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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 - 악기로 마음을 두드리는 음악치료사의 기록 ㅣ 일하는 사람 12
구수정 지음 / 문학수첩 / 2023년 3월
평점 :
봄비라고 해야겠지요. 비가 오고 목이 덜 아프니 반음 정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빗소리가 들리니 악보 한 장 정도 기분이 씻기는 듯도 합니다. 다정한 이웃께서 Gidon Kremer의 Oblivion을 들려 주셔서 완벽해진 휴일입니다.
망각처럼 완전한 휴식이 있을까요. 좀 더 유예하고 싶은 시간을 최대한 늘리다가 힘을 내어 현실로 귀가합니다.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살아온 시간만큼은 더 살지 못할 것입니다. 한편 홀가분하고 일회성에 용기가 좀 나기도 합니다.
노래와 음악은 다른 것이지요. 좋아하는 노래들이 많지만, 간혹 가사가 없는 음악이 더 큰 위로가 됩니다. 몇 분에 끝나는 음악 말고 훨씬 더 긴 시간의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무척 좋아하고 늘 반가운 일하는 사람 시리즈의 이번 저자는 음악치료사입니다. 위로, 위안, 격려, 휴식과는 또 다른 ‘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덕분에 전혀 모르던 세계로 기쁘게 초대받은 기분입니다.
타인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치료하는 분들도 참 많습니다. 약물이 아닌 음악으로 치료를 한다는 건 무척 아름답고 도전적이고 저처럼 인내심이 적으면 전 과정을 견디지 못할 것도 같습니다.
“자기 상처가 없는 사람들이 타인의 아픔을 알아채고 공감하기란 쉽지 않지.”
저자 본인께서 깊은 상처를 입고, 큰 좌절을 경험하신 분인데, 자신만을 생각하고 애통해하지 않으신 것이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 생각만 하다 익숙한 어둠으로 침잠하는 중입니다.
음악이 치료할 수 있는 이유는, 소리라는 것이 ‘떨림과 울림’이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단단하고 딱딱해진 것들을 떨게 하고 울게 해서, 시달리고 상처 입은 감정을 무기력과 잠에서 깨어주는 일.
“다양한 소리가 다양한 사연과 만날 때, 그 진동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때 기분이 묘하면서도 뿌듯하다. 내 악기 가방에는 동생 부부가 가나에서 보내준 아프리칸 쉐이커, 아슬라투아가 짤랑거리고 있다. 이제 이 악기는 누구의 마음을 두드릴까.”
명화를 보고 우는 사람보다 음악을 듣고 우는 이는 영원히 더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번이 아니라 오랜 기간 여러 번의 세션을 통해 음악으로 소통하고 치료하시는 모든 시간이 봄비 소리처럼 반갑고 설렙니다.
저자의 음악은 말보다 느린, 천천히 나누는 안부인사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