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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그림 읽기 - 고요히 치열했던
이가은 지음 / 아트북스 / 2023년 5월
평점 :
홀리듯 끌렸던 표지 작품은 빌헬름 함메르쇠이VILHELM HAMMERSHØI의 [실내], 1893이다. 오래 전 코펜하겐에서 어느 가을날, 창문을 통해 나갈 수 있었던 지붕 위에서 느낀, 흐릿하고 차분한 조도와 작품의 빛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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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란 늘 힘이 드는 일이지만, 묵언의 하루가 자주 간절하다. 대신 글로 이렇게 온갖 수다를 떤다. 비가 오래 내리던 지난주 책을 고요히 펼쳐 보고, 전시회를 가서 가만히 보는 시간이 안정제처럼 차분해지는 시간이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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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휴식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놀랍게도 휴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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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상의 목소리도 잠시 떠나있을 시간을 위해, 이번 주말에도 궁금한 전시회에 가 볼 결심이다. 그전에 나의 사적인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그림 감상법이기도 하고, 전혀 아니기도 한 매력적인 책이다. 저자도 매력적이다.
“역사학에 뛰어들면서부터 미술 감상을 즐겼다. 처음에 그림은 내게 유용한 사료였다. 역사서의 한 페이지를 연구하듯 그림을 읽었다. 아는 만큼 보였고, 보이는 만큼 그 안에 나의 경험과 사유를 담아 ‘내 것’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안다고 생각한 그림들도 모르던 그림들도 저자의 설명에 따라 배우며 역사적 배경 지식까지 얻는다. 작품만 아니라 예술가들을 좋아하는 따뜻한 시선으로 쓰인 문장들에 한 주간 뾰족해진 마음자리가 부드럽게 마모된다.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 삶은 뭘 해도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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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는 시간 한정이고, 작품 소개에 머무는 경우도 있고, 함께 보고 걷는 사람들이 소란스러울 때도 있다. 그림을 혼자 오래 본다고 충분히 감상했다거나 이해했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이 책의 고요함과 치열함이 모두 사랑스럽다.
“정도만 다를 뿐이지 그 시대의 험한 말이 지금의 나에게도 그리 낯설게 들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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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내면을 계단 삼아 내려가면, 그림을 그리던 이의 내면에 이르고, 그 자리에 나의 내면도 함께 한다. 읽을 수 있는 만큼만 보이나, 기억을 마주하고 나면 어떤 작은 용기가 생긴다. 다시 삶도 죽음도 함께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살아 있는 인간은 감히 죽음의 '진실'을 논할 수 없다.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 죽어보기 전까지 각자 자기에게 알맞은 진실을 선택할 뿐이다.”
그래서 조금 덜 무기력하다. 행복할 만큼 몰입할 일을 찾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책이 전한 온기를 지닌 채 꼼짝하기 싫은 주말에도 밖으로 나설 힘이 생긴다. 고마운 도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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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이 귀찮아지고, 익숙함에 안주하게 될 때마다 (...) 내 주변에 있을 코페르니쿠스들을 상기하며 타인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설령 그것이 나를 향한 도전이 될지라도 열린 마음으로 토론할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