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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휴먼
잭 조던 지음, 해도연 옮김 / 허블 / 2023년 3월
평점 :
‘코믹 생존 어드벤처’라는 소개에 내용도 모르고 웃었다. 공범의식과 유머라니 기대치가 하늘로 솟았다. 공범이 되려면 엄청난 몰입 독서가 가능해야하니까. 즐겁게 웃는 사람을 봐도 기분이 답답해지는 시절, 크게 웃게 될까 설렜다.
작가의 이력 소개가 일단 웃긴다. ‘강박적인 학습자이자 창작자. 예술 학위를 반 정도, 음악 학위를 3분의 2 정도, 마지막으로 철학 학위를 4분의 1 정도 갖고 있다’니.
개체가 하나 남았다는 ‘라스트’ 상태는 이미 멸종 확정이다. 자력으로 지속적인 번식이 불가능하면 멸종된 것이다. 무력감과 서글픔만 남는 건 아닌가 살짝 두려웠지만 펼쳤다. 챗gpt니 현실의 혼란한 논의에 지쳤고, SF의 진지한 메시지가 그리웠다.
영리한 설정! 외계인에 둘러싸인 지구인 사야에게 지구인 독자는 이입할 수밖에 없다. 실로 조마조마하다. 시선이 바뀐 건조한 관찰 내용만으로도 위선이 드러나듯 너무 자주 웃긴다. 이런 냉소와 블랙유머를 젊을(?) 땐 엄청 더 좋아했다.
경험한 분야가 다양하고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는 어릴 적 스타트렉(스타워즈 아님 주의!)을 처음 볼 때처럼 다양한 존재들을 등장시켜서 나는 어떤 향수를 느끼기도 했다. 물론 캐릭터의 성격과 내용은 모두 다르다.
과학지식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 상상력은 구축력이 참 대단하다. SF 대작들처럼 이 책 역시 세계관이 거대하다. 일단 은하계 정도는 등장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나저나 화장실에 지성이 필요하다는 판단은 왜...
스포일링이 될 것 같지만, ‘지성’이란 무엇인가, ‘비존재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묘하게도 현재의 챗gpt논의와 내 안에서 겹쳐진다. 원작은 2020년 출간임에도.
웃기면 성공이라는 듯, 웃다 보면 어느새 설득 당하는 기분이다. 어둠을 빈 공간을 들여다보니 수억 개의 다른 은하가, 별이 있었다. 우주 어딘가에 지성을 가진, 인간보다는 훨씬 더 품위 있는, 계급의 기준이 지성지수인, 신념에 찬 존재들이 없다고 누가 확언할까.
“너의 동족들은 이것보다 더 끔찍한 일도 했어. 그들은 자신들이 은하의 다른 종족과 공존할 수 없다는 걸 수많은 항성계에서, 수많은 종족에게 증명했지. 평화와 협력을 제안받고도 전쟁과 파괴를 선택했어. 결국, 난 선택을 해야만 했고. 전쟁광 종족 하나를 남기거나 은하의 다른 모든 종족을 남기거나. 너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 관계와 타자 없이도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배우고 유지할 수 있을까
! 어떤 행성 사회도 운석으로 인한 파괴를 피할 수 없는 걸까
!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에 대해 잠시 재고/재고민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