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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페이지 저자, 송섬별 역자 / 반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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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트랜스젠더 친구나 동료가 없어서, 내가 짐작할 수 있는 전부는 모두 간접 경험에서 온다. 가장 오래, 천천히, 긴밀하게 느끼며 읽은 것은 이 책이다. <인셉션>의 지적이고 당찬 배우의 모습으로 기억된 이미지를 한 조각씩 지워내며 현재의 그를 다시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나 남자가 될 수 있어요?”

 

4살 때 이미, 스스로가 인지하는 성과 다른 몸을 알았다고 하니, 그 괴리가 매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신이 속한 사회를 배우고 타인들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게 될수록 정신적 부담과 공포가 심해졌을 것이다. 자해와 폭음과 거식증 등의 스스로 벌주기는 고통을 견디며 지나온 흔적일 것이다.

 

그래도 영화 일을 계속 했다. 다행이지만, 유명세와 성정체성은 몸과 성인지 못지않은 간극을 절감하게 했고, 상담과 복약으로도 스스로를 숨기며 정체가 탄로 날 것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린 상태를 도울 수 없어 읽기에도 아팠다. 첫 번째 동성애자 커밍아웃 이후에도 여전한 젠더디스포리아Gender Dysphoria*를 겪는다.

 

* 출생 시 지정 받은 성별(지정성별)과 스스로의 성 정체성(성별정체성)이 일치하지 않아 발생하는 불쾌감, 괴로움, 불행 혹은 그러한 감정으로 인해 일상 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현상. 젠더위화감, 젠더불쾌감, 젠더경합, 성별불일치감, 성별불일치감정으로도 불린다. 정신의학자 노먼 M. 피스크(Norman M. Fisk)1974년 경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묘사하기 위해 처음 사용.

 

나는 내가 여자가 아니라는 걸 애초부터 알았다. 의식적으로 안 개 아니라,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의미에서였다. 그 감각은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그리고 선명한 기억 중 하나다.”

 

두 번째 트렌스젠더 커밍아웃을 한다. 유방절제술도 받는다. 읽는 중에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인사를 육성과 영상으로 보았다. 그가 환하게 빛나며 웃는 얼굴과, 수술 자국이 남은 상체가 내 눈물로 흐려졌다. 살기 위해서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일, 어쩔 수 없는 일. 그래서 제대로 살고 싶은 사람.



  

마지막까지 읽으면서 정서적 반응이 몸으로도 느껴졌다. 나이 든 장점인가 싶게 심장이 자주 울렁거렸다. 맞지 않는 몸을 의학기술의 도움으로 바꾸는 과정은 결과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지만, 엄청난 통증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이런 도움이 가능한 시절이라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부정하고 미워하는 무심하게 잔인한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을 기쁘게 사랑하기를,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들을 만나기를 계속 응원할 것이다. 그가 친구 니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그에게 전하고 싶다. 온 세상의 평화와 사랑을 빌어 줄게.”

 

나는 살면서 그와 비슷한 용기 있는 선택과 결정을 못 할 것 같다. 성정체성이 아니라도 자신다움의 무언가를 부정당해본 이들에게 이 글은 다정한 대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읽을 수 있게 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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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나눔>

 

읽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너무 빨리 읽힌다. 그가 경험한 삶에서 직접 뽑아낸 천연섬유 같은 문장들은 내가 읽을 깜냥이 되는 독자인지 스스로 묻게 한다. 15장까지 숨 가쁘게 읽고 잠시 멈춰 생각하고자, 의지적 필사를 해본다.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감정에, 카타르시스에 압도되지 않은 채 연설을 마칠 수 있었다. (...) 마침내 해냈어. 안도감에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그 말을 했다는 안도감이었다. (...)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치유적인 순간 중 하나였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노출되고 취약해지는 일이 잇따랐다 한들, 커밍아웃은 그 모든 걸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 나는 숨어서 고통받느니 살아 있으면서 고통을 느끼고 싶었다. (...) 나는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방식으로, 손을 잡고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다.”

 

할리우드의 바탕은 퀴어함을 지렛대처럼 활용하는 데 있다. 필요한 순간에는 치워버리고, 이익이 될 때는 끄집어내면서 자기들끼리 뿌듯해하는 것이다. (...) 내가 퀴어라는 것 때문에 벌을 받는 와중에도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대놓고 학대하면서도 보호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뒤틀린 체계에서 잔혹성은 보편적이고 평범하게 보이고, 이를 해소하고 전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도리어 이상해 보인다.” <끈끈한 유대감: 가족 내의 호모포비아와 그 결과 Ties that bind: Familial homophobia and its consequence> 세라 슐먼Sarah Schulman

 

누군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겠지만,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같이 좀 사는 일이 뭐가 그리 어렵고, 뭐가 그리 힘든 일인지, 차별과 혐오와 폭력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생각하면 늘 아득해지곤 한다. 내겐 뭔가 지향하는 바를 악착같이 추구하는 에너지가 너무 부족해서 경험하지 못한 탓일까.

 

5분간 우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공격하지 않고 서로의 아름다움을 인정한다면 어떨까요.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쉽고 더 나은 삶의 방식입니다. 또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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