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방
박일우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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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일우의 전공이 인상적이다. ‘일제강점기 만주표상문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전주의적 스타일의 작품을 나는 좋아하고, 잘 모르는 전통을 담은 작품은 더 좋다. 역사를 잊은 듯, 역사란 없는 듯 사는 요즘에 작가의 세계관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도 궁금했다.

 

오래 묵힌 원고들이 한 권의 책이 되면 장점이 있다. 청년, 중년, 노년의 이야기가 흐름처럼 느껴지고, 작가의 세계관의 변화도 문해력에 비례해서 감상할 수 있다. ‘흐름이라고 했지만 인간이 약속한 시간만 쉼 없이 흐르고 인간은 실은 그 약속을 못 따라가는 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엔 의례 하는 말씀인 줄 알았던 살아보니 금방이다’ ‘삶이 한순간이다하는 표현이 모두 이해되고, 당혹스러운 것은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한 나. 언제부터 어른인지를 모른 채 당황한 상태로 나이만 먹고 있다는 문득 가슴이 철렁하는 자각...

 

“5년간 회사 생활은 그야말로 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 발가락 사이사이에서 쩍쩍 소리를 내며 얼음판이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단편들의 공간에는 어느 시절의 나처럼 걸음을 멈추고 어리둥절한, 잠시 하던 일을 멈춘, 아직 어느 방향으로 다시 발을 내딛을지 모르는 상태의 사람들이 있다. 다시 내 시간이 째깍거리기 시작하면 그 막막함이 사라지지만 잠시 멈춤은 언제든 반복될 수도 있다.

 

빛도 안드는 음습한 방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은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에서 회오리치곤 했다. 유폐의 시간이 쌓여 갈수록 탈출의 욕망도 따라 차곡차곡 쌓여 갔다.”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 얼음판이라거나, 열심히 살았는데 어두운 단칸방에 갇힌 상태라거나, 의도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떠나간 혼자인 상태라거나, 이젠 사회인으로 살아야하는데 내 자리가 없다거나, 갑작스런 사별을 겪거나, 무기력에 잠식되거나... 모르지 않고 낯설지 않은 상황들이다.

 

현실을 벗어난 몸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니었다. 주위의 누군가가 뺨을 올려 치지 않았다면, 그의 의식은 산산이 날아가 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구원자는 나를 방문하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선택지는 많지 않다. 견디고 서고 다시 걷거나 포기하고 끝내거나. 기회비용의 규모와 상관없이 매번 전자를 선택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지금 여기 2023년에 도착했다.

 

떠오르는 것보다 떨어짐이 빠르다. 점점 앞이 희미해진다.”

 


여러 인간유형을 다양한 상황에서 만나는 단편 소설들은 도움이 된다. 새해라지만 새롭지 않을 듯해 두렵고 새로운 것은 낯설어서 두려운 그런 시간을 맞이하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또 살아본다. 가능하면 분열되지 않고 온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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