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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평점 :
검열이 낯설지만은 않은 세대라서 제목에 일단 화들짝 놀랐다. (설마... 비유겠지) 동시에 내가 가진 무언가를 태워 힘을 바짝 내고 불길처럼 열렬히 할 일을 하고 계획을 밀어붙이고 진짜에 도전할 수 없는 날들에 불씨가 되어줄 수 있을까 기대도 컸다.
파비의 사연은 읽기는 쉽지만 상상만으로도 힘들고 현실이라면 어찌할 바를 모를 비극이었다. 나는 생존자가 가지는 어떤 감정도 부정할 수 없다. 내 경험이 아님에도, 한 번도 종교를 가져본 적 없지만, 존릴에게 아무 공감도 못하지만 선택에 그저 수긍했다. 가리거나 채울 수 없는 괴물처럼 자신을 집어 삼키려는 상처 때문일 것 같았다.
역사를 공유한 적이 있고 통역 없이 대화가 가능하지만, 내게 북한은 아주 먼 곳이다. 물리적 거리감은 곧 심정적 거리감이다. 탈북/새터민을 만나본 적도 없어서 아는 바도 없고 모르니 의구심과 오해가 내게 가득할 것이다.
권오경 작가도 이름 이외에는 내게 무척 낯선 존재일 테지만, 그럼에도 그가 쓴 책이라 ‘한국’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이 생긴 것 같아 기뻤다. 숫자로 현혹하는 동시성은 오해일 뿐 비동시성이 기본값이며 세상은 늘 상상보다 복잡하다.
약화되고 축소되어 이젠 존경받는 행동주의자들만 남은 듯한 한 때의 절대권력 종교, 나는 이제 제도화된 종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만들거나 선택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 이미 종교는 위력을 잃었다. 이제 인간에게는 교리보다 더 강렬하게 집착하는 것들이 많다.
염증 수치라도 오르지 않은 한 35.5도 언저리를 유지하며 냉랭하게 그러니 시큰둥하게 산다. 30년쯤 전에 문득 궁금했다. 세상에는 왜 자신을 불지르는 사람들과 남을 불태우려는 사람들이 있을까. 동서양이라는 모호한 개념은 분신과 테러로도 구분되었다.
“이민자들은 심리 상담을 믿지 않아. 내가 그런 걸 한다고 하면 주위 한국인들이 의지박약이라고 볼 거야. 다른 인종 집단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게을러서 그런다든지, 불효하는 거라든지.”
윌과 피비와 존릴은 다른 시기에 다른 온도로 다른 빛을 내며 불사르는 삶을 산 존재들이다. 그 불길이 향하는 방향과 태우는 대상이 달랐을 뿐, 사랑과 집착, 믿음과 광신, 기타 등등 짝 지을 수 있는 것들은 실은 기세만 다른 같은 불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척 자주 생각해왔어요, 그리움에는 그 대상을 찾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요. 욕망은 더 많은 걸 갖게 해달라고, 저 공간을 차지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니까요. 사랑했다는 것은 특권이에요.”
귄위에 복종하고 훈련을 받으며 자란 아시아인, 경계인, 변두리인의 입장을 나도 조금 안다. 피비는 망가진 것을 대체할 다른 권위와 규율체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외피 안에서 안도할 수 있을 거라 믿었거나 혹은 훈육되었기 때문에 본성처럼 끌렸을 것이다.
나중에 지도교수가 된 영국대학교수가 면접에서 나에게 well-disciplined 지원자일 거라고 말했다. 합격시켜 줬으니 칭찬이었을 텐데 부정할 수 없는 일로 모욕당한 듯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 순간은 나도 잠시 불길처럼 타올랐을 지도.
변명으로 버티며 제대로 만나지 않은 2023, 곧 유예 마감일이다. Need to light my f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