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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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의 기록을 확인하고 2015년이란 숫자가 낯설어서 괜히 놀랐다. 2023년에서 이어진 겨울을 지나가는 2024년의 어리둥절한 주말이다. 그동안 지나간 여름과 겨울을 떠올려보려 해도 기억이 뒤섞여 엉망이다. 어느 해의 겨울을 누구와 더불어 지나가게 될까. 유독 허기지는 저녁에 펼쳐 본다.

 

별 일 없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매년 겨울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크게 무너진 이들, 아픈 이들, 문 밖에서 견뎌야 하는 작고 약한 생명에게 겨울은 다른 생존 조건이다. 서로 다른 상황을 기억하며 겨울을 지나가는 이야기를 읽었다.

 

꿈의 마지막 장면,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모습으로 그 추운 숲길을 혼자 걸어가던 엄마의 뒷모습이 머릿속에서 자꾸 소환되어서이기도 했다. 단지 꿈이란 걸 알면서도, 어린 엄마가 감당했을 숲의 추위가 나는 걱정됐다.”

 

상실과 이별과 죽음이 있지만, 만남도 사랑도 삶도 여전히 있다. 시공간을 저마다의 행위로 채우는 삶이 가득하다. 허기진 상태로 읽기 시작하기도 했지만,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거의 찾아 먹지 않는 칼국수와 겉절이 김치가 먹고 싶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작품 속 는 엄마가 생전에 운영하던 식당을 이어나간다. 모두 태우거나 버리지 않은 엄마의 옷, , 비누, 로션이 반갑다. 서둘러 떠난 이들의 짐을 모두 치워버리는 일이 나는 늘 의아하고 불편했다.

 

우리는 육체를 가진 동안에는 시공간에서 살지만, 죽은 후에는 기억하는 이들의 기억 속에, 이야기 속에서 산다. ‘에게 강아지 정미도, 동생 미연도, 미용실 아주머니도 이웃 노파도, 식당 손님들도 있어서 엄마가 부재한 풍경이 덜 외롭고 더 오래 따뜻하다.

 

부모(모부)없이 살아본 적 없는 자식으로서, 거의 매일, 문득 어느 순간에라도 이별이 닥칠 수 있다는 꾸준한 불안을 절감하며 사는 중년으로서, 사별과 후회와 남겨짐은 이상하게도 포악한 허기를 불러일으킨다. 마치 무엇으로라도 상실을 채워야 그 힘으로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듯이.

 

나는 겨울을 좋아하고 겨울에 태어났지만, 두 분은 그렇지 않으니 겨울에 떠나시지 않으면 좋겠다. 고통이 심한 병으로 고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준비를 했다고 믿는 내가 그 믿음 만큼 잘 보내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존재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진 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녹은 눈과 얼음은 기화하여 구름의 일부로 소급될 것이고 구름은 다시 비로 내려雨水 부지런히 순환하는 지구라는 거대한 기차에 도달할 터였다.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와 사랑하는 이들을 불시에 황망하게 잃은 모든 분들이, 그 겨울을 지나지 못하고 계신 모든 분들이, 일면식이 없어 추억을 나눌 수는 없지만, 기억하고 잊지 않고 함께 겨울을 지나가려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조금의 위안으로 삼아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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