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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 ㅣ 책세상 세계문학 7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송기정 옮김 / 책세상 / 2023년 10월
평점 :
22년 봄에 발발한 구시대의 악몽 같은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서로 죽이는 또 다른 전쟁이 격화되었다. 촉발의 원인들을 우리도 안고 사는 듯한데, 권한 대행자들의 대비란 더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거나, 남의 힘으로 안전을 도모해보자고 한다. 갑갑한 노릇이고 두려운 시절이다.
식민지와 전쟁 이야기를 조상들로부터 듣고 자란 세대이고, 마무리되지 못한 모든 여파 속에 여전히 살아가는 형편이라, ‘전쟁 중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전쟁 속에 살고’ ‘전쟁의 증인’으로 사는 기분이다. 그래도 전쟁을 ‘겪은’ 경험과는 다르겠으나, 이 작품에 몰입할 과거와 현재의 이유는 충분했다.
현실에서는 위협과 협박과 굴복의 도구로 납치되는 아이들 소식이 들려오고, 참담한 그 현장이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된 일일거란 서글픈 짐작을 한다. 이성과 문명이 무화되는 폭력의 전장에서, 육체적/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의 입장이 어떨지는 상상하기 싫도록 선명하다.
물론 노벨상 수상자이자 프랑스문학의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작가의 서사가 저널이나 회고일 리는 없다. 개별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변질되는지를 경계하며, 작가는 인간 보편에 대한 사유와 성찰로 깊이 들어간다. 휴가지로만 생각했던 브르타뉴는 이렇게 전혀 다른 장소로 경험되고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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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의 노래〉는, 읽는 도중에 슬그머니 브르타뉴의 지도와 사진들을 찾아보고 오게 만드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표현이 압도적이었다. 사물과 공간의 빛과 냄새와 색이 현실처럼 떠오를 정도로 생생해지는 문장들은 경험한 기억의 변질이 아닌 경험하지 않은 내 기억이 창작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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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대가의 문장력만이 아니라, 작가의 표현대로 조각난 기억들을 최대한 정확히 수집해서, 그 시절엔 몰랐던 시대의 의미를 알아볼 수 있는 정보로 만들고자 하는 분투처럼 느껴졌다. 언젠가의 역사 강의에서 들은, ‘가해자가 지워버리려는 역사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저항’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최근 사람들은 군사작전에서 발생하는 무고한 민간 피해를 의미하는 ‘부수적 피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 말에는 모든 의미가 담겨 있다. 여성과 아이들은 전쟁에 부수적인 요소다.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한 이들의 숫자를 세고, 그들을 조사한다. 마치 가축의 손실이나 건물의 파괴, 보유한 금이나 비축된 양식의 약탈 현황에 대해 수를 세고 조사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피해자가 아니다. 그들은 피해다.”
짙은 향수로 시작하여, 기억의 조각을 찾고, 삶(혹은 살아남은)의 가치를 만나고, 언제나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약자들과 연대하고, ‘이야기’를 통해, 그 힘을 믿고 현재에 전하는 대가의 목소리는, <아이와 전쟁>에 기록된 강렬한 폭력에의 경고였다. 아름다움과 혼재되어 더욱 대비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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