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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
존 프럼 지음 / 래빗홀 / 2023년 6월
평점 :
“존 프럼 작가의 작품들은 양자물리학적이면서 동시에 철학적이다. 원자와 우주, 미시세계와 거시세계, 아프간 전쟁부터 곰둥이 외계인의 정신문명까지, 탄탄한 현실감각에 기반한 상상력으로 거침없이 질주하는 독특한 액션누아르하드SF를 즐겨보시기 바란다.”
정보라 작가님 추천사가 눈부셨다. SF가 문학의 미래라고 믿는 오랜 팬으로서 기대하던 소설집, 특히 표제작에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졌다. 민망하게 소리 내어 감탄하며, 정보를 찾을 수 없는 신비로운 작가를 궁금해 하며 읽었다.
내가 이러려고 물리학과 철학을 배웠구나 싶게, 소설의 장치와 구성이 이해되는 것이 즐거웠다. 고양이에게 왜 그랬어요, 라고 늘 묻고 싶었던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의 전도는 서늘하게도 현실적이다.
인간이 드디어 바라던 불멸을 손에 넣은 방식이 소름끼치고, 고유성이나 독창성은 물론 원본과 복제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세계가 절묘한 경고로 들린다. 본체, 실체, 진짜 등등의 완전하고 깔끔한 종말.
그럼에도 기발한 균열이 발생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인간은 영원히 이해하지도 관리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경건한 비웃음처럼. ‘데이터’로 불멸해도 시공간을 점유하는 잠시의 물성이 있는 한 그 경험과 기억은 변이와 진화의 동력이라는 듯.
과격하고 빈틈없고 낯설고 설레는 혁명 같은 작품이다. 작가는 누구인가. 적어도 내가 제기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세부사항들을 미리 완벽하게 리허설 한 것처럼 모든 답을 제공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니 아주 재미있다. 여전히 무지하고 욕망덩어리인 인간미까지 통렬하고 기막히다. 신화와 종교와 SF가 트리플갱어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작가의 뇌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둔, 활용도 기발한 지능시스템인가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은 뭉클한 감동과 씁쓸한 눈물도 있었다. 언제든, 어디서든, 이 모든 딜레마와 모순에도 불구하고, 다른 존재를 배려하고 염려하여 자신을 희생하려는 품위 있고 우아하고 지적인 존재가 있다.
7편의 먹먹함을 겪고 나니 삶은 소풍이라거나 여정일 뿐이라는 말이 싫다. 머물지 못하고 떠도는 것이 고되다. 아무리 곱씹어도 이 현실을 내가 열심히 만든 건 아닌데, 그런 결론은 억울한데, 전혀 아니라고도 못하니 부끄럽다.
새롭지만 결국엔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은 종교가 사라진 시대에 인간이 간절히 발신하는 기도와 같다. 이야기 속에서 없던 길을 만들어 희망을 심고 가꾸고자 하는 이들의 고단한 애씀을 느낀다. 슬프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