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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평점 :
독보적인 고전이라는데 이제야 만나보았다. 다행이다. 2004년에는 문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이분법과 위계적인 세계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몸, 감정, 감각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오래 걸렸다.
여전히 우주, 자연의 언어에는 수학으로 배운 지식정보가 가득하지만, ‘자연의 언어를 문학의 언어로 번역’했다는 저자에 대한 소개가 무슨 의미인지 이제는 읽을 수 있다. 다행이다. 실체와 감각이 경험과 언어로 늘어나서 기쁘다.
언어로 표현된 감각을 떠올려보는 일이 공감각적 독서처럼 즐거웠다. 기억은 감각과 짝을 지어 뇌 속에 보관되어 있던 것인가 싶을 정도로 감각적으로만 생생했고 몸의 어딘가는 깊이 울리고 눈물은 차오르다 마르다 했다.
나라는 개체를 표현하기도 보호하기도 하는 피부, 빠르고 확실하게 불러낼 수 있는 모든 기억을 향연처럼 터트리는 후각, 매일 더 노화되다보면 감각의 약화와 더불어 기억도 필연적으로 흐려질 것이다. 대비하기 어렵게 서글픈 일이다.
매질의 파동이 소리라는 건 건조한 정보지만, 그 떨림과 울림을 ‘인체에서 가장 작은 뼈들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표현하니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은’ 듯 심쿵 설렜다.
몇 년 간 급격히 감퇴한 미각에 대해서도, 사회적 감각이라는 점을 짚어주니, 내용상 맥락은 다르지만, ‘먹는’ 행위를 즐겁게만 생각할 수 없는 나의 사회적 감각과 관련해서 욕구 감소를 이해해보는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시각... 부디 가장 마지막까지 작동했으면 하는 의존도가 높고 애정이 큰 감각이다. 외부로 드러난 뇌라고 시각 수용체를 생각하는 지라 시각의 약화가 가장 무섭다. 노안은 이미 진행 중이고 막을 방법은 없지만.
저자는 ‘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 뇌에서 일어난다고, 기억, 상상, 자세한 관찰, 생생한 보는 일에 눈이 필요하지 않다고 위로(?)하지만, 내 기도의 내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부디 시각만은 마지막까지... 이 강렬한 두려움은 실은 뇌에 대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공감각. 혹시 있을 지도 모를 기술이나 위험한 약물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절대 모를 감각이라 무척 부럽다. 혹시 저자의 문장을 읽으면서 즉각 떠오른 뇌 속의 감각들이 일종의 공감각 체험은 아니었을까 멋대로 즐겨본다.
감각의 박물학natural history을 읽는 동안 나도 자연의 생명체처럼 감각체로 스스로를 떠올려보았다. 훈련이 부족해서 명멸하는 불빛처럼 짧게 지속되긴 했지만 새롭고 즐거웠다. 아름답고 고혹적이고 감각적인 책 덕분이다.
자연을 대상으로 연구하지만 자연/공학전공/전문가들은 기계(인공)를 만들고, 시인과 작가는 자연의 일부로 현상과 생명을 관찰하고 사유하고 언어로 번역한다. ‘학문science’을 하던 시절과 달리, 분과로 나뉜 학계 과학의 태생적 귀결일 것이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0404/pimg_739190168380937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