 두려움이 퉁퉁 소리를 내며 심장을 울렸다. 서경식 선생님이 인류가 당면할 긴 악몽의 시간근심으로 마음이 꽉 막힌 순롓길(1986.10.2.)”일상화된 지옥’”을 언급하실 때, 나는 이별만이 이어질 날들을 잠시 상상했다.

 

내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얼마나 허무하게 창조하여주셨는지를 기억해주소서.([시편] 8946!47)”

 

작은 책의 한 면은 예술작품 사진들로 채워있기에, 급할 것 없이 차분히 읽어도 1980년대와 2020년의 시공간들을 여행하는 일은 어느새 끝에 도착하고 만다. 젊어서 어색하고 미숙하고 고독하고 광기와 죽음의 갈림길을 걸을 때도 미술관은 추악함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간절한 순례 같다. 시리즈의 신간이어야 했을 유작에 쓰인 문장이 눈물을 고이게 한다.

 

써야만 할 사연도 쓰고, 쓰고 싶은 이야기도 많지만 아쉽게도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재난과 역병을 경험하고 배우고도, 인간이 스스로 그 고통과 비극을 배가하고, 서로를 살해하고, “자기중심주의와 불관용의 정신이 만연하고 파시즘이 대두하는 그런 시대라는 대재앙을 초래한다. 또한 누군가는 그 참화 한가운데서 철저하게 이를 응시하며 기록하고자한다. 인간의 가치는 후자와 함께 한다.

 

나치 독일의 잔학함과 냉혹함을 그 증거로 내놓는다 해도 지금은 누구도 진심으로 충격을 받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치 패망 이후에도 이와 동등한 잔혹과 냉혹함이 세계도처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읽다가 문득 존재의 겉옷이 벗겨진 듯 심란하고 울고 싶은 기분이 들 때는 글에서 눈을 들어 옆에 담긴 그림을, 예술을 오래 보았다. 문자가 아니라도 인문 정신은 예술로도 기록되고 전달되고 이어진다.

 

예술에 전쟁을 억제하는 힘이 있는지, 나쁜 권력을 타도하는 힘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어떤 악몽의 시대에도 관용, 연대, 공감을 추구하려는 인문 정신이 살아 있음을 가르쳐준다. 예술에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2022년 충격과 함께 전쟁이란 명명으로 시작된 살육과 파괴를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천조를 전쟁무기에 사용하는 국가의 다른 풍경들을 경계인의 시선을 따라 여행하며 거듭 영면에 든 선생을 그리워한다. 내게도 있는 선한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전쟁이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큰 부자가 되기 위한 짓거리다. 우리에게 서로를 죽일 권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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