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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평점 :
7년 만이라고? 더 오래된 것 같다. 두꺼운 장편 한 작품도 좋고, 아쉽지 않을 아홉 편도 좋다. ‘하루 한편 즐겁게’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예감했듯 실패했다. ‘무조건 놀자’ 주말을 보낼 굳은 결심, 같이 놀기 좋은 소설들.
“유희는 문득 희열을 느꼈다.”
첫 문장부터 너무 웃긴다. 이렇게 웃을 일인가 싶게 웃다 보면 작가가 웃기려고 작정하고 쓴 작품들인 것 같기도. 코드가 맞는 것도 있겠지만 나의 오독 탓에 웃는 거라도 뭐... 괜찮다. 갑갑한 심정이 책 속 우주에서 팡팡 터진다.
답답한 심정에 존윅4를 보러간다는 친구... 이 책을 추천한다. 당분간 더 잊고 싶은 팬데믹을 떠올리는 내용은 건너뛰고 싶었지만, 음성 언어와 연결한 설정은 기발하고 흥미롭다. 물론 미칠 듯 웃프다.
읽은 작품 수가 더해갈수록 작가가 팬데믹에 책상 앞에서 몸부림(?)치며 견디며 쓴 이야기들이구나 싶은 생각이 뭉게뭉게... 돈 쓰는 이야기, 차.카,타.파 비말 분사 열망, 이건 뭔가 싶게 상상 너머 특이한 존재인 로봇과 소통 형식...
“여봐라, 대통령아.”
이게 현실인가, 맞는 건가, 꿈이 아닌 건가, 산다는 게 뭔가, 이제껏 믿었던 세계의 실체는, 문명이란... 기타 등등 온갖 것들을 의심하고 회환에 시달리고 출렁이는 감정과 흐려지는 정신 둔해지는 몸... 팬데믹 일상이 자꾸 기억난다.
물론 작가의 세상은 내가 다 빠져 나오지 못한 ‘거기’에 머물러 있지도 잡혀 있지도 않다. 시공간도 언어도 사유도 천재 작가가 원래 자유롭게 활용하던 수단이자 장치일 뿐이다. 이론 활용에 더 집중하는 것만 같았던 근래 SF에 대한 불만을 쏙 들어가게 하는 상상력이다.
“생각만 해도, 꿈속에 잠깐 얼굴이 비치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지던 딱 한 사람. (...) 마침내 그의 시간에 이르렀다.”
과학전공자라서일까 평생 좋아한 SF문학의 쓸모와 기대를 먼저 생각하면서 읽은 적은 없다. 읽으면서 배운 점이 있을 뿐이다. SF가 가장 큰 공동체를 상상한다는 것, 때론 고공관찰이 사뭇 냉정하기도 하지만, 인류 공동체를 고민하고 경고하고 비판하는 기능은 유효하다.
그래서... 실컷 웃으며 읽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슬프다.
“우리는 아직 지치지 않았고, 여전히 진실이나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