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여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4
이서수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고 나서 한 주가 지나도록 글이 써지지 않았다. 새해인데 새로운 것이 부재한, 힘이라곤 나지 않는 무겁게 내려앉은 시간 탓을 해보았다. 짐작한 이야기들이라 모르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모두가 새롭게 아픈 이야기들이었다.

 

황사,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경고가 울리고 눈앞이 희뿌연 주말에 <헤어질 결심>을 두 번째로 보러 갔다. 첫 관람 시엔 호러영화 같았고 이젠 스릴러로 보였다. 행복이 끼어들 틈이 없이 촘촘하고 질긴 수많은 계급 차이들이 비극으로만 향해 있었다.


 

<몸과 여자들>에서 목격한 몸에 대한 폭력이 영상 속 서래의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직접 몸에 가해진 폭력도 피해자가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도 모두 선명하게 보였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묻던, 제 몸을 묻고 사라지는 서래는 입막음 당하고 지워진 책 속 다른 몸들로 느껴졌다.


 

스토리로 제공되지 않은 어머니의 삶이 서래 삶의 풍경과 그리 멀었을까. 미복과 어머니의 몸에 대한 기억과 삶이 닮았듯이. 끊임없이 타인(사회)의 평가를 받고, 그 시선에 맞게 정서 훈련이 되는 삶. 형성된 섹슈얼리티의 주체와 소유는 몸의 당사자일 수 없다. 추행과 폭력에 항의할 수 없었던 것은 그렇게 구성된 소외의 결과물이다.


 

창작자의 의도는 아닐진대(아는 바 없음) 작품 속 로맨스(혹은 멜로)는 비극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도구로 느껴졌다. 나는 계급의 틀로 세상만사를 보는 사람이 아닌데(볼 줄 모름) 상영 시간 내내 피할 길이 없었다. 과거에 외면한 모든 순간을 마주하듯 체온이 점점 떨어졌다.


 

내가 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망상이었다고 비웃듯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 나는 매일 길을 잃고 말문이 막힌다. 성범죄 처벌과 판결은 농담인지 장난인지 모르겠고 성매매는 성황 중이고 리얼돌은 수입통과되고 보건 과목에서 섹슈얼리티용어는 사라진다.


 

공감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연대의 방식은 어때야할까. 당장 나의 현실이 아닌 것에 대해 동시대를 산다는 사실만으로 나눌 수 있는 생각의 분량은 얼마일까. 공교육에서 사라질 섹슈얼리티는 이제 개인의 문제로만 인식되고 차이점들만 부각될까.

 

소설인데 고백록처럼 읽었다. 혼곤昏困해진 정신이 뱉은 내 하소연이 길어졌다. <몸과 여자들>은 계속 발굴되어야 할 잠긴 목소리를 기록하고 되살린 귀중한 문학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